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60화 (359/361)

360. 외전 역전의 제나 25

"권지현…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제나의 태도에서 악의가 느껴지지 않음을 깨닫고 일단 그녀의 악수에 응하긴 했지만.

권지현은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쪽만 원하면 내가 도와준다고…?'

일단, 맥락만 들어보면 대체적으로 어떤 말인지 이해는 간다.

'내 방송을 도와주시겠다는 건가…?'

그래서 이해가 안 갔다.

초면이다.

그녀에겐 아무런 이유도, 이익도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난데없이 자신의 방송을 도와주겠다는 건가?

권지현은 도무지 모르겠어서 그녀에게 조심히 의문을 표했다.

"그… 그런데… 죄송하지만… 저만 원한다면 도와주시겠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제 방송을 도와주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는 걸까요…? 아,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아니, 그거 맞아. 니가 남의 집 문 부술 기세로 두드리면서 내 BL망가 내놓으라 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성장할 생각이 없는 니 방송 키우는 거 도와주시겠다는 거. 맞아."

"아, 아, 그…."

권지현은 다시 또 그 행위가 언급되자 부끄러워하길 잠깐.

"…."

고민 뒤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런가요… 그러면 그… 말씀은 정말로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죄송해요…."

"오호~ 이유는?."

"그… 신경 써 주시는 건 정말로 감사하지만… 제 방송인 만큼, 제 힘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을 거니까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저 같은… 뭐라고 해야 하지… 아, 그 비유하자면… 3류 배우가 갑자기 1류 무대에 선다고 해서 1류 배우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권지현은 머뭇거리고 답답하게 굴면서도, 의외로 자신의 의지를 조리 있고 명료하게 정리해서 전달했다.

당장 얼마 전 삼피가 보라돌이의 방송에 출연하여, 그의 방송이 엄청난 수혜를 본 전례가 있었다.

삼피가 단 한 번 방송에 출연해 준 걸로 그 정도다.

그런 삼피의 입에서 나온 '방송을 키워주겠다'는 제안은, 방송인이라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권지현은 선뜻 거절했다.

마냥 자존심 때문에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 근거 있는 착실한 사고로.

최재훈과 이린은 제나와 달리 권지현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렇기에 제나의 돌발 행동이 당황스러웠지만, 방금 권지현의 반응을 보고는 차분하면서도 긍정적으로 상황을 관망하기로 판단했다.

제나 역시 권지현의 착실한 반응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아는 '권찐따'가 틀림없다는 사실에 새삼 만족스러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하, 줘도 못 먹는 거 봐라. 찌질이답구만."

"헤, 헤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근데, 하나 오해한 게 있네. 아, 아니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건가?"

"…넹?"

"방금 니 비유를 빌리자면, 나는 널 1류 무대에 세워주려는 게 아니야."

그녀는 특유의 비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가리켰다.

"널 1류 배우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지."

그렇게 썩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보여준 제나는 이내, 크흠 멋쩍게 헛기침을 했다.

"…아니, 썅. 저 찌질이가 말할 땐 못 느꼈는데, 말해 놓고 보니까 뒤지게 오그라드는 비유네."

"그러게. 그래도 방금 멋지긴 했어. 엊그제 본 바크만 명장면이랑 비슷했다."

"바크만? 그건 또 뭐야."

"경식이가 추천해준 애니메이숑."

"아, 쫌! 썅!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이 멋졌음, 이 지랄하고 있네. 내가 니, 그런 이상한 거 그만 보랬지!"

"애니메이션이 뭐 어때서?"

최재훈이 정말로 어이가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거리며 양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하… 안 되겠다. 김경식, 그 새끼를 죽여버리던가 해야지."

"야메로!!!"

권지현이 그런 둘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부럽다는 듯 바라봤다.

그 시선을 느긴 제나가 그녀를 째릿 노려봤다.

"뭐, 왜."

"아, 아! 아냐! 그,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그, 다른 게 아니라… 두 분은 실제로도 친하시구나 해서요…."

"…아니, 얘랑 친하다니까 묘하게 꼴받네…?"

"히도이용…."

"아, 씨! 그년의 일본어 진짜!"

권지현은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에 실없이 웃는 한편-

'부럽다….'

자신에게도 저렇게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권지현이 침울해지려는 기미가 보이자 제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쨌거나,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이해했지?"

"네, 네?"

"내가 하려는 건. 니 방송 띄워주는 게 아니라, 니 사람 만들어 주려는 거라고."

"사, 사람이요…?"

"너도, 지금 니 상태 답답하지? 아니라곤 하지 마. 잠깐 대화 나눈 나도, 니 답답함이 느껴져서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니까."

"…."

사실이었다.

권지현은 바뀌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돼서 스스로 당당히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눈앞의 숨컷과 제나처럼, 멋진 친구를 갖고 싶었다.

그걸 이루어 준다는 제나의 제안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방송을 키워준다는 말로 이해했을 때완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불안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왜…."

"응?"

"왜 절 그렇게… 신경 써, 주시는 거예요…?"

만약에 가능하다 해도, 필시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자신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어 주려는 걸까?

권지현에게 있어 타인이 자신에게 호의를 향해오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호의를 가장한 악의를 향해오는 일은 말이다.

타인의 악의에 절여진 권지현에게 있어, 악의보다 더욱 무서운 게 바로 호의였다.

그 호의는 화려한 독버섯처럼 그녀를 유혹하여 무방비하게 만든 뒤 더운 큰 상처를 남기곤 했다.

제나는 지금껏 권지현이 여지껏 만나본 사람 중 단연코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호의는, 권지현이 받아 본 호의 중 가장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뭘 거 같아."

"…네?"

꼬리에 꼬리를 늘고 물어지는 권지현의 상념을 제나가 끊었다.

"내가 왜 너한테 그렇게 신경 쓰는 것 같냐고."

"…예? 어, 으… 넹…?"

예상 못한 흐름에 권지현이 갈팡질팡했다.

"그, 글쎄용…?"

"말해 봐."

"네…?"

"생각해서 말해 보라고."

"…모르겠어요."

"억지로 짜내서라도 말해 봐."

이내 결심을 굳힌 권지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재, 재밌어서…?"

"응? 재밌어? 그러니까, 너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아, 아, 아뇨!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재밌다는 게 아니라…."

그녀가 한 번 더 결심을 다진 뒤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삼피 님한텐 이게 그… 재밌는 장난 같은 게 아닌가 싶어서…."

나는 절대로 당신의 의도가 순수할 거라 믿지 않는다.

만약 나를 갖고 놀려 한다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고.

생각만큼 재밌지도 않을 것이다.

권지현의 말에는 그런 의미가, 가시가 함유되어 있었다.

권지현은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호의를 향해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반응하곤 했다.

상처 입은 강아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짖고 보듯.

그녀 나름 대로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권지현은 제나를 밀어내기로.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기로 택한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그랬듯.

"…."

화가 난 걸까?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난 걸까?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 본다.

하지만, 그걸로 된 거다.

이거면 서로가 자잘한 생채기를 입지 않는 선에서 끝날 수 있다.

"놉."

"…네?"

"다른 거 말해 봐."

"…어, 어? 네? 다른 거라뇨…?"

"방금 그 거지 같은 대답 말고, 다른 거 떠올려 보라고."

"어, 아니 그…."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다.

자신 같은 게 거절했다는 사실에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다시 다가온다.

보통 이러면 지까짓 게 뭐라도 되는 줄 아냐며, 재미없다며 흥미를 잃곤 했는데.

처음 겪는 반응에 권지현의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다.

"그, 그럼… 부, 불쌍해서…인가용…?"

"놉, 이제부턴 그렇게 찌질한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좀 멀쩡한 쪽으로 생각해서 대답해 봐."

"…네?"

"이년이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거지? 가 아니라, 도대체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라고."

"아, 아니… 그! 그런 생각은-"

"아, 변명 필요 없으니까. 대답이나 해."

"…모, 모르겠어요…."

"몰라도 억지로 짜내라고 했잖아."

"하, 하지만… 이건 방금이랑은 다른…."

"아, 뻑! 답답해 뒤지겠네!"

"히익…! 그, 그러면… 바, 방송 열심히 하는데 못 크는 게 불쌍해서…?"

"뒷부분 다듬어서 다시."

"바, 방송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가엾- 아, 아니. 기특해서요!"

권지현이 마치 이모티콘 [>_<]같은 표정이 되어선 있는 힘껏 외쳤다.

그제야 제나가 만족스럽게 고갤 주억거렸다.

"후."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함을 한숨으로 털어냈다.

그리곤 씨익, 특유의 짓궂은 비웃음을 지으며 최재훈에게 말했다.

"야, 들었냐. 얘 지 입으로, 지가 기특하댄다."

"네, 네!?"

자기가 시켜 놓고 저렇게 놀리다니!

'너, 너무해….'

권지현이 안 보이는 귀를 축 늘어트리려던 찰나였다.

"왜, 멋지신 거 맞구만."

"…네?"

"저는 아까 그거, 문 쾅쾅 두드리면서- 어후… 저는 그거 사람들이 시켜도 못할걸요?"

최재훈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권지현에게 손을 건넸다.

"최재훈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숨컷.

자신을 대하는 그에게서 존중과 호의가 물씬 느껴졌다.

그에, 권지현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저 멋진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이유가.

자신이 방송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껴 줬기 때문이라-

'형식상 해 주신 말일 거야….'

사실이 아닌 걸 알지만 일단은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론 분명 뿌듯해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권지현이 있었다.

만약 게임이었다면, 그녀의 텅텅 비어 있는 특성 창에 새로운 항목이 하나 추가되었을 것이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방송인]

-삼피, 숨컷님 공인

"헤, 헤헤…."

게임에서 레벨업을 한 것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훨씬 큰 충만함에 기분이 좋아진 권지현이 헤실헤실 웃으며 최재훈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아, 그… 권지현입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당…."

그러자 미소지어주는 모습을 보며, 그 헤실거리는 미소가 더욱 밝아진다.

제나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 보-

'….'

퍽.

"악!"

-다 보니, 왜인지 꼴이 받아서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또 왜! 악!"

눈치 없이 이유를 물어보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대 치고 난 뒤에야, 다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자 그럼- 야, 찌질아."

"넵…!?"

"너 이거, BL망가 갖고 집에 돌아가서 뭐 하려 했어."

"느, 느, 느, 느-, 네!? 뭐, 뭘 하다뇨!?!? 사, 삼피 님! 제, 제께 아니라 그, 패, 팬분이 주신 거라니까요!?"

"응? 얜 또 왜 발작이야? 응? 아~"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져서 당황하는 권지현.

제나가 그녀를 보며 세상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저기요. ISK씨. 저는 이 BL 망가 갖고 어떤 해피 타임을 가질 거냐~ 물어본 게 아니라, 이 'BL망가 회수한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냐 물어본 거예요. 방금 종료한 방송. 어떻게 할 거냐고."

"네, 네!?"

제나가 키득거리며 팔꿈치로 최재훈을 툭하고 건드렸다.

"야, 봤지? 저렇게 겉으로 봤을 때 막 얌전해 보이고 소심해 보이는 년들일수록 까보면, 어? 아주 그냥 장난이 아니야. 그러니까, 쟤도 그렇고. 저, 편집자도 그렇고, 조심해."

"…넹? 무슨 말씀이신지?"

"아, 아무것도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저는 또 왜 갑자기 물고 늘어지시는지."

"으휴, 됐다. 됐고- 야, 찌질아. 일단 그, 방송이나 다시 켜 봐."

"…넹? 제, 제 방송이요? 제 방송은 왜용…?"

"왜긴 임마. 팬이 우연찮게 선물을 밑집으로 잘못 보내서 이, 개쩌는 삼피 님이랑 인연이 생겼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벤트가 일어났는데, 방송도 안 하고 그냥 날려 버리게?"

"개쩌는 숨컷 님이랑, 개쩌는 편집자 님도 있습니다."

"그런 데엔 굳이 안 끼워주셔도 됩니다."

"그렇대요."

"아, 그래서 말인데 너- 얼굴 깔 수 있냐?"

"네, 네!? 어, 얼굴을 까다…니요…?"

"뭐, 그럼 너 평생 그렇게 듀라한으로 방송할 생각이었어?"

"아, 아니… 그건 딱히 생각을 안 해 봤는데…."

방송인들이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는 대신 일러스트로 대체하는 이유엔 다양한 여러 사정이 있다.

권지현의 경우엔-

"…."

자신의 볼품없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였다.

그렇기에 귀여운 일러스트와 멋지고 강한 캐릭터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내세웠다.

"아, 아직은 마음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왜?"

"왜, 왜냐뇨… 당연히…."

권지현이 초지일관 미세하게 아래를 향하고 있던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얼굴을 숨기듯 말이다.

"못생겼으니까요…."

"…."

"…."

"…."

권지현의 반응에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꿈뻑였다.

"아니, 야."

이내, 제나가 기가 찬다며 실소를 터뜨렸다.

"못생겨 니가?"

"…저, 못생긴 거 아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 안 해 주셔도 돼요…."

"아니, 하… 얘는 진짜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

"ISK님?"

"네? 앗…! 네! 펴, 편집자님이라고 하셨었나요? 마, 말씀하세….."

"그, 초면에 이런 말씀 드리기 저어되지만…. ISK님의 외모는 그… 보편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이신 편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지셔도…."

"왜, 왜들 그러세요… 사람 비참해지게… 히이잉…."

권지현이 정말로 멋쩍고 서럽다며 쭈구려 앉아 자신의 얼굴을 무릎 사이로 숨겼다.

"아니…."

"하, 환장하겠네."

"허허."

그 모습에 세 사람은 각기의 방식으로 분통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게.

지금 권지현의 외모는 관리가 전혀 안 됐을뿐더러 간단한 화장도 되지 않은 소위 생얼 상태인 데다가, 커텐 같이 긴 앞머리에 얼굴에 반쯤 가려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 특유의 수더분한 매력은 다 가려지지 않고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어디 가서 매력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들었지 못생겼다는 소릴 들을 외모는 절대 아니었다.

그처럼.

현재 권지현은 따돌림이 만들어낸 기형적일 정도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기형적일 정도로 낮은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이 상처 입은 동물의 상처를 어떻게 치료해주고 경계를 풀 수 있을까.

제나와 이린이 이렇다 할 방책을 떠올리지 못해 난처해하고 있던 그때였다.

최재훈이 그녀의 앞에 쭈구려 앉아 나직이 말했다.

"그, 지현 씨…?"

흠칫.

인기척과 함꼐 가까운 거리에서 최재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쭈구리가 된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

그렇게, 생각보다 그와의 거리가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은신처를 들킨 동물처럼 한껏 위축되어선 답했다.

"…느, 네?"

최재훈은 그런 그녀를 겁먹은 동물 달래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나긋하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현 씨를 방금 만나서. 지현 씨께 어떤 사정이 있는지, 지현 씨께서 어떤 분이신지 자세히 몰라요. 그래서, 지현 씨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워지네요. 그래도, 지현 씨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감히 한마디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거기에 지극히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태도.

어느새 경계를 풀고 멀뚱멀뚱 눈을 꿈뻑이고 있는 권지현이 저도 모르게 고갤 끄덕였다.

최재훈이 그에 반응해 주듯 따라서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제 주변엔, 매력 있는 분들이 꽤 많아요."

"…네?"

"저기 있는 삼피, 제나도 그렇고. 저기 있는 편집자, 이린 씨도 그렇고. 얼마 전에 만난 방송인분들도 그렇고. 저희 반 친구인 경식이랑 신소하도 그렇고. 그 외에도, 저희 학교에서 엄청 방송이 잘 나갔었던 김민성이라는 애도 있고. 저희 알바하던 곳에, 한율이 형이라는 분도 있고. 아무튼, 저는, 매력적인 사람들을 꽤 많이 알고 있어요."

"…?"

맥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권지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매력적인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 제가 보기에, 지현 씨께선 충분히 매력적인 분이라는 거예요."

"…네?"

"그러니까, 본인을 너무 높은 기준에 맞추려 하시지 말고… 당당하진 못해도, 적어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시지 말고…. 예."

최재훈은 거기까지 말한 뒤, 멋쩍은 듯 쓰게 웃었다.

"어떻게.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드리려는 말씀이 잘 전달됐나 모르겠네요. 혹시,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네? 예? 아, 아뇨! 부, 불쾌하다뇨!"

열중해서 최재훈의 말을 경청하던 권지현이 화들짝 정신을 차리며 격하게 도리질쳤다.

그리곤 잠깐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재훈 씨…?"

"네?"

"그, 그러면 저도… 재훈 씨처럼…."

최재훈은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저, 저도… 재훈 씨처럼 될 수 있을까요…?"

최재훈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건 힘드실 거예요."

"…네?"

"워낙 제가 어나더 클래스로 매력적인 사람이라. 그래도, 노력하시면 저 삼피 정도는-"

"에라이-"

"-악!"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제나가 쭈구려 앉은 그를 발로 밀어 넘어트렸다.

"웬일로 좀 잘나간다 싶더니. 또, 또. 그년의 주둥이가. 하, 씨. 얘를 어쩌지? 그냥 성대 제거 수술을 받게 해 버릴까? 그러면 훨씬 좋아질 것 같은데?"

"하… 재훈 씨 제발… 방금 너무 멋지셨는데 도대체 왜…."

둘이 아주 잘 진행되던 영화가 '아슈발꿈' 엔딩이라도 난 듯 진절머리를 치며, 꼴사납게 옆으로 엎어져 나뒹구는 최재훈에게 침을 뱉듯이 말한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쿡쿡' 앙증맞은 웃음을 흘리는 권지현.

이내, 얼굴에 잔잔하지만 깊은 물결이 지나간 그녀가 최재훈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맞잡은 최재훈과 함께일어서, 그와 마주했다.

땅의 정령과 절친이라도 되는지 항상 이야기라도 나누듯 아래를 향해 있던 그녀의 고개가, 약간이지만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치켜뜬 눈으로 최재훈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재훈 씨가 제게 하시려는 말씀…."

"네?"

"…네!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그, 말씀 고, 고마워요… 아…!"

아직 손을 잡고 있던 걸 깨닫곤, 황급히 손을 내뺐다.

"헤헤…."

마냥 쑥스럽기 때문은 아닌 듯한 상기된 얼굴을 제나에게 향한다.

"삼피 님…?"

"응?"

그녀가 양손을 꽉 쥐며 씩씩하게 말했다.

"저, 주, 준비된 것 같아요!"

* * *

"언니 왜 이렇게 늦으시지…? 뭐 잘못된 거 아니겠지?"

ISK의 열혈팬인 속칭 '비싸레즈'.

그녀는 자신이 선물을 잘못된 주소로 보낸 탓에 ISK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그때, 그녀의 방송이 재개되었다는 알람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녀는 곧장 ISK의 방송에 접속했고-

"…어…어…? 어!?!?! 어!!!!!! 미친!!!!! 대박!!!!!!!!"

* * *

제목 : 아니 내BL망가내놔 사건 ㅈㄴ 골때리네 ㅋㅋ

내용 : 이게 말이나 되냐?

ㄴ : ??? 그게 먼데

ㄴ : [링크]

ㄴ : 머야 동영상 아무것도 안 보이고 채팅창만 보이는데?

ㄴ 글쓴이 : ㅇㅇ 걍 소리만 들리는 거 맞음

ㄴ : ? 근데 저게 뭐라고 그리 호들갑을 떨었누

ㄴ : 저거 전후상황이 ㅈㄴ 골때림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먼데

ㄴ : 쟤 팬이 선물 보냈는데 밑집으로 잘못보냄

ㄴ : 근데 그게 하필 BL 망가라서

ㄴ : 깜짝 놀라서 호겁지겁 밑으로 가놓고선 미션 왔다고 또 곧이곧대로 저 ㅈㄹ 한거 ㅋㅋ

ㄴ : ㅅㅂㅋㅋ

ㄴ : 야 근데 쟤가 주작한게 아니라는거 어케암?

ㄴ : ㄹㅇ 화면 걍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쟤가 진짜 밑집 문 두드리면서 저런 건지 아니면 자기 집에 친구 불러다놓고 자작쇼 한 건지 어케 알아

ㄴ : 그러게

ㄴ : 보니까 ㅈㄴ 하꼬같던데 걍 뜨려고 주작한 거 아님?

ㄴ 글쓴이 : ㄴㄴ ㅋㅋ 주작아님

ㄴ : 그걸 니가 어케암?

ㄴ 글쓴이 : 나 말고 삼피랑 숨컷이 그렇다함 ㅇㅇ;

ㄴ : ???

ㄴ : 갑자기 걔네 둘 얘기가 왜 나오누

ㄴ :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 사람들은 유명인이 한 말이라면 무조건 신봉하게 되는 경향이 있으니 조심하라더라 ㅇㅇ 세종대왕님이 그랬음

ㄴ : 세종대왕님 말씀이면 ㅇㅈ이지

ㄴ 글쓴이 : 아니 ㅄ들아 ㅋㅋ 진짜임

ㄴ 글쓴이 : 그 밑집에서 나온 게 걔네 둘이거든

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아니 ㅅㅂ ㅋㅋ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ㄴ : 네, 말이 되는 소리 해 드렸습니다

ㄴ : 아니 ㄹㅇ이라고?

ㄴ 글쓴이 : 숨컷 채널 가보셈 ㅇㅇ 저 영상 이후에 방송 킨 거 편집본 올라왔으니

ㄴ : 아니 잠만 ㅅㅂ 숨컷이랑 삼피 둘이 주말에 한 집에 있던 거임?

ㄴ : ㅗㅜㅑ;;

ㄴ : 편집자 집에 방송 상의하러 간 거래 ㅄ들아

ㄴ : 민짜 꼬꼬마들 가지고 어후 ㅋㅋ

ㄴ : 아니 근데 ㄹㅇ 저게 확률적으로 가능한 거임?

ㄴ : 확률적으론 안 될 건 없지 저거 같은 경우엔 아무리 확률이 낮아도 0%은 아니니까

ㄴ : 이과는 짜져 있어바 ㅄ아

ㄴ : 당황스럽네

ㄴ : 아니 근데 ㄹㅇ; 너무 아다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긴 함

ㄴ : ㄹㅇ ㅋㅋ 팬이 방송을 잘못 보냈는데 그게 하필 BL망가고, 그날 하필 밑집에 삼피랑 숨컷이 모여 있었다?

ㄴ : 주작 냄새 씨게 나는데요

ㄴ : 근데 숨컷이랑 삼피가 뭐가 아쉬워서 주작을 함?

ㄴ : ㄹㅇ 걔네 지금 걍 하느님보다 잘나가는데 굳이? 저렇게?

ㄴ : 친구야 미안한데 하느님은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분이셔

ㄴ : 나도 니 생각부터 훨씬 위대한 분이시니까 좀 닥쳐바

ㄴ : 숨컷이랑 삼피는 아쉬울게 없지만 그 ICK인지 뭔지 하꼬는 아쉬울 게 있겠지 ㅇㅇ;

ㄴ : 그니까 니 말은 걔가 주작하려고 삼피랑 숨컷 섭외했다고? ㅋㅋ

ㄴ : ㅋㅋ;;

ㄴ : 말 안 되긴 하네 ㅇㅇ;

ㄴ : 야 그러면 ㅅㅂ ISK 쟤 그럼 저거 덕분에 숨컷이랑 삼피랑 합방한 거임? 와 ㅅㅂ 운 레전드네

ㄴ : ㄹㅇ;; 지금 저 둘 섭외하고 싶어도 못하는 대기업 미튜버만 한트럭인디

ㄴ : 그래서 저때 저거 방송 어케 댔었음?

ㄴ : 어케 대긴 ㅅㅂ ㅋㅋ 난리났었지 저 하꼬 시청자 최대 시청자 기록이 200이라는데 1만 그냥 넘김 ㅋㅋ

ㄴ : 어제 저 방송을 못 본 새끼가 있다고?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왜 살아있냐 ㄹㅇ ㅋㅋ 인생100% 손해네

ㄴ : ㄹㅇ ㅋㅋ BL망가 보따리 언박싱 레전즈였는데ㅋㅋㅋㅋㅋㅋ

ㄴ : 아 십 ㅋㅋ 숨컷색 벌칙걸려서 BL망가 오열하면서 낭독하는거 ㄹㅇ ㅋㅋ

ㄴ : [링크]

ㄴ : 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아니 ^^ㅣ발 ㅋㅋㅋㅋㅋㅋ 개골때리네

ㄴ : 아니 ^^ㅣ발들아 저 좋은걸 왜 니들끼리만 보냐고

ㄴ : 아 ㅋㅋ 그러게 누가 주말이라고 기어나가서 놀래?

ㄴ : ㄹㅇ ㅋㅋ 기회는 우리처럼 인방에 인생 꼴아박은 사람들한테나 오는 거야 ^^

ㄴ : 니들은 평생 그렇게 현생이나 살면서 열폭이나 해 ^^

ㄴ : 크윽...

ㄴ : 분.하.다!

ㄴ : 야 근데 ㅅㅂ ㅋㅋ 이 ISK란 애 듀라한이네 ㅋㅋ

ㄴ : ㅇㅇ 근데 이젠 아님

ㄴ : 먼 소리야 그게

ㄴ : ㅁㅊ 혹시 영상에 나오는 저 삼피 말고 다른 여자애가 걔임?

ㄴ : ㅇㅇ 이제 권지현이라는 닉으로 활동한다던데?

ㄴ : 와 ㅅㅂ; 저게 쌩얼임?

제목 : 아 권지현 얘 ㅋㅋ

내용 : 컨셉이 아니라 ㄹㅇ 찐찐 같아서 ㅈㄴ 기엽네

ㄴ : ㄹㅇㅋㅋ 얘 어제 말할 때마다 혼모노 겜창인 거 티나는데 ㅇㅇ;

ㄴ : 가짜들은 못 내는 진품명품의 바이브가 느껴지더라 ㄹㅇ;; 쌉호감

ㄴ : 어제 삼피숨컷이랑 합방하는데도 케미 오지던데 ㅋㅋ

ㄴ : ㄹㅇ ㅋㅋ 샌드백 포지션 ㅆㅅㅌㅊ

ㄴ : 셋이 좀 자주 방송해줬으면 좋겠네 ㅇㅇ;

제목 : 야 ㅅㅂ 니들 이거 들음?

내용 : 최재훈이랑 삼피 크루 만든다던데? ㄷㄷ

ㄴ : 와 ㄷㄷ 난리 나겠누

ㄴ : ㄹㅇ; 빨대 한 번 꽂아보려는 새기들 개떼처럼 몰려들듯

ㄴ 글쓴이 : 더 놀라운 건 ㅋㅋ 첫 멤버가 어제 권지현 걔란다

ㄴ : 머라고요

ㄴ : 아니 ㅋㅋ 실화누?

ㄴ : 와 ㄷㄷ 이정도면 ㄹㅇ 그냥 인생역전 수준인데?

ㄴ : 그러게 ㄷㄷ

제목 : 속보) 최재훈 삼피 자퇴 결정

내용 : 프로 입단 테스트 제의 받고

방송도 잘 나가서 가능성 느끼고 집중하려고 조만간 자퇴할 예정이라네 ㄷㄷ

ㄴ : ㅁㅊ 방송이랑 프로게이머 하려고 자퇴? 걔네 고2아님? 그걸 걔네 부모님이 허락함?

ㄴ : 숨컷이랑 삼핀데? ㅋ

ㄴ : 아 ㅋ; 허락하겠네

ㄴ : 자식농사 지으려고 밭 갈았는데 그냥 유전이 터져버렸누 ㄷㄷ

ㄴ : ㅠㅠ 우리집은 부모님 복장이 터졋는데

ㄴ : 스플뎀자제하세요

ㄴ : 근데 삼피도 입단 테스트 제의 받음?

ㄴ : 걔 며칠전에 숨컷이랑 1위 쟁탈전 하는거 보고 프로 구단들 다 눈돌아갔다더라 ㅇㅇ;

ㄴ : 아 그거 ㅋㅋ ㄹㅇ;; 오지긴 하더라

ㄴ : 아니 걔네 둘 도대체 머임? 무슨 같이 게임 잡힌 프로들이랑 랭커들 응애아가처럼 갖고놀면서 지들끼리 1:1을 하더만

ㄴ : 지금 외국팀에서도 걔네 둘 데려가려고 난리라던데? ㅋㅋㅋㅋ

ㄴ : 국뽕TV) 전세계 사람들이 대한민국 고등학생에게 열광하는 이유!?

ㄴ : 아니 저게 국뽕이 아니라 ㄹㅇ이네;;

ㄴ : 근데 걔네 굳이 프로 할 필요가 있나?

ㄴ : ㄹㅇ 지금 방송 성장세 보면 조만간 프로 데뷔 안 해도 프로 영향력 뛰어넘을 것 같은데?

ㄴ : 하 ㅅㅂ 어쨌든 숨컷이랑 삼피 이제야 좀 방송 오래 하겠네

ㄴ : ㄹㅇ;; 격일 4시간씩 찔끔하는거 감질나서 뒤지는줄 알았음

ㄴ : 오 야 CCC크루 첫 합방 일자 정해졌다 ㄱㄱ

권지현과의 만남 그리고 크루 결성.

최재훈과 제나는 권지현과 함께 본격적으로 활발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CCC크루 대망의 첫 공식 활동.

"땡그리 여러분 안녕하심까! 김이응, 인사드림다! 오늘은 말씀드렸다시피 특별 게스트 분들을 모시고 방송을 진행할 예정임다! 그래서 도대체 그 특별 게스트가 도대체 누구냐고요? 이렇게 전 구워 놓고 애매한 게스트면 용서 모태, 라구요? 후후~ 여러분. 깜짝 놀랄 준비나 하시는 검다! 드디어 공개합니다. 특별 게스트의 정체는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짠!"

다름 아닌 김희은과의 합방이었다.

그녀의 카메라가 돌아가며 최재훈, 제나, 권지현 세 명을 담았다.

"요즘 제일 핫한 CCC크루의 세 분임다~~~와~~~ 박수~~~ 자 그러면 먼저, 삼피 님!"

"헤이."

제나가 김희은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퍼즐이 완성되기까지 단 몇 조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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