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20. 현장 체험 학습(1)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내일 또 어디 간다면서?”
“감사합니다. 아, 넵.”
“뭘 그리 많이 가냐? 안 힘들어?”
어느새 도착한 마을.
길면서도 짧은 훈련이 끝나고 스승님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3학년이라 그런지 자주 실습하러 가는데, 그 때문에 조금 걱정하는 듯싶다.
“별로요. 이번에는 현장 체험 학습이라 놀 것 같아서 상관없어요.”
“현장 체험 학습? 크으. 네 때가 좋은 거다. 나 때는 친구들이랑 몰래 술 먹으면서 막 놀고 그랬었…….”
“친구 없는데요?”
“…….”
강수호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친구가 없다는 건 상상도 못 한 까닭이다.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고 처음 만났을 때 하지 못했던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말했네. 내 이름은 세린.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대마법사를 담당하고 있지. 잘 부탁한다.”
“저야말로 잘 부탁해요.”
간단히 악수를 하고 차원 이동을 사용한다.
헬창 스승님과의 훈련 때는 물약을 잔뜩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좋은 물건을 가져왔다.
“통이 크시네.”
접시에 놓인 스테이크가 냄새를 풍기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것도 무려 1접시.
인벤토리 안에 있는 스테이크를 모두 꺼내 책상에 올려두었다.
꼬르륵.
“밥도 못 먹고 바로 훈련하느라 배고프네.”
저녁밥은 훈련 때문에 입도 대지 못했다. 살가죽이 등에 붙은 상황.
“맛있겠다…….”
육안으로 봐도 보이는 뛰어난 육즙. 포크로 찍어 당장에라도 입 안에 넣어 씹어 삼키고 싶었다.
“평범한 일반 소고기 같은 게 아니고 무려 천양 고기 등심!”
몸보신 좀 하라는 그녀만의 특별한 배려였다.
사양하지 않고 입 안에 스테이크를 집어넣었다.
왈칵!
“크으!!”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육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두툼함과 육향이 입 안을 통해 느껴졌다.
띠링!
-천양(天羊)의 등심 부위를 드셨습니다.
-체력 2 스탯이 올라갔습니다.
-힘 2 스탯이 올라갔습니다.
그 덕분에 올라간 4개의 스탯. 어찌 다 먹지 않을 수 있을까!
10분 만에 열 개의 스테이크를 먹었다.
“후우, 배부르다.”
이에 낀 고기를 빼내며 상태창을 열었다.
[강수호]
레벨 : Lv. 30
체력 – 134 민첩 – 115 힘 – 133 마나 – 113 감각 – 112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2], [절대정신 방벽(S급) : Lv. 2], [미스릴의 신체(B급) : Lv. 2],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4], [1서클 마법(C급) : Lv. 5]
-천양(天羊)의 등심 부위를 드셨습니다.
-체력 스탯 2 올라갔습니다.
-힘 스탯 2 올라갔습니다.
…
…
최상급 물약과 다르게 힘, 체력 각각 20 스탯이 상승했다. 영약 같은 개념이라 생각하며 상태창을 닫았다.
“더는 못 먹겠어…….”
밥 먹자마자 침대에 눕는 게 국룰이다.
따뜻한 느낌과 포근한 느낌이 동시에 들어 스르르 잠에 빠지려 했지만…….
“이건 어떻게 하지.”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번에 던전을 클리어하면서 받은 패왕 길드의 스카우트 제의. 힘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결과였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얘들 표정이 재밌었지? 엘릭서 덕분이긴 한데…….”
그런 표정은 난생처음 봤다. 시선이 점점 다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길드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길드원의 대답이 머릿속에 박혀 기억의 파편으로 남는다.
‘아직 제가 다 보여드린 건 아니라서요. 죄송하지만 일단은 거절할게요.’
A급 헌터의 표정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고작 학생이 우리 길드의 제안을 거절해?’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아직 더 보여드릴 게 남았다는 대답의 놀라움이 담긴 표정. 그리고 기대감.
“더 강해지기 위해선 쉬는 것도 훈련이다!”
잠옷을 갈아입은 강수호는 전 스승님이 해 주던 말을 되새기며 잠을 청했다.
행복한 시간은 많아도 적고, 적어도 적은 법이다. 좋은 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성실한 노력이 필요한 법.
환기를 시킨 뒤에 불을 끄고 이불을 덮은 강수호가 눈을 감았다.
내일을 위해서.
자신을 비웃고 깔보던 이들보다 더욱 잘나기 위해서 오늘도 잠든다.
* * *
“뻐근해서 죽을 것 같네.”
아카데미 전용 버스 안.
앞자리에 앉아 있던 강수호가 뒤척이며 몸을 푼다.
어제 훈련을 막 마치고 돌아올 때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마나 통로를 열고 며칠간 몸살 기운 같은 게 있을 거라 했는데, 바로 마법을 써서 그런지 더 심해졌네.”
마법의 재능이 없는 이의 마나 통로 개방. 그리고 마나 통로를 개방하자마자 마법을 사용하는 신기한 재능.
물론 재능 덕분은 아니다. 모두 대마법사 스승님이 마나 통로를 너무 잘 개방했기에 발현된 마법.
“조금씩 써야겠네. 오늘도 한소리 듣고 왔으니까.”
이번 스승님은 왜 이리 말이 많으신지 모르겠다. 마나 호흡을 하면서도 어찌나 말이 많던지.
특히 오늘은 되도록 마나를 쓰지 말라 하셨다. 쓸 일이 생긴다면, 차라리 마나 통로 보존 물약을 먹고 쓰라고 직접 챙겨 주기까지 했다.
“거기에 현장 체험 학습에서 먹을 천양 등심 고기도 챙겨왔지!!”
어제 먹었던 천양 등심 고기. 황금 사과와는 질을 달리한다. 하늘에 사는 양인 만큼 맛은 황금 사과와 비교할 게 아니다.
“내가 뭘 가져왔는지 아냐?”
“뭘? 이번에도 황금 사과냐?”
“아니, 그거랑 비슷하긴 한데…….”
그때 마침 뒤에서 학생들이 서로 오늘 점심때 먹을 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현장 체험 학습은 평범한 미술관 같은 걸 방문하기에 힘들 만한 일은 없다.
잠시 망설이던 학생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무려 금계(鍂鷄)라고!”
“뭐? 햇볕이 잘 드는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골드 닭?”
“그럼!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닭의 계란이지만…….”
계란이라도 무려 금계의 계란. 저 계란 하나 값이 최소 1,000만 원은 넘어갈 것이다.
‘금계? 그거 주민들이 잘 키우고 있던데.’
강수호에게는 금계가 별거 아닌 듯 생각되었다. 마을의 주변만 둘러봐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것 천지였으니까.
그곳에서 울타리를 쳐 놓고 키우는 금계.
‘저게 뭐라고.’
“풉.”
“……?”
강수호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학생들이 강수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웃었냐?”
“야야. 그러지 마. 이분이 바로 패왕 길드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놈이잖아.”
어차피 선생님의 말씀도 듣지 않을 놈들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비웃었는데.”
“…….”
잠시 침묵이 돈 버스 안.
그의 아빠가 꽤나 유명한 길드에서 일하기에 누구도 그의 행동을 제재할 사람은 없었다.
“흠흠.”
제일 앞에 있던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
차라리 강수호가 그들에게 당하는 걸 더욱 바라고 있었다.
헛기침하며 앞을 돌아보는 선생님.
‘어휴. 내가 뭘 바라냐.’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지금은 자신이 해결하는 게 나을 듯했다.
“뭐라고?”
“그래. 고작 금계 계란 가지고 자랑하는 게 웃겨서 웃어 봤다. 너도 나한테 그랬잖아?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듯하다.
F급 각성자의 재각성 위력. 던전에 직접 들어가지 않아 보지는 못했지만, 양유혁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리 뛰어난 재능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매직 미사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고작.
‘약한 놈은 약해야 하는 법이지. 얼룩말이 사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한 그가 강수호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너는 뭘 가져왔는데? 금계의 계란보다 귀한 게 있으면 한 번 꺼내 보든가?”
“…….”
아무 말도 안 하자 승리를 확신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재각성한 능력. 지금 상황에서는 단 1도 쓸모가 없다.
‘이런 게 인맥이지!’
뭐든지 인맥이 중요한 법이다. 많은 사람을 알아두면 필요할 때 사용하기 좋은 카드가 된다.
“봐봐! 이 새끼 아무것도 없…….”
말이 끝나기 무섭게…….
“됐냐?”
“음?”
인벤토리에서 뭔가 나온다.
따끈따끈한 육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평범한 스테이크라 생각했다.
“킁킁. 어?! 이건…….”
하지만 고기 좀 먹어 본 그는 달랐다. 이 고기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천양 고기?’
한 입 먹는다면 며칠 밤 정도는 가볍게 샐 수 있을 정도의 영양가를 지닌 고기.
헬창 스승님들 덕분에 뛰어난 몸을 가지게 된 강수호에게는 그리 큰 영향은 못 미치지만 말이다.
후두둑.
“……!!”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쏟아져 나오는 반짝이는 구.
“어!!”
그것이 뭔지 눈치챈 학생이 손가락으로 구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황금 사과다!”
“이것 좀 넣어 주지 말라니까. 이제는 좀 질리던데…….”
황금 사과 보따리. 그 수는 대략 100개가 넘어갔다.
놀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후두둑!
후두둑!
“헉!!”
인벤토리에서 뭔가 쏟아져 나올 때마다 학생들의 두 눈이 커진다. 담임 선생님도 마찬가지.
“천양 고기?”
마블링이 뛰어난 천양 생고기. 더군다나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벼락 나무까지 챙겨 주었다.
‘이런 건 또 언제 넣으셨대.’
이건 강수호도 몰랐던 것이다. 스승님들의 소매 넣기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틈에 이런 걸 넣었는지.
“이제 됐냐?”
“…….”
학생들의 눈빛이 모두 강수호를 향해 있었고.
“그래…….”
주눅이 든 그가 재빨리 뒷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은 여전히 강수호에게 향해 있었다.
‘이건 딱 봐도…….’
누가 봐도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포식자에게는 언제나 숙이고, 피식자에게는 달라붙어 벼룩처럼 빨아 먹는 이들. 괴롭히지도 않고 괴롭힘당하는 것도 아닌 방관자들.
“이렇게나 많은데 우리랑 같이 먹으면 안 될까?”
“그래!! 아무리 너라도 이 정도는 다 못 먹을걸? 우리가 도와줄게!!”
“…….”
황금 사과, 천양 고기.
이런 것들을 먹을 기회는 흔치 않다.
이걸 조금만 먹는다면 몇 단계 성장하는 건 분명할 테니까.
“내가 왜?”
“왜라니? 이렇게 많으니까…….”
강수호도 그건 좋은 선택일 거다. 아카데미 학생들과 친구로 지낼 기회. 하지만 그 대상이 그들이라면 결코 사양이다.
“많다니?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이걸 혼자?”
“그래, 그리고 남으면 인벤토리에 넣어 놓으면 되지. 인벤토리 안은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
“…….”
입을 다문 그들.
그와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현장 체험 학습 현장에 도착했다.
떨어진 음식을 주운 강수호가 먼저 버스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