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24. 패왕 길드 견학(1)
“야, 너희 그거 알아? 이번 현장 체험 학습 때 강수호가 물리계 각성자만 있는 학교를 혼자서 쓸어 버렸대!”
“뭐? 해가 서쪽에서 떴다고?”
소란스러운 급식실.
서울 명문 아카데미라지만, 밥 먹을 때는 여느 아카데미와 같이 친구와 떠들기 바빴다.
특히 이번 현장 체험 학습에서 특종이 있었기에 급식실은 더욱 소란스러웠다.
“그래서…….”
쾅!
“이게 무슨 소리지?”
쾅!
그때 마침 울리는 지반.
뭔가 싶어 주변을 살펴봤지만, 어두운 그림자 빼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왜 빛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사라지는 빛.
고개를 들어 빛을 가린 주인을 확인해 보니.
“히익! 누구야?!”
“…….”
3m의 거대한 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한 학생이 그들 앞에 급식 판을 들고 서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쳐다보는 거대한 학생.
‘누구지?’
이렇게 거대한 학생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3m의 키, 근육질의 몸매.
몸이 덜덜 떨리며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던 그때였다.
“다 먹었으면 좀 비켜줄래? 몸이 너무 커서 의자 두 개에 같이 앉아야 하거든.”
“그래! 지금 당장 비켜줄게!”
“고맙다.”
대답하고는 빠르게 사라진다.
모두가 3m의 키에 보디빌더 몸매를 가진 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저놈 누구야?”
“음? 아, 저 키 큰 놈?”
학생들은 처음 본 그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3m 키의 근육질 몸매. 평범한 각성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는 것들이었으니까.
밥을 먹고 있던 한 학생이 거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별거 아닌 듯 대답했다.
“알고 있어?”
“그럼, 강수호잖아.”
“…….”
그 말에 식당에 앉아 있던 모든 학생이 침묵했다.
강수호,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설마…….”
며칠 전, 재능이 뛰어난 물리계 각성자 학생 여러 명을 주먹으로 때려눕혔다는 괴물.
지금 의자 두 개를 빌려 앉은 학생이 바로 강수호였다.
“원래 저렇게 컸어?”
“아니, 버프 물약이라도 잘못 마셨나 보지.”
“아무리 그래도 버프 물약 하나 잘못 마셨다고 저렇게 된다면…….”
그들도 뭔가를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한 번씩 체력 훈련할 때, 잘 훈련하기 위해 버프 물약을 마시는 경우가 있다.
그때 운이 좋지 않으면 부작용에 걸릴 수도 있는데, 저 모습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너무 커지지 않았나?’
문제는 너무 커졌다는 것.
누군지 알았기에 굳이 시비 걸 필요는 없었다.
힘이 부쩍 상승한 요즘 굳이 건드려서 피해 보기는 싫었으니까.
“어휴, 이게 밥이냐 물이냐.”
한숨을 내쉬며 밥을 떠먹고 있던 강수호.
밥은 다른 아카데미에 비하면 넘치도록 맛있었다. 서울 명문 아카데미에 온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했고.
문제는 바로 이 몸이었다.
“리셋 물약, 되도록 빨리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는데.”
레릴 아줌마가 준 버프 물약의 부작용.
보통 레릴 아줌마의 물약은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버프 100번 중첩이라니.”
벌써 현장 체험 학습을 갔다 오고 4일이나 지나 있었다.
스승님은 이 모습을 매우 좋아했지만, 강수호만큼은 아니었다.
“패왕 길드에 이 모습으로 어떻게 가냐.”
이런 모습으로 갔다가는 습격하는 몬스터로 오해를 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또 마스터의 직접적인 부탁이라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내일 가 봐야겠지.”
버프 때문에 씹지도 않고 밥을 삼켰다.
“하아. 평생 이러면 안 되는데…….”
엄마가 자식 얼굴도 못 알아볼까 걱정된다.
얼굴은 그대로지만, 이런 몸은 그녀의 아들 강수호가 아니었으니까.
“상태창.”
문제의 버프 물약. 중첩된 걸 확인하기 위해 곧바로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 30
체력 – 134 (임시 버프 +100) 민첩 – 115 (임시 버프 +100) 힘 – 133 (임시 버프 +100) 마나 – 113 (임시 버프 +100) 감각 – 112 (임시 버프 +100)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2], [절대정신 방벽(S급) : Lv. 2], [미스릴의 신체(B급) : Lv. 2],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4], [1서클 마법(C급) : Lv. 5]
“하하하하.”
상태창은 언제봐도 웃음만 나온다.
버프 물약이 얼마나 중첩된 것인지 모든 스탯이 +100이다.
임시라지만, 웬만한 프로 헌터는 그냥 쓸어 버릴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아쉬운 건 더 이상 천양 고기를 먹어도 스탯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
“나중에 먹든가 해야겠네.”
맛도 느껴지지 않은 음식을 버리고 기숙사로 향한다.
벌써 시간은 저녁 7시.
패왕 길드에 가기 위해서는 일찍 자두는 게 좋을 것 같다.
* * *
“하하하하.”
“하하하하.”
새벽 4시.
길드에 가기 전, 훈련하기 위해서 도착한 마을.
그곳에서 레릴 아줌마의 집에 들어가 바보 같은 웃음을 동시에 지었다.
“왜 안 되지?”
“…….”
이번에 만든 리셋 물약.
모든 버프를 제거하는 물약을 한껏 마셨음에도 몸은 변하지 않았다.
“설마,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내가 잘 만들기만 하면…….”
“벌써 네 번이나 실패했는데요?”
“…….”
이상하게도 리셋 물약이 강수호의 몸에 제대로 듣지 않았다.
평범한 연금술사가 만든 것도 아닌, 무려 레릴 아줌마가 만든 건데 말이다.
“하아, 알겠습니다. 리셋 물약 다시 만들면 올게요.”
“내가 최대한 빨리 만들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어서 훈련하고 있어!”
네 번의 실패. 그럼에도 레릴 아줌마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스승님에게 가서 훈련을 시작했다.
“흠흠. 그 버프 물약 부작용 때문에 훈련을 많이 못 했으니까 일주일 더 추가다.”
“넵…….”
이 버프 물약 때문에 스승님과 있는 시간이 일주일 더 추가되었다.
외모만 보면 당연히 좋지만…….
“시작한다!”
사람은 외모가 다가 아니다.
강수호의 등에 그녀의 손이 올라가자 무수히 많은 마나가 마나 통로에 퍼지기 시작했다.
“크윽!”
마나 통로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고통. 이 고통을 몇 번이나 더 느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진이 다 빠진다.
그렇게 약 1시간이 흐르자.
“후우, 끝인가요?”
“오늘은 여기까지. 몸이 좋으니까 버티는 것도 남달라졌네.”
“그게 좋은 건가요?”
“아니, 도핑빨이잖아.”
훈련은 끝났다.
지금까지의 훈련 중에서 가장 쉬운 대마법사의 훈련.
가만히 앉아서 타오르는 고통만 버티면 되는 훈련이기에 버티기만 하면 강해질 수 있는 훈련이었다.
“마나 통로는 대충 갈무리된 것 같으니까, 내일부터는 실전에 들어갈 거다.”
“네? 실전이요?”
실전이란 말에 두 동공이 크게 떠졌다.
혹시 몰라 다시 묻자 못을 박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실전. 필드에 있는 고블린 몇 마리만 마법으로 잡으려고. 마나 통로를 제대로 개방했으니까 실전 훈련도 해야 할 거 아니니?”
“…….”
순간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고블린이야 지금 상태에서든 주먹으로 쉽게 때려잡을 수 있는 몬스터다. 문제는 괴물들이 사는 마을은 일반적인 고블린과 다르다는 점.
“그 녀석들을 잡으라고요?”
“왜? 어렵겠니? 나는 파이어로 한 방 컷인데.”
“저는 스승님이 아니잖아요.”
고블린을 두고 이렇게 오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평범한 고블린과 다르게 보통 인간의 머리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고블린. 고블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괴물 같은 힘.
처음 마을에 올 때 보지 못했던 게 다행일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몬스터였다.
물론 스승님들에게는 평범하게 짝이 없는 고블린으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강수호에게는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리 한두 개 사라졌다고 해서 죽는 사람은 없단다. 숨만 붙어 있으면 우리가 알아서 잘 살려줄 거야.”
“…….”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잘못하면 오늘 두 다리로 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마법 연습이나…….”
“안 돼. 실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니? 평생 연습만 할 거면 골방에 앉아서 책 읽으면서 마법이나 사용하지. 뭐하러 마법을 배우니?”
“…….”
팩트만 꽂는 말에 뭐라 답할 수도 없었다.
뭐든 실전이 가장 중요한 법. 골방에서 가만히 앉아서 책이나 보려고 배운 게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래도 위험할 때는 제대로 구해 주셔야 해요! 막 사지가 절단됐는데, 뒤에서 무섭게 웃으시면 안 된다고요!!”
“흐흐흐. 알겠어~”
“…….”
전혀 믿을 수 없는 말투다.
이런 덩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의 말에 어떠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반항하다가는 고블린 무리에 던져질 수도 있으니까.
“저는 이만 갈게요. 벌써 길드 갈 시간이 돼서요.”
“그래, 조심히 갔다 와~ 누나가 기다리고 있을게~”
“할머니가 누나라…….”
쾅!
“뭐라고?”
“…….”
할머니라 말하자 얼굴 옆으로 새하얀 창 하나가 날아간다.
랜서라는 고위급 마법.
대마법사라도 최소 2초는 캐스팅하는 거로 기억하는데, 이 누나(?)는 0.00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하. 누나라고요.”
“그래, 빨리 가~”
고블린 무리에게 던져지기 전에 랜서가 몸을 먼저 뚫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누나라고 말하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파란빛이 점점 강수호의 몸을 감싸더니…….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 * *
“이 바보 같은 놈아!”
“헤헤.”
토요일 새벽 5시.
같이 밤을 새운 패왕 길드의 부마스터가 마스터의 등짝을 거칠게 때렸다.
이번 연도의 결산을 잘못했다거나, 돈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에 계약 사항에 신왕 길드 아들한테 패왕 길드 견학해 주자고 했잖아! 그런데 그걸 이놈한테 주면 어떻게!”
“마음에 드는 걸 어떻게 하냐?”
“하아, 진짜 돌겠네.”
1년에 한 번, 아카데미에서 선정하는 패왕 길드의 견학.
이번에 신왕 길드의 장남인 조시현에게 준 기회를 패왕 길드 마스터가 다른 이에게 줘 버렸다.
“아무리 스카우트한 애라도 그렇지. 그렇게 막 나가면 어떻게 하냐고!”
“헤헤.”
“그만 웃어!!”
시간은 벌써 새벽 5시. 몇 시간 뒷면 강수호가 올 것이다.
“그래도 내가 황금 사과 먹은 값은 해야지.”
“마스터. 아무리 그래도 돈 같은 거로 주면 될 것이지 왜 굳이 그 기회를 그냥 줘 버리냐고!”
차라리 사고만 치는 마스터가 나을 지경이다. 이렇게 의견 없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바보 같은 마스터가 아니라.
“진짜…….”
띠리링.
그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든 그녀가 전화 상대방을 보고 곧바로 받았다.
“무슨 일이야?”
-…….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대답한다.
-소, 손님이 온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빨리?”
-그런데 약간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
그는 목소리를 덜덜 떨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히익! 괴물이 있어요!!
-괴물 아닌데요.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굵지만 뭔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