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32. 고인 물 확실해요?(2)
“여긴 왜 왔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오늘이 금요일이라 내일 엄마를 만날 생각에 잔뜩 들뜬 상태였다. 그런 들뜬 기분을 이놈들이 처참히 망쳐 놨다.
“저분은 누구신데?”
“하하. 일단 100점 축하한다.”
“아직 100점이란 정확한 답변도 안 나왔는데요? 그리고 누구시죠? 아카데미 안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제일 문제는 바로 앞에 있는 한 남자. 키는 멀대 같이 크기만 하고 얼굴은 그다지 잘생기지도 않았다.
손바닥으로 누른 듯한 코에 날카로운 눈매. 전형적인 비호감 얼굴이다.
“나를 당연히 모를 수밖에. 이 친구, 동아리 선생님이거든.”
“잘하는 애들만 모아 놓는 차별적인 곳이요?”
“…….”
강수호의 말에 순간적으로 인상이 팍 굳어졌다. 팩트로 때려서 그런지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웃음꽃을 피웠다.
“하하! 그렇게 불리니? 최대한 차별 없이 하고 있는데?”
“아, 네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제 방까지 들어오시고?”
무섭게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 괴물들만 있는 곳에 몇 시간씩 있다 보니 자신을 무섭게 만들려는 행동 자체가 귀엽게만 느껴졌다.
가볍게 무시하고 물어보자 그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아카데미 최초로 100점을 맞았다길래 궁금해서 와 봤지. 슈퍼 루키는 처음부터 다르잖아?”
“그다음은요?”
“음? 그게 끝…….”
“동아리 들어오라고요?”
“…….”
다시 한번 날리는 팩트 폭행. 이번에는 거짓말 같은 건 못하겠는지 웃음을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그래그래. 너도 유혁이한테 들어서 잘 알고 있지 않아? 내가 얼마나 뛰어난 헌터인지 말이야.”
“아, 네. 대충 듣긴 들었죠.”
1학년 때부터 3학년인 지금까지 귀에서 이명이 날 정도로 들었던 것 같았다.
이름난 B급 프로 헌터에 물리계를 전문으로 하고, 마법을 어느 정도 하는 수준.
‘그렇다고 듀얼 재능은 아니고. 그러면 억지로 서클 하나를 새겼나 보네.’
고작 그게 전부였다.
강수호 수준에서는 ‘대박’이란 말을 하기 힘들었다. 고블린이 마법을 사용하게 만들고, 헬창으로 만드는 사람을 두 눈으로 봤는데.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나중에 데뷔할 때 내가 직접 도와줄게. 이 업계 좁은 거 너도 잘 알잖아. 인맥 좋은 놈들이 들끓는 세상인 거.”
“…….”
“내가 있으면 쉽게 뚫을 수 있을걸?”
입을 다물고 있자 고민한다 생각했는지 미소 짓는다.
솔직히 이런 건 고민이라 할 것도 없이…….
“수고하세요. 스팸 방문은 사양할게요.”
“……잠시만!”
거절이다.
문을 닫으려 하자 그가 손잡이를 강하게 잡는다. 이런 거물급 슈퍼 루키는 놓치기 싫었나 보다.
“그냥 가시면 안 돼요? 내일 할 일도 많은데, 계속 이러시면 사감 선생님한테 갑니다?”
“미안. 하지만 꼭 동아리에는 들어와 준다는 확답은 받아야겠는데?”
요즘 사채업자도 이렇게까지 독촉하지 않는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깡패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주거침입죄로 철컹철컹 구속감이다.
“하아, 돌겠네.”
뭐 이런 막무가내인 놈들을 봤나? 대충 보니 저놈이 입을 좀 털었나 보다.
문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B급 헌터는 C급 헌터 10명을 데려와도 못 이긴다.’
B급과 C급은 한 단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그 한 단계가 괴물을 만든다.
F급부터 E급까지는 운동 좀 하는 사람. D급부터 C급까지는 일반적인 헌터라 부르는 사람들. B급은 프로 헌터.
그리고 A급부터 S급까지는 괴물들이다.
“그러니까 대답만 해 주고 가라니까? 얼마나 쉬워? 그냥 우리 동아리 와서 꿀 빨면 된다니까? 그렇게 쉬운 일을 왜 못 할까?”
“…….”
물론 강수호에게는 F급부터 S급까지 모두 똑같은 헌터로 보인다. 눈이 너무 높아진 까닭.
“아저씨는 무슨 재능인데요?”
“이제 동아리 가입하고 싶을 마음이 생겼어? 내 재능은 물리계로 온몸을 에르텔로 강화할 수 있지.”
“아, 그렇구나…….”
고작 몸을 에르텔로 강화할 수 있는 재능.
저렇게 잘난 척을 해 대는 통에 희귀한 재능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러면 한번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그럼!”
당연하다는 듯 윗옷을 벗고 에르텔 화를 진행한다.
10년 전부터 마나로 이루어진 금속. 마나의 결정체로써 강대한 에너지를 지닌 금속이 얼마나 단단하고 실용적인 형태를 띨지 궁금했다.
촤르륵!
금속이 몸과 어울려지는 소리와 함께.
“대박이지?”
“…….”
온몸이 푸른 마나로 뒤덮인 채로 웃음 지었다.
통통-
두드려 보니 정말로 단단했다.
강도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이 무게감.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금속답게 범상치 않았다.
“맞네요.”
“하하! 그래! 이 능력 하나로 잡은 몬스터가 몇 마리인데! 무려 A급 재능이라고!”
“그런데 있잖아요.”
“음?”
A급 재능.
몇억은 기본으로 하는 에르텔 금속. 그 금속을 몸에 만들 수 있다니, 뛰어난 재능이 아닐 수야 없지만.
“그 정도는 저도 할 수 있어요.”
“뭐?”
몸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하는 건 강수호도 할 수 있다. 싸움 상태에 들어가면 변하는 ‘미스릴의 신체(B급)’.
“한번 쳐 보실래요?”
“하하. 어린아이가 장난치면 안 되지!!”
많이 머쓱했는지, 장난치면 안 된다 해 놓고 강하게 휘두른다.
강수호의 가슴팍이 움푹 파이며 각혈을 내뱉는 모습을 예상했겠지만.
“아야.”
“아야?”
고작 ‘아야’라는 말이 끝이었다. 정말 단 1도 아프지 않았다. 소리도 그리 크게 나지 않았고.
“아야라니? 분명히 풀파워로 때렸는데…….”
“제 스킬 중에 미스릴 신체라고 있어요. 등급이 대략 B인데요.”
“…….”
그는 입을 다물었다.
스승과 제자 간에 나이가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이 장땡이다. 프로 헌터가 아카데미 학생에게 유리창에 묻은 지문처럼 닦이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그러면 이번에는 스킬까지 쓰면서…….”
“약한 선생님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 문을 닫으려던 찰나.
“잠시만.”
“아놔, 넌 또 왜? 이 정도만 해. 지금 참고 있는 거 안 보이냐?”
다시 양유혁이 문을 잡았다.
강수호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자 그는 별거 아닌 듯 입을 놀렸다.
“너보다 약한지 안 약한지 어떻게 알아?”
“뭐?”
뭔가 뒷말이 대충 예상이 간다.
이 자식의 성격대로라면 여기서…….
“정확히 모르니까 한번 붙어볼래?”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이 미친X이 원래 그렇지.”
“…….”
“아, 속엣말이 헛나온 거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양유혁이라면 이 정도 발언은 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거 좋겠네? 내가 이기면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는 거다?”
“…….”
이 사람, 완전 막무가내다. 아카데미 학생한테 지면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그것도 대외적으로 F급 학생한테.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거다.
“또 씻어야 하는데…….”
땀을 흘리면 또 씻어야 하게 마련. 잠자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4~5시간만 자도 혹독한 훈련 덕분에 오래 잔 것처럼 개운했으니까.
“뭐, 어쩔 수 없죠. 금방 하면 되니까.”
“그래! 그러면 바로 옆 운동장으로 와! 10시 반쯤에 오면 될 거야! 사감 선생님들에게는 말해 놓을게.”
장소까지 막무가내다.
이때다 싶어 기회를 잡은 미련한 B급 헌터. 한심하기만 할 따름이다.
“넌 오늘 끝이야.”
“…….”
해맑게 미소 지은 체 조심스레 말한다. 무슨 학생을 상대로 이 정도까지 말할까 싶지만.
“에라이, 정신 나간 놈아. 저딴 놈이 어떻게 태어나서는.”
양유혁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놈들은 두고 보지 못할 성격. 이번에 1등을 찍은 자신이 제일 만만하다 생각하고 이리 덤빈 걸 터.
“그런데 사람 잘못 골랐어.”
하지만 제일 만만한 놈은 강수호가 아니다. 오히려 무섭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사람. 그게 바로 강수호였다.
“여기서는 양학이나 해 볼까. 그래도 B급 헌터면 고블린보다는 강하겠지. 설마 그 고블린보다 약하겠어?”
프로 헌터라 불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 대처도 빠르고, 던전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실력자인 그들.
“그래도 고블린보다는 강하겠지.”
아무리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해도 종족의 차이란 존재하게 마련.
오늘 상대했던 고블린보단 강하리라 생각하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 * *
‘고작 아카데미 학생 주제에 요즘 좀 떴다고 프로 헌터를 기만해? 정말 미친X이 따로 없구나?’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몸을 푸는 이승현.
A급 재능인, 에르텔 화의 힘을 무시하는 강수호의 행동.
‘그때 완전히 부서트려 놨어야 했는데.’
스킬까지 사용해서 때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온다면 밟아 줘야 하는 것이 상책.
“저 왔습니다.”
“하하! 드디어 왔구나?”
강수호가 오자마자 다시 얼굴에 가면을 썼다.
가식적인 미소에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저 새끼 옆에 있는 사람은 왜 저러는 거야? 설마, 수호 길드 마스터의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
하는 짓이 꼭 누구 엿 먹이려는 행동이다. 자신의 이득이라면 남을 신경 쓰지 않을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
“몸은 다 풀었습니까? 강수호 학생?”
“아, 네. 대충 풀고 왔습니다. 잠시만, 이것 좀 풀고 싸우겠습니다.”
싸우기 전에 해야 할 일은 페널티를 없애는 것. 가장 문제가 되는 4t이 넘는 팔찌와 발찌부터 깡그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고블린이랑 싸울 때도 껴서 그런지 엄청 편하네?”
4t의 무게가 사라지니 몸 전체가 편해졌다. 100m를 1초 만에 달릴 수 있을 만큼.
“후회 안 하시죠?”
“하하. 그건 내가 할 말 아닐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냥 우리 동아리 들어오는 거로…….”
혓바닥이 너무 길다. 무슨 헌터들이 혓바닥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그를 보며 딱 한 마디로 대답했다.
“쫄려요?”
“…….”
굳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승현. 보라색 몸과 얼굴을 봐 온 강수호에게는 귀엽기만 했다.
“우리 친구,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프로 헌터가 도대체 뭔지 알고 그렇게 말하는…….”
천천히 다가오는 그.
주먹을 꽉 쥐어 손등에 핏줄이 가득했지만…….
“선배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묵직하고 빠른 속도로 휘두른 주먹.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주먹은.
“……!!”
강수호의 얼굴 옆을 지나갔다.
우연이 아닌, 정확히 주먹을 보고 피했다.
“…….”
모두 놀랐는지 침묵을 유지한 채 고개만 끄덕였다.
주먹을 피한 후 강수호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실력을 갖췄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거 할 만하겠는데? 프로 헌터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