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57화 (356/361)

357. 외전 역전의 제나 22

팬들에게 '영고라인' 혹은 '콩'라인이라 조롱받지만, 그 조롱은 일종의 찬사이기도 했다.

그 조롱들은 하나같이 '2위 팀'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니.

1위는 찬탈에는 항상 실패하나, 업계에서 논외 취급을 받는 최강자인 TC1을 상대로 치열한 경기를 보여주는 LKL의 정통 강자.

TC1다음가는 강팀이자 인기팀인 TEAM BAY.

지금, 그 TEAM BAY 숙소의 분위기가 느슨해졌다.

연습을 비롯한 공식 일정이 종료되고 자유시간이 찾아옴으로써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렸던 연습실은 금세 한산해졌다.

연습이 끝나면 연습실은 그저 사양 좋은 설비가 구비된 유사 PC방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에겐 공식 일정의 긴장감이 남아있어 답답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도망치듯 연습실을 떠났다.

그렇게, TEAM BAY의 주전 미드 라이너인 '매니아' 권홍수만이 넓은 연습실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에겐 공식 일정을 진행할 때의 긴장과 집중을 유지하며 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최근, 그는 '부캐'로 솔로 랭크 게임에서 '즐겜'을 하던 와중 한 플레이어와 맞닥뜨렸다.

특이하게도 현재 메타에서 암살자 캐릭터를 운용하는 플레이어였다.

'뭐, 솔랭이니까.'

하지만 솔로 랭크 게임이었기에, 권홍수는 그저 솔랭의 많고 많은 괴짜 중 하나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해당 게임이 끝난 이후, 권홍수는 더 이상 그 플레이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못했다.

해당 게임에서 패배했다.

프로인 그에게 있어 랭크 게임의 승패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패배에 자신의 지분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아가 그저 지분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주주, 패배의 원인이라면?

문제는 아주 커진다.

해당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은 요소는 명백히 '미드 차이'였다.

물론, 권홍수는 '즐겜'에 임하는 가벼운 마음가짐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변명이 되어주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패배였다.

심지어 상대방은 '암살자'였고 자신은 '메이지'였다.

즐겜이었다고 자신에게 변명의 여지를 주기엔, 상대방이 전략적으로 훨씬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홍수이 납득할 수 없는 부분.

도대체 자신이 왜 패배했는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 진 이유가 실수 혹은 방심이었다면 그 원인을 알아야했다.

자신의 플레이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로 작용했는지.

상대방의 플레이에서 어떤 부분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

그런데, 그는 해당 게임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는 곧, 패배의 원인이 실수 혹은 방심이 아닌 명백한 실력차이임을 방증했다.

변명의 여지가 하나 있긴 했다.

바로, 상대방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해당 플레이어의 플레이가 너무 수준이 높아서 이해를 하지 못한 게 아니다.

너무 특이하고 생소하여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권홍수는 기꺼이 그렇게 판단하기로 하고, 자신의 판단을 증명하기 위 해당 플레이어, 'SOOMCUT'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SOOMCUT이 승률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높으며, 그런 일련의 이유로 최근 들어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플레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숨…컷?"

갈수록 숨컷을 향한 권홍수의 관심은 커졌다.

그렇게 숨컷에게 몰두하고 적잖은 시간이 흘러,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숨컷의 플레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너무 특이하고 생소해서라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숨컷의 플레이를 거듭 분석함으로써 특이함과 생소함이라는 안개를 걷어내자 보이는 건, 그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높은 봉우리였다.

즉.

자신이 숨컷의 플레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그의 수준이 너무 높았던 탓이었다.

순수하고도 절대적인 수준차이.

'그럴 리가.'

권홍수는 처음엔 부정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재 전세계 프로씬을 통틀어도 자신에게 그 정도의 격차를 느끼게 하는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다른 세계나, 미래에서 오기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하지만 결국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컷.

이 정체불명의 플레이어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위험성을.

그는 즉시 감독과 선수들에게 요주의 인물에 대해 보고했다.

"아, 숨컷? 어디서 들어봤는데…."

"뭔가 게임 졸라 특이하게 한다 싶긴 했는데. 니가 그렇게 느낄 정도였어?"

"아니,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그니까 야. 무슨 말 들어보면, 미래에서 롤의 신이 타임머신 타고 오기라도 한 줄 알겠다."

그들은 처음엔 믿지 못했으나 진지한 권홍수의 모습을 보고 태도를 달리했다.

"확실히… 걔 게임하는 게 심상치 않긴 했어."

"나도 만나봤는데, 장난 아니긴 하더라."

그들 역시 짚이는 게 있었던 것이다.

"흠…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감독 한성진이 물었다.

"쓰… 아니, 저는 아직도 긴가민가하긴 한데. 홍수가 며칠 동안 분석하면서 그렇게 느꼈다면 맞지 않을까요?"

불분명한 대답들

한성진이 질문 대상을 '너희'에서 콕 찝어 '너'로 바꿨다.

TEAM BAY의 정글러인 정담준.

정글러는 미드와 가장 밀접한 포지션이었다.

그렇기에, 미드 라이너와는 다른 객관적 관점에서 미드 라이너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사실, 저도 얘랑 관련해서 인상적인 경험이 하나 있긴 해요."

"말해 봐."

"얘가 미드고, 저는 정글. 같은 팀으로 잡혔던 게임인데. 극초반에, 게임이 크게 꼬여서 손해를 엄청 보고 시작했었거든요? 거의 뭐, 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애들 뭐 미드 열자는 소리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얘가, 자기가 오더할 테니 자기 믿고 5분만 더 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 팀원들이 한 번 믿고 해 보자고 했죠."

"그래서?"

"걔 이상한 오더 긴가민가하면서 억지로 몇 번 따랐더니, 어느새 승리 창 떠 있더라고요?"

정담준이 기억을 되짚더니 쓰게 웃었다.

"홍수 말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걔 오더가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개 오지는 거였던 것 같기도 해요. 무슨, 단순한 예지 수준을 넘어서. 상대 팀을 멱살 끌고 와서 자신의 예지대로 행동하게 하는 수준이랄까?"

"…그 게임, 리플레이 기록 남아있어?"

정담준의 해설을 곁들여 리플레이를 관전하는 TEAM BAY의 일원들은 언젠가부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대회 경기에서 적팀에 이런 놈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선수로든, 감독이로든.

"한 번, 꼭 만나보긴 해야겠는데."

감독이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 플레이어를 데려와서 검증해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만약 검증한바 지금 자신들이 느낀 게 사실이라면-

'놓치면… 큰일 난다.'

TEAM BAY는 즉시 팀 차원에서 숨컷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정체가 워낙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에 연락을 취할 수단이, 접점을 가질 방법이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취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게임 안에서 연락을 취하는 것뿐이었는데-

"제 친구추가도 안 받던데요."

"와, 아니 니 친추를 안 받는다고?"

"이야, BAY MANIA의 친추를 안 받아?"

"이 정도로 비싸게 구니까, 오히려 더 믿음이 가는데?"

"이게 그 프리미엄인가 뭐시기냐?"

"한국인들은 쓸데없이 비쌀수록 환장한다던데 사실이었구만."

"이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우리 민족의 얼을 느낄 줄이야…."

TEAM BAY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권홍수의 연락도.

TEAM BAY의 감독인 한성진의 연락도 받지 않는다.

한성진에게 불길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숨컷은 이미 다른 팀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가 아닐까?

어쩌면 지금 나는 병신같이 뒷북이나 치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인 LKL의 2위팀 TEAM BAY가 단 한 명의 플레이어 때문에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것은.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S+급 선수를 영입하려 해도 이 정돈 아닐 터였는데-

TEAM BAY는 처음으로 철저한 을의 입장에 서게 됐다.

그렇게, TEAM BAY의 숙소에는 목에 자그마한 잔가시가 걸린 듯 불편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김없이 휴일은 찾아왔다.

현재 인터넷 방송계와 미튜브를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삼피 열풍.

그 중심에 있는 이들은 그녀가 게임 방송인이니 만큼, 응당 게이머들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 남성 게이머들.

현재, 대한민국 대부분의 남성 게이머들은 삼피에게 열광하고 있었다.

TEAM BAY의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시간이 되자 숙소의 거대한 모니터 앞에 모여, 오늘 삼피가 출연하는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궁금한데. 저 멤버에 저, 최재훈이란 놈 나온 거면. 삼피랑 친해서 섭외 받은 거겠지?"

"그렇겠지, 쟤가 저기에 낄 끕은 아니니까."

"아니면 삼피가 꽂아준 걸 수도 있고."

"쟤가 삼피랑 그렇게 친해?"

"들어 보니까, 삼피가 학교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던데?"

"내가 인싸그램 DM 보내고, 친추 걸고, 댓글 달고, 후원하고, 드래곤볼에 소원 빌어 보고. 할 수 있는 지랄 다 해 봐도 아무런 반응도 안 해 주던데… 누구는 시발 같은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야, 쟤 와꾸 보면 같은 학교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게 억울해 하지 마."

"고맙다, 이제 억울한 대신 부럽고 빡이 치는구나."

"아, 시발! 부러워 할 게 뭐 있어! 게임은 우리가 더 잘하는데!"

"진심이냐? 아니면 우리 비참하게 하려고 작정한 거냐?"

"아니 근데, 일리 있긴 해. 쟤 뭐, 프로 준비한다며. 그런데 계속 죽 쑤고 있고. 그러니까, 쟤 입장에서는 우리가 부러울 거야. 응."

"야 근데, 삼피만 아니라 저 나머지 세 명도 쟤만 보는데?"

"나 여자들 저런 표정 처음 봐."

"나 궁금해서 그런데, 저 사람들 쟤 얼굴 보면서 왜 웃고 있는 거야? 재가 뭐 재밌는 말 했나?"

"얼굴이 재밌나보지, 시발."

"재밌기는 우리 얼굴이 더 재밌는데…?"

"우리 얼굴은 재밌는 게 아니라 웃긴 거고…."

"…시발, 술 땡기네. 누가 술 좀 가져와 봐."

"뭐? 쟤 아직 프로가 못 된 게, 스카웃들이 아직 못 봐서라고? 니들 어떻게 생각하냐?"

"쓰… 쟤 닉네임이 치킨킹치킹이었나?"

"홍수야, 쟤 만나 본 적 있냐? 어떠냐?"

"그 일단… 나이 치곤 잘하는 편이긴 한데… 음…."

“나도 만나본 적 있는데, 좀 애매하긴 하더라.”

"쟤 사정 아니까 뭐, 되도록이면 좋은 말 해 주고 싶긴 한데. 음… 역시 힘들어 보이긴 해?"

"아이고야… 한유성 저 새끼랑 미드빵을 한다고?"

"이거 큰일 났네, 사람들 보는 앞에서 밑천 다 털리게 생겼다 쟤."

"아니 뭐, 한유성 쟤도 뭐 생각이 있으면 적당히 봐주면서 하겠지."

"…아니, 그… 없나? 생각이?"

"어우야… 그냥 개 작살을 내 놨네."

"아니, 저거 분위기 어쩔 거야 한유성 미친놈 저거."

"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거냐?"

"얘들아… 사실 난 좀 통쾌하긴 하다…."

"저 새끼 같은 생각으로 한 거구만."

"아이고 재훈아…."

"쟤, 저거 뭐 하는 거야."

"아니 그냥!!! 미드빵 그만 해 임마!!!"

"아니, 저 픽은 또 뭐야!? 뭔 암살자를 쳐 골랐어!!!"

"아이고마, 나는 못 보겠-…."

그렇게.

TEAM BAY의 선수들이 잔잔한 걸 넘어서 칙칙하기까지 한, 아무런 자극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때였다.

"…-어?"

"어…?"

"아니, 저거 뭐냐…?"

그들의 일상이 예고도 없이 찾아온 엄청난 자극에 비일상으로 개변했다.

그들은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랐다.

그만큼, 지금 자신의 눈앞에 일어난 사건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저거. 게임하는 거. 그거 아니냐?"

실로 모호한 말이었으나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홍수야, 최재훈 쟤. 그거 아니냐?"

모두의 시선이 권홍수에게 향했다.

화면에 고정된 시선.

쩍 벌어진 입.

넋이 나간 듯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맞는 것 같은데?"

어려운 집안 형편을 타파하고자 프로를 희망하지만 재능이 없어 고전하는 고등학생 플레이어.

그런 그의 정체는-

"오메…."

상황을 이해한 그들은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잠시 뒤.

"상상도 못한 정체."

누군가가 양손으로 각기 'ㄴ'과 'ㄱ'모양을 만들었다.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면 [ㄴㅇㄱ]그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은 그 동작을 기점으로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야, 야! 감독님 어디 계시냐!?"

"사무실 계실 것 같은데!?"

"와, 씨발 미친! 이거 뭐냐!? 실화냐!?"

"쟤가 진짜 걔라고!?"

주말의 칙칙한 일상에 절여져 흐느적거리던 선수들은 더 이상 없었다.

그들은 한껏 고조되어 난리 법석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사건 현장의 목격자처럼.

혹은, 범인을 발견한 형사들처럼.

어쩌면, '프로게이머'를 만난 팬처럼.

며칠 동안 그들의 목에 박혀 계속 불편하게 만들었던 가시가 겨우 빠졌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그 하나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숨컷.

마침내 그를 찾아냈다.

* * *

"오, 뭐야!? 뭐야!? 재훈이가 이긴 거 맞아!?"

"와아아~~~대박!!! 프로를 이기다니, 대박임다!!!"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내 동생 최재훈~"

-재훈이가 이긴 거 맞죠?

-와 재훈이 프로 이긴 거야? 대박 ㄷㄷㄷ

-어제 별자리 보는데 유성이 떨어지던데 이걸 암시하는 거였나...

-별자리랑 묫자리를 동시에 봤네 ㄷㄷ

-유성아 CTB 미드자리 재훈이한테 넘기고 은퇴하자 ㅇㅇ-아니 근데 ㅅㅂ 암살자로 한유성 메이지를 이겼다고?

-아니... 이걸 진짜 이기네... 끽해봐야 잘 버티는 정도 기대했는데 -이거 농담이 아니라 이 정도면 프로 데뷔 쌉가능 아님?

대부분의 관전자가 최재훈이 프로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경기의 '결과'에 열광했다.

"아니… 뭐지?"

"방금 뭐, 어떻게 된 거야?"

-???????

-머, 머선일이고?

-방금 그 각이 어떻게 나오는거임?

-방금 그거 왜 죽은 거임?

-아니 씨발 나지금 무서워 죽겠어 어제 사온 계란들 다 노른자가 두개야

그리고, 한유성의 양 옆에 앉아있던 동료와 레이니를 비롯한 실력자들은, 경기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은 걸 알았기에, 방금 전의 경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마추어인 최재훈의 암살자와, 프로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인 한유성의 메이지.

현 시대의 레오레를 관통하는 지식과 이론, 통념에 의하면 한유성이 패배하는 경우의 수가 전무한 구도였다.

그런 구도에서-

어째서 라인전의 양상이 그렇게 되었는지.

어째서 딜교환의 형태가 거듭 그렇게 되었는지.

어째서 한유성이 결국 패배한 건지.

게임의 승부를 이루는 요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해되길 거부했다.

그처럼 현재 최재훈이 플레이하는 암살자의 경지는, 그 지식이 넘어온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원시적인 수준을 가진 이 시대의 플레이어들이 보기에 충격을 넘어선 불가해의 영역에 달해 있었다.

'아니 그런데, 메이지 캐릭터로는 왜 이렇게 못하겠지? 근접 캐릭터랑 원거리 캐릭터 차이인가? 쓰… 아직 복잡하네. 어쨌거나-'

해냈다.

자신의 암살자가, 최상위권 플레이어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 아니지.'

레오레는 어디까지나 팀게임 게임.

팀 게임에서 그 가치를 증명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최재훈은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을 진정시켜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금 최정상급 플레이어를 상대한 경험이 접착제가 되어, 머릿속에서 불안정하게 흩어져 있었던 이론과 깨달음들을 이어 붙여 형태를 완성시켰다.

그게 최재훈에게 꺾이지 않을 확신을 주었다.

그는 그런 확신이 묻어나오는 모습으로 한유성에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역시, 다르네요. 덕분에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바로 다음 게임 가시죠! 이번엔 랭크 게임으로, 5:5 갑시다!"

게임이 끝난 이후로 줄곧 굳어 있었던 한유성이 흠칫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넋이 나간 상태 그대로 굳어 있었던 그의 안색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잠깐 동안 떨리는 눈동자로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최재훈에게 말했다.

"그, 재훈 씨? 지금 저희 1:1이니까, 한 판 더 해서 승부 봐야 하지 않나요?"

본래 라인전 능력 평가였던 미드빵의 목적이 어느새, '승부'로 변질되었다.

얼핏 비굴하다 느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정론이라면 정론이었기에, 최재훈은 별다른 의문 없이 그의 제안에 응했다.

방금 얻은 이론과 깨달음을 검토할 좋은 기회이기도 했으니.

그렇게 시작된 3차전에서, 한유성은 여지껏 가장 철저하게 임했다.

캐릭터와, 룬, 특성 등의 구성을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암살자를 상대하는 데에 맞춰 개량한 것이다.

소위, 최재훈의 카운터를 쳤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와!!!! 재훈이가 또 이겼다!!!! 맞지? 맞지? 재훈이가 이긴 거!"

"맞슴다!!! 우리 재훈이가 이겼슴다!!!"

"크~ 이거 완전 끝장을 내 버렸구만! 역시 내 동생!"

도리어 최재훈에게 증명할 기회를 한 번 더 제공하여, 그를 더욱 빛내줄 뿐이었다.

"…오케이, 됐습니다. 이제 그러면 랭크 게임 가죠."

그렇게 최재훈은 스스로를 빛내고-

"…한 판 더."

빛내고-

"마지막으로… 한 판만 더…."

또 빛냈다.

지금 방송을 보고 있는 무수히 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

무려, 한유성- '스타폴'이라는 거대한 프로게이머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이런 최재훈 몰라보고 영입 제의 안 한 흑우팀 없제!? 이런 최재훈 몰라보고 영입 제의 안 한 흑우팀 없제!? 이런 최재훈 몰라보고 영입 제의 안 한 흑우팀 없제!?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최재훈 그는 신인가?

삼피를 비롯한 거대한 방송인들을 잊혀지게 만들 정도로-스스로를 찬란하게 빛냈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은 매료되었다.

심지어는 그의 빛나는 자신감과 사람들의 반응에 감화되어 레오레에 대해 모르는 이들조차.

어느새 방송은 보라돌이의 방송도, 한유성의 방송도, 삼피의 방송도 아닌 최재훈의 방송이 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최재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제나가 보라돌이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눴다.

마무리 할 시간이 다가온 방송을 어떻게 매듭지을 지, 그에게 건의했다.

보라돌이가 흔쾌히 수락하자 제나가 카메라의 사각에서 최재훈에게 언질을 주었다.

"이따, 내가 방송 종료할 타이밍 되면 … 그런, 후원 보낼 테니까. 너는 … 그렇게 반응해."

최재훈이 깜짝 놀라며 눈빛을 보냈다.

지금?

여기서?

제나가 고갤 끄덕였다.

지금.

여기서.

계획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회의 순간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마련.

제나가 보기에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으며.

머지않아, 그보다도 더욱 많은 이들이 지켜보게 될 지금 이 순간.

최재훈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가 고갤 끄덕였다.

처음의 긴장했던 그는 더 이상 없었다.

그의 자아를 가득 채운 확신과 자신감이 그를 주도한다.

그가, 제나에게 받은 언질에 맞춰 상황을 주도한다.

한유성.

그가 언젠가부터 음습한 속내와 의도를 완벽히 숨길 여유가 사라져서일까.

지금에 이르러 최재훈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래서, 한유성 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 프로 될 수 있으려나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답할지 예상이 되었다.

한유성이 짐짓 쓰게 웃었다.

웃기가 얼마나 힘겨운지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는 그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일단, 잘하시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플레이 스타일이 스타일이신 만큼… 솔랭에서라면 몰라도… 그, 프로 게임에서는… 잘 모르겠네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친다.

비난이 빗발친다.

최재훈을 향한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표했다.

그럼으로써, 프로로서의 그의 스타성을 증명해 주었다.

필시, 이 장면을 지켜보게 될 관계자들에게 말이다.

"그런가요?"

최재훈이 의아하단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씨익.

자신만만한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저는 왠지 알 것 같은데."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그걸 확인한 제나가 옆에 앉은 보라돌이를 툭툭 건드렸다.

"자, 그럼. 여러분! 오늘 방송 슬슬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보라돌이가 제나의 신호를 받고 최재훈을 데려가 카메라 바로 앞에 세웠다.

"방송의 마무리 멘트는 오늘 방송의 주인공인, 재훈 학생께서- 아니지. 재훈 선수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 아무튼.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메라가 오롯이 최재훈만을 담았다.

시청자들의 눈에,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의 모습만이 보이게 되었다.

그 순간-

찰랑!

-ㅇㅇ 님께서 1, 0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너 SOOMCUT이지?

그 후원이 채팅창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ㅁㅊ 그러고 보니

-확실히 ㅈㄴ 비슷하긴 한데?

-미안한데얘들아내가아까부터최재훈숨컷같다고했는데왜내가말할때는아무도관심안주더니쟤가말하니까바로반응하냐? 이렇게찌질하게반응하긴싫었는데진짜미안하지만이건아닌것같다아무튼미안하다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

-아니 얘가 숨컷이었다고????????????

-와 ㅅㅂ 개소름돋네

-고딩이 힘을 숨김 ㄷㄷㄷㄷ

-?? SOOMCUT이 뭔데

-머임 도대체 무슨 상황임?

최재훈은 그렇게 기름이 들이부어진 채팅창에-

"오늘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또 봬요."

의미심장한 태도로서 불을 붙였다.

그리곤, '숨컷'이라는 단어로 머리가 가득차서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제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에게 아주 익숙한 제스쳐.

최재훈이 손날을 세워 자신의 목을 자르는 시늉에 맞춰 말했다.

"컷."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방송이 종료되어도 시청자들에게 붙은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시청자들이 방송이라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졌다.

최재훈이 붙여 놓은 불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머지않아-

10. 최재훈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그 세 글자가 자리 잡았다.

1. 숨컷

2. 삼피

그 두 글자의 뒤를 이어서 말이다.

그날, 최재훈은 '숨컷'으로서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그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방송이 끝난 직후 최재훈에게 연락이 왔다.

이린의 연락이었다.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TEAM BAY를 비롯하여, LKL을 대표하는 팀들에게서 입단 테스트 제의가 쇄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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