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외전 역전의 제나 14
평범하고 익숙한 한국적인 배경, 소품, 그리고 패션.
게시되는 사진을 이루는 요소는 하나같이 평범하다.
글은 어딘가 어눌하기마저 하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들은 단 하나의 요소에 의해 장점으로 거듭난다.
피사체.
그러니까, 사람.
제나 웨스트.
이국적인 걸 넘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한 그녀의 분위기는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환상을 부여하고 판타지로 만든다.
한국인들은 기본적으로 외국인, 씁쓸한 현실이지만 주로 백인 한정으로 특별히 호의적인 경향을 보인다.
그녀가 올리는 게시물은 대부분은 자극적 요소가 없이 건전했다.
학생이라는 신분에 걸맞게 말이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팬들 사이엔 높은 충성도와 깨끗한 팬 문화가 형성됐다.
아직은 활동 기간이 길지 않기에 아는 사람만 아는 잇츠그램 맛집.
팔로워 수는 3만으로, 애매한 수치라 할 수 있지만 그들 하나하나의 충성도가 엄청나 어지간한 대형 인플루언서급의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기세로 sns활동을 이어가면 무난하게 대형 인플루언서로 거듭날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팬들은 한 편으론 의아했고.
한 편으론 아쉬웠다.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활동을 멈춰 버린 그녀가 말이다.
몇 개월 전, 그녀가 한국에서의 이민 생활이 힘들어 미국이 그립다는 늬앙스가 담긴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이후로 수개월 지난 현재까지, 다음 게시물이 갱신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게 마지막 게시글이 된 그 글에는 여전히 팬들의 댓글이 갱신되고 있었다.
-제나님 도대체 무슨 일이신가요 ㅠㅠ
-혹시 안 좋은 일 생기신 건 아니죠?
-언제 돌아와요~~~~~~~~~
-학상 문열어!!!!!!!!!!
-이런식이면 우리도 곤란해 학상
-보고싶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모두가 그녀를 여동생 기다리듯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집 나간 여동생이 돌아왔다.
그녀는 몇 개월 만의 게시글로 근황을 전했다.
제목 : 안녕하세요
제나는 기존의 어눌하고 여고생 특유의 풋풋한 말투를 계승해 보려 노력해 봤으나 끝끝내 실패했다.
'재밌었당ㅋ큐ㅠㅠㅠ'같은 말을 입력하려고 하니 손가락이 위로 돌돌 말려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썅… 웃으면 웃고, 울면 우는 거지.'
[ㅋ큐ㅠㅠ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펔ㅋ큐ㅋㅋㅋㅋㅋㅋ]는 할 수 있겠는데.
아무튼, 제나는 결국 정품 여고생 말투의 복제에 실패하고.
불법 복제판인 군필 여고생 말투를 사용했다.
내용 :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그동안 계정 관리를 못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돼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사무적이고 건조한 글.
풋풋하고 어리숙했던 이전과 완전히 상반되어 대필 혹은 해킹까지 의심되는 수준이었으나-
-ㄷㄷㄷ 갑자기 뭐야
-갑자기 어른 되셨네;;
-맞춤법 안 틀리니까 어색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ㄷㄷ
-아무튼 다 잘 해결됐다니 다행이당
-메이크업 스타일 바꾸셨나?
-거의 쌩얼 수준인데?
-지금이 더 자연스러워서 훨씬 보기 좋은듯
-역시 어린 애들은 걍 화장 안 하는 게 나은 듯 ㅇㅇ;;
-풋풋하고 얼마나 좋아
-아니 저기요 ㅋㅋ 이 사람이니까 이렇게 화장 안 하다시피 해도 되는 거지 ㅋㅋ-ㄹㅇ ㅋㅋ 일반인들은 노메이크업이면 풋풋이 뭐야 그냥 풉풉이에요
-poop poop zz
-real zz
-DO NOT TRY THIS AT HOME
-글에서도 느낀 건데 확 성숙해지신 게 분위기에서도 보이네요 ㄷㄷ 신기하다
글과 함께 새로운 사진을 업로드하자 팬들은 쉽사리 납득했다.
내용: - 제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 말씀드리자면 저는 저번 주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제나는 그렇게 본론을 꺼냈다.
전학 당일 날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들려줬다.
그리고, 신소하에게 전해 받은 영상을 보여줬다.
-ㅁㅊ
-아니 진짜 큰일날 뻔 하셨네;;
-ㄹㅇ;; 저거 그대로 떨어졌으면 진짜 상상만해도 아찔하네
-제나 웨스트가 아니라 제나 스카이 될 뻔 ㄷㄷ(다수의 신고로 블라인드 처리된 댓글입니다)
-저 학생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났을듯
-어디 안 다치셔서 다행이네요 ㅠㅠㅠ 제나님도 저 친구분도 -와 진짜 저 남학생 진짜 멋있다..
-ㄹㅇ 무슨 영화 장면 같음 스턴트맨 같고
-말 안 되네 걍 ㄹㅇ;
-이걸 어케 찍었대 ㄷㄷ
-구라 아니고 이 글 성지 될 듯 ㅇㅇ
구라 아니고 제나의 글은 정말로 성지가 되었다.
'하, 진짜 말도 안 되긴 해."
제나가 보기에도 워낙 극적인 순간을 절묘하게 녹화한 엄청난 영상이었다.
'거기에다 배우들 비쥬얼이 되니까.'
게시글의 평균 조회수가 10회 안팎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처음으로 업로드 되었다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퍼졌을 것이다.
그런 영상이, 제나의 계정에 처음으로 업로드 되어 단시간에 수만 명이 시청했다.
-와 저거 무빙 실화냐?
-무빙 ㅇㅈㄹ ㅋㅋ
-근데 진짜 무빙 오진다는 말 밖에 안 나오긴 하네;
-어지간한 운동선수들도 힘들듯 ㄹㅇ;
-우리나라 체육계 뭐하누? 태릉선수촌 뭐하누? 저런 애들 데려다가 안 키우고 -ㄹㅇ; 지금 당장 국방부에서 데려다가 캡틴 코리아로 육성시켜야지
-지금 당장 ㅇㅈㄹ ㅋㅋ
-고딩인데 지금 당장 군대에 데려가면 캡틴 코리아는 코리아인데 복수심으로 캡틴 노스 코리아가 될 듯 -줄여서 틴노스 ㄷㄷㄷㄷㄷㄷㄷ-한국이 또 괴물을 만들어 냈는가...
-한반도의 절반을 날려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
-70년 전에 이미 날라갔는데요
영상은 순식간에 잇츠그램을 넘어 커뮤니티 전역으로 퍼졌고, 이미 퍼져 있던 '일찐참교육남'과 합쳐져 전 커뮤니티적인 관심사로 거듭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야 근데 저거 여자애 ㄹㅇ 개오지네
-ㄹㅇ; 무슨 인형 같음 서양인 모델이라 해도 믿을듯
-영상이 왜 이렇게 영화같나 했더니 쟤 비쥬얼 때문이었네 -쟤 잇츠그램 좋더라 ㄹㅇ;;
-ㄹㅇ;; 걍 진짜 학생같아서 좋더라
-저런 애랑 같은 학교 ㅅㅂ 개부럽네
자연스럽게 주목 받는 영상 속 여배우.
-어 근데 저거 남자 재
-저거 근데 일찐참교육남 아님?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주목 받는 영상 속 남배우.
-진짜 새삼 느끼는데 운동신경 오진다 쟤
-어 근데 얘 일찐이라 안 했음?
-그러게 내가 아는 일찐참교육남은 개쓰레긴데 왜 여기선 ㅈㄴ 멋있냐
-겨우 ㅅㅂ ㅋㅋ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저 쓰레기 재평가하려하네 ㅋㅋ 저건 나도 한다 -그럼 좀 보여줘봐 ㅅㅂ아 기왕이면 뛰어내리는 역으로 -이게 뭐가 대단하긴 ㅄ아 사람 목숨을 구했는데 -ㄹㅇ 이거 진짜 조금이라도 잘못됐으면 제나도 제난데 최재훈 쟤도 크게 ㅈ됐을 각인데 -가방 안 맸거나 저 안경쓴애가 머리 안 받쳐줬으면 ㄹㅇ임
-걍 지 생각 안 하고 무작정 구하고 본 거네 ㄹㅇ;; ㅈㄴ 멋있다 진짜 -이거 그냥 저 일찐 새끼 인성 세탁해주려고 주작 한 거 아님?
-이걸 어떻게 주작해 ㅄ아 ㅋㅋㅋㅋ
-아 ㅋㅋ 목숨 걸고 주작할 정성이면 주작이어도 ㅇㅈ해줘야지ㅋㅋㅋ-나 피닉슨데 ㅇㅈ한다;
영상에 향해진 관심은 곧 최재훈을 향한 관심이 되었다.
-뭐야 저 남학생 일찐이라고?
-일찐참교육남이 머임? 일찐참교육이면 잘한 일 아님? 근데 왜 욕을 먹고 있음?
-??? 도대체 뭐 어떻게 된 일임
-쟤 뭐 대기업 임원 아들에 밤 늦게까지 싸돌아댕기는 양아치라며 -그거 다 카더라잖아 ㅅㅂ
-같은 학교인 김민성이 그랬잖아 쟤 절대로 평범한 애는 아니라고 -김민성 그 일찐새끼 최재훈때문에 유튜브 난리난건데 걔 말을 믿음? 100% 악감정 갖고있을 건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어린 학생 ㅄ만드는 짓 그만하고 중립 지켜요
-저는 피캇추 돈까스나 문지르고 있겠습니다
-제나님 어떰? 최재훈 쟤랑 친해졌다면서요 어떤 애 같음?
-ㄹㅇ 제나님이 확실히 짚고 넘어가주세요
-제나 걔 친구라며 제나 말을 어케 믿음?
-ㄹㅇ ㅋㅋ 제나도 일찐이면 어쩔 건데
-아니 ㅋㅋ 막 전학간 애가 뭔 일찐이야 ㅅㅂ ㅋㅋ
-사실 전국의 모든 학교를 제패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른 거였고 ㄷㄷ-제나님 인스타그램 게시 내역 보면 알겠지만 일찐 그런 쪽 아니예요-ㄹㅇ; 한국에 적응 못해서 힘들어하시는 분한테 남 괴롭힐 시간이 어딨겠냐고
-적응 못하고 전학간 학교에서 죽을뻔했는데 자기 목숨 구해준 애랑 친구되는거 ㄷㄷㄷ 로맨틱한거바-아니 그래서 쟤 도대체 뭔데 -적어도 나쁜애 같진 않은데?
이전 스파링 사건에서 최재훈이 바람직한 일을 행했음에도 그에게 부정적인 시선이 향해졌던 이유는, 그가 유우준과 싸웠던 모습이 워낙에 강렬하여 폭력적인 면모가 부각된 탓이었다.
하지만 이번 '슈퍼 세이브' 사건에서 최재훈이 보여준 면모는 그보다 더욱 강렬했다.
남들이 모두 도망치는 순간, 주저 없이 제 한 몸 날려서 사람을 구하는 영웅적인 면모.
대중이 최재훈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도대체 뭐하는 새끼야?'에서 '도대체 어떤 학상일까?'로.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호의적이며 방대한 관심이 '일찐'도 '일찐참교육남'도 아닌 최재훈에게 오롯이 집중되어, 그의 대변인인 제나에게 향해졌고.
그리하여 제나의 잇츠그램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내용 :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최재훈과 이번 일찐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최재훈은 몇몇 분들이 걱정하시는 바와 달리 불량한 학생이 아닙니다.
이에 관하여 여러분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여 오해를 풀까 고민하다가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그 녹화 영상을 편집해서 올려 보면 어떨까'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대로 진행하기에 앞서 적절한 판단인가 싶어 여러분들께 먼저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랜 세월 동안 유명인 활동을 해오며 개인으로서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유저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숙달한 제나.
그런 그녀치곤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라 생각할 수 있었지만.
사실, 그런 그녀였기에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이새끼들 지들이 뭐라도 된 줄 알고 ㅈㄴ 어그로 끄네 ㅋㅋ
지금도 댓글창에 꼬여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벌레들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극소수지만, 덩치가 커질수록 꼬이는 벌레들도 많아질 것이다.
저 벌레들에게 건수를 주면 안 됐다.
지금 자칫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간, 벌레들은 그걸 기회적이고 속물적인 모습으로 왜곡할 것이다.
그렇게 왜곡해 놓은 모습을 갈무리해 숨겨 두었다가, 향후 최재훈과 제나가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면 다시 꺼내 등에 꽂아 넣겠지.
결국 모든 게 방송 시작하려고 쇼를 한 것이라며, 어그로를 끈 것이라며.
제나의 예상대로라면, 이 일 이후 최재훈은 반드시 방송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급격하게 몸집을 불려나갈 것이다.
급격하게 몸집을 불려나가는 방송인은 외부의 자극에 취약하다.
벌레들에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어그로는 니가 끌고 있지 ㅄ아
-별써부터 열폭하는 새끼들 나오네 ㅋㅋ
-제나님 저런 애들 불쌍한 애들이니까 걍 신경쓰지 마세요 ㅇㅇ-방송ㄷㄷ 재밌겠누-괜찮은 것 같은데요?
-ㅋㅋ 아 꼬맹이 둘이 일 커져서 ㅈㄴ 당황해가지고 머리 맞대고 저거 떠올려냈을 모습 상상하니까 왤케 귀엽냐 -ㄹㅇ ㅋㅋㅋ
의도한 그대로의 반응이 나오자 제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음 챕터로 진행했다.
제나가 예고한 다음날 점심시간.
그녀의 계정에 하나의 링크가 게시되었고, 그 링크를 타고 이동하자 누군가의 미튜브 라이브 채널 페이지였다.
채널 명에는 '최재훈' 세 글자가 기입되어 있었다.
채팅창이 빠른 속도로 채워진다.
-오 ㅋㅋ
-뭐야 아직도 시작 안 했어?
-재훈아 형 왔다 가자 ㄱㄱㄱㄱ
-지금 학교지?
-그럼 제나랑 같이 있나?
시청자 수는 빠른 속도로 3천 명까지 도달하곤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원본 동영상의 조회수에 비하면 아쉬운 수치였으나, 그럼에도 엄청난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그 파장을 일으켰던 김민성의 라이브 방송 시청자가, 덕성고 학생 대부분이 시청했음에도 겨우 2천 명 안팎이었으니 말이다.
머지않아 화면에 불이 들어온다.
익숙한 얼굴이 자리에 앉은 채 화면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그 뒤의 광경이 자세히 보인다.
교실이었다.
-최하 ㅋㅋㅋ
-오 ㅋㅋ 왜 신기하지 ㅋㅋ
-ㄹㅇ ㅋㅋ 연예인 보는 기분
-어 뭐야? 재훈이 이렇게 잘생겼었냐?
-그러게?
최재훈이 방송을 하는 게 확정되자 제나와 신소하는 합심하여 그를 치장시키기에 나섰다.
가장 먼저 바버샵에 향해 아무렇게나 기른 더벅머리를 손봤다.
깔끔한 투블럭 머리가 옆으로 자연스럽게 넘겨져 단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덤불처럼 그저 털을 엮어 놓은 듯 조잡했던 진한 눈썹이 지금은 한자의 한 획처럼 간결하며 강직한 선을 그린다.
피곤에 절어 메말랐던 피부가 생기 가득 머금은 빛을 자아냈다.
영상에서 봤었던 최재훈의 모습은 마치 꼬질꼬질한 야생의 늑대 같았다면, 지금은 왕좌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늠름한 늑대 같았다.
그러면서 그 어딘가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머뭇거리고, 표정엔 수줍음을 머금고 있다.
누가 봐도, 살면서 이렇게 꾸며 본 적 한 번도 없기에 쑥스러워 한사코 거절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절대로 안 된다며 극구 끌고 가 억지로 꾸며 놓은 모습이었다.
"어, 어때요. 좀… 잘 어울리죠? 원판이 하도, 응… 괜찮아서."
제 딴에는 자신만만해 보이겠답시고 행동하는 그 모습에, 방송을 지켜보던 형 누나의 입가에 절로 엄마미소 혹은 아빠미소가 그려졌다.
-아니 ^^ㅣ발 ㅋㅋㅋㅋ 그래 잘 어울린다 이새기야
-재훈아 사내새끼가 뭔 화장이냐 어 ㅋㅋ 빨리 화장실 가서 비누로 빡빡 문대라 -개귀엽네 ㅋㅋ
-재훈이 잘 어울리니까 괜찮아 ㅋㅋ 자신감 가져
-재훈이 넘 귀엽고ㅠㅠ
채팅창을 확인한 최재훈이 하-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으려 했다.
"야! 화장 번져!"
그때 새침한 목소리와 함께 짝, 못된 손바닥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참고로, 얘 작품입니다…."
최재훈이 쓰게 웃으며 카메라를 돌렸다.
발랄함 가득 느껴지는 여학생이 생글거리며 양손을 흔들었다.
물기 하나 없는데도 촉촉하게 느껴지는 미역머리가 찰랑거렸다.
"안녕하세용~ 신소하입니당~"
"그리고 얘는 제 친구, 경식이. 김 경식이고요."
"안녕하세요."
무표정하고 소심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뻔뻔해 보이는 안경 쓴 남학생이 고개를 까닥.
마지막으로-
"그리고 모두가 알고 계실-"
제나가 평소 그대로의 분위기로 화면을 향해 눈썹을 까닥이며 가볍게 목례했다.
-오 ㄷㄷㄷ;;
-와 제나 실제론 이런 분위기구나 ㄷㄷㄷ
-갑자기 무슨 아이돌 vlog가 되네
-ㄹㅇ;
김경식까지만 해도 꼬꼬마들 재롱잔치 지켜보는 학부모석 같았던 채팅창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카메라 앞에서 하나 같이 긴장해서는 딱딱하게 굳어 부자연스러웠던 세 명과 달리.
카메라 앞에 선 제나는 여유로운 걸 넘어서 모종의 장악력마저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제나는 딱히 뭘 한 것도, 할 것도 없이 그 수천 명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그들을 이 방송에 완전히 몰입시키는데 성공했다.
"자 그러면, 지금 일단 점심시간이고요. 이렇게 넷이서, 점심을 먹으러 갈 겁니다. 원래는 저랑 경식이, 이렇게 둘이서 먹었었는데. 최근에 제나, 신소하랑 친해져서 넷이서 먹게 됐습니다."
최재훈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했다.
"자 그럼 이동할 텐데, 혹시 지금 질문한 거 있으신 분?"
-질문한 거 있으신 분?
-궁금한 거 있으신 분이랑 질문할 거 있으신 분이 섞였누 ㅋㅋㅋ-재훈이 긴장했누? ㅋㅋㅋ
-얘가 정말 그 유우진 참교육한 애가 맞냐? ㅋㅋ
-재훈이 근데 자기 편한 질문만 고르는 거 아니냐?
최재훈이 다소 붉어진 얼굴로 열심히 채팅창을 뒤적여 원하던 질문을 찾아냈다.
"아, ablp1304님께서, '근데 덕성고 다닌다는 애들 말 들어보면 최재훈 점심시간까지 하루종일 잔다는데 리얼임?'이라고 여쭤보셨네요."
-앗
-ㄷㄷ 그 질문을 고르네
-정면돌파 ㄷㄷ
-재훈이 좀 치네 ㄹㅇ;
-ㄹㅇ ㅋㅋ 이래야 대한민국 정품 사나이 더블 유정란 소유자지 -아 ㅅㅂ 말하는거 개드러워
-저런애들좀 강퇴해주세요
-딱 봐도 구라지 ㅋㅋ
-ㄹㅇ ㅋㅋ 이렇게 샤이한 애가 그렇게 막나간다고? 말도 안 되지
"어, 그 일단은… 맞습니다."
-말도 안 되지 않네
-???
-아니 그게 ㄹㅇ이었다고?
-재훈아 어떻게 된 거냐 형 실망이 크다
-재훈아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지금 이거 방송보는 형들처럼 된다 -미안한데 똑같이 취급하지 마 ㅋㅋ 나 지금 직장에서 보는 중이니까 -저거 보이지? 저기 자기가 지금 직장 안이라는 대변, 공부 안하면 너도 쟤처럼 직장이랑 대장 떠도는 대변 되는 거야 -아니 그러면 하루종일 자는데 선생님들이 터치 못한다는 것도 ㄹㅇ임?
"아, jaban18se님께서 '그러면 하루종일 자는데 선생님들이 터치 못한다는 것도 ㄹㅇ임?'이라고 여쭤봐 주셨는데요. 그… 터치를 못 하시는 게 아니라, 안 하시는 거라 하는 게 맞겠네요."
-뭔 소리임 그게?
-재훈이 선생님들이 손 놓은 학생이냐 ㄷㄷㄷㄷ
-아니면 덕성고가 개 똥통인 거냐
-덕성고 저기 나름 저 지역에선 ㅅㅌㅊ 인문고일걸?
-그럼 재훈이가 똥통인 거냐?
신소하 역시 궁금한 부분이었기에 그녀도 최재훈을 쳐다보며 답을 기다렸다.
"그 이게… 자세히 이야기 하자면 엄청 길어져서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하자면. 처음부터 선생님들이 절 터치 안 했던 건 아니었는데. 그, 어느 날 자다가 주임 선생님한테 불려갔어요.
엄청 무서우신 분이라, 아 드디어 내가 선을 넘어버려 길지 않았던 생을 마감하는구나. 싶었죠. 그런데 예상이랑 달리, 침착하게 제 얘기랑 사정 끝까지 들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왔죠.
'니 딱한 사정 잘 알았으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일단 지금은 니가 성적 관리를 잘 하고 있으니까, 학업은 네 자율적으로 진행하는 거야. 하지만 성적 유지 실패한다? 그러면 그때는,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학교에서 하루종일 퍼질러 자도 성적 잘 나오니까 지켜보겠다, 이거네?
"예, 뭐 그렇죠."
그때, 신소하와 채팅창에서 동시에 같은 의문을 제시했다.
"뭐야 최재훈. 도대체 성적이 어떻길래 학주- 아차, 아니, 주임 선생님한테 그런 특혜를 받아?"
-학주, 아차 ㅋㅋ
-pdf땄읍니다... 학주님한테 보낼게요
-쟤 표정봐 ㅋㅋ
-쟤도 최재훈 공부 못하는지 알았나본데?
-아니 근데 ㄹㅇ 재훈이 이미지에 도대체 누가 공부 열심히 할 거라고 생각하냐고 -ㄹㅇ ㅋㅋ-의외로 학주 커트라인 낮은 거 아님?
-재훈이한테 아예 기대도 안 해서 그냥 사람 구실만 하면 냅두겠다 한 거지 ㅇㅇ; 이게 가장 현실성있네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걸까, 최재훈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대체 얼마나 성적이 좋아야 우리 학주 선생님한테 그런 특혜를 받을까~ 뭐, 대충 예상되지 않아?"
"뭐야~ 재수 없게. 재지 말고 빨랑 말해 봐!"
그런데 또 막상 자랑스럽게 내세우려니 쑥스러워서 최재훈이 우물쭈물하던 그때였다.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던 김경식이 툭 내뱉듯, 최재훈의 성적을 언급했다.
그러자 신소하가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입을 떡 벌렸다.
아마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학생의 본분이 닥치고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되어 사교육이 필수가 되고, 학교 수업의 중요성과 교사의 위상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요즘.
때때로 교사들은 학부모들에게서, 학원과 집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피곤한 자식들이 수업 시간 도중에 쉬는 걸 방해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
'내 자식 수능 망쳐서 인생 망하면 니가 책임질 거냐!'라는 치트키를 사용하는 그들을 교사가 당해낼 방법은 없다.
요즘 세상에서 교육의 참된 의미를 부르짖어 봤자 비웃음만 당할 뿐이다.
그렇기에 김경식이 언급한 최재훈의 성적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그에게 간섭하지 않는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됐다.
충분한 설명이 됐지만,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눈앞의 이 얼빠진 친구가 사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집단의 한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모범생이라니.
의심 가득 담긴 눈초리에 최재훈은 근엄한 얼굴로 꽉찬 따봉을 시전했다.
김경식이 공명하여 따라서 따봉을 시전했다.
심지어는 제나까지 거들었다.
"오오… 이것은 전설의 트리니티 따봉…."
"성자, 성령, 성부의 이름으로 따봉."
"따봉."
하지만 최재훈과 김경식이 헛소릴 하자 질색하며 즉시 따봉을 거두어들인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라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신소하와 시청자들은 극도로 혼란스러워했다.
* * *
식당에 도착한 최재훈 일행.
점심시간 되자마자 거품 물고 흰 눈자위 까뒤집으며 식당으로 달려간 대부분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본관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노렸기에, 식당 내부는 상대적으로 한산했지만.
그럼에도 식당은 식당인지라 여전히 많았다.
여전히 많은 무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은 전부 최재훈 일행의 눈치를 보았다.
-와 ㄷㄷ 최재훈 뜨는 순간 기강 잡히는 거 봐
-최재훈 18레벨 왕귀 ㄷㄷ
-초등학교 운동장에 일찐 고등학생 나타나서 삥뜯는 느낌이네 ㄷㄷ-그건 좀 뭔가 ㅄ같아보이지 않을까
-사냥터 레벨이 너무 낮아서 경험치랑 돈 안줄듯
-아니근데 재훈이 진짜 일찐 아닌거 맞냐? ㅋㅋ
-사실 일찐보다 높은 영찐이었고 ㄷㄷ
사실, 시청자들 대부분은 이미 최재훈이 불량한 학생이 아니라 반쯤은 단정 짓고 있었다.
살면서 불량 학생에게 한 번도 안 데여 본 이가 어딨겠는가.
어른이 되어도 그 굴욕적이고 강렬한 기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학교를 졸업해도 학생을 어느 정도 지켜보면 그런 부류인지 아닌지 대략 판별이 가능했다.
즉, 지금 그들은 단순히 최재훈을 놀리고 있었다.
최재훈이 금방 긴장을 풀고 특유의 여유롭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방송에 임하자, 진행하자. 방송의 분위기 또한 그처럼 유들유들해졌다.
처음에 기자회견이나 해명식 같은 딱딱한 분위기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최재훈의 방송은 말 그대로의 방송이 되어 있었다.
구경꾼들은 시청자가 되었다.
"아니 그, 그 사건 있었던 이후로 애들이 제 눈치를 보네요. 그래도 이거, 그나마 나아진 거예요. 여기, 신소하가 마침 여러분이 이번에 봤던 그 영상 찍어서 퍼트려줘 가지고. 그 전에는 애들 제 눈치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뭐, 볼 때마다 허리 반으로 접었었는데. 다시 한번 말하는데, 신소하. 진짜 고맙다 이번 일."
-ㄹㅇ 그걸 도대체 어떻게 찍었냐
-올해의 퓰리처상 수상 ㄷㄷ
-그녀는 신인가 ㄷㄷ
-'신'소하 ㄷㄷㄷ
"이야~ 신소하~ 인기 좋네~"
제나는 이번 일에 지대한 기여를 한 신소하를 순수하게 띄워줄 생각으로 한 말이었으나.
신소하의 귀엔 '아이고 우리 소하 우쭈쭈~ 너무 대단하네~', 어린아이를 둥개둥개 해 주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런 모습은 비꼬는 걸로 비춰졌고.
신소하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면서도, 최재훈이 보여준 채팅창을 확인했다.
그러자 뚱해 있던 표정이 스르륵 녹았다.
그녀가 자신의 허리에 양 주먹을 갖다 대며 '에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귀여운 모습이 어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신 저희 덕성고 급식의 실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학교 영양사분 상태가 오락가락 하십니다. 도대체 영양학을 어디서 배우신 건지, 아니면 조울증이라도 있으신 건지는 몰라도. 일주일 중에서 맛있는 메뉴를 하루에 몰아넣고, 나머지 3~4일을 수행의 날로 만드는. 그런 기행을 일삼는데요. 이거 보세요, 오늘 급식."
-아니 ㄷㄷ 미쳤네
-뭔 닭다리랑 새우튀김이랑 보쌈이 한번에 나오냐 ㄷㄷㄷㄷ-급식 미쳤네 그냥
"아니, 이게 좋아할 게 아니라니까요? 물론! 지금은 좋긴 해! 아니 그런데, 이 메뉴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다음날 맛있는 메뉴들을 가불받은 거라서. 이거 이러고 나머지 4일은 무슨 똥국, 황천의 비틀린 조기 구이, 건더기 감자랑 당근만 든 카레라이스, 오이소박이배추김치백 김치 3단콤보 이딴 것만 나와요. 한 번 덕성고 급식 검색해봐. 이미 유명할걸요."
-영양사분이 헬창인가보네요
-치팅데이식 급식 ㅋㅋ
-님들 여기 무슨 방송임?
-뭐길래 이렇게 많이 봄 ?ㄷㄷ
입소문을 타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추천과 시청자 수가 높아져 미튜브를 이용 중이던 사용자들에게 추천 형태로 노출이라도 된 건지.
3천 명에서 정체되었던 시청자 수가 차츰 늘어나갔다.
'해명'으로 시작한 최재훈의 방송은, 순수하게 방송이라는 형태로 주목을 받으며 성황리에 일단락되었다.
* * *
점심시간에 일단락되었던 최재훈의 방송이 예고대로 방과 후에 재개되었다.
이번 방송을 위해 막 개설된 최재훈의 미튜브.
방송 시작 전까지만 해도 네 명이었던 최재훈 채널의 구독자 수는, 뭘 했다고 지금 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훈이 형 또 왔다 인사 박아 봐라
-재훈이 집이넹? 누나도 지금 퇴근하고 집 가고 있당~ ㅋㅋ-재하~
알람을 받은 구독자들이 곧장 달려와 반갑게 그를 맞이해줬다.
"아, 어서오세요들. 여기,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최재훈은 방송을 켜는 동시에 들어온 그들에게 자연스럽고 오지게 인사를 박았다.
그러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니까 마치, 정말로 자신의 시청자들과 함께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은-
'아, 진짜로 방송을 진행하는 거 맞나?'
그러면, 이 사람들도 정말로 자신의 시청자고?
잠깐 멍하니 있던 최재훈이 이내 피식,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재훈아 애들 다 어디갔냐?
-그러게 왜 혼자야
-재훈이 일찐설에서 일찐이 일급 찐따였어? ㅠㅠ
-학교에서 방송 들러리 알바 고용했던 거였누 ㅠㅠ
찰랑!
처음 들어 무슨 소리인 줄은 모르겠으나,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역시 처음 보지만, 대놓고 기분이 좋아지는 문구가 떠올랐다.
-재훈아내패딩돌려줘 님이 1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이거 들러리 비용에 보태렴 ㅠㅠ
그 문구를 확인한 최재훈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아이고야, 만 원 후원! 이런 거액을!!! 아이고…."
최재훈이 폰을 바닥에 세워 놓고 거길 향해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제 인생 첫 후원이네요! 제 사리사욕을 위해 알뜰살뜰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디 보자- 재훈아내패딩돌려줘, 형님. 아니면 누님. 지금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최재훈이 곧장 방으로 향해 옷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겨울용 패딩을 꺼내 보여줬다.
실실거리는 만면엔 첫 리액션의 쑥스러움과 첫 후원의 기쁨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아니 리액션 개혜자네 ㅋ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 누가 보면 100만원이라도 받은 줄 알겠다
-아 이새기 왤케 기엽지 ㅋㅋ
찰랑!
-SMILEXD3님이 5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재훈 씨 너무 귀여워요 ㅠㅠ
찰랑!
-재훈이친누나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재훈이 패딩 왤케 낡은 거 입어 ㅠㅠ 누나 맘 아프게 이거 새 패딩 사는데 보태 써
다부진 몸과 차분한 표정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늠름한 분위기.
거기에 단정하게 단장된 외모가 더해져, 세련된 양복 차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이 된다.
얼핏 보면 성인 남성 보다 더욱 성숙한 최재훈이었다.
그런 그가 학생의 풋풋함이 어김없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이자 어른들, 주로 '누님'들의 입가가 지갑과 함께 활짝 만개했다.
"아, 아니… 아니! 여러분 잠깐만요…! 이거 어… 아니, 여러분…?"
만 원에도 방방 뛰어다니며 호들갑을 피웠던 최재훈이었다.
그의 입장에서 엄청난 거액에 해당하는 액수들이 거듭 후원되자, 그는 벙쪄서는 리액션을 하는 것도 깜빡한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좋다는 듯 후원과 환호가 빗발쳤다.
찰랑!
-ㅇㅇ 님이 1,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집 꼬라지 봐라 ㅋㅋ 대기업 임원 아들은 무슨 이거 완전 거지새끼였구만
그러니, 일부 심성 비틀어진 부류들은 배알이 꼴릴 수밖에 없었다.
악의 가득 담긴 그 후원에 한창 들떴던 방송의 분위기가 어색하게 굳었다.
시청자들도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당장 최재훈이 교복에서 갈아입은 티셔츠는 얼마나 오래 입은 건지, 프리팅이 흉하게 엹어지고 있었다.
배경에 간혹 보이는 집 내부 곳곳에서는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와 같은 궁핍함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것들이 존재 자체만 놓고 보면 부티가 줄줄 흐르는 최재훈과 부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로 하여금 형용 못할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동정.
열렬한 후원과 환호에는 약간의 동정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시청자들이 익명의 후원자를 거세게 비난하고 나섰다.
한창 그러한 집안 사정에 민감할 시기일 텐데, 그런 원색적인 비난이라니.
저 씩씩한 학생이 어떤 표정을 보일지, 벌써부터 가슴이 아팠다.
그런 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최재훈은 혈기 가득 담긴 도전적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방송의 분위기를 망쳤으며,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만족스럽게 미소 짓고 있을.
설레이는 기분으로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익명의 후원자- 라는 이름의 헤이터를 향해.
"지금은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가 선포하듯 말을 이었다.
"나중에 가서 어떻게 되나 봅시다."
확신으로 들어찬.
혹은, 자신의 미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려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더 이상 화면에 보이는 남자를 동정하지 않았다.
동정이 사라진다 해서 그에게 느끼는 감정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동정이 사라져 만들어진 빈자리가 다른 감정으로 즉각 메워졌다.
그렇게 더욱 거대해졌다.
최재훈은 자신의 일상을 시청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하고, 시간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위해 직장으로 향한다.
직장인 편의점에서 그는 시청자들이 보기에 병적일 정도로 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그게 바로 시청자들이 최재훈의 방송을 보고 있노라니 느낀 감상이었다.
왜, 어떻게 저리도 병적으로 성실히 살 수 있는 걸까.
최재훈은 이미 그 질문에 답했다.
암담함이 어지간해선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어, 누군가가 함부로 '거지새끼'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함부로 동정할 수 있는.
자신과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걸 위한 확고한 계획을 갖고 있어서다.
새벽 1시, 학생인 최재훈에겐 늦은 시각에 그의 방송이 다시 한번 재개되었다.
그가 방송을 종료하고 재개하길 거듭할수록 시청자는 점점 많아졌다.
처음 방송을 켰을 때는 고작 3천에 달했던 시청자 수는, 지금 5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재훈은 자신이 왜 이렇게 사는지.
뭘 위해, 그렇게 사는지 설명했다.
계획을 위해서.
그리고, 그 계획을 그들에게 알려줬다.
프로게이머.
누구나가 한 번쯤은 꿈 꿔 보았을 꿈.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놓아줄 수밖에 없는 꿈.
그렇기에 허황된 꿈.
방송 속 남자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면서도 그 허황된 꿈을 더없이 진지한 태도로 논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그 날, 많은 사람이 프로게이머 최재훈의 팬으로 거듭났다.
* * *
아주 늦은 시간.
혹은, 이른 시간.
새벽 5시.
최재훈의 방송이 다시 한번 재개되었다.
"허, 아니. 와, 설마설마했는데."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방송을 켜는 순간 채워지는 채팅창을 보곤 최재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들 진짜 부지런하시네요. 역시, 저 불꽃 같이 치열한 삶을 사는 사나이 최재훈에게 걸맞는 시청자십니다들. 전 지금 일어났는데,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신 거예요?"
-안 잔 거야
-0군이라고 들어 봤냐
"헉."
-닌 왤케 빨리 일어났냐?
"나도 안 잔 거야."
-헉
-'프로'게이머 ㄷㄷ
-(프로)게이(머)야 ㄷㄷ...
-최재훈 게이야 ㄷㄷ;
-지금까지 겜 한 거임?
"그렇게 말하면 뭔가 좀 거시기하니까, 꿈을 좇은 거냐고 물어봐 주세요."
-캬 ㄷㄷ
-게이야 ㄷㄷ 너무 멋지다
-그래서 지금부턴 뭐함?
"지금부턴, 대충 밖에 나가서 땀 좀 빼고 목욕한 다음에, 가족들 아침밥 차리면서 저도 좀 먹고, 그런 다음 자야죠."
-??? 잔다고?
-학교는?
"학교 가서."
-헉
-이집 만만찮네 ㄷㄷ
-0군 후보군
매일 이맘때쯤, 최재훈은 아침도 밤도 아닌 세상에 홀로 남겨져 사무치는 고독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고독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 그러면 여러분, 여기서 슬슬 인사드리겠습니다. 새벽 학교 교실에서 교복입고 잠들면서 마무리하는 방송이라니. 제 덕분에 귀한 구경 하시는 줄 아십쇼."
-존나 귀하다!
-구라 아니고 진짜 ㅈㄴ 귀한것 같긴 해 재훈아
-ㄹㅇ; 인류 역사상 최초 같은데
-닐 암스트롱과 동급 ㄷㄷ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카메라 앵글을 넓게 잡았다.
어둡고 텅텅 빈 교실 안에서 최재훈은 혼자였다.
평소 최재훈이었다면 시청자들은 그 광영이 쓸쓸하고 위태롭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최재훈은 오늘 따라 그 모습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지막까지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시청자들의 화면에 창이 하나 떠올랐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 * *
그날 저녁, 제나의 계정과 최재훈의 미튜브 채널에 해당 방송의 녹화분을 편집한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하, 끝났다…."
'이 뒤론 알아서 잘 해결되겠지.'
그렇게 최재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소의 일과를 보냈고.
다음날,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
최재훈의 눈이 가늘게 째졌다.
저 멀리 정문 앞에 가만히 서서 자신이 걸어오는 방향을 쳐다보던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더니 그대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반갑다는 듯, 잰걸음으로 총총총.
'뭐지…?'
최재훈은 눈에 힘을 줘 가까워지는 인영의 자세한 모습을 확인했다.
여자였고, 옷차림을 보니 덕성고의 학생도 교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정문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자신을 발견하자 그대로 다가온다고?
최재훈은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인적은 몹시 드물었다.
세상은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푸름은 몹시 짙어 밝은 아침보단 어두운 밤에 가까웠다.
그런 상황에서 학생도 교사도 아닌데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을 발견하는 즉시 다가오더니-
"재훈아!!!"
마치 친동생이라도 대하듯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른다.
그에 최재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훈으로선 알 방도가 없었다.
겨우 어제 일로 하루 만에 자신에게 '팬'이 생겼다는 사실을.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저 여자가 어제 방송과 영상을 보고, 힘든 환경 속에서 꿈을 향해 열심히 정진하는 기특하고 잘생긴(중요) 남학생에게 깊은 감명을 받고 열렬한 팬이 되었다는 사실을.
덕성고가 어디에 있는 학굔가 싶어 검색해 봤더니, 마침 자신이 사는 곳 근처라 출근하는 길에 들려서 선물을 전해주자는 호의로 가득한 계획을 세운 뒤 실행 중인 것뿐이라는 사실을.
평범한 사고관을 가진 성실한 직장인인 그녀는 간과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계획을 위해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고 깨어난 자신에게는 '아주 이른 아침'이지만.
최재훈에게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직전인 '아주 늦은 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제 딴에는 단번에 팬이라 알아 볼 수 있도록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친근함이 최재훈에게는-
"튀자."
빤스런을 종용하는 싸이코의 광기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제 최재훈은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끝났다고.
이 뒤론 알아서 잘 해결될 거라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절반만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영상이 업로드 된 이후로 모든 일이 알아서 잘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게 곧 모든 게 끝나는 결과로 귀결되진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어제 첫 영상이 업로드 되어, 사실상 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하루가 된 최재훈의 미튜브 채널.
해당 채널은 현재 수십만의 조회수와, 1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미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그런 경험이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부러워하고 기겁할 기록이었으나.
먼저 해당 기록을 확인한 제나의 기준에, 표현에 의하면-그저 무난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