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외전 역전의 제나 21
제나가 방송 출연 가능성을 시사하자, 보라돌이는 어떻게든 제나의 마음을 붙잡고자 했다.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편의를 봐주겠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만해라.
혹시, 관심 가는 방송인이 있다면 힘 닿는 선에서 섭외를 해 보겠다.
-삼피 님 이름을 빌려주시면, 더 폭 넓은 섭외가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제나는 이미 몇몇 방송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린을 만난 이후.
제나는 돌연 '그녀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최재훈을 제외하고 친구라 부를 수 있을 법한 몇 안 되는 이들.
동료들.
제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녀들의 근황을, 행적을 찾아 나섰고.
예상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 일로 제나는 남녀역전이 되어도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 세계에서도 그녀들은 유명인이었던 것이다.
제나는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고.
자신의 의사가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그녀들을 섭외해줄 것을.
나머지 인원은 레오레와 관련된 인물로 채울 것을.
마지막으로, 최재훈을 섭외할 것을 요구했다.
보라돌이는 흔쾌히 수락했고, 결과-
먼저 도착하여 대기하고 있던 방송인 중 일부가 마중 나와 스튜디오 현관에 도착한 제나와 최재훈을 반겼다.
반바지를 덮을 정도로 헐렁하게 내려오는 농구 져지.
그 안에 입은 흰 티의 소매가 움직일 때마다 흰 피부와 구릿빛 피부의 경계선이 어렴풋 보였다.
태양을 가득 머금은 듯 활기 넘치는 구릿빛 피부에 숏컷 헤어가 잘 어울리는 여성이 가장 먼저 다가와-
"안녕하심까, 삼피 님!"
싹싹하게 인사한 뒤 배시시 웃었다.
생기발랄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김이응 씨."
그에 제나가 목례로 화답했다.
나이 겨우 열여덟로 한참 연하인 여학생이 그런 식으로 인사를 한다.
보통 같았으면 건방지다거나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을 법도 한데, 상대는 그런 불쾌한 기미를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는 제나가 인사를 받아줬다는 사실에 황송함마저 느낀다.
그렇듯 지금의 제나, '3P'라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성숙했으며 비범했다.
"앗, 절 아시나요!?"
"뭐, 유명하시니까."
제나가 무심하게 대답하자 안 그래도 생기발랄한 김이응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아핫…! 삼피 님이 그렇게 말해 주시니까 영광이네요! 뭔가, 쑥스럽기도 하고…."
배시시.
김이응이 특유의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에게, 제나가 먼저 손을 건넸다.
"게임 방송하는 삼피예요. 이름은 제나 웨스트. 편한 대로 부르세요."
"네? 앗…! 넵! 게임 방송도 하고, 운동 방송도 하는 김이응 입니다! 본명은 김희은이고요. 김희은, 김희은, 김이은, 김이응, 김이응. 넵. 아핫…! 아무튼, 저도 편한 대로 불러 주시면 됨다!"
김이응이 발랄하게 웃으며 제나의 손을 조심스러우면서도 격하게 붙잡았다.
그때-
"이야~ 이거 아주 그냥 뭐, 연예인 포스가. 끝장나시는구만~ 혹시, 저도 아시는가 모르겠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여성이, 마치 초면인데 거리낌 없이 술자리에 합석이라도 하는 듯 넉살 좋게 말했다.
이마의 커다란 흉터가 드러나는 것 따윈 조금도 괘념치 않는다는 듯, 푸른색 머리띠로 앞머리를 걷어 올려 훤히 드러난 이마.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빨을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시원시원한 미소.
부담스러울지언정 꺼림칙하진 않은 호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여성이었다.
"차현하 씨."
제나가 이번에도 가볍게 목례하며 그녀에게 인사했다.
"이야~ 나도 한 유명 하나 보구만, 이거. 응? 삼피 씨가 다 알아봐 주시고."
그녀가 껄껄 호쾌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차현하입니다~ 이것저것 방송하고 있고요~ 저랑도 희은 씨처럼 친하게 지내 주실 거죠~?"
제나는 별다른 대꾸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짧게 악수한 뒤 바로 손을 거뒀지만, 이번에도 그 태도는 불쾌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차현하와 김희은은 제나에게서 썩 좋은 인상을 받았다.
제나가 동료를 만나고 느낀 반가움이 그 까칠한 인상에 드러난 덕이 아예 없진 않았다.
그렇게 제나만 아는 '재회'가 이루어지고.
통성명을 한 두 여자는 뒤이어 최재훈에게 시선을 향했다.
제나와 달리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 위축되어 부자연스럽게 굳어 있던 그가, 둘과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방송을 할 땐 항상 여유 한가득 느껴지는 능청스러운 태도를 뽐내는 그가, 눈앞에서 저 듬직한 체격에 안 어울리는 풋풋한 반응을 보이자 두 누나는 눈을 '피쓩'하고 빛냈다.
"아아니~ 그러고 보니 이게 누구야. 우리 슈퍼 세이브남 재훈 씨 아니야~"
"아, 안녕하세요. 최재훈입니다."
"혹시, 재훈 씨도 저희를 아심까?"
"아, 예, 그. 어느 정도는…."
"아, 그건 다르게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 밖에 모른단 소리 아닌가~? 섭섭하네~ 나는 우리 재훈 씨 방송이랑 영상 매일 챙겨 보는데~"
"아이고야, 이거 참… 송구합니다…?"
윽!
그때 갑자기 차현하가 가슴을 움켜쥐며 얼굴을 찡그렸다.
"앗! 무슨 일이심까!"
"재훈 씨가… 날 어느 정도 밖에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어떡해!"
"재훈 씨가… 누나… 라고 불러주면 나을 것 같은데…!"
"재훈 씨, 들으셨음까!?"
"아, 그… 누, 님…?"
"윽!"
"악!"
둘이 동시에 가슴에 총을 맞은 것처럼 반응했다.
차현하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검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하, 한 번만 더…!"
"이번엔 누님 말고 제대로, 누나로…!"
"…누나?"
"끽."
"깨꼬닥."
둘이 바닥에 풀썩하고 쓰러졌다.
"쯧쯧쯧, 야. 들어가자."
"어, 어? 응."
제나가 그런 둘을 보며 혀를 차곤 최재훈과 함께 스튜디오 내부로 들어갔다.
그렇게 스튜디오 내부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강렬하기 그지없는 호피 무늬 셔츠를 그보다 더욱 강렬한 분위기로 진압함으로써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여자였다.
아주 긴 다리를 꼰 채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던 그녀는 제나와 최재훈이 들어서는 순간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봤다.
"…."
"…."
얼핏 봐도 도도하고 기가 쎄 보이는 인상의 그녀는 제나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더니-
"삼피 님?"
싱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했다.
"방민아 님."
제나 역시 가볍게 목례했다.
그리곤, 계속해서 서로를 응시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칼로 싸우는 듯- 기싸움을 이어갔다.
최재훈을 비롯하여 현장에 있던 이들은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때-
방민아가 시선을 제나에게서 거둔 뒤 최재훈에게 향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서서, 긴 다리를 쭉쭉 내딛으며 나아갔다.
중간에 제나와 마주치자 자신보다 키가 약간 작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한 번 더 싱긋.
그리곤 마저 나아가 최재훈 앞에 섰다.
"최재훈 님?"
"아, 넵!"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갖고 있는 돈이란 돈은 죄다 꺼내 상납금으로 바쳐 자진해서 삥을 뜯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 최재훈이 기합과 긴장이 잔뜩 들어간 태도로 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제나에게 보여줬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요?"
"아, 넵! 반갑습니다!"
"후후,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오히려 긴장은 제가 해야지."
"네…?"
"평소에, 잘 보고 있어요. 팬이에요."
그녀가 다리만큼이나 긴 팔을 건네며 악수를 건넸다.
"아, 네! 감사합니다!"
"혹시, 최재훈 님은 저 누군지 아세요?"
"아, 그…."
"모르나 보네~ 하긴, 제 방송은 여성 분들이 많이 보시니까 어쩔 수 없죠."
"죄, 죄송합니당…."
"아~ 죄송할게 뭐 있어요~ 그나저나, 이거. 최재훈 님. 호칭 불편하다. 그쵸?"
"예? 아, 네 뭐… 그런 것 같기도…?"
"그래서 말인데- 재훈아. 편하게 불러도 되지? 내가 누나니까?"
"네, 원하시는 대로."
"고마워? 그럼 재훈아. 재훈이는 나 뭐라고 부를래?"
"어, 그… 방민아 씨…?"
방민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그게 최선이야? 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 그럼… 그… 민아, 누님…?"
"응, 재훈아?"
"아뇨, 그… 만나서 반갑다고요… 예."
방민아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말았다.
"스프레이 뿌린 거니?"
"아, 예. 뭐. 그렇죠…?"
"후후, 귀엽네."
방민아가 검지와 엄지로 그의 볼을 콕 집어 부드럽게 흔든 뒤, 그제서야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팡팡.
자신의 옆 자리를 두드렸다.
"재훈아, 이리 와. 누나랑 같이 앉자."
그 말에 안절부절 못하는 최재훈의 팔을 제나가 이끌었다.
그렇게 방민아와 가장 먼 곳에 그를 앉힌 뒤, 벽을 쌓듯 그 옆에 자신이 앉았다.
"…."
방민아가 제나를 찌릿 째려보았고.
"…."
제나는 그런 방민아에게 특유의 미소를 지어줬다.
그러자, 방민아 또한 싱긋하고 웃곤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향했다.
숨막히기 그지없는 분위기가 흘렀다.
모든 이들이 그 둘의 눈치를 살피는 가운데-
"오오… 분위기가 갑자기 왜 이렇게… 살벌해진 검까…."
"그러게요~? 분위기 이거 뭐야~? 왜 갑자기 끝장이 나 버렸어. 우리의 부재가 그렇게 큰 건가~? 하하하! 이제 안심들 하시라고, 우리가 돌아왔으니까!"
뒤늦게 김희은과 차현하가 돌아왔다.
"하."
방민아가 피식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희은과 차현하가 자아내는 기운이 분위기가 빳빳해지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가장 크게 한숨을 내쉰 보라돌이.
둘의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다들 모이신 것 같으니 바로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그, 인사는 방송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나누면 되니까요~ 아, 방송 시작하기 전에 그 일단 의자 배치를 좀. 앵글에 모두 나오도록, 컴퓨터를 둘러싸듯이 좀 하고 싶은데- 아, 예~ 감사합니다~"
보라돌이의 말에 사람들이 각기 의자를 하나씩 들어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보라돌이를 중심으로 남성진과 여성진이 나뉘어졌다.
그의 바로 옆자리에는 최재훈과 제나가 앉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누군지 말해주는 배치였다.
의외로, 그 배치에 이의나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라돌이는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 * *
제목 : 와 ㄷㄷ 보라이돌 방송 오늘 무쳤다
내용 : 멤버 역대급 레전즈 ㄷㄷㄷ
ㄴ : ㄹㅇ ㅋㅋ ㄷㄷㄷㄷ
ㄴ : ㄹㅇㅋㅋ면 ㄹㅇㅋㅋ고 ㄹㅇ ㄷㄷ이면 ㄹㅇㄷㄷ이지 ㄹㅇㅋㅋ ㄷㄷㄷㄷ은 뭐고
ㄴ : 모르겠으면 ㄹㅇㅋㅋ나 치세요
ㄴ : 멤버가 어떻길래?
ㄴ : 삼피랑 방민아랑 김히응이랑 차현하
ㄴ : ?? 삼피?
ㄴ : 실화고? ㄷㄷ
ㄴ : 걔를 도대체 어케 섭외했대
ㄴ : 아니 걔가 보라돌이 방송에 나왔다고? 왜?
ㄴ : 걔 다른 방송인들한테 관심 안 갖기로 유명하지 않았나 ㄷㄷ
ㄴ : 야 근데 삼피는 알겠는데 나머지 세 명은 누구임?
ㄴ : 김히응이랑 차현하 쟤네는 일단 들은 적은 있긴 한데
ㄴ : 김히응 쟤는 ㅈㄴ 유명한 운동 미튜버임 ㅇㅇ 가끔 축구랑 야구 경기 해설도 하고
ㄴ : 차현하 쟤 홍대 거리 돌아다니는 야방 전문 아님? 쟤 버스커니 길거리 음식 리뷰니 뭐니 쌉인싸로 아는데
ㄴ : 근데 나 방민아는 ㄹㅇ 첨 듣는데 누구냐?
ㄴ : 걔 그거잖아 뷰티 미튜번가?
ㄴ : ㅇㅇ 메이크업, 패션, 모델 그런 쪽 우리 여동생이 쟤 미튜브 보더라 구독자 ㅈㄴ 많음
ㄴ : 와 근데 ㄹㅇ;; 한명한명 다 대기업인데? 진짜 도대체 어떻게 섭외한 거냐?
ㄴ : 보라돌이 얼마전에 이사한 게 섭외하려고 집 판 거였누 ㄷㄷ
ㄴ : 신장도 하나 팔아서 이제 술도 못 마신답니다..
ㄴ : 부랄도 하나 팔아서 음역대도 높아졌답니다
ㄴ : 근데 폐도 하나 팔아서 노래는 오히려 더 못부른대요...
ㄴ : 아니 어케 살아 있노 시발ㄹ아
ㄴ : 그럼 그 네 명이 끝임?
ㄴ : ㄴㄴ 무슨 그 슈퍼세이브남인가? 삼피 학교 친구 있잔아 걔도 나왔다는데?
ㄴ : 걔가 저기 낄 급이 되나?
ㄴ : '삼피 남친'인데 뭔 스펙이 더 필요함 ㅋㅋ
ㄴ :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남친아닌데?
ㄴ : 니 남친도 못되니까 포기해 ㅄ아
ㄴ : 그럼 남자는 그럼 최재훈 걔가 끝임? 무슨 하렘 특집이누?
ㄴ : ㄴㄴ
제목 : 최재훈 팬 있어?
내용 : 지금 재훈이 삼피랑 같이 보라돌이란 사람 방송에 나온다 보러가자 ㄱㄱ
ㄴ : 대박ㄷㄷㄷ
ㄴ : 뭐야 ㄷㄷ 민아 언니가 저기 왜 있어
ㄴ : 멤버 미쳤는데?
ㄴ : 삼피가 재훈이 꽂아준 건가? ㅋㅋㅋ
ㄴ : ㅁㅊㅋㅋ 자기 신붓감이라고 챙겨주는 거야? ㅋㅋㅋㅋ 개기여웤ㅋㅋㅋㅋㅋㅋ
ㄴ : ㄴ2222222 그러니까 ㅋㅋ
ㄴ : 삼피 공주와 바보 재훈ㅋㅋ
ㄴ : 재훈이 벌써 제대로 코 꿰였네 ㅋㅋ
ㄴ : 그런데 남자쪽 나머지 세 명은 누구야?
ㄴ : 아! 레이니 모르시는구나! 맨 왼쪽 보면 잘생긴 아이 있는데 얘도 레오레 방송하는 애입니다! 겜도 잘하고 욕도 안 하니까 시간 나면 재훈이 말고 레이니도 한 번 봐 주세요!
ㄴ : 오 ㅁㅊ 레이니가 나왔어?
ㄴ : 레이니를 딱히 영업할 필요가 있나? ㅋㅋ
ㄴ : 그니까 ㅋㅋ
ㄴ : 나머지 저 둘은 프로 같은데?
ㄴ : ㅇㅇ CTB라는 팀 애들임
ㄴ : 잘해?
ㄴ : 일단 저번 시즌에 한국 레오레 리그에서 4위한 팀임
ㄴ : 와 ㄷㄷㄷ 그럼 엄청 잘하는 거 아닌가
ㄴ : 우리 재훈이 선배 될 분들이네ㅋㅋ
ㄴ : 그래서인가 재훈이 개 긴장한 거 ㅋㅋㅋ
ㄴ : 개귀여웤ㅋㅋㅋ
ㄴ : 우리 재훈이좀 잘 부탁해요~~
삼피.
비현실적인 외모와, 분위기. 그리고 게임 실력을 보유함으로써 혹자가 표현하길-
[왜 할리우드 안 가고 대한민국에서 겜방이나 쳐하고 있누 ㄷㄷ]
그런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그녀는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방송계와 미튜버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인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기업급 미튜버들이 애타게 러브콜을 보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비싸신 몸. 신비주의. 혹은 마이 웨이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최재훈'과 함께 다른 누군가의 방송에 출연했다는 소식은, 보라돌이의 기대를 훨씬 웃도는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진작에 자체 시청자수 최고 기록을 갱신했고, 실시간 방송 순위 1위를 달성했다.
누군가가 말하길, 실시간 검색어에도 이름이 올랐다고 한다.
이 대로라면 자체 기록이 아니라, 플랫폼 차원에서의 대 기록을 달성할지도 모른다.
단언컨대, 이 방송을 계기로 자신과 자신의 방송이 갖는 가치는 한 차원 더 높아질 것이다.
방송을 진행 중인 보라돌이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텐션은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 옆에 앉은 두 학생을 바라보는 그 눈은 자신의 자식이라도 바라보듯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참가자들을 소개한 뒤, 현재 그들과 관련하여 가장 큼직한 주제 하나로 이야기를 나누자.
그런 필수적인 절차를 진행한 뒤의 방송은 자연스럽게 최재훈과 제나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 누구도 거기에 의문이나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재훈 학생에게 질문하실 분 있으신가요?"
"나나나나나~ 나요~"
"아, 민아 씨께서는 방금 전에 질문을 하셨으니 이번에는 다른 분에게도 기회를- 아니면, 시청자 분들께 질문을 한 번 받아볼까요? 아, 근데~ 채팅이 너무 빨라서 읽을 수가 없네~"
찰랑!
-피자파인애플? 하... 와이?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ㅣ발아 이러면 보이냐?
"아~~~ 그런 의미가 아니였는데~~~ 아, 그런데 이러니까 잘 보이긴 한다~"
-ㅅㅂ 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귀랑 눈이 확 열리긴 하네 ㅋㅋ
-다들 동작 그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니까 절대 후원하지 마세욧!!!
"절대 후원하지 마세욧? 나가."
-잘 보이잖아 ^^ㅣ발아 ㅋㅋ
-지 읽고싶은건 귀신같이 읽는 새끼...
-^^ㅣ발아 빨리 오디오랑 비디오 비워 삼피 말하는 것 좀 듣게 -재훈이 오빠 질문하는거 아니였나요 ㅠㅠ-보라돌이님 그냥 재훈이오빠한테 마이크 주고 꺼지시면? 안 돼요? ㅠㅠㅠ
"아, 아무리 그래도 제 방송인데 너무하시네."
-니방송 아닌데? ㅋㅋ
-ㄹㅇ ㅋㅋ 삼피 방송인데?
-처신 잘하라고
"어흑, 알겠습니다."
"아, 그럼 혹시 제가 질문해도 되겠슴까!?"
"아, 네! 김이응 님! 말씀하세요!"
불만을 품지 않는 걸 넘어서.
오히려, 방송이 둘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전적으로 반기는 사람만 한 가득이었다.
그렇기에 남자는 홀로 붕 떠 있었다.
LKL1군 프로팀 CTB의 미드 라이너인 '스타폴', 한유성.
그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삼피도 나온다길래 출연해 줬더니….'
이런 식으로 찬밥 취급이라니.
하다못해, 특별 취급이 삼피에게만 한정되는 거라면 그나마 납득할 수 있었다.
한유성 역시 근래 들어 삼피에게 큰 관심과 호감을 보이는 팬 들 중 한 명이었기에.
그렇기에, 삼피와 함께할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튜브 댓글이나, 방송에서 거액의 후원으로 열심히 관심과 정성을 표해도 눈길 하나 주지 않던 그녀와 드디어 접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녀와 함께, 자신이 방송의 주인공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게, 자신은 데뷔 1년 차에 강등권 팀인 CTB를 4위까지 올려놓은 초대형급 신인이다.
그런 실적을 이뤄 놓고도 일부에선 '미남 게이머'라고 부르는 외모의 소유자다.
현재 얼마나 많은 방송인들이 자신의 스타성을 알아보고 초청하기 위해 대기표를 끊어 놓았던가. 그들 중 몇몇은 보라돌이보다 몇 급 높은 방송인이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보라돌이의 방송에 출연해 줬다.
삼피 말고 자신보다 급이 높은 출연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모두가 자신의 눈치를 보아, 자신의 세상이 될 것이다.
라는 게, 한유성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삼피- 혹은 최재훈의 이름을 보고 급을 낮춰 보라돌이의 방송에 출연하길 결정한 것은 한유성뿐만이 아니었다.
'하….'
스튜디오에 막 도착한 차현하를 급이 낮은 방송인으로 착각하고 그녀 앞에서 한껏 꺼드럭댔다가 망신을 당한 걸 떠올리니, 금세 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차현하를 비롯하여 하나하나가 대기업급 방송인인 여성진이 만장일치로 저놈, 최재훈을 주인공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저놈이 도대체 뭐라고….'
한유성은 삼피를 알기에 최재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최재훈은 자신과 비교해서 나을 게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었다.
물려받을 빚이라면 모를까, 재산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거렁뱅이.
그렇다고 일신의 능력이 자신보다 좋은가? 그것 역시 아니다.
자신은 저놈보다 한 살 어린 17살에 가능성을 증명하여 1군 프로팀인 CTB의 연습생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작년에 데뷔하여- 올해 눈부신 활약으로써 팀을 상위권으로 견인했다.
그런데 저놈은 18살 먹고도 아직 솔로 랭크에서 빌빌대고 있지 않던가?
'저놈 닉네임이 아마-'
한유성은 플레이어로서의 그를 기억한다.
이렇다 할 재능도, 특색도 없다.
현재는 물론이며, 미래에도 프로로서 자신처럼 성공할 가능성이 전무한 보잘것없는 플레이어.
그렇기에, 원래라면 방송인으로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비루한 삶을 살았을 놈.
저놈이 자신보다 나은 점을 억지로라도 꼽아 보라면, 그건 '운'뿐이었다.
운이 좋게 삼피를 만났고, 운이 좋게 삼피의 눈에 들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
표면상 웃고 있는 한유성의 눈은 최재훈을 힐끔 힐끔 쳐다볼 때마다 싸늘하고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재훈 학생. 어떻게, 요즘 잘 돼 가요?"
"네? 뭐가요? 아, 프로 준비요?"
"네, 네. 어디 뭐, 연락한 프로팀 없어요? 있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만 살짝… 귀띔해 주실 수… 우리끼리의 비밀로 할 테니까."
-ㄹㅇ ㅋㅋ
-쉿
-제 몸무게가 80KG인데 그 중 입 무게만 70KG입니다
-저희만 믿으십쇼 ㅋㅋ 아, 혹시 아실까 모르겠는데 참고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입니다
"어…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 보니까, 대한민국 사람들 여기 다 모인 것 같은데 비밀로 한다 해도 의미가 있을까요? 뭐,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없지만요. 아직, 딱히 연락은 안 왔습니다."
사방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는 한유성의 양 옆에 있는 그의 동료와 레이니마저도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한유성 역시 아쉬워하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보라돌이가 손가락을 튕기며, 한유성에게 관심을 향했다.
"아아,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마침 이 자리에 계시는 1군 미드 라이너인 스타폴 선수가, 한 번 재훈 학생의 플레이를 봐 주는 거죠. 혹시, 관계자들이 아직 재훈 학생의 플레이를 못 봐서 연락을 못 한 걸 수도 있으니까!"
-오 ㅋㅋ
-그거 좋다 ㅋㅋ
-스타폴 이기면 사실상 바로 1군 직행 아님?
-ㄹㅇ ㅋㅋ 스타폴 밑으로 6자리 있으니까 그 중 하나는 내놔야지
모든 관심이 일제히 집중된다.
한유성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서야 자신에게 향해진 관심이 달가워서?
아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놈에게 정당하게 망신을 줄 기회가 생겨서였다.
'아니, 내가 쪽을 주는 게 아니야.'
저놈이 알아서 망신을 당할 뿐이다.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밑천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말이다.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될 일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더더욱 좋았다.
"아,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아, 저야 영광이긴 한데… 아, 흐. 그래요. 갑시다."
사람들이 환호를 보냈다.
한유성은 저 환호에 자신의 지분이 없음을 알면서도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최재훈과 한유성이 자리를 스튜디오 내부에 위치한 컴퓨터 앞으로 옮겼다.
"아, 그러면 일단. 간단하게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미드빵으로, 라인전 실력부터 볼까요?"
사실, 따로 볼 것도 없이 한유성은 이미 최재훈의 라인전 실력을 알았다.
안 그래도, 몇 주 전에 방송을 진행하는 그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우연을 가장해서 '부캐'로 저격을 감행한 바.
그에게 수차례에 걸쳐 철저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당시 최재훈은 예외 없이 라인전 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짓밟혔었다.
최유성이 판단하길, 최재훈이 라인전 단계에서 자신에게 버틸 수 있기는 커녕.
꼴사납게 패배하지 않는 것조차 힘들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그를 짓밟으리라.
미드빵으로 넘어트린 뒤, 랭크 게임으로 철저하게 짓밟는다.
그리고-
"아, 혹시 모르니 한 판 더 해 볼까요…!"
로, 확인 사살.
"혹시 모르니까 '확실하게'해 두기 위해, 같은 캐릭터. 그러니까, 미러전으로. 안 봐드리고 제대로 할 건데, 문제없으시죠?"
"넵, 문제없습니다."
"그러면 그, 캐릭터는 최재훈 씨께서 원하시는 걸로."
"예? 아, 그러면- 당연히 메이지로 해야겠죠?"
"아, 저는 뭐든 상관 없습니다."
"아, 그래도. 지금 메타가 메타니까. 아무래도 메이지로."
"예, 그러면 편하신 대로. 메이지 중에서 제일 잘 다루시는 걸로, 고르세요."
'뭐가 됐던, 내가 더 잘 다룰 거니까.'
1군 프로로서,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모든 메이지 캐릭터에 통달한 한유성이었다.
그는 열심히 고민하다가 결국 '메이지'캐릭터를 선택하는 최재훈을 보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그러면,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도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수 부탁드린다니.
그 말을 하는 최재훈이고, 자신이고.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곤 모두가 한유성이 예상한 대로였다.
일방적인 게임의 흐름.
그리고 당연한 결과.
<승리!>
최재훈이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이점을 갖고 시작했음에도, 너무나도 볼품없이 짓밟히자.
채팅창과 현장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유성은 그 침묵을 파안대소로 깰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최재훈의 실력이 형편없음을 간접적이면서도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아, 그. 레오레는 어차피 팀 게임이고 라인전이 전부가 아니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마세요."
그가 더욱 비참해지도록, 형식적인 말을 한다.
레오레의 게임 대부분이 라인전 단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레오레 유저는 없었다.
프로 미드 라이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 첫 번째가 라인전 능력이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대회도 아니고."
그렇게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만약 방금 게임이 대회의 라인전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굳이 상상하게 만든다.
-ㄹㅇ ㅋㅋ 스타폴한테 라인전 지는 건 당연한 거지 ㅇㅇ;
-솔직히 방금 그 정도면 잘 버틴 거 아님?
-ㄹㅇ ㅋㅋ
-근데 방금 전이 대회 경기였으면 대회에서 정글 개입 없이 라인전 발리고 솔킬 따인 거 아님?
-ㄹㅇ; 그러면 겜 힘들었겠는데
'방금 그게 대회였다면, 최재훈 때문에 팀이 졌겠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어허
-프로 중에서도 스타폴한테 솔킬 따이는 애들 많은데?
-근데 저렇게 같은 캐릭으로 일방적으로 발리는 애들은 ㅋ;;
-왜 연락이 안 온지 알 것 같기도 ㅋㅋ;
-아마추어치곤 잘하는데 프로치곤? 글쎄 ㅋㅋ;
-난 모르겠다~
그가 프로로서 가망이 없는 플레이어임을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주입시킨다.
"그리고, 미드빵에선 이래도 5:5 게임에선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뭔지 몰라도, 재훈아 힘내! 다음 판 이기자!"
"맞슴다! 레오레는 어차피 5:5 게임이잖슴까!"
"몸 풀었으니까 다음 게임 가 보자~"
심각한 얼굴로 <패배> 창이 떠오른 화면을 지켜보는 최재훈을 세 여자가 위로했다.
한유성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장래로 생각하는 분야에서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벽'을 느끼고 있는데.
그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에게 위로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이 이후로 확인사살까지 당하면, 어떤 기분일지.
그래도 이전처럼 실실거리면서 방송할 수 있을지.
"자 그러면, 서로 동시에 큐 잡아 볼까요? 이 시간에 이 점수대면. 어렵지 않게 서로 적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한유성이 최재훈을 확인 사살하려던 그때였다.
"그, 스타폴 님?"
"네?"
"그 혹시, 스타폴 선수가 가장 잘 다루시는 캐릭터가 뭐죠?"
'뭐지?'
혹시-
'방금 전 게임이 내 최대라고 생각하고, 스타폴 상대로 이 정도면 잘 버틴 거지, 라고 자위라도 하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일단, 방금 전은 제가 그다지 선호하는 캐릭터는 아니긴 한데…."
"아, 그래요?"
'응?'
최재훈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한유성은 그걸 자신의 착각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게.
그가 어딘지 신난 듯.
들뜬 듯 보였기에.
'아, 이거 암살자였으면…?'
방금 전 최재훈이 경기를 진행하면서 속으로 거듭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가 지금의 상황을 비참하게 패배한 굴욕적인 상황이 아닌.
가능성을 증명할 기회라 여김을 알 길이 없었기에.
"그럼 혹시, 제일 잘 다루시는 캐릭터로 미드빵 한 번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미러전 말고. 각자 원하는 캐릭터로."
'모스트 전에서 이겼으니 결국 내가 더 잘한 거임!' 그런 요행이라도 기대하는 걸까?
"하."
그 너무나도 얄팍하고 가소로운 사고에 한유성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괘념치 않는 최재훈에게 말했다.
"뭐, 그러세요. 원하신다면야."
그렇게, 두 번째 게임이 시작됐다.
한유성이 예상하기에 첫 번째 게임과 다를 게 없을 두 번째 게임이.
"…어?"
그렇게, 한유성의 예상이 시작부터 빗나갔다.
하지만 그는 그저 헛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 예상이 빗나간 이유가, 최재훈이 암살자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메타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는, 라인전 상성에서조차 자신의 캐릭터에 크게 밀리는 캐릭터였다.
라인전이 시작되고, 한유성의 의아함은 더욱 커졌다.
최재훈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난해한, 조잡한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런 난해하고 조잡하기 그지없는 플레이인데- 왜인지 자신이 점점 열세에 몰리고 있다는 착각을 느낀 탓이었다.
그가 기우에 불과할 불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 게임은 뭐, 즐겜 판인가요?"
그렇게 지금 최재훈의 발악을 '즐겜'이라 치부했다.
웃기지도 않은 장난, 애처로운 헛수작이라 비웃었다.
그에 최재훈이 답했다.
입이 아닌 손으로 말이다.
<선취점!>
"…어?"
고도의 집중 상태에서 벗어난 최재훈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예? 뭐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