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29. 몬스터가 나를 가르침(2)
“오. 정말 압도적인데?”
근처 거대한 돌에 앉아 싸움 구경하는 세린.
제자들이 함께 싸우는 걸 보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이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
초록색 주먹이 날아와 강수호의 얼굴에 닿을 때쯤.
“너무 느려.”
가볍게 피해 낸다.
하지만 그 주먹은 다음 행동을 위한 약간의 페이크. 그 덕분에 남은 왼손에 마법을 캐스팅한 고블린이 강수호의 얼굴에 왼손을 뻗으며 말했다.
“취이익. 라이트.”
“크윽!”
눈 바로 앞에서 터지는 새하얀 빛. 순간적으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취이익. 잘 가라 인간. 파이어볼.”
화르륵!
산소를 태우며 날아가는 파이어볼.
양손에 ‘워터(water)’라는 마법을 사용해 파이어볼에 대응했다.
“취이익!! 속았구나! 인간!”
“……!!”
하지만 그것 또한 페이크.
파이어볼은 강수호의 옆구리를 정확히 스쳐 지나갔다.
살짝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돌아오더니.
“파이어 애로우.”
다시 한번 뜨거운 불화살이 강수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온다.
너무 빠른 캐스팅에 대응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자.
“그만.”
“…….”
마나가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파이어 애로우가 공중에서 멈췄다.
염력이라는 고난이도 마법. 상대방의 마나가 담긴 마법을 빼앗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는 이곳에서 그녀밖에 없었다.
“스승님?”
“왜 더 하게?”
“……아닙니다.”
그녀의 물음에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염력을 이용해 공격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강수호는 즉사.
죽은 사람이 아니기에 즉사를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이제 네 수준을 대략 알겠지?”
“넵…….”
“그래, 아직 너는 고블린조차 쉽게 이기지 못해.”
그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밑으로 향한다.
아직은 부족한 경험과 실력.
“뭐, 고작 2~3주밖에 안 됐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아직 너는 이곳의 병사도 못 이긴다는 소리지.”
“…….”
고블린 간부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블린 병사. 강수호는 그런 고블린 병사조차 쉽게 이기지 못했던 거다.
“아직 부족하군요.”
“그럼, 하지만 신체 능력이나 마나의 질 같은 건 네가 한 수위야.”
“네? 한 수위라뇨? 분명히 캐스팅도 빨라서 제가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스승님의 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몇천 년 산 고블린보다 자신의 신체 능력, 마나의 질이 한 수위라니?
고민하자 그녀는 별거 아닌 듯 이유를 말해 주었다.
“고블린하고 사람이 같다고 생각하냐?”
“아니요. 당연히 아니죠. 애초에 고블린은 키도 작고 그리 강하지도 않은 몬스터니까요.”
고블린은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F나 E급 던전에 주로 나오는 그저 그런 평범한 몬스터. 오히려 무리를 짓지 않으면 나약한 몬스터로 변한다.
“그래, 지금 고블린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몬스터는 태어날 때부터 한계가 정해져 있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가르칠 때 좀 애를 좀 먹었지.”
강수호는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네가 진 이유는 단 하나야. 실전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마법의 숙련도가 쌓여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아직 네가 경험이 없다는 것.”
그녀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실전 경험 부족.
학생들과 많이 싸워 보기만 했지, 노련한 싸움꾼과 싸움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이 지금의 패배를 만든 것이다.
“너무 상심할 필요는 없어. 지금 가장 문제 되는 게 바로 경험이잖아?”
“넵.”
싸울 때 가장 문제 되는 건 경험. 아무리 힘이 강해 봤자 상대방의 주먹을 다 피할 수 있다면 힘은 무용지물.
그 경험을 채울 방법은 강수호에게 넘쳐났다.
“그 경험을 채워 줄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잖아?”
스승님들이 아닌, 바로 고블린들. 수준이 너무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동급도 아닌 딱 적당한 놈들.
“하루에 1시간씩 나랑 마법을 배우고, 남은 시간은 전부 내 몬스터 제자들이랑 같이 경험 쌓으면 되겠지? 여기서 배운 것들을 여기서 연습하면 되고.”
“아하!”
그들과 싸우면 딱 알맞은 수준이다.
강수호도 이제야 이해했는지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방법이네요! 그러면 지금 당장 해도 되죠?”
“그럼. 그러라고 온 거니까. 어차피 마법은 기초만 알면 그다음은 너 혼자 해도 돼.”
말하자면 몬스터가 직접 자신을 가르치는 것.
아마 일주일 뒤면 금방 뛰어넘을 수 있을 거다.
“취이익. 그러면 다시 나와 붙도록 하지.”
“좋아! 다시 간다.”
강수호는 다시 자세를 잡고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 * *
“아파 뒤지겠네.”
SSS급 최상급 물약을 몸 전체에 펴 발랐다.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몸 상태. 이번에 실전 경험을 배우면서 고블린에게 얻어맞은 탓이었다.
“고블린이 때린 거 맞나?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고블린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강한 고블린. 그것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블린 병사에게 맞은 흔적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고통 뒤에 성과가 따르는 법.
처음 싸웠을 때보다 맞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정말 몇 주만 지나면 족장이란 놈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
엉망이었던 몸은 전부 치유되었고,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웠다.
“하아, 피곤해. 잠도 훈련의 한 종류!”
많이 얻어맞아서 그런지 잠이 솔솔 온다.
하품하고 눈을 감자 잠이 들려던 찰나.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바쁜 하루 때문에 깜빡한 게 있었다.
본 직업은 학생.
“다음 주에 중간고사잖아!”
의대 공부보다 많은 양.
이제 강수호도 충분히 뛰어난 각성자가 되었기에 그 정도 양은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침과 밤에만 공부하고 있다는 점.
수업 시간에도 졸지 않았지만, 전교 10위 권 안에 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아, 그렇다고 그 녀석 동아리에는 가기 싫은데.”
솔직히 중간고사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실력을 대강 알게 된 지금, 지식 같은 건 조금 없어도 되니까.
“모든 건 기초가 중요한 법이지.”
하지만 무엇을 하든지 기초가 중요한 법.
초보 요리사가 컵라면도 만들 줄 모르는데, 어떻게 김치찌개를 만들겠는가?
남은 방법은 딱 하나다. 오늘 들고 온 신선한 천양 고기.
파이어 마법을 이용해 대충 굽고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다.
“오늘은 되도록이면 쉬려 했는데 어쩔 수 없겠네.”
천양 고기를 먹자 5분도 안 돼서 몸에 활력이 돈다. 밤을 며칠이나 새울 수 있을 정도로.
“시작이다.”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몬스터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법.
강수호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켜고 곧이어 교과서 내용에 집중했다.
* * *
“아, 더럽게 힘드네. 이번 중간고사 성적 잘 나올 것 같냐?”
“대충? 해야 할 게 왜 이렇게 많냐? 마지막 시험이라 그런지 선생님들이 더 어렵게 냈다는데?”
“여기서 더 어렵게도 낼 수 있어? 그냥 나가 죽으라는 거 아니냐?”
시끌벅적한 교실 안.
중간고사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떠드는 이유는 하나다.
3학년의 제일 중요한 시험인 중간고사.
문제는 그 시험이 지금까지 나온 시험 중 가장 어렵다는 거다.
“그런데 어차피 1등은 정해져 있지 않나?”
“그렇지.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으니까.”
문제가 어렵다고 쉽다 해도 1등은 매번 정해져 있었다.
열심히 교과서를 보며 운동하고 있는 학생. 재능, 인맥도 뛰어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조시현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1등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1등’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프로 헌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그가 이리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서. 자신이 바라는 게 아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고를 치더라도 정말 큰 사고가 아니면 대부분 넘어가니까.
“시현아, 이거 모르겠는데 혹시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래, 뭔데?”
“이 몬스터가 돌진형 몬스터인데 왜 뒤로 가야…….”
더군다나 모든 학생이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존경심과 부러움.
무거운 짐을 짊어지어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이유였다.
“고마워!”
“…….”
질문에 간단히 대답해 주자 해맑게 웃고 떠난다.
그녀를 무시하고 다시 공부와 훈련에 집중한다.
교실의 모든 학생이 저렇게 훈련하면서 공부하는 것에 궁금해하지만, 조시현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력. 나에게만 통하는 단어다.’
오직 자신에게만 통하는 노력이란 단어.
재능, 돈만으로 자신을 키우는 게 아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재능과 돈이 있으면 물론 좋다. 하지만 자신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성장한다.
오직 돈과 재능만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패왕 길드를 언제 견학시켜 주시려는 거지?’
한창 공부와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때 드는 궁금증.
저번부터 메시지를 통해 패왕 길드를 견학시켜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확답이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이야기처럼.
드르륵.
“잠시 나갔다 와야겠군.”
머리를 식히기 위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하암~ 피곤하다.”
“…….”
어느새 정상적으로 변한 강수호가 조시현의 옆을 지나갔다.
별거 아닌 듯 지나쳐 옥상에 올라가 쉬고 있던 그때 울리는 전화.
띠리링. 띠리링.
“…….”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전화번호의 주인은 아버지.
망설임 없이 받자 익히 아는 무뚝뚝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다. 학교생활은 괜찮으냐?
“넵. 별일 없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의 끝으로.
-일단 다음 주 토요일, 1박 2일로 패왕 길드에 가면 될 듯하구나. 최대한 빨리 가면 그만큼 많은 신세계를 볼 수 있을 거야.
“드디어 그 날이군요.”
본론으로 들어간다.
저번부터 말했던 패왕 길드의 견학. 조금 더 많은 괴물을 볼 기회. 측정 기계나, 맛있는 걸 먹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너희 반에 강수호라는 놈 있느냐?
“그놈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강수호의 이름이 들린다. 궁금함에 물어보니 그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다. 패왕 길드 마스터가 그놈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
그 대답에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자신과 비슷한 괴물이 아니고서야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구호.
“알겠습니다.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말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간단한 대답의 끝으로 그는 옥상에서 내려가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강수호.
“…….”
“허. 왜 이리 복잡하냐.”
교과서를 붙들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쉬운 문제에서도 막히는 것 보니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어차피 이번 1등도 자신일 테니까.
그는 500kg짜리 압력기를 쥐었다 펴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