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48화 (347/361)

348. 외전 역전의 제나 13

VLOG.

그 어원은 Video와 Blog의 합성어로서, 탄생 초기엔 인터넷에 올리는 영상을 일컫는 신조어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개인의 일상생활을 담아낸 컨텐츠를 일컫는 총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VLOG는 기본적으로 별도의 주제 없이 개인의 일상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그로 인해 차별화되는 소소하지만 세세한 디테일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의 일상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데, 그게 바로 VLOG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하네."

'VLOG가 자세히 뭐더라?'라는 최재훈의 의문에 김경식이 트리위키에 'Vlog'를 검색해 그 결과를 낭독했다.

"그럼 나, 수다쟁이 스피드와이건은 여기까지."

"고마워 스피드와이건~잘 가~"

"아, 목말라. 야, 안경. 제로콜라 좀."

"스피드와이건이 스피드하게 갔다 오지."

"아니, 저기요. 내가 셔틀이라는 폐습을 철폐시키려고 사투를 벌인 게 며칠 전인데."

"그러게? 전학생, 당신도 우리의 적인가?"

"나는 그 덩어리 새끼랑 다르게 2만 원짜리 샐러드바 사 줬잖아. 저 미친 이쁜 구석 하나도 없는 오타쿠한테."

"듣고 보니 선녀군. 그럼 스피드와이건이 스피드하게 갔다 오지 피슝빠쓩."

"점내에서는 뛰면 안 됩니다."

"나, 슬로우와이건 이해했다."

뛰는 시늉을 하며 걸어가던 김경식이 방금 전 매장 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본 여점원의 경멸 어린 시선이 담긴 주의를 받았다.

"그런데 브이로그라… 설명을 들어도 감이 잘 안 오네. 일상을 담아낸다라… 뭐 그냥, 24시간 내내 찍어 재끼면 되는 건가?"

"그건 또 다른 의미로 반응이 좋긴 하겠네."

"그렇지. 24시간 풀타임 촬영으로 나 최재훈의 은밀하고 신비로운 호기심 자극하는 일상을 담아낸 영상을 만들면 어? 가령 목욕 장면이라던가? 그 순간 인터넷 미튜브는 그냥 난리가 나는 거지. 지금 조회수 1위가 뭐였지? 데스파이어? 아니, 뭐야 이건. 강북스타일이 언제 졌어. 뭔 노래야? 영어도 아닌데? 이거 주작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둘 다 영어 아니잖아."

"지금 한국어의 위대함을 부정하는 건가, 남의 나라 언어 빌려 쓰는 미국인?"

"기름진 거 맥여 놨더니 말하는 꼬라지 보게."

"아무튼, 뒤졌다 데스파이어. 기다리세요 재입대, 제가 당신의 복수를 하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마라?"

제나가 정말로 불안하다는 얼굴로 최재훈에게 경고했다.

"아니, 저를 뭘로 보시고. 내가 진짜로 19금 영상이라도 제작할까 봐? 저는 유교와 미튜브 규정을 준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냥 뭐 적당히 자극적으로. 어? 웃통 까서 찌찌 파티 정도면? 나 최재훈이라는 남자의 마성에 빠트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찌찌 파…."

제나가 그 천박한 어조에 경악했다가, 겨우 진정했다.

눈앞의 최재훈은 '남자'가 아닌 남자였으니까 저 정도의 언행은 문제가 안 됐다.

정말 특이하고 바람직하게도, 이 세계에서 남자의 상반신 노출은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일이었으니.

'….'

그래서인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최재훈의 상의를 탈의한 모습을 떠올려서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들여야 했다.

최재훈의 반 나신을 상상하는데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세계라니.

이렇게 바람직-

'아니, 불건전할 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재훈이 찍은 영상을 통해 자연스럽고 합법적으로 그의 반 나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른인 그녀가 남고생인 최재훈을 대상으로 그런 상상을 하는 건 과연 어떨까 싶었으나-

'어쩌라고 여긴 남녀역전 세곈데.'

한심한 어른인 그녀는 거리낄 게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닌가….'

"으윽…."

그녀의 안에서 이성과 본능이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제나의 이성 : 야 병신아, 저 사람이 그런 영상을 찍으면,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의 반 나신을 보게 되는 거잖아]

그때, 이성군의 승전보가 들려왔다.

제나는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다른 년들이 저 사람의 뭐시깽이 파티를 본다니.

절대로 용납 못할 일이었다.

[제나의 본능 : 지랄, 어차피 그 영상 니가 편집해서 올릴 거 아냐? 편집해서 너 혼자 보면 되지]

그런데 갑작스러운 본능군의 증원 소식.

'어, 듣고 보니….'

짝!

"아니, 뭐야? 모기라도 잡았어?"

제나는 사고를 이어가다가 대뜸 자신의 따귀를 날렸다.

지금 자신의 꼴이 너무 징그럽고 또 한심함을 인지하고는 말이다.

"야…."

"응?"

"절대, 하지 마."

"뭘?"

"남들 앞에서 웃통 까는 거 절대 하지 말라고."

"뭐, 일단 알겠어."

아무것도 모르는 최재훈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긍할 따름이었다.

"크흠, 어쨌든. 니가 어떤 방향으로 영상을 찍어야 하는지 말해 보자면. 일단, 이번 니가 VLOG 영상 찍는 목적이 뭐야."

현재 그에게 제기된 일찐 논란을, 평소 그의 성실한 일상을 조명함으로써 반박하는 것이다.

나아가, 제나가 노리는 부차적 목적은 이를 계기로 최재훈이 머지않아 시작하게 될 방송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그 두 가지 목적을 두루 이루기 위한 방법.

간단하다.

인기.

영상이 자연스럽게 인기를 갖고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영상이 인기를 얻을까?

"인터레스팅해야지. 자,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VLOG에 흥미를 느낄까."

사람들은 VLOG를 통해 자신과는 다른 사람의 전혀 다른 인생과 일상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인생과 일상에 흥미를 느끼고 선호할까?

간단하다.

"특별한 사람의 VLOG."

특별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은, 그 특별한 사람에게만 평범한 일상이지.

다른 이들에겐 색다른, 대체 불가능한 컨텐츠가 되는 것이다.

최재훈이 흐음,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그러면, 나는 탈락 아닌가? 난 특별하고 뭐고 할 것도 없는 학생이잖아. 대한민국에 학생만 몇 백만 명이 있을 건데."

"그러면 김민성 걔 VLOG 채널은 왜 20만 명이나 봤을까?"

"그러게, 흠… 아. 잘생겨서?"

"그렇지. 내 눈엔 별로긴 한데, 어쨌든. 어떤 신분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말했다시피, 어떤 사람이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냥 학생? 니 말대로 흔해 빠졌지. 그런데 김민성처럼 잘생긴 학생은? 흔하지 않지. 김민성 이상으로 존나 잘생긴 학생은? 존나 흔하지 않지."

최재훈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럼, 나는 존나존나존나 잘생긴 학생이니까, 존나존나존나 특별한 거고. 그런 내 존나존나존나 잘생긴 면을 부각시키는 영상을 찍으면 되겠군. 맞지?"

"맞겠냐!?"

콜라를 갖고 귀환한 김경식이 마치 일본 에니메이숑 속 딴지 담당 캐릭터처럼 반응했다.

당연히 최재훈이 농담을 한 거라 여겼기에.

보나마나 저 까칠한 전학생도 자기처럼 딴지를 걸 것이다.

"이그젝클리."

"맞는 거냐!?"

그런데, 오히려 손가락을 튕기며 그렇게 말하자 당황해서 다시 한번 더 반응.

"뭐."

전학생은 그런 김경식을 또 뭐냐는 듯 귀찮다는 얼굴로 노려봤다.

"아니, 아니. 솔직히 잘생긴 편은 맞긴 한데- 그, 특별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김경식이 최재훈을 쳐다봤다.

최재훈은 전학생을 쳐다봤다.

그래서 김경식 역시 다시 전학생을 쳐다보고, 진심이냐고 진의를 물었다.

"하? 저게 특별할 정도는 아니라고? 뭐, 니 혹시 질투해? 질투 대상으로 삼기엔 얘 급이 너무 높지 않나?"

전학생은 정말로 가당찮다는 듯 김경식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말로, 최재훈보다 잘생긴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였다.

'얘 뭐지…?'

남자 오타쿠로서, 남자 보기를 돌 이상의 찌꺼기 보듯 하여 누구보다 객관적인 관점을 가진 김경식이 보기에 분명 최재훈은 미남에 속한다.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중상급?

그리고 김민성은 그보다 높은 상하급이나 상중급 정도 될 것이다.

그런데, 저 냉철한 전학생이 최재훈을 그런 김민성보다 훨씬 잘생겼다는 듯 여기고 있으니.

'혹시, 눈이 삔 건 사실 나고. 재훈이는 진짜 객관적으로 존나존나존나 잘생긴 게 맞나?'

김경식은 덩달아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현재 억울하게 일찐이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친구가, 잘못된 미의 기준을 맹신하여 일을 그르칠 수도 있기에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객관적 시선을 가진 제3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저기요 직원 분?"

휴식 시간인지, 한가하게 서성이고 있는 방금 전 여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으… 무슨 일이시죠."

그녀는 질색을 하면서도 답했다.

"별 건 아니고, 여기 얘 외모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경식이 가리키자 최재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T자로 한 채 천천히 빙글 빙글 돌기 시작했다.

오븐에서 돌아가는 통돼지마냥.

여직원은 김경식을 바라볼 때처럼 내키지 않는 티 팍팍 내며 최재훈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금방 풀어져서 흐뭇한 미소를 그린다.

"아니 뭐, 훈훈하신데요? 응. 키도 크고, 비율도 좋고. 운동도 하는 것 같고."

반면에 제나가 눈썹을 팍 구겼다.

"그, 얼굴만 놓고 보면요?"

"얼굴이요? 음… 귀여우신데…? 관리하면 더 잘생겨지실 것 같고."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제나가 말하던 것처럼 열정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봤지?'

김경식이 그런 의미를 담아 시선을 향하자, 제나가 혼란스럽다는 듯 고갤 갸웃거렸다.

'죄다 눈이 삐었나?'

세계 최고의 실력자가 된 이후로도, '잘생긴 남성 게이머'라는 타이틀에 '세계 최고의 게이머'라는 타이틀이 묻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의 외모와 경쟁해야 했던 최재훈이다.

물론, 온갖 관리를 받으면 한창 물이 올랐던 그때의 외모와 비교하면 다소 다르긴 하지만-

'별 차이도 없는데?'

이 남녀역전 세계는 미의 기준이 묘하게 다르기라도 한 걸까.

제나는 끝내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만전을 기하기 위해 그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기로 하고.

결국, 마지못해 차선책을 찾아 나섰다.

외모를 제외하고, 최재훈이 학생으로서 부각되는 특이한 점.

답은 금방 나왔다.

"야, 최재훈."

"응?"

"니 지금 레오레 티어 어디냐?"

최재훈은 대답대신 김경식을 가리켰다.

그러자 포권 자세를 취하며 최재훈을 대신하여 말했다.

"미스터 최재훈께선 현재 챌린저 티어이신데스."

"이건 또 뭔. 뭐, 어쨌거나. 그러면 별거 없네."

"챌린저가 별거 없다고? 네 이놈!"

"어허, 진정하게 경식쿤. 그나저나 섭섭하긴 하군."

"아니, 챌린저가 별거 없다는 게 아니라.

좋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밤낮, 휴일 없이 일하는 부모.

그럼에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형편.

그런 기구한 환경 가정환경에서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 18세라는 나이에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버는 돈 족족 가족을 위해 사용하기에 꼬질꼬질한 신발, 가방, 티셔츠 필기구.

그런데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르바이트에서는 그 성실함 때문에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

동시에, 가족의 미래를 자신이 짊어지고자 프로게이머라는 험난한 미래에 도전한다.

빛나는 재능을 갖고.

제나가 피식 웃으며 최재훈에게 말했다.

"그냥 뭐, 딱히 별거 없이. 신경 안 쓸 거 없이. 니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겠다고."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의 최재훈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

그거면 충분했다.

그거면 사람들에게 더는 없을 충분한 해명이 되는 동시에, 어필이 될 터였다.

* * *

다음날 아침 등교시간, 교실에 도착한 신소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가 있었다.

"어이."

신소하는 눈길도 안 주고 새침하게 자리에 가서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하."

제나는 아랑곳 않고 그녀의 자리로 따라갔다.

그녀의 옆자리 책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야, 신소하."

"뭐."

"너, 그때 그거 찍었지."

말도 섞기 싫다는 의지를 아낌없이 표출하는 신소하의 태도에 제나는 거두절미하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신소하는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심하게 답했다.

"아니."

"그때 그게 뭘 말하는 건지 알고?"

"안 궁금해."

"하."

제나는 한껏 토라진 이 꼬마가 마냥 귀엽다며 헛웃었다.

그런 제나의 태도가 거슬린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제나를 쏘아봤다.

"그리고, 부탁인데 말 걸지 말아줄래?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그때, 최재훈이 나 구해주는 모습. 그거 너가 찍었잖아. 아니야?"

신소하는 찔려서 당황하길 잠깐.

뭐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자신이 찔릴 이유가 없음을 깨닫고 다시 기세를 되찾았다.

"그래, 찍었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나 그거 영상 좀 주라."

"하."

제나의 말에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확인한 신소하는 제나가 최대한 불쾌하길 바라며 거만한 표정을 만들었다.

"너 진짜 웃긴다. 아니, 대단해. 바로 어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놓고, 오늘 갑자기 찾아와서 그럴 수가 있네?"

"내가 생각해도 웃기긴 해."

"이야, 자존심도 없나봐 우리 제나?"

"뭐, 걔를 위해서 이 정돈 감수할 수 있지."

걔.

들을 것도 없이 최재훈이리라.

그가 언급되자 거만하게 빳빳함을 유지하던 신소하의 표정이 구겨졌다.

"갑자기 재훈이가 왜 나와?"

"걔 지금 어떤 이야기 돌고 있는지는 알지?"

"…."

일진 논란.

당연히 안다.

지금 그것 때문에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며 또 짜증나는지 모른다.

'재훈이가 어떻게 그런 놈들이랑 똑같은 부류야.'

이전에, 자신이 유우준에게 찍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손절했었던 것들.

자신이 그 상종하기도 싫은 가증스러운 것들의 사과를 받아주고, 말을 섞어주는 것도 전부 그 때문이다.

그래도 꼴에 인싸 부류에 속하는 그것들에게 재훈이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하면, 나름대로 좋은 소문이 퍼져서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일진설이 퍼진 지난 며칠, 신소하는 최재훈의 오명을 벗겨내기 위해 분주히 활동했다.

'그런데 그것도 몰라주고 이런 애랑….'

갑자기 최재훈에게 속상한 마음이 들고-

'아니, 아니지. 재훈이는 죄가 없어. 이, 이- 어이없는 지지배가 돈으로-'

그 속상한 마음은 곧 제나를 향한 적대심이 된다.

"그래서 뭐! 갑자기 그 이야긴 왜 꺼내는데."

"왜긴. 그거 해결하는데, 니가 찍은 동영상이 도움이 되니까 그렇지."

"뭐?"

생각해 보니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제 한 몸 지키려고 도망치기 바쁠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서서 몸을 던져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최재훈의 모습.

그 모습은 그가 유우준과 같이 비열하고 한심한 부류가 아님을 말해주는 확실한 방증이었다.

'내가 왜 이걸 진작에 생각하지 못했지?'

왜 진작에, 학교에 영상을 퍼트리지 않았지?

그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사심 때문이었다.

당시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났던 최재훈의 모습을 자기 혼자서 독점하고 싶었다.

남들은 모르는, 최재훈의 가장 멋진 모습을 혼자 알고 있다는 우월감을 간직하고 싶었다.

신소하는 그 사실을 인지한 지금도 여전히 '내 영상'을 남들과 공유해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자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최재훈이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와중, 시덥잖은 이유로 고집을 부리는 자신이 한심했다.

내키지 않는 걸 넘어서 절대로 싫다.

그럼에도 신소하는 영상을 제나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어디까지나 최재훈을 위해서.

'잠깐.'

생각해 보니-

"네가 뭔 이야길 하려는지 알겠어."

"오호."

"그래서 말인데, 너는 이제 이 일에 신경 안 써도 돼."

"응?"

"네가 하려는 일, 내가 더 잘 할 수 있으니까."

제나는 이 당돌한 꼬마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얼굴에 호기심을 나타냈다.

어느새 만면에 여유를 되찾은 신소하.

그녀가 여유의 정체를 밝혔다.

"너, 이거 학교에 퍼트리려고 그러는 거 맞지? 그런데, 너 친구는 있어? 내가 알기로, 재훈이 말고 너랑 놀아주는 애 이 학교에 한 명도 없는데, 아니야?"

"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신소하가 보이는 여유의 정체를 깨달은 제나가 가소로움에 실소를 터뜨렸다.

'뭐, 그래도….'

최재훈을 위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그 건방진 태도는 귀엽고 또 갸륵하게 느껴졌다.

제나는 그녀를 존중하고,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래, 그럼 우리 학교에 퍼뜨리는 건 너한테 부탁할게."

"응?"

의외네.

이렇게 순순히?

꿍꿍이가 뭐지?

신소하는 뒤늦게 제나의 말이 어딘가 이상했음을 깨달았다.

"'우리 학교에 퍼뜨리는 건?'"

"니 말대로. 나는 이 학교에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 너는 많고. 그러니까, 학교는 너한테 부탁하고. 난 학교 밖, 인터넷 쪽을 맡을게."

"하."

무슨 얘길 하나 했더니.

안 되는 것 같으니,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자 이건가?

아니.

부스러기가 뭐야.

이런 대단한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면 최재훈은 엄청난 인기와 유명세를 얻고, 그걸 계기로 유명인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응?"

"인터넷 쪽도 내가 맡을 거니까, 너는 그냥 신경 꺼. 내가 알아서 다 할게."

'내 꺼'다.

내 걸로 최재훈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모든 공은 자신의 차지여야 했다.

너에겐 나눠줄 생각 추호도 없다.

신소하가 자신의 의지를 단호하게 표명했다.

그럼에도 제나는 여전히 여유롭게 말했다.

"니 논리대로라면,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아?"

"뭔 소리야?"

"나는 학교에 친구가 없고, 넌 많으니. 너가 맡겠다며. 그게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며. 그러니까, 인터넷 쪽은 내가 맡는 게 맞지."

"하, 그게 뭔."

신소하가 어이가 없다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덕성고에만 친구가 있는지 알아? 뭐, 인터넷 쪽으로 발 넓은 거 얘기하면. 팔로워 수라도 얘기하는 건가? 너 내 팔로워 몇 명인지 알아?"

그렇게 신소하가 당당히 자신의 팔로워 수를 내세우려고 한 순간-

"아."

뒤늦게, 며칠 전 제나의 SNS계정에 접속했었던 일을.

그때, 확인했던 그녀의 팔로워 수를 기억해낸다.

그런 신소하의 생각을 읽었는지, 제나가 승자의 미소를 띄웠다.

"알았지?"

"싫은데?"

"뭐?"

"너 팔로워 많아서 어쩌라고. 이거 내가 찍은 내 영상인데. 그러니까 내가 퍼뜨릴 거야."

"가능한 빨리 해결되는 게 걔한테도 좋지 않을까?"

"…."

막무가내로 끝까지 땡깡을 부릴 생각이었던 신소하의 입이 허무하게 닫혔다.

그렇게 한참을 꿍해 있다가- 한껏 참았던 숨이라도 되는 양 말을 거세게 내뱉는다.

"아! 그래! 너 팔로워 많아서 좋겠다! 그래! 해! 해! 됐냐!?"

이씨!

그녀는 나 짜증나니까, 너도 짜증나라며 한껏 열 내며 토라졌다.

그렇게 상대방의 짜증을 부추겼다.

몹시 서툴렀다.

그 증거로, 제나는 핸드폰을 조작하는 신소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야."

"뭐! 그보다 너, 전화 번호 뭐야! 뭐 어떻게 보내!"

제나가 번호를 찍어주기 위해 신소하의 손에 들린 폰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신소하는 손을 거세게 내빼며, 비어 있는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겨 먹겠다고. 짜증내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그 모습.

번호를 찍어주고 싶다면 간단하게, 그냥 연락을 하면 된다.

그런데, 구태여 '새 연락처 추가'기능을 연 뒤 씩씩거리며 한 땀 한 땀 번호를 입력하곤, 이름 란에 '친구 아님'이라 적어 넣는 그 모습.

그런 신소하의 모습에 제나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갑자기? 너 진짜 이상하다."

"아니…."

제나는 신소하가 되돌려준 핸드폰을 받으며 말했다.

"이해해 줘서 고맙다고."

"…뭐?"

"같이 잘 해 보자."

제나가 친근감을 담아 그녀의 팔뚝을 툭툭 두드렸다.

남자들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지만 그녀의 동작은 몹시 자연스러웠다.

반면에, 질 수 없다며 제나를 따라 그녀의 팔뚝을 두드리려는 신소하.

풀스윙이라도 날릴 듯 거침없이 팔을 들어 놓고서는 멈칫 주저한다.

그렇게 노려보는 건지 눈치를 보는 건지 모를 얼굴로 잠깐을 망설이다 겨우 제나의 팔을 두 번 두드렸다.

툭툭-이 아닌.

톡.

톡.

그 모습에 제나는 또다시 끅, 끅,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을 삼켰다.

왜인지 쑥스러워진 신소하는 신경질적으로 등믈 내밀어 제나를 반에서 내쫓았다.

* * *

김민성은 구독자 20만을 보유한 기성 미튜버로서, 매달 천만 원 안팎의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같은 학생 중에서 자신만큼 돈을 버는 녀석이 있을까?

아니.

현재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아도, 지금의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벌 녀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보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 녀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싸구려 차나 타고 다니면서 연금이나 받아먹는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

김민성에게 학교란 만만한 놀이터였다.

때로는 자신의 영상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였다.

그렇기에 유용하고 즐거운 장소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다.

"하, 시발…."

지금의 김민성은 유우준과 달리 정학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등교할 생각이 전무했다.

그의 미튜브 채널이 말 그대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사회악 새끼 뒤져라

-이런 새끼들이 미튜버하면서 월천버는 건 진짜 ㅋㅋ 시발 못참겠네 -죽창... 죽창은 어딨는가...

-죽창안되면 제발 아구창이라도 날리고싶다

헤이터들이 몰려와서 동영상에 악플을 도배했다.

이 정도는 괜찮다.

악플 다는 찌질이들이야 항상 있었으니.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일찐 아니라며

-1.1찐이라도 되는가보지 십새

-그 유우준이라는 애랑 맨날 놀러다니더만 뭔 ㅋㅋ

-유우준 생긴건 저래도 마음은 여린 애라며 ㅄ아

-여리긴 하더라 ㅋㅋ 역관광당하고 우는 거 보면 외강내유 맞긴 해-외강이라기엔 지나치게 출렁거리던데?

-외유내유 ㅋㅋ

-시청자 기만 ㅈ대네 ㅋㅋ

-실망이에요 오빠 구독 취소할게요

등을 돌리는 팬들.

시시각각 내려가는 구독자 수.

그리고, 시시각각 쌓여가는 비추천과 신고.

이대로면, 머지않아 그의 자랑인 20만 구독자라는 기록이 깨질 마당이다.

어쩌면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채널 자체에 경고가 들어와 더 이상 수익 창출이 불가능해지고.

나아가- 채널이 정지될지도 모른다.

"시발,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개새끼들아…."

돈을 갈취한 적도, 누군가를 폭행한 적도, 괴롭힌 적도 없다.

-이새끼 고등학교 가서 사람됐나 싶었더만 여전했네 ㅋㅋ-사람 고쳐쓰는거 아니래 민성아-이 새끼가 진짜 바뀔거였으면 이름부터 반성으로 바꿨지 ㅋㅋ-이새끼 내 인생 조져놓고 지는 미튜브로 월천 번다고 자랑하는거 존나 꼬왔는데 하... 시발 그래도 신이 아주 개새끼는 아니구나 -오빠 요즘도 막 아무애나 건들고 다닌다며 ㅋㅋ 한심하다 진짜

미튜브를 시작한 이후로는 말이다.

억울했다.

자신이 어째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유우준 때문에?

아니, 김민성이 생각하기에 근본적 원인은 유우준이 아니다.

오히려 유우준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였다.

'최재훈….'

그 웃으면서 사람 반 죽여 놓는 미친 싸이코면서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설치는 그 새끼가 전부 문제였다.

김민성은 이대로 당하기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최재훈 일진설'을 퍼뜨린 게 바로 그였다.

예상보다 일이 잘 풀렸다.

얼마나 잘 풀렸는지.

자신의 집에 붙은 불을 어찌 꺼야 할 지 모르겠어서, 화풀이 삼아 다른 집에 불을 질렀더니.

자신의 집에 붙은 불이 옆집으로 옮겨 붙는 꼴이었다.

-뭐야 그럼 일찐참교육남 최재훈 쟤도 같은 새끼란 거 아님? ㅋㅋ-들어보면 유우준 걔보다 더 개새끼라던데?

-하루종일 학교에서 퍼질러 자는거 깨운 교사 한 명 반병신 만들어놓은 이후로 교사들이 손도 못댄다더라 ㅋㅋ-아빠가 무슨 대기업 임원이라 교사들도 뭐 어찌 못한다던데 -[사진] 이거 새벽에 시내에서 찍힌 사진이라던데, 여자 끼고 술집 들어가는 사람 일찐참교육남 아님?

-뒤통수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와 ㅅㅂ ㅋㅋ 뒤통수 찡하네

-김민성 얘기 들어보니까 이번 스파링 방송한 것도 최재훈이 억지로 시킨 거라며 -오히려 유우준이 최재훈 참교육하려다 실패한 거래 ㅇㅇ-아니 솔직히 누가 ㅋㅋ 중학생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한 새끼한테 시비를 거냐고 -ㄹㅇ ㅋㅋ 체육관 선수들 다 빽으로 두고 있고

김민성 쪽 의견도 들어 보니 유우준이 개새끼인 건 맞지만, 최재훈 걔는 더 개새끼더라.

그때 최재훈이 자기 친구들 괴롭히지 말라 한 것도 시청자들 의식하고 한 쇼라더라.

최재훈은 이번에 유우준을 반 죽여 놓고도 아무런 징계도 안 받았다더라.

선생도 못 건드는 진짜 위험한 새끼라더라.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린 와중에도, 여전히 김민성은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민성이 그들을 이용하여 최재훈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자, 그에게 향해졌던 '일찐을 향한 규탄'은 최재훈에게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

"후…."

갈수록 확연히 줄어드는 악플, 비추천, 신고.

김민성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 기세라면-

'자숙 몇 개월- 아니, 몇 주 하고 복귀하면 되겠네.'

그러면 모든 게 잘 해결되리라.

김민성은 커뮤니티에 최재훈 일진 설을 올리는 이들의 아이디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기꺼이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글쓴이 : 익명

제목 : 일찐참교육남 최재훈 그새끼랑 같은 학굔데 썰 푼다

임시방편이다.

결말이 정해져 있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 김민성에겐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의 머리는 자신의 집에 난 불을 끌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며칠 뒤.

관심이 식은 건지, 더 이상 비난하는 사람이 없는 건지, 아니면 김민성이 모조리 차단해 버린 건지.

그의 미튜브 채널엔 더 이상 악플이 올라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날, 김민성은 자신의 몰골을 일부러 초췌하게 만든 뒤 찍은 영상을 편집하여 올렸다.

해명과 사과.

이번 일에 깊은 반성을 느끼고 자숙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었다.

영상을 올리고 머지않아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람.

무수한 댓글.

김민성은 마치 전재산이 걸린 도박에서의 패를 확인하는 도박중독자처럼, 퀭한 눈과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댓글을 확인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대부분이 김민성을 옹호하는 댓글이었고, 악플은 극소수였다.

비추천의 수도 아주 낮고, 신고는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한다.

김민성은 혹시나 싶어 한참동안 경과를 지켜보았고, 더욱 만족했다.

그는 아주 오랜만에 두 다리 쭉 뻗고 푹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맞이한 상쾌한 아침.

아니, 저녁.

얼마나 푹 잤는지, 그가 일어났을 땐 이미 오후 8시였다.

김민성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에 향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직접 구매한 고급 커피 머신으로 여유롭게 커피를 내렸다.

그리고 컵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댓글을 확인했다.

"…."

입으로 컵을 갖다 대던 김민성의 몸이 부자연스럽게 정지했다.

그런 와중, 마우스 휠에 올려놓은 중지만이 바쁘게 움직였다.

"뭐, 뭐야…?"

추천의 30배에 해당하는 비추천 수.

악플 외의 댓글은 보이지가 않는 댓글창.

김민성의 눈에 한 댓글이 들어왔다.

-[링크] 이거 뭐임? 니가 한 얘기랑 다른데 해명좀

김민성은 홀린 듯 링크를 타고 접속했다.

그러자 어떤 영상이 재생되었고-

-아, 안녕하세요. 그, 일찐참교육남… 하, 씨. 내 입으로 말하니까 더 쪽팔리네. 아무튼, 여러분이 일찐 참교육남으로 알고 계시는 최재훈입니다. 뭐, 누구는 제가 세계 최강의 일찐이라도 되는 양 말하긴 하던데-

화면 속 최재훈이 어이가 없다며 피식 웃었다.

화면 너머 김민성은 그게 자신을 비웃는 거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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