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28. 몬스터가 나를 가르침(1)
“보람찬 하루였어.”
패왕 길드 1박 2일의 견학.
길드 안의 숙소에서 하룻밤 자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일요일 밤이 돼서야 견학을 마칠 수 있었다.
50층 전부를 둘러보고 아카데미 기숙사로 돌아왔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당연히 아침, 점심, 저녁에 먹었던 식사와 화려한 건물의 시설.
“아침에는 스테이크. 점심에는 셰프가 직접 만들어 준 샌드위치! 저녁에는 간단히 샤부샤부! 어떻게 살이 안 찔 수가 있지?”
너무나도 행복했다. 특히 저녁에 먹었던 샤부샤부의 맛이 입 안에 계속 맴돈다.
“츄르릅. 나중에 와서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시간 나면 매일 와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입 안에 고인 침을 도로 삼키며 아이스박스 하나를 들고 사감실로 향했다.
이 아이스박스 안에 있는 물건을 말할 것 같으면, 어머니를 위한 특제 물약이다.
“레릴 아줌마도 고맙지. 저번에 부탁한 엘릭서를 품질 더 좋은 거로 바꿔 주시다니!”
버프 사건이 있기 전 말해 둔 엘릭서. 오늘에서야 엄마에게 줄 특제 엘릭서가 만들어졌다.
이미 엘릭서 다섯 병 중 네 병은 먹었다. 건강에 좋은 건 어머니에게 드렸지만, 이 엘릭서는 급이 다르다. 건강에 관한 것만 잔뜩 농축시킨 엘릭서라 효과가 완전히 다르니까.
리셋 물약도 마셔서 그런지 몸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무인 택배함에 넣으면 택배 기사님이 알아서 가져가시겠지.”
무인 택배함에 택배를 넣었다.
택배 기사님에게는 이미 연락을 넣어 둔 상태. 화요일쯤 되면 엘릭서는 엄마께 도착할 예정이다.
차가운 아이스박스로 밀봉된 상자를 넣고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 일은 당연히 정해진 순서.
파란빛이 강수호의 몸 전체를 감싸더니…….
슈아아악!
그대로 사라지고…….
“드디어 왔네.”
여느 때와 같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하, 제가 좀 늦었죠?”
“빨리 훈련이나 하자. 그러다가 나랑 평생 훈련할 수 있어.”
순간 스승님의 말에 안색이 굳어진다.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말이 공포 영화보다 몇 배는 무서웠기 때문이다.
“하하! 장난이야, 장난. 왜 이리 굳어 있어? 내가 그렇게 놀라게 했어?”
“아닙니다. 그것보다 이번에 정말 몬스터랑 대련하는 겁니까?”
“그럼, 그런데 그전에…….”
전에 말했던 몬스터와 싸우는 훈련.
마나 호흡, 연공법은 다 배웠기에 혼자서 천천히 해도 되지만, 실전 마법은 다르다.
“상태창 열어 볼래?”
“넵. 상태창.”
그녀의 말에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 30
체력 – 136 민첩 – 116 힘 – 134 마나 – 116 감각 – 114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2], [절대정신 방벽(S급) : Lv. 2], [미스릴의 신체(B급) : Lv. 2],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4], [1서클 마법(C급) : Lv. 5]
-마나 스탯 3 상승하였습니다.
-힘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감각 스탯 2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탯 2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온 상태창.
요 며칠 사이 많은 훈련을 통해 5대 스탯과 스킬 레벨이 많이 오른 상태다. 특히 마나 스탯 부분이 스승님과 훈련하면서 확 올랐다.
“으흠. 마나 스탯이 116. 좀 있으면 2서클 사용하는 정도의 단계네.”
“앵? 그 정도밖에 안 돼요? 하긴 대마법사 마나 스탯만 해도 최소 1,000은 넘어간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상태창을 본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 정도 스탯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고작 116으로는 내 손톱 때도 못 미칠걸? 내 마나 스탯만 10,000이 넘어가니까.”
“…….”
몇천 년 산 고인 물. 아니, 썩은 물이라고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스탯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도 상승 중인 스탯. 양으로 치면 무한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마나 양에 입이 쩍 벌어진다.
“내 자랑은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하고, 오늘 제일 중요한 게 있었지?”
“넵! 오늘 몬스터랑 대련하면서 실전 마법을 사용한다면서요?”
아직 놀라긴 이르다. 오늘 훈련은 조금 특별한 훈련이니까.
“일단 자리부터 옮길까?”
따악!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손가락을 튕겨 눈앞에 파란빛을 만든다.
몇 초 동안 눈이 부셔 앞을 보지 못했지만…….
“됐다.”
시간이 지나자 점점 시력이 돌아왔다.
“첫 텔레포트 울렁증 같은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텔레포트요? 와…….”
대마도사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텔레포트 마법.
그녀는 오직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발동했다.
“지금 내 텔레포트가 중요한 게 아니야. 여기가 어딘지나 알기나 해?”
“어디라뇨? 당연히…….”
빛을 유지하는 상태로 어둑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에는 이곳이 어딘지 몰랐으나, 벽을 짚으니 장소를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동굴?”
“그래, 근데 평범한 동굴은 아니란다.”
“그렇긴 하겠죠. 마을 사람들도 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당연히 평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그때.
“오. 동굴이네요? 설마 여기가 고블린 부락 같은 건…….”
“취이익. 맞는데? 고블린 부락.”
“히익!!”
갑작스레 나타난 초록색 얼굴.
놀라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지만…….
쾅!!
“크윽!”
“취이익. 약하다. 인간.”
고블린은 초록색의 작은 손으로 가볍게 막아 버린다.
키는 강수호보다 한참 작음에도 힘은 물리계 프로 헌터보다 몇 배는 강했다.
“매직 미사…….”
간단한 마법으로 시간을 끌어 고블린에게 벗어나 보려 했으나.
“역 캐스팅.”
파지직!
“커헉!”
스승님에게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매직 미사일이 고작 1초 만에 산산이 조각났다.
이게 정령 만능 고블린인가?
‘고블린이 뭐 이리 강해?’
아무리 강해도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고블린이라면 마법 하나 캐스팅하는 게 고작일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라이트!”
“취이익! 그래도 생각은 있나 보군, 인간.”
“몬스터 주제에.”
“취이익. 인간 주제에 고블린도 못 이기나 보는군.”
“…….”
놀리는 데도 재능 있나 보다.
눈앞에 라이트를 캐스팅하여 벗어나자 고블린의 모습이 확실히 보인다.
120cm~130cm 정도의 키.
그 정도로 작다면, 평범한 어린아이를 상상하겠지만.
“헬스했냐?”
“아, 그건 내가 안 그랬어. 헬창 놈들이 할 거 없다고 해서 1년 정도 여기 있었더니 이렇게 됐어. 말도 잘 들어. 나도 심심해서 같이 훈련 좀 시켰지.”
“…….”
“취이익.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래~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내고 있었나 보네.”
“하하하하.”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고블린이 이 정도로 강한가? 이런 고블린이 던전에 있다면, 던전 생태계가 모두 파괴될 것이다.
“그리고 스승님이라고요?”
“그래, 고블린 부락 전체가 내 제자나 다름없지.”
“…….”
고블린 부락. 한 마리가 아니란 소리다.
“취이익. 정말 뉴비군. 소문을 통해서 듣기는 했는데.”
“왜 도대체 몬스터가 말을 하는 거냐고…….”
“취이익. 오호. 정말 뉴비입니까, 스승님?”
“그래, 대략 2~3주 정도 된 싱싱한 뉴비다.”
“…….”
어딘가에서 나타난 고블린들.
말할 때 꼭 ‘취이익’이라는 말이 들렸지만, 의사소통에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문제는 고블린의 행동이었다.
“취이익. 그러면 오늘은 나와 함께 붙자. 스승님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겠지?”
“지금 바로?”
“취이익. 그래.”
처음 마주했던 고블린이 맨몸으로 강수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스승님은 고개만 끄덕일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의 답변. 싸워도 된다는 소리다.
“너, 죽여도 되냐?”
“취이익? 풉!!”
“…….”
고블린이 자신의 물음을 듣자 비웃음을 날린다.
얼마 전에도 고블린을 가볍게 죽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취이익. 우리를 그리 만만하게 보는 것이냐? 신입이라 그런지 우리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거만한 모습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진다.
정말 저 작고 울긋불긋한 고블린이 자신을 가볍게 밟아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스승과 제자 앞에 종족은 없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고블린 앞에서도 무릎을 꿇겠다!
“좋아. 하지만 나보다 강하거나, 비슷해야 해.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약한 건 아니겠지?”
“취이익. 당연하다. 고블린 병사의 임시 대표는 나로 하지. 너는 간부에게 가려면 한참이나 먼 것 같으니.”
울긋불긋한 근육. 몸 전체에서 짙은 마나가 느껴졌다.
고블린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저 작은 몸에 잔뜩 들어 있었다.
“취이익. 우리의 옛 선조들은 인근 마을을 습격하는 특성이 있지. 그건 내가 알기로 모든 고블린이 마찬가지인 거로 알고 있다.”
싸우기 전, 몸을 푸는 고블린의 입에서 옛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몇천 년을 스승님들과 함께 산 몬스터들. 하지만 처음에는 던전에서 나와 ‘취이익’만 거렸다고 한다.
“취이익. 우리가 약탈할 수 있는 건 고작 마을 하나가 전부. 하지만 그 마을에는 말도 안 되는 괴물들이 사는 터에 덤빌 수도 없었다.”
고블린은 간단히 생활할 수 있는 용품과 무기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 이상의 물건들을 못 만든다는 점.
그렇기에 약탈하는 것인데, 이 넓은 땅덩어리에는 괴물들이 사는 마을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땅덩어리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괴물들.
“취이익.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평생을 굶고, 굶주림에 살아가야만 했던 그때!!”
“…….”
고블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지켜보고 있던 고블린들은 눈을 뗄 수가 없었는지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취이익. 인간들이 왔지. 지금은 스승님이지만, 우리는 인간이 그저 낯선 괴물이라 생각했다. 터전을 파괴한 것도 모자라, 동족을 학살하는 괴물!! 죽지 않는 곳에 와도 우리는 무섭기만 했다. 옛 선조들과 우리가 그들에게 처참히 죽었으니까!”
“…….”
그는 눈물을 그치고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취이익. 하지만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죽지도 못하는 이곳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게 알려 준 거라고? 헬창 스승님들과 쇠질 하고, 무서운 누나(할머니)의 마법을 배우는 게?”
고블린의 옛이야기에 강수호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자신 같았으면 여기서 물고기나 잡으면서 편히 저승 라이프를 즐겼을 거다. 근육을 만들고 마법을 배우는 등의 극한의 생존 게임을 하지 않고.
“너희도 참 불쌍하구나…….”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초록색 주먹이 날아온다.
“갑자기 치는 법 있기야?”
“취이익. 이런 대결에서는 누가 먼저 선빵 치는가에 따라 승패가 달렸지.”
“어차피 죽지도 않을 거면서.”
굶주림과 고통은 느끼지만 죽지는 않는다. 이곳에 사는 생명체 모두가 죽은 상태로 왔으니까.
물론 산 것도 있게 마련.
“취이익. 우리는 굶주리는 것이 고통이었단 말이다!”
“물고기나 잡아먹으면 되잖아! 물고기나 동물들은 계속 생겨난다며!”
“취이익.”
차라리 굶주리고 말지 다시는 그런 훈련은 받고 싶지 않았다. 힘은 강해졌지만, 헬창 스승님들의 훈련은 지옥과 같았으니까.
“취이익. 그러면 이제 제대로 시작하지. 누가 진정한 수제자인지 알기 위해!”
“수제자는 너나 해…….”
준비를 모두 마친 고블린이 핏줄이 서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잡은 자세 또한 예사롭지 않아 긴장된 그때.
“선빵 필승! 먼저 간다!”
강수호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