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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26화 (26/225)

제26화

26. 패왕 길드 견학(3)

기계 밑에 적힌 ‘999’라는 파란 글씨. 주변에 있던 헌터들조차 그 숫자를 쉽게 믿지 않았다.

“999? 에이, 버그 아니야? 한 번도 나온 적 없잖아. 그리고 기계란 게 완벽한 것도 아니고.”

중년 헌터의 말이 확실했다. 기계는 한 번씩 오작동 일으키게 마련. 하지만 수치상으로는 정확히 999를 나타내는 펀치 기계.

점점 의문만 쌓여가고 있을 때.

“헤헤, 다들 속았지?”

“길드장님?”

“마스터님? 여기는 또 왜 나오셨어요? 제가 분명히 신왕 길드 마스터한테 전화하라…….”

“음? 그런가?”

“…….”

방금 부마스터 입에서 쌍욕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주먹이 꽉 쥐어지고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간신히 화를 참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왜 오신 겁니까? 이 마스터 새끼야!”

“심심해서 왔다니까? 그리고 하늘 같은 마스터 보고 새끼라니! 누구한테 배웠…….”

“…….”

“하하하. 장난이지.”

그 이상 말한다면 봐주지 않겠다는 듯 들어 올려지는 주먹. 저 주먹에 맞으면 어떤 사람이든지 요단강 건널 수 있을 거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그가 펀치 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친구가 온다길래 내가 약간 들뜰 수 있도록 장난감 하나 만들어놨지~ 지금부터 이 친구의 측정 숫자를 공개합니다!!”

“…….”

옆에서는 아직도 씩씩거리며 이구호를 쳐다보는 그녀가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마스터가 됐는지 궁금하다.

일단은 숨겨 놓은 점수를 살펴보기로 했다.

‘500만 넘으면 좋을 것 같은데.’

100번 중첩된 버프. 헬창 스승님들에게 훈련받은 힘까지 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496!! 정말 아쉽습니다! 500을 넘지 못했군요!!”

“아하…….”

“아쉽네. 그래도 이 정도면 평타 이상이라고, 신입생. 나는 그 나이 때 400 근처도 못 가 봤어!”

아쉽게도 빗나간 예측.

4가 부족한 500이지만, 500은 아니었다.

“아쉽네요…….”

“괜찮아, 괜찮아. 아직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나이니까. 천천히 하면 되지.”

아쉬운 표정을 짓는 강수호를 위로하는 헌터들.

헌터들이 이런 일에 얼마나 민감한지 잘 알고 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래,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길드에 들어오게 됐나?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잘나가는 길드가 아니었을 때 부마스터 말만 믿고 들어왔지.”

“예? 들어오다니요?”

감사 인사를 하자 알 수 없는 질문을 한다. 길드의 신입생이 들어왔다거나, 어떻게 해서 이곳에 들어왔는지에 대해.

뭔 말인지 알 수 없었던 강수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을 때.

“신입생 아니에요.”

“에잉? 신입생이 아니야?”

“견학하러 온 학생입니다만.”

부마스터, 하림의 말에 그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한국 1위 길드인 만큼 까다로운 심사 조건. 그 때문에 길드에 들어오는 헌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아쉽네, 아쉬워. 오랜만에 싱싱한 신입생이 들어 온 것 같아 좋았었는데.”

“에잉! 그래도 견학 온 게 어딘가.”

“…….”

순간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헌터들의 눈빛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 스승님들을 받아들일 때의 그 느낌이 PTSD처럼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500 근처면 우리 길드 들어오는 데는 문제없겠는데? 다른 건 종우가 잘 알려 줬고. 생각 있으면 연락해 줘. 알겠지?”

“우리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하하. 네, 그럼요. 저야 영광이죠.”

괴물 같은 스승님 덕분에 길드를 만들까도 생각했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인맥이 중요한 세상.

‘갈 거면 한국 최고의 길드가 낫겠지.’

처음부터 천천히 인맥을 쌓는 것이 좋다. 하얀 가면에 검은 후드티를 입은 연금술사 겸 대마법사라는 신분도 있으니까.

“그러면 내가 직접 해 주는 견학을 시작해 볼까!”

“신하린 님께서 직접요?”

“그럼! 1년에 한 번 하는 중요한 견학인데 내가 직접 해 줘야지. 그리고 마스터님은 제발 신왕 길드에 전화 좀 해 주세요!”

물리계의 여왕. 그녀가 직접 패왕 길드를 견학시켜 준단다.

50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 부마스터와 함께 견학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갈 때 샹들리에나, 간판 같은 거 닿지 않게 조심하고!”

“넵!”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밝게 맞이해 준 사람들.

그녀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밥을 안 먹었기에 첫 층은 제일 중요한 식당.

B1, 지하 1층을 누른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쾅!!

“…….”

“으아아아!!”

어둑한 사무실 안.

보이는 건 굳은 채 서 있는 헌터들과 잔뜩 화가 난 한 남자였다.

“도대체 왜 그 새끼 하나를 못 쫓는 거냐고? 어? 그 자식이 귀신이야?”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못 쫓는 거냐고!!”

날아오는 종이 뭉텅이.

눈을 감고 맞을 준비를 한다.

촤아악.

“크윽.”

수호 길드의 마스터, 장천우.

맞은 헌터의 입에선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국 7위 길드 마스터답게 종이를 던지는 힘도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그런 힘 따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너희 똑바로 조사한 거 맞아?”

“넵!”

“근데, 입금된 통장 주인 하나 못 찾는 게 말이 된다는 거야?”

“…….”

“그것도 수호 길드가?!”

마스터가 찾으라는 검은 후드티에 하얀 가면을 쓴 사내.

CCTV 기록, 통장 기록도 열심히 뒤졌다. 처음 경매할 때의 내용을 바탕으로 추적도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멍청한 놈들. 그딴 놈 하나도 못 찾다니.”

마스터의 말에 주먹이 꽉 쥐어진다.

SSS급 최상급 물약을 10개나 가진 거물. 그런 거물을 상대로 이런 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 하지만 그는 칭찬은커녕 욕만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추적하는 도중 갑자기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바람에…….”

“파란빛이라. 도대체 그 파란빛이 뭐길래 그러는 거냐고! 대체!”

차원 이동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도청기까지 달아놨지만, 파란빛과 함께 사라졌다.

“꼭 찾아야만 한다……. 꼭…….”

“…….”

그가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모든 스탯을 2나 올려주는 SSS급 물약.

“최상급 물약. 그것만 있다면 우리 길드도 1위가 될 것이다. 복용할수록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스탯을 얻는 것 자체가 이득이잖아!”

“…….”

최상급 물약. 그것만 있다면 패왕 길드를 제치고 1위 길드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당부하지. 그 사내는 마법도 사용하니 특히 조심하도록. 위험한 일이 있으면 나를 불러도 된다.”

“넵.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어느새 진정된 장천우.

요즘 따라 부쩍 예민해지고 있었다. 물약 대부분을 패왕 길드가 구매해 버렸으니까.

“그 물약만 얻는다면 이구호인가, 이호구라는 놈도 충분히 제칠 수 있겠지.”

머릿속에 자신이 모든 헌터의 우상이 된다는 상상이 떠올랐다. 세상이 자신만을 우러러보고 있는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배고픈데 배나 채우러 가 볼까나?”

그는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밖을 나와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 * *

“와우.”

“어때? 시설 좋지? 우리 식당 셰프들이 한식이나, 다른 나라 요리 같은 것도 잘해서 우리 길드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들까지 우리 식당으로 온다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보이는 식당 안. 평범한 식당이 아니었다.

“이게 식당이라고요?”

비싼 레스토랑을 연상시키는 식당 안의 풍경.

관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역시 한국 1위 길드답다.

“스테이크 어때?”

“좋져!”

“얼마나 먹을래?”

“먹을 수 있는 만큼이요!”

이번 기회에 배에 기름칠 좀 해야겠다.

돈은 많지만, 유명 셰프가 직접 구워준 스테이크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추루룹.”

벌써부터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근처 식탁에 앉자 종업원이 한껏 예의를 갖추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주문 도와 드리겠습니다.”

“음. 나는 한우 A++로 미디움 레어. 너는 뭐로 할래?”

“저도 그거로 해 주세요!”

“넵.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테이크에 관해 자세히 모르기에 그녀와 똑같은 스테이크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향이 진한 스테이크 한 접시가 나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아침부터 무거운 음식이긴 하지만, 원래 아침 고기가 진리지?”

“그럼요!”

부마스터는 뭔가 다르다. 아침부터 고기를 먹다니. 엄마였다면 아침부터 무슨 고기냐며 등짝을 때렸을 거다.

“우와…….”

코끝을 찌르는 육향.

요즘 들어 천양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입맛이 까다로운 상태다. 평범한 고기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데…….

“맛있네요?”

“맛있어?”

“넵! 엄청요!”

“길드원들도 많이 좋아하더라고. 역시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먹는 거지.”

입 안 가득 터지는 육즙.

천양 고기를 먹으면서 변한 입맛에도 만족할 만한 맛이었기에 금방 먹어 치웠다.

“여기 있으면 금방 살 많이 찌겠는데요?”

“그럼, 나도 유명 셰프 몇 명 데리고 왔을 때 5kg이나 쪘다고.”

이 음식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천양 고기 같은 질 좋고, 환상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높은 직위에 있는 그녀. 그녀가 만족한 음식이었다면 셰프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만했다.

“이제 가 볼까? 1박 2일로는 50층까지 전부 견학 못 할 수도 있거든.”

“넵! 저도 빨리 보고 싶네요!”

몸을 일으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50층 건물 전부를 견학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촉박했으니까.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잡고 문이 열리던 그때.

“음? 수호 길드 마스터? 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수호 길드 마스터라고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나타나는 한 남자. 포마드 머리를 한 중년 남성.

대형 길드 마스터 대부분이 외부로는 잘 나오지 않기에 그녀의 말에 아는 체했다.

“밥 먹으러 왔지.”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겠지?”

장천우가 별거 아닌 듯 대답하자 그녀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저번에도 밥만 먹고 간다고 했다가 셰프 손목이 잘릴 뻔한 일이 있었으니까.

“정말 성격 하나는 더럽다니까? 너도 우리 마스터처럼 좀 착하게 살면 안 되냐?”

“하하! 견학 온 학생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네. 내 이미지 망칠 거야?”

“내가 말을 말아야지. 꺼져. 바빠.”

누가 봐도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단호한 말과 함께 사라지는 수호 길드 마스터.

강수호는 눈을 잔뜩 찡그리며 그를 쳐다봤다.

“왜? 너도 저놈 별로지?”

“넵. 뭔가 기분 나쁜 할아버지 같잖아요.”

“하긴, 이미지만 좋지, 사실상 하는 일은 마피아 두목보다 쓰레기일걸?”

헌터 세계에서는 소수만이 아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철저히 지켜왔으니까.

물론 강수호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해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여기서 소란을 일으킬 수도 없고 말이다.

“천천히 이동하자고. 첫 번째는 2층! 우리 길드원들이 사용하는 훈련실이지.”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2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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