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27. 패왕 길드 견학(4)
거친 숨소리. 땀을 왕창 흘리며 발을 놀리는 사람들.
“어때? 이게 우리가 사용하는 훈련장이야.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훈련장보다 낫지?”
“……네.”
그녀의 말에도 강수호는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헌터들의 모습이 전 스승님과의 훈련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우리는 다른 길드와 다르게 물리계, 마법계, 제작 계열 등등.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받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능이 없는 사람을 받지는 않지. 노력도 열심히 해야 하고.”
훈련장에 있는 사람이 모두 물리계가 아니었다.
마법사도 체력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하기에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었다. 물리계도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은 연공실에 들어가 마나를 늘리고 있었다.
“어? 저분은?”
“알아?”
“그럼요! 얼마나 유명하신데요!”
그때 마침 운동하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검은 머리에 뽀얀 피부. 날카로운 눈매를 가져 남자라면 누구나 반할 외모를 가진 여성.
“이율하! 세계 14위 연금술사 아니세요?”
“우리 길드의 자랑이라고 할 수도 있지.”
연금술사 랭킹 14위를 유지하는 제작 계열 헌터.
물론 지금은 랭킹 같은 거에 집중할 게 아니었다. 대부분이 강수호가 가지고 온 SSS급 최상위 물약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러면 다음 층으로 가 볼까? 여기에도 마나 연공실은 있지만, 그리 뛰어난 품질은 보증 못 하거든. 여기는 물리계 헌터 용이니까.”
“넵! 그러면 다음 층은 마나 연공실!”
그렇게 3층으로 향하던 그때.
“부마스터?”
“음? 율하야, 왜?”
그녀가 다가왔다.
거대한 덩치의 강수호를 힐끔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야? 신입이야?”
“아니, 이번에 견학 온 학생.”
“학생이라고?”
“몸은 이렇게 커도 이제 고3이야. 버프 물약 부작용이래.”
“……아하. 이 정도 부작용이면 내 리셋 물약도 안 들겠네.”
14위 연금술사인 걸 증명이라도 하듯 강수호를 보는 눈빛에 열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애써 시선을 무시하자 점점 강수호의 곁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그런데 너, 좋은 거 먹고 다니나 봐?”
“네? 좋은 거라니요?”
“분명히 훈련장이면 땀 냄새밖에 안 나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너한테는 달달한 냄새가 나서 물어보는 거야.”
“…….”
그녀가 맡은 냄새는 땀 냄새 같은 게 아니었다. 향수 같은 인공적인 냄새도 아니었고.
“마스터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연금술사 코가 개 코라는 말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혹시 몰라서 레릴 아줌마한테 냄새 제거 물약을 받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하. 착각이겠죠. 그리고 제가 요즘 좋은 걸 많이 먹고 다녀서 그런가 봐요.”
“그래? 흠. 그런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 이번에 경매에서 나온 그 물약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중에 스승님에게 가면 냄새를 확실히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이 냄새를 맡고 그때처럼 미행이 붙을 수도 있을 테니까.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견학이 하루밖에 안 되는지라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세계 14위 연금술사, 이율하 님을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래. 견학 잘하고.”
빠르게 말을 끊어내며 거대한 몸을 움직여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 * *
“어디 보자. 전화하라고 했으니까 하긴 해야겠지.”
밝은 사무실 안.
이구호가 휴대폰을 꺼내 들어 번호를 눌렀다.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길드. 신왕 길드의 마스터에게 전화를 걸려던 것.
띠리링. 띠리링.
-할 말이 있겠지? 이구호.
몇 번의 통화음이 울리자 신호음이 끊기고 목소리가 들린다.
익히 아는 목소리였기에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런데 같은 헌터 동료끼리 통화 받고 인사부터 하면 어디가 덧나냐?”
-시끄럽다.
무뚝뚝한 그. 조시현의 아버지답게 까다로운 말투였다.
“그래, 그래. 그것보다 내가 전화한 이유는 대충 알고 있지?”
-그래.
물음에 대답한 그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이번에 견학하게 되는 패왕 길드. 여러 아이템과 황금 사과 던전 입장권까지 주면서 얻은 견학. 아들이 자신보다 크게 되라는 마음으로 얻은 값진 기회였다.
그런 기회를 패왕 길드의 마스터가 걷어차 버렸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분명히 나는 우리 아들에게 견학을 시켜 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네가 그 정도로 욕심이 많을 줄은 몰랐군.
“하하! 욕심이라니? 나는 그저 더 강한 학생을 견학시켜 준 것뿐이라고!”
-까득.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이빨 가는 소리. 그가 얼마나 화났는지 알 수 있는 소리였지만, 이구호는 무시하고 말을 늘어놓았다.
“원래 나는 강한 학생을 좋아해서.”
-그래서 지금 네가 보기에 그 학생이 우리 아들보다 강하다는 소리인가?
“그렇지. 내가 보기에는 네 아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우리 길드에 들어오라고 섭외까지 해 놓은 참이야.”
-…….
만약 이구호가 그의 앞에 있었더라면 곧바로 주먹이 날아왔을 말을 한다.
비록 3위 길드이지만, 모두가 바라는 대형 길드.
참다못한 그가 물었다.
-왜 우리를 버린 거지? 지금까지 꽤나 좋은 거래 아니었나? 너희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우리는 너희에게 던전과 자본, 그리고 정보를 줬지.
“흠. 그래, 꽤나 짭짤했어.”
-그 학생이 이 거래를 깰 만큼 좋단 말인가?
“응.”
-…….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화보다 헛웃음이 먼저 나올 지경이었다.
-하하하하!!
이구호의 답변에 어이가 없어 박장대소했다. 지금껏 들어본 답변 중에 제일 어이가 없었으니까.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나?
“당연. 내가 누군데? 그 유명한 패왕 길드의 마스터, 이구호 아니겠어?”
-그래.
“너는 내가 후회할 짓을 한 번이라도 했다고 생각해?”
-…….
두루뭉술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패왕 길드 마스터를 바보 취급하는 부마스터조차도.
“동네 바보 형 같은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 손해 본 적이 있던가?”
-…….
이구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어떤 일을 하든 지금까지 손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이득만 봐 왔다.
“그래. 없지? 그게 나야. 바보 같은 짓은 많이 하지만 손해 같은 건 1도 보기 싫고, 안 보는 성격이거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모습. 그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을 벌인 거 아니겠어? 황금 사과를 주기도 했고 말이야. 그게 얼마나 맛있던지!”
-미친X. 지금 나와 척을 지겠다는 거냐?
“아니, 그건 아니지.”
척을 지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한국 길드 1위지만, 그 밑에 있는 길드를 모두 상대하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할 터.
“나도 사람이야. 강하다고는 하지만, 너희 같은 사람이라고. 한국에서 제일 강하다고는 한들, 2위부터 10위까지의 길드 마스터들이 덤비면 나도 쉽게 못 이길걸?”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의문만이 가득한 답변이다.
척을 지지 않고 이득을 볼 방법은 이미 강수호를 견학시킨 후부터 사라졌다.
“당연히…….”
잠시 망설이던 이구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답했다.
“네 아들도 견학시키면 되지.”
-뭐? 지금 장난하는 거냐?
“장난 같아? 정말이야. 너희 아들도 견학시키면 되는 일 가지고 왜 이리 난리야?”
간단한 이야기다. 한 명의 학생을 한 번 더 견학시키면 되는 일.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게 말이 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
휴대폰을 통해서 심호흡 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화를 잔뜩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견학은 1년에 단 한 번밖에 하지 못한다. 헌터 협회에서 정한 규칙이야.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거래가 망하게 생겼는데 별수 있나?”
1년에 단 한 번 견학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계속 견학을 시킬 시에 좋은 길드 쪽으로 몰리는 현상 때문이다.
한 길드에 견학이 몰리게 되면 전력이 상승할 터. 더군다나 그나마 유지되던 헌터 협회를 길드가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헌터 협회가 그걸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나?
“충분히? 내가 입 터는 건 한 솜씨 하잖아. 그리고 그쪽에 친한 친구도 있어서. 문제 될 건 없지.”
-……미친X.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확실한 말투다.
패왕 길드는 심사가 보통 대형 길드보다 몇 배는 빡센 터라 견학을 와도 재능이 없다면 가차 없이 탈락이다.
“오히려 좋아할걸? 드디어 그쪽 길드에도 신입생 들어오냐고? 몇 년 만이잖아. 그리고 어차피 네 아들놈은 내 길드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잖아?”
-미친X.
“하하하! 내가 좀 미치긴 했지!”
미친X이란 말밖에 나오지 않을 거다. 이 문제를 구실로 삼아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 했는데, 오히려 그가 당한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면 이만 통화 끊지. 내가 오늘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뚝-
“에이, 말 좀 하고 끊지. 정 없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끊기는 전화.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은 것 보니, 거절하지는 않으려는 모양이다.
“나야 좋지.”
밖의 모습과 다르게 이구호의 눈빛은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바보 형이 아닌 모습.
“일단 일을 해 볼까…….”
부마스터에게 간단히 메시지를 보내고 업무에 집중하려 할 때였다.
“아, 그러고 보니…….”
때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한 사람.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냔 말이지. 내 추적도 빠져나가고.”
컴퓨터를 만지자 떠오르는 한 남자.
검은 후드티에 하얀 가면을 쓴, 요즘 들어 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남자였다.
“이번에 우리가 산 물약. 만든 사람이 이 사람이란 말이야.”
입꼬리를 진득하게 올렸다.
경매장에 갔을 때 느꼈던 특유의 진한 냄새. 황금 사과를 많이 먹을 때도 나는 냄새지만, 그는 뭔가 달랐다.
“뭘 숨기는 거지…….”
약간 아쉬운 감이 들었다.
이 사람을 자신의 길드로 끌어들이면 세계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을 테니까.
“SSS급 최상급 물약. 다음에는 어떤 괴물 같은 아이템을 들고 올지 기대되네.”
처음 나타나서 들고 온 것이 지금껏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물약. 모든 과학자와 학자가 최소 20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던 틀을 저 남자가 부숴 버렸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저 남자.”
입꼬리를 올리며 사진의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사진만 봐도 저 남자가 누군지 알 수 있을 테지만 벽에 가로막힌 듯 스킬도 제대로 발동되지 않았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겠지. 일이나 하자.”
천천히 알기로 했다. 급한 건 아니니까.
그는 사진 창을 끄고 부마스터가 내준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