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에게 절대자들의 선물함이 도착했다-1화 (1/225)

제1화

1. 나 빼고 다 고인 물(1)

지옥 같은 나날들. 아니, 지옥이란 단어도 부족한 세상.

매일 랜덤으로 던전이 나오고, 몬스터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

‘그 지옥에서 벗어났는데, 또 다른 지옥이 찾아왔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던전에 의해 죽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각성자가 나타나면서 세상은 안전해졌고, 헌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옥상 벤치에 앉은 강수호 또한 헌터를 바라보는 아카데미 학생. 그것도 명문 아카데미 고등학생 3학년이다.

문제는 고등학생 3학년이 1학년보다 실력이 없다는 것.

[강수호]

레벨 : Lv. 4

체력 – 19 민첩 – 17 힘 – 20 마나 – 16 감각 – 14

스탯 포인트 : 0

재능 : ?? ?? (???)

스킬 : 없음.

“도대체 이 재능은 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재능 창에는 5년 동안 변함없는 물음표가 떠 있었으니까.

“진짜 엿 같네…….”

차가운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높은 등급이라며 기대를 품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하지만 거기서 얻은 건 욕밖에 없었다.

“아프겠지.”

6층 정도의 옥상. 여기서 떨어지더라도 죽지 않을 거다. 뼈 몇 개 골절되는 게 고작일 터.

끼이익-

“야! 강수호!”

그때 마침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빠각!

“…….”

“선생님이 오래요.”

뒤통수에 휘둘러지는 손.

앳돼 보이는 소년의 행동이었다.

‘1학년인가…….’

그럼에도 강수호는 그저 옅게 미소만 띠며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형 혹시 부처 아니세요?”

“……하하.”

선배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진 지 오래.

1학년에게 노숙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하, 장난이죠. 빨리 오세요. 담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담임 선생님이 나를?”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부른다는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지금껏 한 번도 개인적으로 부른 적이 없었으니까.

“일단 알겠어.”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배님도 빨리 들어가시죠. 아직 봄바람이 차갑습니다.”

그는 가식적인 미소와 함께 옥상에서 내려간다. 내 손이 꽉 쥐어져 있는 것도 모른 채.

“1학년한테도 무시 받다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학교 전따도 이 정도 대우는 받지 않을 거다.

“인생이 쓰다, 써…….”

담임 선생님을 뵙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띠링!

옥상에서 내려가자 들리는 알림음.

이미 옥상을 떠났기에 강수호는 보지 못했지만, 물음표 하나가 서서히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강수호]

레벨 : Lv. 4

체력 – 19 민첩 – 17 힘 – 20 마나 – 16 감각 – 14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 ?? (???) - (봉인 해제 중.)

스킬 : 없음.

뭔가 일어날 걸 암시해 주고 있었다.

* * *

드르륵.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입학한 2년간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 온 담임 선생님.

“부르셨습니까?”

“흠흠, 그래. 소파에 앉거라.”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그의 검지가 푹신한 소파에 향해 있었다. 인사를 받아 줄 필요도 없이 이야기부터 하자는 뜻이다.

맞기 전에 얼른 소파에 착석했다.

“커피? 아니면 녹차?”

“괜찮습니다.”

“그래?”

지금껏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행동이다. 물은커녕 소금이라도 던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큰일이라도 났나 생각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이상 담임 선생님이 자신을 부를 이유는 없었으니까.

조르륵-

커피가 잔을 채우는 소리와 함께 담임선생이란 놈이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의 손에는 파일 하나가 들려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파일은 보통 학생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 간단히 정리해 놓은 저장창고니까.

그는 그 파일을 빠르게 열어 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1학년 성적이 아주 처참하네. 실기는 다 F, F, F, F…….”

“…….”

이어서 들려오는 ‘F’라는 단어.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2학년 때는 그나마 낫네.”

F만 있는 건 아니었다.

“D는 있잖아. 공부라도 잘해서 다행이지. 필기 성적은 다행히 B 이상이고.”

“…….”

실기에 D도 있었다. 난생처음 실습 시험에서 받아 본 D.

‘이걸 왜 부른 거지?’

점점 내려가는 고개.

시선은 담임 선생님의 발끝으로 향해 있었다. 성적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 곧 욕을 들을 차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우.”

1학년부터 2학년 성적까지 모두 읊은 그가 파일을 덮었다.

잔뜩 한숨을 내쉬며 강수호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헌터로서 재능도 없으면서 공부하러 아카데미에 온 건 아니잖아? 그럴 거면 공부나 하는 고등학교나 갈 것이지.’

강수호가 노력하는 학생이란 건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것도 뼈 빠지도록 열심히.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이다.

‘원래 인생이 그런 법이란다. 공부만 잘해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어.’

강자는 약자에게 짓밟힌다. 뱀이 용이 되어 큰소리친다는 말은 다 옛말이 되어 버렸다.

요즘에는 힘, 권력, 인맥이 있어야 성공한다.

“흠흠.”

“…….”

목을 가다듬었다. 지금 할 이야기는 강수호의 인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고민하던 담임 선생님이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게 뭔지 알지?”

“네, 1학년 때부터 2학년 때까지 실기 시험 성적이잖아요.”

“그래, 잘 알고 있구나. 후루룹.”

내용에 대한 인지는 모두 끝났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수호야, 아카데미에서는 원래 퇴학이란 게 없단다. 왜인 줄 알아? 강한 놈이 사고치고, 인맥 좋은 놈이 사고 치는 게 아카데미거든.”

“하지만 저도 노력을…….”

노력은 허리뼈 부서질 정도로 해 봤다. 의대생도 못 할 양의 공부.

죽도록 노력했지만, F급 각성자에게 한계가 존재한다. 모두가 말하는 그 잘난 재능의 벽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노력은 목을 졸라서라도, 채찍질해서라도 할 수 있는 게 노력이야. 하지만 재능, 그 재능을 우리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단다. 태어나서부터 정해지는 것이 바로 재능이니까.”

“……재능.”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

아카데미에서는 그 말이 개소리로 받아들여진다.

돈이면 몰라도, 노력하는 각성자는 좋은 환대를 받지 못한다. 좋게 바꿔서 말했지만,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두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러면? 뭘 그러면이야?”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두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담임 선생님은 법정에 선 판사처럼 시원하게 대답했다.

“퇴학이지.”

“…….”

강수호는 입이 쩍 벌어진 채 담임 선생님을 바라봤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퇴학이란 말에 눈동자가 흔들린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내며, 머리를 짚었다.

‘퇴학…….’

어떨 때는 던전의 짐꾼이 되었고, 어떨 때는 편의점 알바생이 되었다.

몇 년을 아르바이트하면서 등록금을 벌었다. 평범한 학교가 아니었기에 등록금은 일반 대학교보다 몇 배는 비쌌으니까.

‘서울에 올라와 노력해서 얻은 게 고작 퇴학…….’

책상에 놓인 파일. 자신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적힌 파일에 변명할 수도 없었다.

허무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제 나가 줘. 오늘 특히 할 일이 많거든. 우리 아카데미에서 첫 퇴학자가 나왔다는 걸 교장 선생님께 직접 보고해야 하니까.”

“…….”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담임을 바라봤다.

퇴학이란 제도는 아카데미에 없는 것과 같았다. 지금도 던전이 생겨나고 등급이 어떻든 헌터가 필요했으니까.

“왜 저를 퇴학시킨 거죠?”

가기 전 궁금함에 못 이겨 물었다.

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답이 들려왔다.

“길드와 협회 모두가 결정한 내용이야. 나도 어쩔 수 없어. 월급이나 받아먹고 사는 내가 아는 건 그거밖에 없단다. F급 헌터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고.”

“…….”

한심한 듯 쳐다보는 눈빛. 손을 휘휘 저으며 귀찮은 듯한 담임의 모습에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여기서 강수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뭐 어쩌려고? 능력도 없으면서. 빨리 가라.”

“네…….”

애초에 힘이 있었으면 퇴학도 당하지 않았을 거다.

멍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고.

“드디어 똥통 나갔네.”

닫힌 문을 향해 그가 비웃음을 날렸다.

* * *

“저 형 나간다며?”

“미친. 우리 아카데미에 최초로 퇴학자가 생기는 거야?”

“…….”

아무 말 없이 기숙사 짐을 챙긴다.

먼 곳에서 서울 아카데미까지 왔기에 기숙사는 필요가 아니라 필수였다.

“하아.”

짐은 가볍고 간단했다.

힘을 기르기 위해 큰맘 먹고 산 헬스 기구와 옷들. 교복과 신발을 간단히 챙기고 기숙사를 나왔다.

“어떻게 말하지…….”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어머니를 놓고 혼자 서울로 올라온 지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꼴이 이렇다.

거대한 박스를 든 채 한강 앞에 서 있었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 가장 빠른 방법이 아카데미였는데. 고작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헌터였는데.’

띠링!

그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알람.

[어마마마 : 오늘도 열심히 하고!! 파이팅!! ^^]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역시 어머니의 문자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전화할 용기는 없었다.

아픈 어머니를 놓고 온 불효자.

“일단 가자.”

고속버스부터 끊어야 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7시.

여기서 가만히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헌터가 되는 데 실패했더라도 다른 일들은 공부를 통해 메울 수 있는 법.

“너무 상심할 필요 없어!”

울상 짓는 얼굴에서 결의가 가득 찬 얼굴로 바뀌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이 닫히기 전에 도착해야 하기에 택시를 부르려던 그때.

띠링!

띠링!

“택시……?!”

미친 듯이 울리는 알람 소리.

휴대폰 알람 소리는 아니었다.

한참 주변을 둘러보며 확인하던 그때.

띠링!

[강수호]

레벨 : Lv. 4

체력 – 19 민첩 – 17 힘 – 20 마나 – 16 감각 – 14

스탯 포인트 : 0

재능 : 차원 이동(SSS급)

스킬 : 없음.

-모든 봉인이 풀렸습니다.

“어?”

허공에 떠오르는 상태창.

갑작스레 떠오르는 상태창에 놀라는 것도 잠시.

“……S, SSS급?”

재능 개화.

몇 년 만에 재능 개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놀람은 금세 사라졌다.

-재능, 차원 이동(SSS급)이 발동됩니다.

“어, 어? 내가 언제…….”

강수호가 뭔가 말하기도 전에.

슈아아악!!

파란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