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16. 현장 실습(1)
우두둑.
간단히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요즘 따라 시간이 왜 이리 빠르게 가는지 모르겠다.
헬창 스승님들의 마지막 훈련 날. 드디어 일주일이란 시간이 모두 지났다.
“이제 정말 끝이다. 만약에 우리가 필요하다면 저기 보이는 산 중턱 오두막으로 찾아오도록. 우리 둘은 매일 그곳에서 쇠질을 반복하고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찾아갈 일은 없을 거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목을 축인 뒤 아카데미 기숙사로 향했다.
지금 당장 아카데미로 가야 하기에 선물 하나를 받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이제 다시는 안 하겠지.”
땀 범벅인 옷을 빨래통에 넣고 샤워실로 향했다. 다시는 그들이 스승이 되지 않길 바라며.
“그것보다, 선물은 뭐였지?”
이때까지 잘 따라 준 보답의 선물.
간단히 씻고 나온 강수호는 선물 포장지를 뜯었다.
“……?”
물 상자에는 아름다운 빛깔의 액체가 든 병 다섯 개가 들어 있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킁킁. 음?!”
찌릿해지는 코.
달콤한 냄새가 기숙사 안 가득 퍼진다. 황금 사과보다 달달한 느낌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눈이 맑아진다.
“이런 미친…….”
냄새만 맡아봐도 이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계에서 어떤 아이템보다 구하기 힘들다는 신비의 물약.
“엘릭서잖아?”
사지가 절단되어도 마시기만 하면 재생된다는 엘릭서. 그 신비의 물약이 강수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걸 선물로 준 거라고?”
한 병이었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준 엘릭서의 수는 다섯 병. 대략 5L가 넘어간다.
“음? 웬 쪽지?”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병 옆에 쪽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쪽지의 내용을 훑었다.
“이건 운동할 때 먹는 용? 이건 다쳤을 때 먹는 용? 사람 살리기 딱 좋은 용? 몸 키우기 좋은 용? 체력 부족할 때 먹는 용.”
엘릭서 다섯 병 모두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쪽지를 모두 읽고 나서야 다섯 병의 엘릭서 하나하나가 어떤 용도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챙겨 주신 거구나.”
성의에 눈물을 흘릴 뻔했지만, 다시 제자가 될 수는 없었다.
드라이기를 잡고는 머리를 말리며 상태창을 열었다.
오늘 훈련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으니까.
[강수호]
레벨 : Lv. 10
체력 – 74 민첩 – 75 힘 – 73 마나 – 65 감각 – 72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1], [절대정신 방벽(S급) : Lv. 1], [미스릴의 신체(B급) : Lv. 2],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2]
-체력 스탯 2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탯 2 상승하였습니다.
-힘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감각 스탯 2 상승하였습니다.
꽤나 많이 올라가 있는 스탯.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예전에는 아무리 훈련해도 오르지 않는 스탯이 스승님과 훈련하기만 하면 게임처럼 쑥쑥 오르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일단 자야지. 내일을 위해.”
벌써 시간은 밤 10시. 드디어 취침 시간이다.
머리를 말리고 간단히 이론 공부를 마친 강수호는 내일을 위해서 잠을 청했다.
* * *
똑똑-
“또 누구야?”
던전을 막 클리어하고 수호 길드에 도착한 김하역. 그가 다시 마스터 사무실을 두드렸다.
신경질 내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문을 열었다.
“인사과 대리, 김하역입니다.”
“또 왜? 던전 클리어하라고? 안 돼. 나 오늘 바쁘다는 말 못 들…….”
“던전에 헌터 협회장이 왔습니다.”
헌터 협회장이 왔다는 말에 그의 표정이 처참히 구겨진다.
“……정말?”
“넵. 하지만 다른 걸 찾는 것 같더라고요. 던전은 협회장이 온 김에 겸사겸사 클리어했고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온 이유는 수호 길드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일 때문에 온 것뿐.
“그럼 됐어. 이만 가 봐.”
“…….”
손짓하며 그를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석상처럼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을 뿐.
“뭐해? 할 말이라도 있어?”
“그게…….”
잠시 망설이던 그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혹시 검은 후드티에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알고 계십니까?”
“뭐?”
하얀 가면, 검은 후드티.
이 두 단어만 하더라도 비밀 경매에 가 본 그가 유추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헌터 협회장님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를.”
수호 길드 마스터는 검은 후드티와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알고 있다. 대부분의 고위급 헌터들은 다 알고 있는 사람일 터.
하지만 그가 그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던전에 그 남자가 와 있었습니다.”
“뭐라고?”
“검은 후드티에 하얀 가면을 쓴 남자 말입니다.”
그 말에 수호 길드 마스터의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터.
“설마…….”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 사람만은 아니라고.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선 그 장면이 생생히 기억난다. sky 길드 팀장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이.
“당장 그 남자를…….”
“이미 가셨습니다. 헌터 협회장님도 못 잡으신 분이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군.”
그 남자를 잡지 못할 거다. 그저 다음에 올라올 물약을 기다릴 수밖에.
* * *
시간은 새벽 3시.
고작 5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요즘 새벽 3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괴물 같은 체력 때문인가. 4~5시간만 자도 이제 잠이 안 오냐.”
모두 헬창 스승님들의 훈련 덕분이었다.
이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씻지도 않고 차원 이동을 사용했다.
“2시간 정도만 훈련하면 되겠지.”
여느 때와 똑같이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차원 이동한다.
슈아아악!
파란빛이 기숙사 안에 퍼지면서 강수호의 몸이 사라진다.
눈을 감았다가 뜨자 보이는 건 맑게 핀 하늘과…….
“하암~ 잘 잤…….”
“드디어 왔다.”
“…….”
97명의 사람이었다.
강수호를 가운데로 둔 채 둘러싸인 예비 스승님들.
“하하하하.”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날인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저기 스승님들……?”
탐욕에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예비 스승님들.
덜 깨어 있던 잠이 저절로 깨어지면서 동공이 떨린다.
“헤헤.”
“뉴비다……. 뉴비!!”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
하지만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다. 팔찌와 발찌를 인벤토리에 넣고 달려갈 준비를 한다.
‘최소 1분 정도는 도망갈 수 있겠지.’
저번에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잡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발을 박차고 나아갔다.
4t의 무게가 사라진 덕분에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지만…….
“제가 이 정도로……!”
쾅!!
“드디어 내 차례다!!”
“…….”
거대한 충격파.
아래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더니 강한 충격과 함께 얼굴이 땅에 묻혔다.
‘이게 무슨…….’
놀랄 시간도 없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녀가 벌써 옆으로 다가와 해맑게 웃고 있었으니까.
* * *
“오늘 현장 실습이라면서?”
“아, 네…….”
강수호가 오늘 무엇을 하는지 잘 아는 눈치다. 아니,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오늘 일에 대해서 알 것이다.
“아싸! 이번 주에는 내가 스승이다!”
“칫. 아쉽네.”
“나도 스승 되고 싶은데…….”
아쉬운 눈빛이 가득한 사람들. 눈에는 탐욕이 어렸고, 지금 당장 소매 넣기를 하고 싶겠지만…….
“규칙은 규칙이니까.”
“어쩔 수 없지. 규칙을 어기면 질서가 무너지니까.”
“언젠가는 스승님이 될 수 있겠지?! 그 시기가 좀 늦을 뿐이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규칙이라는 게 존재한다.
스승으로 뽑히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안녕?!”
“하하. 네, 안녕하세요.”
밀짚모자를 쓴 아름다운 여성이 강수호를 반겼다.
하얀 머리카락으로 보아하니, 연세가 꽤 있는 듯한 스승님. 아름다운 미모는 감출 수 없는지 스승의 미소에 가슴이 절로 두근거렸다.
물론 지금까지만.
“몇 시간 정도 훈련할 거니?”
“2시간 정도만 훈련할 겁니다. 나중에 밤에 와서 시간 보고 훈련하겠습니다.”
“그렇구나…….”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
고작 2시간. 아침에는 2시간밖에 보지 못했으니, 그건 강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아름다우신……. 아니, 아침에는 2시간밖에 보지 못하다니. 훈련해야 강해질 수 있단 말이다!’
적은 시간 동안 빠르게 성장하는 건 힘들다.
그리고 특히 이번에는 눈 호강도 할 진귀한 기회.
‘스승님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이제부터 훈련해 볼까?”
“넵!!”
시작되는 훈련.
중력을 이용하여 강수호를 잡았으니, 대마법사라 생각했다.
“오늘은 너 혼자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훈련을 배울 거란다. 여기서 살아도 되지만, 그래도 혼자서 하는 게 더 편할 테니까.”
“넵!!”
우렁차게 답한다.
하지만 그 대답이 개미 소리보다 작게 변할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마법, 검, 연금술사 등등. 모든 것은 기초가 중요한 법이란다. 너도 잘 알고 있지?”
“넵! 그렇습니다!”
“이번에 배울 건 기초 호흡법이야. 내가 만든 호흡법이라 조금 아플 수도 있거든? 오늘이 실습 시험이라 특별히 빠르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다.”
마나 호흡. 마법 서적을 읽어 본 적 있기에 익히 알고 있는 호흡법이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가 직접 만든 호흡법이라는 것.
그리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그녀의 손에 몸을 맡기자 마나 호흡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내가 마나를 조절해 줄 테니까 천천히 하는 게 좋아. 무조건 빠르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니까.”
“넵!”
“쉿. 이제 조용히.”
국도 상태로 있던 마나 통로가 고속도로로 뚫린 것처럼 점점 넓혀지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
몸 전체가 시원한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따뜻한 느낌도 든다.
‘더운 여름에 따뜻한 이불 덮고 18도까지 낮춘 에어컨 바람 쐬는 기분이네.’
지금 기분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추운데 따뜻한 기분.
몸 전체가 노곤해지면서 스르르 잠이 몰려온다.
“흠. 아플 텐데…….”
그때 마침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예상외로 아프지 않자 고개를 저으며 조곤조곤 말했다.
“별로 안 아픈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악!”
온몸에서 시작되는 진득한 고통.
마나 통로가 넓게 개방되는 전조였다.
고속도로로 뚫린 마나 통로가 주변 이물질들을 빠르게 태워 갔다.
“마나 통로에 노폐물이 많구나.”
마법사 재능이 없는 강수호의 마나 통로를 억지로 확장하니 고통은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그 고통은 무려 2시간이나 지속되었고.
“저는 이만…….”
“그래~ 잘 가.”
땀 범벅이 된 채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봐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