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9. 이런 PT는 원하지 않아!(3)
정말이지 이런 PT는 원하지 않았다.
배우는 것이 아닌, 사육당하는 기분.
“1km 달렸으면, 좀 쉬었다가 다시 물약 먹고.”
“그리고 다시 달려야지! 이것이 바로 뫼비우스 띠의 법칙!”
“…….”
800kg이라는 무게를 지니고 1km를 달린다.
시간과 상관없이 달리기를 마쳤으면, 그다음에는 5분간 휴식이다.
꿀꺽.
“크으. 이번에는 딸기 맛이네요.”
그래도 물약이 맛있으니 다행이다.
맛까지 없었더라면,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하하하! 프로틴 맛도 있는데 먹어 볼…….”
“아니요.”
프로틴 맛 물약을 권하자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무리 강해지고 싶더라도 프로틴 맛 물약은 선을 심하게 넘었다.
“아쉽네. 엄청 맛있는데.”
“스승님들 많이 드세요.”
할튼이 아쉬운 표정으로 프로틴 맛 물약을 들이켰다.
유일하게 물약을 사용하는 사람들. 모두 근육을 단련하기 위한 과정이란다.
“그러면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벌써 이곳에 온 지도 5시간이 지났다.
물약도 다 옮기고, 이제 씻고 좀 쉬려 할 때.
“음? 잠시만.”
“네?”
뭔가 느낌이 싸했다.
그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 차고 있던 팔찌와 발찌보다 거대한 크기의 것들이 튀어나온다.
‘하하하하.’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1km를 뛰면 지치는데, 정말 이것까지는…….
“이거 풀고, 이거 착용…….”
쾅!!
“커헉!”
고작 팔찌 하나였다.
오른쪽 팔에 찬 팔찌를 채우자마자 전보다 육중한 무게가 느껴졌다.
몇 kg이 더 늘어나는 듯한 느낌.
“아, 미안. 내가 잡았어야 했는데. 일단 또다시 무게를 바꾸는 이유는 훈련 목적도 있지만, 우리 정체가 밖으로 노출되면 안 되거든. 이번에는 확실히 다른 탐지 스킬로도 안 통하도록 만들었단다. 그리고 이건 무게도 오로지 자신한테만 느껴지거든.”
“이건 몇 kg인데요?”
“그거?”
말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마법 선생님처럼 알아보려고 할 수 있으니 잠금장치를 하겠다는 거.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 팔찌, 발찌당 250kg인가?”
“…….”
손목과 발목에 찬 수갑 하나당 약 250kg.
이걸 거의 평생을 메고 있어야 한다.
800kg이었을 때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더 힘들게 생겼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처음에야 힘들지, 나중에 가면 추억이 될 테니까!”
“알겠습니다. 오늘 잠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강해지려면 어쩔 수 없는 문제.
한숨을 잔뜩 내쉬고는 기어서 그들이 있는 곳을 빠져나갔다.
훈련의 일종이라며 그들은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도착했다.”
도착한 장소는 평범한 나무집.
끼이익.
기름칠 되어 있지 않은 문을 열자 몸 전체에 진득한 살기가 느껴졌다.
지금 당장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잔혹함.
“누구지?”
“저…….”
오줌이라도 지려 버릴 것 같았다.
분명히 잘 찾아온 것이 맞을 텐데 환영 인사가 너무 거칠었다.
바로 뒤에서 단검을 울대에 댄 채 물었다.
“음?”
다행히 오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깔끔하게 풀렸다. 오랜만에 이곳에 온 뉴비라 얼굴이 유명한 까닭이었다.
“뉴비? 아, 그래. 촌장이 말했었지.”
“다행이네요. 이제라도 기억해서. 기억 못 하셨으면 죽을 뻔했습니다.”
“하하하! 미안해. 그나저나, 나한테는 무슨 일이야? 아직 스승이 바뀌려면 한참은 멀었을 텐데.”
뒤를 돌아보니 처음 인상과는 다르게 아리따운 여성 한 분이 계셨다.
강수호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암살 계열 쪽 재능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지. 내가 예전에 암살 길드에서 유명한 놈들은 다 암살하고 다녔으니까. 지금은 그냥 평범한 암살자고.”
뛰어난 암살자를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혹시 탐색 스킬을 막는 스킬을 배울 수 있을까요?”
“아, 혹시 ‘정신 방벽’ 같은 스킬 말하는 거지?”
“네.”
이번에 가는 경매장. 몇 년 만에 나오는 최고급 물약이기에 온갖 대형 길드가 올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몸은 자신이 직접 지켜야 하는 법.
“흠, 잠시만…….”
“혹시 조금 힘들다면, 낮은 등급이라도 괜찮으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주 주말. 아무리 늦어도 금요일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
“자, 이거.”
“음? 이게 뭐예요?”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건네준 작은 CD.
처음에는 건네받은 CD가 뭔지도 몰랐지만…….
“네가 찾던 거야. 한번 만져 봐.”
“네.”
그녀의 말대로 곧바로 무지개색을 띤 CD를 잡자.
띠링!
-스킬, 절대정신 방벽(S급)을 전수받았습니다.
-상태창에서 전수받은 스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알림이 울리며 메시지가 떠 올랐다.
CD를 만졌을 뿐인데, 무려 S급 스킬을 획득할 수 있었다.
“어, 어어어…….”
당황한 티를 내자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중에 이 누나한테도 와야 한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S급 스킬을 아무렇지 않은 듯 내어줬다.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을 거다.
슈아아악!
손을 흔들며 차원 이동을 사용하니, 파란빛을 내뿜으며 지구로 돌아왔다.
* * *
“이젠 걷기도 힘드네.”
팔찌와 발찌가 각각 250kg이라 그런지 몸이 움직여지지도 않는다.
걷고 있었지만, 다리가 먼저 부서지지 않을지 걱정되는 상황.
“그래도 보상 하나는 끝내주니까……. 상태창.”
힘들긴 해도 그 뒤에는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이번에 얻은 보상을 확인했다.
[강수호]
레벨 : Lv. 4
체력 – 56 민첩 – 57 힘 – 56 마나 – 53 감각 – 55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트롤의 재생력(S급) : Lv. 1], [절대정신 방벽(S급) : Lv. 1]
-힘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체력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감각 스탯 1 상승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최상급 물약을 복용해도 더 이상의 스탯은 올라가지 않았다. 효과가 다 된 듯하다.
“기숙사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가 바로 자야겠네.”
벌써 일과가 끝났다.
내일 헌터 상점 주인과 함께 경매 장소로 가기 때문에 외박증을 끊기 위해 사감실로 향했다.
끼이익-
기름칠 된 문을 열고 사감 선생님께 다가가려 할 때.
퍽!
“아야.”
“으아악!”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부딪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쾅!!
“음?”
어깨에 부딪힌 그가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박았다.
바닥에 박힌 그를 자세히 보니 서울 아카데미의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놈이었다.
모를 수가 없는 놈.
“만년 2등, 한석유?”
“커, 커헉.”
그런 그가 자신의 어깨에 닿자마자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그의 행동.
“설마…….”
그 행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강해지긴 했나 보네.’
머리를 처박고 쓰러진 그를 보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예전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일단은 빨리 가야 하니까…….’
“어, 미안. 선생님, 저 외박증 좀 끊어 주실 수 있을까요?”
한석유에게 간단히 사과한 후에 곧바로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지금 당장 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
전교 1등 조시현에게 매년 밀린다지만, 무려 2등. 이론과 실습 모두 합친 결과물이기에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거에 좀 민감하거든?”
날아오는 주먹.
마법과 물리계를 동시에 사용해서 그런지 다양한 마법을 담고 날아오는 주먹.
예전 같았으면 다가올 주먹에 눈을 감고 두 손을 올렸겠지만.
‘왜 이렇게 느리냐…….’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굳이 손을 올릴 필요도 없이 옆으로 고개를 까딱거려 피해 냈다.
“어?!”
바람을 가르고 지나가는 주먹.
자신의 주먹을 피한 강수호가 신기하기만 하다.
‘도대체 어떻게…….’
한석유가 마법 계열을 가지고 있다지만, 물리 계열 재능도 있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힘 법사. 근접 전투에 유능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이다.
그런데 그런 힘 법사가 만년 꼴찌의 얼굴을 스치지도 못했다.
‘이런 젠장!!’
요새 1등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방금의 공격으로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이번엔 놓치지 않는다는 마인드로 다시 한번 주먹을 강수호의 얼굴에 내리꽂았다.
“내 어깨를 친 죄…….”
퍼억!
날아오는 주먹에 정확히 맞았다.
강수호의 인상이 구겨진 것만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그래! 아프지? 아플 거…….’
“끄아아악! 이게 무슨…….”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태평하게 맞은 얼굴을 털어내는 강수호.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이 다쳤다.
“뼈가…….”
하얀 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피가 흘러 사감실 바닥을 적신다.
“이놈들이 사감실 앞에서 싸움을……!”
놀란 사감 선생님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이곳에 있는 사감 선생님들도 며칠 전에 일어났던 일을 알기에 크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아, 실수예요. 봐 주실 거죠?”
“하하. 그럼! 외출증 끊어 달라고? 그렇고말고! 어서 갔다 와!”
괴물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괴물이 돼야 하는 법. 강수호는 괴물이 되는 걸 택했다.
지금껏 괴롭혀 오고 밟혀온 삶을 원치 않는다. 새처럼 높게 비상하다 못해 우주까지 도달할 거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토닥이는 사감 선생님.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인공지능 마법사에게 버틴 5분이란 시간. 그 안에서 2분이라도 버티면 최소 엘리트 학생 이상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강수호는 무려 5분이란 시간을 버텼다.
“어휴, 학생도 어서 들어가. 혼나기 전에.”
“크윽. 알겠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년 2등이기에 여기서 깽판도 칠 수 없는 노릇.
까득.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저 괴물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들을 이길 생각에 복수심만 불타 있었다.
한석유는 이를 갈며 손을 치료하기 위해 보건실로 향했다.
* * *
외출증을 받은 강수호는 오랜만에 밖에 나가게 돼서 신이 났다.
“금요일이 제일 좋단 말이야.”
일주일 중에서 제일 행복한 날인 금요일.
수업을 마친 뒤의 학생 대부분은 집으로 향한다.
기숙사에선 프리하게 즐길 수 없으니 기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에 엄마에게 보낸 황금 사과.
“하나 들고 오길 잘한 것 같네.”
몸이 안 좋아서 한 번 택배로 보내봤다.
택배비가 5,000원이나 해서 망설여졌지만…….
“어차피 돈 많이 벌 건데, 5,000원이 대수냐.”
이제는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10억. 그 정도를 벌 수 있는데 5,000원이 대수인가.
그렇게 내일 일을 생각하며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