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15. 헌터 협회에서 왔습니다(3)
“의외로 어렵네.”
고블린의 초록색 피와 내장이 가득한 던전 안. 그곳에서 강수호가 머쓱한 표정으로 거대한 돌에 걸터앉았다.
고블린의 수가 생각한 것보다 많았다.
계속해 고블린과 싸우다가는 체력이 먼저 고갈되어 죽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협회에 연락하면 되겠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길드와 연락되지 않으면, 협회한테 연락하면 되는 일.
좀 늦는다지만,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보내 줄 수 있을 거다. 난이도가 높은 던전도 아니니까.
그전에 상태창을 열어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했다.
“상태창.”
[강수호]
레벨 : Lv. 10
체력 – 60 민첩 – 61 힘 – 60 마나 – 53 감각 – 58
스탯 포인트 : 6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1], [절대정신 방벽(S급) : Lv. 1], [미스릴의 신체(B급) : Lv. 2], [괴물 같은 체력(C급) : Lv. 2]
-체력 스탯 1 올랐습니다.
-민첩 스탯 1 올랐습니다.
-감각 스탯 2 올랐습니다.
“6레벨이나 올랐네.”
던전을 클리어하지 않았음에도 무려 6레벨이나 올랐다. 솔로 플레이어 덕분이라는 걸 늦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얻은 60 스탯 모두를 12씩 분배하여 신체 능력을 다시 향상시켰다.
한참 상태창을 확인하며 출구를 향해 가고 있을 때쯤.
“취이익!”
“…….”
갑작스레 들려오는 고블린의 울음소리.
“뭐야?”
고블린의 울음소리를 따라가 보니 누군가 던전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자세히 확인해 보니, 수호 길드의 길드원.
‘한 명밖에 오지 않은 건가?’
하루 뒤에 온다고 해 놓고 왜 여기에 왔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헌터이긴 한 거야?’
달려드는 고블린에 잔뜩 겁먹은 그.
어쩔 수 없이 후드티와 가면을 꺼내 입고 고블린을 죽였다.
“……누구?”
“허헉! 가, 감사합니다!”
여기서 얼굴이 밝혀지는 건 무조건 반대다.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길드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길드나 협회는 이런 낮은 던전엔 관심도 없으면서 이런 것 하나는 잘 지킨다.
“수호 길드인가…….”
“네! 맞습니다! 길드 안에 던전 클리어할 인원이 부족해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던전 입장권이 있든 없든 지금 그를 구해 준 사람은 바로 자신. 그가 반갑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자기를 소개한다.
별거 아닌 듯 고블린 명치에 박힌 단검을 빼내며 말했다.
“대부분 정리되었습니다.”
정리되었다는 말과 동시에 던전을 빠져나온다.
아직 클리어한 건 아니었지만, 길드가 왔으니 여기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만 가죠.”
“아, 넵.”
그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이런 E급 던전에 대한 가치는 100만 원도 안 된다. 돈이 되지 않으니 시간까지 들여가며 적은 돈을 벌 필요는 없다.
* * *
“여기쯤이라 말했는데.”
한 남자가 등산로 주변을 기웃거린다.
마을 사람들만 아는 뒷 등산로. 그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한 사람의 신고 때문이었다.
‘기어간 사람을 본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요즘 들어 판을 치는 마인. 혹시 몰라 그가 나왔다.
“서류도 많아 바빠 죽겠는데. 그래도 마인이라면 혹시 모르니까.”
헌터 협회장, 이용욱. 대한민국 15명의 S급 헌터 중 최강자 중 한 명.
그는 마인으로 예상되는 한 명을 찾고 있었다.
더불어 이 근처에 나온 E급 던전도 함께 찾던 도중…….
“음? 이건가?”
드디어 던전으로 보이는 게이트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게이트.
그곳으로 이동하니.
“아쉽네.”
익숙한 문양의 옷을 입은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를 보고 그리 아쉬워하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수호 길드?’
오른쪽 어깨의 문양을 보고 눈동자가 빛났다.
한국의 7위 길드. 그 길드 안에 마인이 있을 줄이야.
조심스레 그에게 접근해서 거대한 두 손으로 그의 몸 전체를 움켜잡았다.
“아악!”
“가만히 있어라! 마인 주제에!”
“네?! 마인이라니요!”
“어디서 몰래 빠져나가려고! 협회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이상하게 기어 다니는 놈이 너지?”
“팔찌는……. 음?”
말을 이어가던 도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CCTV에서만 보던 이상한 수갑 형태의 팔찌가 없다는 점.
“뭐지? 왜 수갑이…….”
“수갑이라뇨! 그런 걸 제가 왜 차고 다닙니까? 무슨 범죄자라도 되는 줄 알았습니까! 도대체 누구시길래 저한테 이러시는……. 히익!”
열심히 떠들어대며 자신을 감싸 안은 남자를 쳐다본 순간 그의 얼굴이 공포감으로 물들었다. 헌터 협회장인 건 알았으나, 얼굴이 꽤나 험악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가 알기로 헌터 협회장은 분명 인상 좋은 할아버지였는데.
“잠시만 기다려 보거라.”
“네?”
이용욱은 정확한 확인을 위해 그의 몸을 잡고는.
“많이 아플 걸세.”
“아니, 잠시만……! 크억!”
거대한 주먹으로 배를 후렸다.
그의 주먹은 아프다는 표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나마 힘 조절을 했기에 이 정도지.
“커헉!”
“흠. 미안하군. 자네가 아니었어.”
“……아니라고 말했지 않았습니까?!”
복부를 후린 덕분에 그가 마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마인은 공격을 받으면 그 즉시 눈이 붉게 변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것보다 수호 길드가 왜 이곳에 왔지?”
“쿨럭!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할 것 같군요. 아무리 헌터 협회장이더라도 다짜고짜 사람을 때리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흠흠. 이해해 주게나. 주변에 마인 비스름한 게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왔거든. 자네는 아닌 것 같네. 미안하네.”
“아파 죽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미안함을 전했다. 엄연히 먼저 공격한 자신이 잘못이었으니까.
“그것보다, 여길 지나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나?”
“지나가는 사람이요? 어……. 한 명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협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딱 한 사람을 만났었으니까.
“얼굴은 못 봤지만, 흰 가면에 검은 후드티 비슷한 복장을 한 남자를 보긴 봤습니다.”
“흰 가면에 검은 후드티…….”
그의 말을 중얼거리며 똑같이 읊었다. 그 사람이 마인일 수도 있으니까.
“흰 가면에 검은 후드티 복장이었다고?”
“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도 마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욱 거물인 사람.
“정말 그 복장이 확실한가?”
“당연하죠. 방금 봤는걸요. 확실합니다.”
확실한 대답에 이용욱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도 강남 경매장에 가 봐서 그 복장을 한 남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가 꽤나 유명한 연금술사라는 것을.
“확실하지는 않다라……. 어디로 갔는지 아나?”
“제가 그 정도까지는 모르는지라…….”
“아쉽군.”
아쉽게도 그 남자가 간 곳은 모르는 듯하다.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기에 협회장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던전의 상태창을 열었다.
[던전]
이름 : 초록색의 터전
등급 : E
내용 : 초록색 몬스터가 모여 사는 정글. 야비한 놈들밖에 없어서 쉽게 토벌할 수 있으나, 웬만한 실력을 갖춘 게 아니라면 피하는 게 상책인 던전이다. 대부분이 무리를 갖춰 활동하기에 최소 5인 파티를 추천한다.
던전 브레이크 : 9시간
“9시간…….”
남은 시간은 9시간이 전부.
시간도 많았다.
‘지금 당장 쫓아갈까?’
충분히 쫓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남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자신의 손으로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그 뛰어난 힘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
“좋아.”
쫓아간다는 결정을 한 뒤에 발을 움직였다.
헌터 협회장인 그로서는 하얀 가면의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했다.
갑작스레 어디론가 이동한 것처럼 사라진 그 남자.
“근처다.”
발자국을 찾아 흔적을 따라갔다.
몇 분 전에 정확히 찍힌 발자국을 보며 거침없이 달려갔다.
그리고 흔적을 찾아 도착한 그곳에는…….
“……없나?”
그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 인기척이 느껴져서 다 찾은 줄만 알았는데.
“아쉽네.”
S급 헌터의 추적을 이리도 쉽게 따돌리다니.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S급 이상의 능력을 갖춘 건 사실이다.
“하얀 가면에 검은 후드티를 입은 남자. 누군지 정말 궁금하단 말이야.”
경매장에서 본 그가 아직도 생각난다.
힘으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것도 모자라, 어수선한 분위기를 한 번에 휘어잡는 말.
그런 실력은 재능이란 것 하나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 수 없이 연습한 노력과 경험.
“우리 협회에 들어왔으면 좋았을 것을. 아쉽군.”
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던전 게이트로 향했다.
헌터 협회의 왕으로서 클리어도 되지 않은 게이트를 놓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E급 던전이라 크게 어려울 것도 없고.
“같이 들어가지.”
“아, 넵!”
이용욱과 김하역은 던전 클리어를 위해 던전 게이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 * *
“엄마, 저 왔어요.”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밥 차려 줄까? 배 안 고파?”
“하하. 괜찮아요. 저 잠 좀 잘게요. 엄마도 빨리 주무세요. 벌써 12시예요.”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예상대로, 엄마는 바로 주무시지 않고 강수호가 올 때까지 기다린 듯했다.
“던전은 헌터 협회가 와서 괜찮을 거예요. 제가 대충 정리한 후라 곧 있으면 끝날 거고.”
“정말?”
제일 중요한 대답을 하니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하긴, 헌터 협회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길드보다 잘 안 오기로 유명하니까.
“먼저 주무세요. 저는 좀 씻고 잘게요.”
“그래. 고맙다, 우리 아들.”
간단히 인사를 마친 강수호는 곧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복면과 검은 후드티는 벗어 던진 지 오래.
“좀 씻어야겠지.”
두 손에는 아직 닦지 않은 초록색 피가 한껏 묻어 있었다.
옷을 다 벗고 시원한 물로 몸을 적신다. 머리가 식어 가는 것과 동시에 헌터 협회장의 얼굴을 상상해 냈다.
‘잘못하면 잡힐 뻔했지.’
S급 헌터. 빠르고 흔적도 어찌나 잘 찾아내던지, 차원 이동이 아니었으면 잡힐 뻔했다.
얼굴은 인상 좋은 할아버지인데, 뭔가 가지고 싶은 게 있다면 눈빛이 변해 버리는 헌터.
그것이 바로 이용욱이었다.
“푸하! 이제 좀 자 볼까…….”
잡생각을 떨쳐내고 물기에 젖은 몸을 닦았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거의 처음이라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다.
내일을 위해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연기하느라 한바탕 힘을 뺏으니 빠르게 잠이 들려던 그때.
‘발찌, 팔찌……. 발찌, 팔찌…….’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4t이 넘어가는 팔찌와 발찌를 다시 끼우기 시작했다.
분명 환청인데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