제33화
33. 고인 물 확실해요?(3)
B급 프로 헌터라기에 약간은 긴장된 상태였다. 고블린보다 몇 배는 강할 테니까.
‘사람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고작 1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형편없이 휘두르는 주먹. 차라리 고블린이 공격하는 게 100배는 나을 정도였다.
“이게 왜 안 맞지?”
“무식하게 휘두르기만 하니까 안 맞죠. 페이크 같은 것도 좀 사용해 보고, 다른 스킬도 좀 사용해 봐요. 기숙사에서는 봐줬다면서요?”
“…….”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피한 주먹도 대략 10번. 싸움 수준이 고블린보다 한참이나 낮았다.
‘아니, 아무리 종족 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스승님의 훈련을 받아서 그런가?’
힘은 강했다. 스킬도 함께 사용했는지 강수호의 몸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오늘 상대했던 고블린보다는 싸움 경험이 없었다. 센스도 꽝이었고, 실전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티가 팍팍 났다.
“혹시 헌터 배달이라도 하시나요?”
“뭐? 헌터 배달?”
헌터 배달. 돈을 벌지 못하는 헌터들이 돈을 벌기 위해 뛰어난 능력으로 배달을 하는 일이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싸움도 못 하는 헌터라는 이미지가 박힐 뿐이지.
“하하. 친구가 장난이 심하구나? 강한 건 알겠지만, 선생님한테 그러면 안 된단다. 하늘 같은 선생님한테…….”
“선생님이라고요? 저보다 약해서 학생인 줄 알았는데?”
“…….”
비웃듯이 말했다.
애초에 강하다는 걸 바란 자신이 잘못이었다.
종족 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몇천 년간 마법을 익히며 훈련하는 고블린들.
B급 헌터라는 자만에 빠져 돈만 벌 생각을 하는 놈이 자신을 이길리 없었다.
“B급 헌터면 고인 물 취급받는단다?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풉.”
“…….”
‘고인 물’이란 말에 순간적으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저 그런 평범한 속도의 주먹. 강수호에게 털끝 하나 닿지 않은 주먹임으로 자신을 고인 물이라 칭하다니.
“아저씨는 아직 진짜 고인 물을 못 봐서 그래요.”
만약 진짜 고인 물들을 본다면 저런 말은 못 할 거다. 말하기도 전에 패기에 짓눌려 무릎부터 꿇을 테니까.
“정말 자만하는 녀석이군…….”
“이게 본색인가요?”
이 이상은 참지 못하겠는지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자신에 대한 모욕은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제대로 공격을 시작했다.
“이건 못 피할 거다. 후회나 하지나 말도록.”
강력한 기운이 들어 있는 주먹.
하지만 저리 말해도 주먹들을 가볍게 피해 냈다.
4t의 무게를 착용하고도 스승님들이 몇천 년을 가르친 고블린을 이겼다. B급 헌터는 꽤나 쉬운 촉에 속한다. 그것도 정식 헌터로서 일해 보지 않은 헌터라면 더더욱.
“너무 느립니다. 어떻게 고블린보다 못합니까?”
“내가 고블린보다 못한…….”
빠각!
“커헉!”
“네. 진짜 고블린보다 못합니다.”
다시 한번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피해 내며 뒤통수를 쳤다.
방금 휘두른 주먹은 헬창 스승님들의 주먹보다 한참 느려 터졌다.
“아직이다!!”
하지만 B급 헌터답게 한 방 맞고 골로 가지 않고 다시 한번 달려든다.
무릎을 굽힌 채로 품속으로 들어가 턱을 치려 했지만.
“너무 뻔하고요.”
“……!!”
너무 뻔한 공격이다.
만약 강수호가 몬스터였다면, 진작에 뜯어먹히고도 남을 정도로.
빠각!
“커헉!”
다시 한번 후려치는 뒤통수.
뒤통수를 치니 점점 화가 치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저게 학생이라고? 프로 헌터라고 해도 믿겠잖아?’
그의 말대로 강수호의 수준은 프로 헌터를 아득히 뛰어넘었다.
몬스터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배달을 시작한 그의 수준은 B급 헌터 아래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래도 내가 배달에서는 최상위인데…….’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
“이제 끝이네요.”
강수호가 그와 비슷한 식으로 무릎을 굽히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까와 같은 수법에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들어 피하려던 그때.
“이거 페이큰데.”
“이런 젠…….”
퍼억!
정확히 얼굴에 꽂힌 오른쪽 주먹.
그가 사용했던 싸움 기술과 유사하지만, 강수호는 자신만의 방식을 섞어 공격해 왔다.
얼굴이 정확히 강타당해 쓰러지는 그.
“기절했네.”
“…….”
입을 쩍 벌리며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양유혁에게 다가간다. 어찌나 놀란 것인지 그는 강수호가 앞까지 왔음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상한 짓 하지 마라.”
“…….”
간단한 충고. 그거 하나면 그도 대충은 알아들었을 거다.
강수호가 운동장에서 사라지고, 그는 멍하니 쓰러진 이승현을 바라보며 휴대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냐?
귀찮은 듯한 말투.
양유혁이 이어 말했다.
“죽이고 싶은 아이가 한 명 있어서요.”
-…….
전화를 받은 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런 일은 한두 번 빼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들의 부탁.
-누구.
“강수호요.”
-강수호라. 설마 요새 좀 인기 있다는 슈퍼 루키를 말하는 것이냐?
“넵. 아빠가 꼭 좀 죽여 주셨으면 하는데요?”
전화를 받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수호 길드의 마스터.
그는 한숨을 잔뜩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그래, 조만간 시체가 되어 나올 것이다. 나도 벼르고 있던 놈이라.
“알겠습니다. 이만 끊으시죠. 나중에 제가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직접 볼 거니까 바로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 못 죽이면 건드리지는 마시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양유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새끼.”
강수호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절한 이승현한테도 한 말이 아니다.
휴대폰에 적힌 ‘아빠’라는 이름. 그것을 보고 한 말이다.
화가 잔뜩 올랐는지 그의 눈이 점점 빨갛게 변해갔다.
입이 찢어지도록 미소 지은 그. 얼마 지나지 않아 표정을 되돌리고 기숙사로 향했다.
* * *
“너는 100점이 아니다. 이번에 교직원 회의를 통해서 우리가 직접 결정했다. 그리고 100점이란 게 나올 수 없는 점……. 흠흠. 아니다. 시험지를 줄 테니 다시 확인해 보거라.”
어느새 돌아온 아침.
어머니에게 가기 전 교무실에 들러 성적을 제대로 확인했다.
처음에는 정확한 답을 몰라 100점. 지금은.
“엥? 80점이요?”
“그 정도로 만족해라. 너는 그 정도가 딱이야.”
아직 패왕 길드와 친분이 있다는 걸 교장 선생님 귀에 들어가지 않았나 보다. 성적은 큰 상관이 없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만점을 받아야 한다.
“모두 맞았는데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하버드 몬스터 학과라도 나왔니?”
“아니요.”
하버드 몬스터 학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제가 직접 봤습니다. 마법하고 무공, 무투 등을 사용하는 걸요.”
“하하하하!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중 제일 웃기네!!”
직접 살펴봤다. 말하는 고블린을 봤고, 마법을 사용하는 고블린을 보고 왔다.
“그러니 맞는 답으로 해 주시죠. 처음 100점 그대로요.”
“하하하하!”
강수호의 말에도 교장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서야 진정됐는지 입을 열었다.
“흐흐. 그거 말고 틀린 게 많더라고.”
“틀린 게 또 있다고요?”
왜 80점인지 이해가 갔다. 이거 말고 또 틀린 것이 있단다.
시험지를 확인하니 비가 내리는 한 구간이 있었다.
“식사 시간은 이게 정확한데 왜 틀렸지?”
“네가 고블린들 식사 시간을 어떻게 알아? 혹시 고블린을 스토킹이라도 했니? 그리고 그런 건 교과서 같은 곳에 나와 있지도 않아.”
명문 아카데미 교장이면서 말하는 수준이 양아치 정도밖에 안 된다. 애초에 문제도 제대로 만들지 않았으면서.
100점을 맞지 못하는 시험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하지만 여기서 물러갈 강수호가 아니었다.
“고블린이 제 친군데요.”
“풉……. 풉. 흐흐흐흐.”
웃음을 참으려고 온갖 표정을 다 짓는다.
하긴 고블린과 친구라는 건 말도 안 된다. 개가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거다.
“네가 무슨 S급 소환사야? 고블린이랑 어떻게 친구를 하냐? 고블린이 사람을 죽이는 건 봤어도 친구라는 건…….”
고집이 너무 센 통에 어쩔 수 없이 80점을 맞아야 할 듯하다.
여기에 그 근육 빵빵한 고블린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네네. 제가 바보였네요. 저는 이만 가 보겠…….”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가려던 찰나.
“취이익?”
“취이익? 갑자기 아카데미에 웬 고블린 소리가…….”
갑작스레 뒤에서 들리는 고블린의 울음소리.
뭔가 싶어 뒤돌아보자.
“…….”
“취이익! 동족의 냄새가 난다! 얼굴을 보니 동족이 확실한가?”
“뭐?”
말하는 고블린이 강수호의 앞에 나타났다.
주말 근무를 하시는 선생님도 놀랐는지 무기를 꺼내 들어 고블린에게 겨누었다.
“고블린이 왜 여기에?!”
“주변에 던전 브레이크라도 일어난 건가?”
약한 몬스터라 그런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모두 헌터 경험이 있기에 침착한 편이니까.
“잠시만요. 모두 무기 내려 주세요.”
“이경진 선생? 경진 선생이 데리고 온 겁니까?”
“넵!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무기를 내려 주세요!”
그때 마침 온 이경진. 그는 사람들의 무기를 내려놓으라 한 뒤에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경진 선생님이 연구진으로 있던 곳에서 데리고 온 고블린이라고요? 말도 할 줄 아는?”
“넵. 그렇습니다.”
모두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고블린이 정말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더군다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수호 학생의 말대로 정말 마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뭐?!”
“블린아. 한번 보여 줄래?”
“취이익. 알겠습니다.”
작은 두 손을 펼치자 푸른 마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손에 모인 마나는 점점 밝아져 곧이어 새하얀 빛으로 변하더니.
푸화화!
“취이익. 라이트.”
“……!!”
새하얀 빛이 교무실 전체를 가득 채운다. 고블린이 사용한 마법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캐스팅 속도.
그 마법을 본 선생님 모두가 놀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놀람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다른 답이 틀렸잖아? 최, 최대 90점이야. 더 이상은 안 돼!”
“혹시 무슨 답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식사 시간을 적어 놨잖아. 경진 선생님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경진은 아직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 듯 강수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라고 적어놨니?”
“아침 8시에 아침밥, 오후 1시에 점심밥, 저녁 6시에 저녁밥이라고요.”
“흠. 알겠어. 그러면 블린아?”
“취이익. 내 주인님.”
블린이에게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취이익. 아침 8시, 오후 1시, 저녁 6시. 인간들의 시간으로는 이렇게 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고마워. 봤죠?”
“…….”
망설임 없는 대답.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강수호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