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22. 현장 체험 학습(3)
시간은 이미 지나 다들 다음 장소로 떠났을 터.
아니면 지금 쓰러진 학생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되도록 싸움은 하지 않으려 했다.
무슨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고, 다수로 싸우는 건 그라도 꽤나 힘들 테니까.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지금 다 덤비라고 했냐?”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그들도 당황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꼴통 아카데미라 해도 모두 실력 있는 이들. 한 명, 한 명이 힘 좀 꽤나 쓴다는 놈들이 분명했다.
‘마법 계열은 없는 것 같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방해되는 마법 계열 각성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해결 가능한 수준.
“뭐해? 설마 한 명한테 쫀 거야?”
“후회나 하지 마라. 우리는 그리 만만한 놈들이 아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콰직!
“커헉!”
“이건 처음에 내 얼굴 쳐 놓고 사과 안 하고 간 거.”
강수호의 오른쪽 주먹이 대장으로 보이는 놈의 얼굴에 꽂았다. 처참히 우그러진 얼굴을 무시하고 조용히 말했다.
“다음.”
“……!!”
눈빛이 저승사자처럼 제대로 살아 있었다.
프로 헌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
‘저게 학생이라고? 차라리 괴물이라고 해 줘! 우리 아카데미 최고의 괴물을 단 한 방에 무너트리다니……!’
꼴통 아카데미의 괴물. 그곳의 1위를 한 방에 보낼 때부터 이미 승리는 강수호 쪽으로 완벽히 기울어졌다.
강수호를 둘러싼 무리가 두려움에 빠지고…….
“뭐 해? 안 덤벼?”
“…….”
그들은 강수호의 도발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표적이 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내가…….”
악감정은 없지만, 깔끔히 처리하기 위해 주춤거리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다른 아카데미와 서로 엮이는 건 그도 바라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나설 때는 나서야 하는 법.
왼쪽 발이 앞으로 나가고, 주먹을 휘두르려던 그때.
띠리링! 띠리링!
“음?”
“뭐야? 설마 무기라도……!!”
“그런 거 아니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미치도록 울리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 휴대폰 화면을 확인해 보니.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 수 없음 : 다시 차라.]
“…….”
휴대폰에 적힌 네 글자.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지만…….
‘없는데?’
주변에 스승님들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눈이 없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되는 일.
‘그런 괴물들이 사는 곳에 이런 기능도 있는 게 당연하겠지?’
어찌 보면 그들이 강수호를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당연한 일이다.
C급 재능 한 개로 산 몇 개는 파먹을 듯한 강함. 이렇게 엿 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하하하하.”
“저 미친놈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휴대폰에 적힌 메시지에 따라 인벤토리에서 발찌와 팔찌를 꺼내 착용했다.
각각 1t의 무게.
합쳐서 4t 무게는 이제 꽤나 익숙해진 상황이다.
절그럭. 절그럭.
팔찌와 발찌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무게가 느껴진다. 이대로 싸우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빨리 덤벼. 피곤하니까.”
“…….”
어쩔 수 없었다.
이 사건을 빨리 처리하고 가는 수밖에.
“뭐 하는 거지?”
“다 덤비기나 해. 봐주는 거니까.”
“우리야 상관없지! 모두 달려들어!”
이때가 기회인 듯싶어 10명 모두 자신에게로 달려들었다.
바지 주머니에 다시 휴대폰을 넣자 울리는 메시지 알림.
띠링.
[알 수 없음 : 이래야 벨런스가 좀 맞지. ^.^]
만약 강수호가 이걸 본다면 정말 스승님이 맞다 생각할 거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 쇠질을 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첫 스승님들이니까.
* * *
“킁킁. 헤헤, 이건 무슨 냄새지? 어디서 많이 맡아 본 냄샌데.”
패왕 길드 마스터 이구호. 한국 랭커 1위이기도 하면서 전 세계에서 몇 없는 듀얼 재능의 소유자.
약간 띨빡하긴 하지만 뛰어난 재능에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하아, 정말 미치겠네. 이런 놈이 왜 우리 길드 마스터인 거지?”
“잠시만 기다려 봐. 이 근처에서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거든.”
“…….”
부마스터인 신하림 빼고.
그녀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사고를 친다면 수습해 줄 수 있다.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술을 마신다든가, 돈과 아이템을 받고 사람을 죽였든가.
‘차라리 그래 달라고! 이딴 멍청한 짓 좀 하지 말고! 내가 다 쪽팔린다!’
그랬으면 차라리 나았다. 마스터 체면 없이 멍청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보다.
특히 오늘 같은 날이면 더욱 짜증이 났다.
“마스터. 오늘 미팅 시간 늦겠습니다만?”
“아, 괜찮아. 내가 조금 늦는다고 하면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제가 안 괜찮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작자다.
개 코도 아니고 나오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난다니? 근처에는 온통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 냄새가 전부인데 말이다.
‘누가 밖에서 천양 고기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아니, 애초에 그런 냄새가 여기까지 날 리 없잖아.’
아무리 진한 냄새라도 여기까지 천양 고기 냄새가 날 일은 없었다.
“어휴, 마스터 마음대로 하십시오.”
“땡큐~”
휴대폰을 들고 간단한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늦어진다는 메시지를 보내자 당연하다는 듯 5초가 지나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신왕 길드 부마스터 : 하하! 괜찮습니다. 큰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미팅 장소에서 천천히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큰일은 개뿔.”
1등의 권력. 패왕 길드가 좀 늦는다고 한국 길드들이 뭐라 할 수는 없다.
“일단 말해 놨어.”
“오케이. 나 따라와 봐. 여기에 내가 먹어 본 맛있는 냄새가 나거든.”
“알겠어.”
한숨을 내쉬면서도 마스터의 뒤를 따라갔다.
지구에서 그를 말릴 사람은 그보다 강한 사람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사람이 한국에 없으니까 말릴 수도 없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개 코라는 스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참 뒤를 따라가자.
“킁킁. 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녀의 코에 배기가스 냄새 말고 짙은 고기 향이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녀도 익히 아는 고기 냄새였다.
“천양 고기 냄새가 왜 이런 미술관에서 나는 거야?”
“킁킁. 따라와 봐. 이 근처에서 더 짙은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까.”
“정말 개 코네…….”
미술관 근처로 다가가자 더욱 짙은 육향이 난다. 코끝을 찌르는 육향에 저절로 침이 고인다.
‘이런 곳에 왜 천양 고기가 있냐?’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곳에 천양 고기 냄새가 난다는 건 이상한 일.
그녀도 궁금해 빠르게 그의 뒤를 따라갔다.
쾅!
“무슨 소리지?”
“이 근처에서 난다. 따라와.”
“어휴, 네네.”
미술관 안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마스터를 따라갔다. 그러자 미술관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싸우는데?”
“그렇네.”
한 학생을 둘러싼 채로 공격을 가하는 그들. 하지만 둘러싸인 학생이 불리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하는데?”
“신기하네.”
“뭐가?”
“저 학생한테 천양 고기 냄새랑 황금 사과 냄새가 나서.”
“……아니, 1위 길드면 가운데 있는 학생 싸움에 신경을 쓰라고요. 마스터님.”
싸움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녀는 그와 보는 눈이 달랐다.
‘다 피해?’
아카데미 학생이라고는 해도 빈틈없이 들어가는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말도 안 될 정도의 수준을 가진 스승이 없는 이상에야.
“말려?”
“…….”
“여기요, 마스터 씨?”
말을 걸었는데도 대답이 없자 그녀의 고개가 그에게로 갔다.
이구호는 뭔가 발견한 강아지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미술관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그녀도 그의 눈대로 움직여 쳐다보니, 여러 학생에게 둘러싸인 학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 학생?”
“그래.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난다.”
누가 들으면 식인종이라 오해할 말들이다.
천양 고기, 황금 사과 냄새까지 난다면 저 학생은 거물이 당연한 것.
“일단 지켜보지.”
“지켜보자니? 안 구해 줘? 이 정도로 단내가 난다면 꽤나 거물이란 소리인데. 신입들은 향수 같은 거라 생각할 거고.”
마스터의 말에 그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황금 사과의 단내는 한 번 먹었다고 생기지 않는다. 최소 100개는 먹어야 배는 황금 사과의 단내.
향수 같은 냄새라서 황금 사과를 먹어 보지 않은 학생들은 당연히 알 수 없다.
“괜찮아. 저 학생, 우리 팀장 놈이 스카우트한 얘거든.”
“4t짜리 무게 들고 다닌다는 괴물 같은 학생?”
“응.”
“그런 건 또 잘 기억하네. 그래도 마스터긴 한가 보다.”
사소한 건 기억 잘한다. 그때 중요한 최상급 물약 구매에 들고 갈 돈도 까먹은 주제에.
“그래, 일단은 한 번 봐야지.”
근처 벤치에 앉아 학생들끼리 싸우는 걸 구경했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싸움 구경 아니겠는가?
“오징어 좀 사 와 줘. 꽤 재밌네.”
“아, 네네.”
근처 편의점에서 오징어를 사 온 그녀가 입 안에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피하기만 하던 학생이 점점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오. 꽤 잘 싸우는데?”
“그놈이 스카우트한 이유가 있었구나.”
“실적 하나는 끝내주잖아. 그래서 안전 교육관에 데려다준 거고.”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못했다. 하지만 휘두르는 주먹 하나하나가 묵직했고.
“프로 헌터들보다 한 수 위 아니야? 저 정도면 최소 D~C급 헌터는 되는 것 같은데?”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휘두르는 주먹은 느리지만 맞지 않은 공격이 없었고.
콰직!
“…….”
“대단하군.”
“확실히 학생 맞아? 그냥 괴물 같은데?”
주먹이 학생 한 명의 머리를 칠 때마다 처참히 우그러트렸다. 이곳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렇게 약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
“대단하군. 역시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이야…….”
“완전 슈퍼 루키잖아? 내가 듣기로는 듀얼 재능을 가진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먼저 스카우트하길 잘했네.”
모든 학생이 비틀거리며 쓰러져 있었다.
어디 하나 정상적인 곳이 없을 정도로 다친 학생들.
“이제 가 볼까?”
“…….”
“저기요? 마스터…….”
싸움도 끝났으니 이제 막 가기 위해 마스터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미팅 시간에 너무 늦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
하지만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을 때는 그의 잔상만 남아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눈치챘기에 그녀는 빠른 속도로 미술관을 향해 달려갔다.
“패왕 길드 마스터?”
“하하! 안녕? 날 아는구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느새 미술관으로 도착한 이구호. 그는 강수호를 한참 살펴보고는 한껏 웃으며 말했다.
“하여튼, 천양 고기 하나 있으면 줄 수 있어? 내가 좀 배가 고파서 그러는데.”
“…….”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