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47화 (346/361)

347. 외전 역전의 제나 12

"유노왓암생?"

지금 최재훈의 책상에 걸터앉아 그에게 말을 붙이는 제나의 모습을 본 주변 학생 몇몇이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들이 보거나 들은 바에 의하면 저 전학생은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음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라도 하듯, 기본적으로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지금, 최재훈을 대하는 그녀의 표정은 분명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를 대할 때 기본적으로 짓는 웃음이 미소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웠다.

최재훈은 제나와 그토록 기묘한 첫만남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런 그녀의 표정이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양 의미심장해 보였고.

지금 자신을 보며 양쪽 입꼬릴 힐쭉 끌어올린 얼굴은 ,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양 여유롭고 짓궂어 보였다.

그렇기에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교실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던 최재훈을 압도하는 존재감이라니.

남들이 보기에 그런 제나와 최재훈의 모습은 이성적인 관계라기보다는 흡사 주인과 하인- 아니지, 여왕과 무언가 같았다.

하지만 그런 제나의 제왕적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케이 그러면-…"

'응?'

본론을 말하고 난 뒤에야 그녀는 뒤늦게 허벅지에 위화감을 느꼈다.

확인해 보니, 최재훈의 팔꿈치가 닿고 있었다.

최재훈은 책상에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어 제나를 쳐다봤다.

제나는 그런 최재훈이 엎드려 있는 책상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책상의 면적과 둘의 자세 상, 최재훈의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제나의 허벅지에 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최재훈은 반팔, 제나는 치마 차림이었다.

"…."

의식하자 온 신경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맨살 대 맨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친년. 맨살 대 맨살은 무슨. 끽 해 봐야 팔꿈치 닿은 걸로 호들갑은.'

같이 스스로를 타이르며 신경 쓰지 않으려 해 봤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경 쓰여 미칠 것 같았다.

지금 보니, 거리도 너무 가깝다.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제나를 올려다보는 최재훈과 그를 내려다보는 제나.

둘 중 한 명만 얼굴을 내밀면 닿을 것 같았다.

'닿아??? 뭐가????????????? 뭐, 어쩌라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니 둘, 셋도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까지 신경이 쓰였다.

뒷목에 닿는 공기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기온은 그대로지만 뒷목이 빨갛게 달아올라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진 것이다.

제나는 결국 참다못해 도망치듯 시선을 돌-

'아니, 잠깐.'

-렸다가, 최재훈을 다시 쳐다봤다.

"??"

맹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최재훈을 말이다.

'얘는-'

아니.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멀쩡함?

왜 아무 신경 안 씀?

'어?'

열 받네?

역설적으로 열이 받아 차게 식어버린 제나의 양쪽 미간이 구겨졌다.

그녀가 다리를 툭툭 튕겼다.

최재훈이 팔꿈치에 감촉이든 진동이든 염병이든 뭐든 느끼게.

그러면 지도 의식하지 않겠는가.

"응?"

않았다.

똑같이 맹한 상판으로 대답하는 꼬라질 보니.

그래서 다시 한번.

"왜?"

마찬가지였다.

그 태평한 낯짝을 보고 있노라니 순수한 짜증이 끓어오른 제나가 으르렁거리며 표정으로 말했다.

'디질래?'

'아, 아니요…?'

최재훈이 바들바들 떨며 표정으로 답했다.

책상에 앉으며 다리를 꼬울 땐 여유자적 느긋했던 그녀가 당장 모조리 엎어버리려는 듯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풀고 일어섰다.

그를 내려다보며 눈에서 흘러넘치는 짜증을 그에게 뚝뚝 떨어트렸다.

'무, 무슨 일이신지…용…?'

=알 거 없고, 학교 끝나면 거기로 오기나 해. 늦으면 뒤진다 진짜.

제나가 영어로 통보한 뒤 휙 몸을 돌려 떠났다.

'이, 이게 소집…?'

최재훈은 영문은 모르겠지만 제나가 빡친 것만큼은 알겠다며 두려움에 몸부림쳤다.

자신 때문에 빡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자신이 뭘 했기에 빡친 건지 몰라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문득 뇌리에 자신이 학교 뒷담 밑에서 엎드려뻗쳐 있는 모습이 스쳐갔는데, 갑자기 미래 예지 능력을 개화한 건 아니길 빌었다.

* * *

스파링 사건 이후, 제나는 김태한에게서 몇 번의 문자를 받았다.

그는 가장 먼저 변명을 했다.

믿어주진 않겠지만 자신은 딱히 유우준처럼 남들을 직접적으로 괴롭힌 적이 없다는 말을 모호하고 간접적으로 전한 내용이었다.

제나는 그걸 믿어주었다.

그러자 김태한은 신나서 대화를 이어갔고 잠시 뒤, 너에게 관심이 있다는 말을 이번에도 역시 모호하고 간접적으로 전했다.

제나는 그 모호하고 간접적인 대답에, 명료하고 직접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제나의 답장이 도착한 이후 김태한에게선 더는 문자가 오질 않았다.

김태한에겐 애석하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둘은 사는 세계가 크게 달랐다.

정확히는, 곧 사는 세계가 크게 달라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설령 둘이 사는 세계가 같았더라도 제나의 대답은 같았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이미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으니.

징계를 받아서인지, 아니면 별도의 이유가 있는지.

월요일 날, 김태한은 끝끝내 등교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나의 주변을 서성이던 김태한이라는 존재가 사라졌다.

그러자 제나에게 관심이 있었지만 김태한 때문에 몸을 사렸던 이들이 다시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나는 그들 모두가 보란 듯, 최재훈에게 찾아가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것만으로 다시 꼬이기 시작한 날벌레들이 대부분 박멸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끈질긴 날벌레들은-

"관심 없으니까 꺼지래도?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니가 나랑 급이 맞다고 생각해?"

그녀의 방식대로 처리했다.

그들은 표정관리가 힘들 정도로 불쾌했지만, 도리어 그녀에게 비굴하게 사과를 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의도하진 않았으나 제나의 거침없이 당당한 태도는, 그녀가 의외로 최재훈과 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걸었던 그들의 기대를 부정했다.

'하, 참나.'

제나는 지금의 상황이 마냥 유쾌했다.

이 시절의 최재훈을 최재훈을 자신이 마냥 이끌어 줘야 하는 가엾고 여리고 사랑스러운 존재라 생각했는데.

그는 지금도 이렇게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그가 자신과 대등한 관계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제나는 깊은 충실함을 느꼈다.

18세 최재훈이 고등학교를 폭력과 공포로서 장악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빽이 되어줘, 자신의 학교생활이 수월해졌다.

그 사실에 대견함과 기쁨을 느낀다.

참으로 글러먹은 어른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제나 스스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지금 18살인데 뭐~'

그녀는 이미 이 세계에 완벽에 가깝게 적응된 상태였다.

제나는 그 뒤로도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음울한 괴롭힘을 시도해 오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소위 서열 정리를 진행했다.

이 경우엔 딱히 최재훈의 후광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뒤에선 잘만 지랄하더니, 얼굴 마주 보곤 아무것도 못하네?"

애초에 그녀는 기와 존재감, 그리고 위압감이 쎈 걸로는 어디 가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결과.

그녀는 최재훈과 비슷한 입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그 누구도 그녀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참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그 사람과 함께 할, 이상적인 학교생활이 기대될 따름이었다.

'그 두 명한테 고맙네.'

그녀는 새삼 이 모든 일의 발단인 김경식과 신소하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 둘의 얼굴을 떠올린 그녀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

하지만 막상 실물로 보게 되자, 그녀는 곧바로 똥 씹을 표정이 됐다.

얘기를 하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플 시기인 최재훈을 배불리 먹여 놓을 생각으로 방과 후 약속 장소로 지정한 한 '그곳'.

가격이 19, 800원에 해당하는 프렌차이즈 샐러드바의 자리를 잡고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앞에 최재훈이 뒤에 김경식과 신소하를 주렁주렁 달고 나타났다.

"뭔데 그것들은."

"같이 가면 안 되냐 묻길래, 나는 결정권이 없다고 말했더니. 너한테 직접 와서 묻겠다네."

"아, 혹시나 싶어 말해 두는데 난 신소하한테 그냥 끌려온 거임."

해야 할 '숙제'가 많다며 책과 연필 대신 핸드폰을 꺼내더니, 일본 여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임 삼매경인 김경식.

그가 핸드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떼잇!

-떼잇!

-히아응~

핸드폰에서 새어나오는 콧소리 가득 담긴 일본 여성의 소리에 제나가 질색했다.

신소하 역시 질색했다.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여자 직원 역시 질색했다.

하지만 저번 사건 이후로, 김경식은 남들의 시선 따윈 신경 안 쓰게 되었다.

유감스러운 성장을 겪은 것이다.

제나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둬 신소하에게 향했다.

그러자 오기로 가득 찬 신소하가 애써 살갑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도 껴 주랑~~~ 사람 많을수록 재밌자낭~"

"안돼. 됐지? 잘 가."

공은 공이고 사는 사.

그들에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건 이거였다.

"아, 그래도 기왕 왔으니. 너희도 뭐, 먹고 가라."

"그래도 돼?"

김경식이 드디어 핸드폰을 들고 의외라며 물었다.

"와~ 대박~~~ 역시 쿨함의 나라인 미국 출신~ 우리 제나 완전 멋져~"

"아, 참고로. 우리랑 거리 두고 떨어져서 먹어라. 우리끼리 할 얘기 있으니."

"아, 그래 상관 없-"

"긴 뭐가 없어!"

김경식의 말을 신소하가 버럭 끊었다.

"나 거지 아니거든? 나도 여기서 먹을 돈 있어! 그러니까 필요 없고, 얘랑 우리끼리 할 얘기가 도대체 뭔데?"

"얘한테 중요한 얘기."

"뭐, 뭐 어떻게 중요한 얘긴데?"

"내가 너한테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나?"

여유, 나아가 우월감마저 느껴지는 제나의 비웃음에 신소하가 입을 떡 벌고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가 제나에게서 홱 고개를 돌리며 최재훈에게 말했다.

"재훈아! 우리 옆에서 먹어도 되지!?"

"어, 음… 전 지금 발언권이 없어서…."

"우리가 사 줄게!"

"우리?"

김경식이 핸드폰에서 고갤 들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아이씨! 그래 내가 사 줄게, 됐어!?"

"와-"

총 세 명, 6만원 지출.

고2치곤 많은 용돈을 받는 신소하에게도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지갑의 비명을 무시하고 기꺼이 콜을 외쳤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럼 뭐! 뭐가 문젠데에에~~~ 응~? 우리랑 놀자~~~"

신소하가 최재훈을 팔을 붙잡고 몸을 흔들었다.

"김경식, 너도 빨랑!"

"우.리.랑.놀. 자~~~"

쓰게 웃던 최재훈은 못내 신소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신소하. 아니, 소하야."

"응응?"

"미안해. 이건 나한테도 중요한 일이라."

최재훈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무게감이 달랐다.

경직된 신소하의 얼굴에선 절망마저 느껴졌다.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물어봤다.

"혹시 둘이… 그렇고 그런 관계야?"

"그건 아니고."

최재훈은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별 생각 없이 현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말했다.

그런 대답에 신소하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에 제나의 표정은 썩었다.

"그러면 그러면, 내일은 우리랑 노는 거다 응?"

"아 그건…."

"왜에에 또~~~"

"그, 내가. 시간이 좀 없어서…."

"전학생이랑 놀 시간은 있구!?"

"그게, 노는 게 아니라 해야 하나…."

"뭐?"

"일을 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이게?"

"뭐? 일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말해도 됨?]

[ㅇ]

최재훈과 제나가 눈빛으로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 사실 내가 지금 제나 밑에서 말 그대로 일을 하고 있거든."

"일? 웬 일?"

"뭐,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여러 가지로 도와주는 건데."

"그게 뭐야? 그러면 쟤랑 할 중요한 이야기가 그거랑 관련된 거야?"

"그렇지?"

"혹시 뭐, 돈도 받고 그런 거야?"

"그렇…지?"

신소하가 입을 떡 벌리고 제나를 쳐다보길 잠시.

"하."

"?"

신소하의 조소에, 제나가 고갤 갸웃거렸다.

그녀는 제나를 처량하게 여기며 말했다.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돈으로…."

도대체 뭔 착각을 했길래.

'아, 착각은 아닌가.'

돈으로 최재훈을 길들인 건 맞으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에 제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신소하는 이내 완전히 여유를 되찾고 말했다.

"재훈아."

"응?"

"너 얼마 받아?"

"뭐?"

"쟤한테 얼마 받냐고."

"어… 2만 원?"

"하."

신소하가 코웃음을 쳤다.

"3만 원!"

"오~"

옆에서 김경식이 추임새를 넣었다.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향한 채.

-에잇!

-떼잇!

-히으응!

""아, 좀 닥쳐!""

제나와 신소하가 동시에 다그치자, 드디어 그는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어쨌든-"

신소하가 다시 본론으로 들어와 최재훈에게 말했다.

"알겠지? 3만 원?"

최재훈이 난처하다는 얼굴을 하자 그녀는 말을 이었다.

"쟤 밑에서 일할 바에, 차라리 내 밑에서 일하라고! 돈, 내가 더 많이 줄 테니까!"

"야 근데 신소하, 말이 일하는 거지. 사실상 같이 놀자는 거잖아. 근데 그걸 돈 주고. 돈 주고 놀아 달라 하는 건 그 뭐냐, 좀 많이 슬프지 않냐? 나도 그런 건 해본 적 없는데."

"넌 닥치고 있어 좀!"

신소하 역시 이게 부끄러운 일이며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먼저 저 지지배가 선을 넘었는데!

그러니까 나도 넘는다!

그녀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자, 그래서 어떡할래 최재훈! 너가 분명 말했지, 쟤랑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고. 그냥 일하는 거라고! 그러면, 내 말 거절할 이유 없지!?"

"어… 근데 소하야…."

최재훈이 제나와 신소하의 눈치를 번갈아 보았다.

"대답!"

"아니 그, 가능해 그게…?"

"뭐가!?"

"3만 원이…."

"안 될 거 뭐 있어!?"

적당히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난 신소하의 통장엔 어느 정도 모아둔 돈이 있었다.

500만 원정도.

부모님이 말하길, 정말 필요할 때에 써야 한다는 돈.

그녀에겐 지금이 그 때였다.

정말 필요한 때!

저 재수 없는 지지배의 마수에서 최재훈을 구해내야 할 때!

이 돈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쟤가 한 달 내내 불러낸다 해 봐야, 내가 그거 낚아채는데 겨우 90만원 밖에 안-'

"…2만 천, 아니- 이만 삼천 원!"

"뭐?"

"이만 삼천 원! 왜, 뭐! 더 많잖아! 불만 있어!? 이것도 한 달이면 70만원이나 되잖아!"

옆에서 도내 최상위 미녀 둘이서 최재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금전까지 동원하고 있었다.

폰 게임을 하며, 자신이 갸루만큼 사랑하는 고양이 귀 달린 미소녀 캐릭터 '카루'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경훈.

그는 문득 격렬한 탈진감을 느끼며 게임을 종료했다.

'나는 어째서 여기에….'

그냥 집에나 가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이세카이에.

가능하다면 치트 왕창 받고.

최재훈을 벌써 남에게 세상의 부당함을 느끼게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한 달에 70만 원?"

그때 제나가 하, 코웃음을 쳤다.

신소하를 마냥 귀엽다며 바라봤다.

"뭐야? 왜 그렇게 봐?"

"아니, 귀여워서."

"하, 어이없네!? 너가 더 귀엽거든!?"

"나도 알아."

"아아아악!! 짜증나!!! 최재훈! 어쨌든, 알았지!? 2만 3천 원!? 이야기 끝난 거지!?"

"그… 소하야…?"

"또 뭐!?"

"그…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그거…."

시급이야.

너무나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얼굴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신소하.

너무나 허망해서 당장이라도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버릴 것만 같았던 김경식.

둘의 전원이 갑작스럽게 꺼졌다.

둘이 최재훈을 바라보며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재훈아… 존경한다… 시급 2만원 받고 도내 최상위 미소녀한테 비밀과외를 해 주다니… 이제부터 내 장래 희망은 이세계에 가서 유우키가 되는 거 아니면 현실에서 최재훈이 되는 거다…."

"얜 또 뭐라는 거야."

"아, 아니… 그게… 마, 말이… 말이 돼…? 시급, 2만 원…? 아, 그 재훈아…? 난 지금, 참고로, 현금 말하고 있는 거야…?"

최재훈이 쓴웃음을 터뜨렸다.

새삼 돌이켜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긴 하다.

그때, 제나가 일어서서 신소하의 옆으로 다가갔다.

우월감에 젖은 얼굴로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갖다 댔다.

제나의 반들거리는 입술이 움직였다.

그렇게 신소하에게만 들리도록 잠깐을 속삭인 뒤, 다시 떨어져서 덧붙였다.

"언더스탠,"

넋이 나간 신소하의 눈앞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비웃음을 짓는 입모양으로 강하게 발음했다.

"빗치?"

그러자 넋이 나갔다가 흠칫 정신을 차린 신소하의 얼굴이 점점 구겨진다.

이윽고 반쯤 울먹거리는 얼굴이 되어 최재훈에게 말했다.

"재훈아… 들었어…? 얘가 나보고 비, 빗치래…."

"어우, 그러게. 야 뭐, 그렇게 심하게 말을 해. 어?"

"그래도 이런 애랑 계속 놀 거야…? 나 말고…?"

"꼬우면 니가 시급 더 많이 주고 데려가던가."

"…얘가 나 보고 빗치래…!!! 재훈아아앙!!!"

그때 김경식이 옆에서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했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요즘 우리 업계에서 처녀 빗치라는 말은 오히려 최상위 칭찬이야. 만약에 너가 처녀면- 억!"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신소하가 겨우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바디블로가 되어 김경식의 배에 작렬했다.

제나도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바닥에 뻗은 그를 걷어찼다.

최재훈 역시 같은 마음으로 동참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여직원 또한 같은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퍽.

퍽.

퍽.

한동안 매장 앞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한참을 패다 보니 어느 정도 기분이 나아진 걸까.

"…."

신소하는 최재훈과 제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몸을 휙 돌리곤 그대로 달려 나갔다.

"어, 소, 소하야! 조심해서 가!!!"

신소하가 최재훈의 말에 뒤돌아보며 고갤 끄덕였다.

"잘 가~"

제나의 말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중지를 날렸다.

"경식아, 빨리 일어나서 소하 좀 쫓아가 봐."

"나, 나도 샐러드 바 먹을 거야…!"

제나가 말없이 그의 엉덩이 한 번 더 걷어찼다.

"악!"

"그래… 넌 좀 맞아도 싸다 임마…."

"그리고 들어봐, 짜샤… 쟨 지금 상황에서 나한테 위로 받으면 오히려 더 비참하고 빡칠걸? 전학생 쟤는 최재훈이랑 같이 있는데, 난 이런 놈한테 위로나 받고 있구나~ 하면서."

"아니, 뭐야 그건 또. 그 복잡한 여자의 마음은.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거냐? 세상의 모든 애니메이숑과 만화와 미소녀연애시뮬레이숑을 섭렵했다는 니 방대한 경험에서 나오는?"

김경식은 대답 대신 비척비척 일어나 따봉을 날렸다.

"오… 경식쿤…칵코이…."

제나는 최재훈에게 이상한 물을 들인 놈이 누군지 드디어 알게 됐다.

김경훈은 정말로 끝끝내 샐러드바를 얻어먹는데 성공했다.

최재훈은 샐러드바 구석진 자리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며 묵묵히 혼밥을 하는 그를 절대 동정하지 않았다.

"사장님… 저길 봐요… 저 용맹한 전사의 모습을…."

"쯧쯧…."

둘이 적당히 잡담을 나누길 잠깐.

제나는 본론을 꺼냈다.

"야, 인싸참교육남.'

"아니, 그거… 도대체 그게 뭔데? 뭐 어떻게 된 일이야?"

"뭐긴, 별 거 있어? 김민성 방송에서 스파링 사건 지켜본 시청자들이 녹화분 편집해서 퍼날랐고. 그게 커뮤니티에 퍼져서 유명해진 거지. 학교에서도 애들이 너한테 관심 안 갖디?"

"뭐… 나한테 관심이 많아 보이긴 하더라.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았고."

"그렇지. 지금 문제가 그거야."

"뭐?"

제나가 핸드폰을 조작해서 최재훈에게 직접 '악플'을 보여주려다가, 말았다.

이런 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지금의 그에겐 이를 수도 있었기에.

"대충 설명하자면. 다 니가 쓰레기 일찐 새끼들 찬양한 정의의 사도님이라고 찬양하고 있는데, 언제나처럼 분탕치는 새끼들이 튀어나온 거지."

"분탕?"

"니 폭력적인 면만 부각시켜서, 니도 다른 일찐들이랑 별반 다를 것 없는 놈이다 떠벌리고 다닌 거지. 근데, 이게 또 먹혔어. 니가 어제 워낙 죽여줬어야지."

제나가 한껏 들뜬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최재훈은 그녀가 칭찬을 하는 건지, 욕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 그렇게 된 거야. 토요일까지만 해도 니는 일찐 참교육남이다 뭐다 찬양받고 있었는데, 그 분탕 새끼들 때문에 지금은 뭐. 동네 마피아의 자식이다~ 국회의원 자식이다~ 학교 선생들도 감히 못 건든다~ 그런 헛소문 퍼져서 똑같이 무서운 일찐 새끼. 어쩌면 그 일찐보다 무서운 새끼가 된 거지. 니가 학교에서 하루 종일 자고 다니는 것까지 아는 거 보면, 너한테 억하심정 가진 일찐 새끼들 중 한 명이 지랄했을 거고."

"아… 그렇게 된 거였구만."

"그게 끝?"

"아니 뭐, 마음대로들 생각하라고 해. 난 별 신경 안 쓰니까."

"오호, 신경을 안 쓰신다?"

"왜 그래, 불안하게 또."

"니, 연예인이나 프로 데뷔하고 나서 학창시절 일찐 설 퍼진 애들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아."

십중팔구로 업보를 청산 당한다.

커리어 종결로써 말이다.

"듣고 보니 그렇네. 이야, 보스. 거기까지 멀리 보시다니."

최재훈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자 제나가 훗, 흡족스럽게 비소를 머금었다.

"겨우 이런 걸로 반하진 말고~"

"아, 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너무나도 진지하고 당연하듯이 말하는 최재훈을 제나가 노려봤다.

"오리가 확실히 연하긴 해… 맛도 안정적이고…."

최재훈은 다급히 말을 돌렸다.

"아니 그래서 보스. 저 그럼 어떡합니까? 제가 뭘 어째야 돼요, 저기서?"

"어쩌긴, 정해져 있지. 노 저어."

"네?"

"물이 들어올 때 휩쓸리는 새낀 물고기 밥이 되는 거고, 노를 잘 저어서 그 급류를 기회로 만드는 놈은 앞으로 치고 나가는 법이지."

물 들어온다.

노 젓자.

최재훈이 툭하면 인용해서 제나의 귀에 박힌 표현이었다.

"노를 어떻게 저으라는 건데?"

제나가 등받이에 몸을 기대 삐닥하게 앉았다.

그녀의 몸이 뒤로 젖혀져 고개가 상대적으로 올라가서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상대방을 떠보는 듯 음흉한 미소로 최재훈에게 물었다.

"한 번 니가 말해 봐. 니라면 어떻게 할 건지. 어떻게 해야 지금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니가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최재훈이 옆으로 삐딱하게 앉아 팔을 괬다.

"스파링 사건 때문에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일찐이라는 루머가 생겼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용해야 나한테 기회로 만들 수 있나. 어떻게 해야 나중에 내가 프로 데뷔할 때 도움이 되나."

그는 암산을 하듯 중얼거린 뒤 말했다.

"뭐, 별 거 있나. 그냥 해명하면 되지. 내가 그런 놈이 아니란 것만 밝히면, 여론은 자연스럽게 돌아올 거고. 그렇게 내 미담만 남아서, 향후 내가 프로가 되면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겠지."

"그렇지, 그러면 너가 그런 놈이 아니란 걸 어떻게 밝혀서 해명할래."

"입장문?"

"너 작정하고 묻으려 한 새끼들이랑, 그 새끼들이 퍼트린 헛소문 믿는 병신들이 니 글만 보고 믿어줄까? 글에 자신 있어? 니가 헤밍웨이라도 돼?"

"일단 중학교 때 학교 독후감 공모전에서 장려상 타 본 적은 있긴 해."

"아이고 대~단하셔라."

"흠…."

입장문, 글보다 좀 더 확실한 전달 수단이라.

"동영상?"

"오~"

"김민성 방송에서 퍼진 거니까, 대충 김민성 미튜브 채널에 내 해명 영상 올려 달라 하면. 어느 정도 되지 않을까?"

제나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쳤다.

"헤헤."

"포인트는 잘 짚었어."

"포인트는? 포인트만? 왜 또, 뭐가 문제야. 내가 생각보다 너무 완벽한 계획을 떠올려서 질투하는 거야?"

"첫 번째 문제, 김민성이 과연 니를 도와줄까? 뭐가 이쁘다고?"

"나 안 이뻐?"

최재훈이 뿌잉 애교를 부렸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윽….'

제나에겐 치명타였다.

심장에 직격탄을 맞은 그녀가 책상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녀는 겨우 진정하고 다시 일어나 말했다.

"니가 걔 친구 병신 만들어서-"

"병신 안 만들었어!"

"사회적 병신."

"아하!"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지금 걔 미튜브 채널이 난리가 났거든? 구독자는 계속 증발하고~ 일찐 혐오하는 놈들은 계속 악플 달고~ 김민성 옹호하는 것들은 걔네랑 키보드로 3차 세계대전을 벌이고~ 계속 신고 들어와서 채널 목숨 위태위태하고~ 그런 상황에서, 니가 과연 이쁘게 보일까?"

"결국 자업자득이고, 그놈이 방송해서 나한테 튄 똥이니까 걔가 치울 의무가 있지."

"걔가 의와 도리를 아는 놈 같냐?"

"약간 겁을 주면?"

"그땐 진짜 그놈들이랑 똑같은 놈들 되는 거지. 문제 생기면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곱창인생들."

"그렇긴 해."

"그리고, 지금 니 일찐 논란으로 불타고 있는 마당에. 진짜 일찐인 그 새끼 채널에 좋다고 니 영상 올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런가… 그러면 어떡해. 영상을 찍어서 뭘 어떻게 퍼트려. 그거, 김민성 같이 채널 규모 큰 놈이 방송해서 퍼진 거지. 내가 커뮤니티에서 맨땅에 해딩한다고 될 일인가?"

"하, 임마."

그때 제나가 위풍당당하게 자세를 바꿔 앉았다.

"지금 니 앞에 있는 게 누구?"

"어… 아름다우신 사장님이요?"

"사실이지만 정답은 아니야."

그녀가 자신의 SNS계정을 띄워 그에게 보여줬다.

최재훈은 대충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했다.

그녀가 SNS 인플루언서로서의 가진 영향력을 빌려준다는 말 같았다.

"어 그런데… 그거 팔로워 수 많은 거야?"

3만 명.

"김민성은 20만 명이나 됐었잖아."

"걔는 미튜브잖아."

"둘이 다른 거야?"

"몰라."

"몰라?"

"뭐, 어쨌든 일반인 치곤 꽤 많은 편이라니까. 커뮤니티에서 될 때까지 맨땅에 헤딩하다 대가리 깨지는 것보단 낫지 않겠어?"

"그렇긴 한데… 괜찮은 거야? 이런 일에 네 인스타그램 아이디 빌려 줘도?"

"뭐 그런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오…."

최재훈이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번엔 좀 반할 뻔했어."

"겨우 이 정도로? 그러면 갈수록 힘들어질 텐데?"

제나가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비소를 그리자 이번엔 최재훈이 윽- 하며 책상에 쓰러졌다.

"개멋져…."

그 모습을 본 제나가 큭큭, 아주 드물게 순수하게 유쾌하다는 미소를 흘렸다.

"야 재훈아! 카라아게 먹어봤냐! 존맛!!!"

"카라아게가 뭐야?"

"닭 튀김!"

"일본어로 닭이 카라고 튀김이 아게냐?"

"몰라~"

"아케이, 일단 먹어봄."

하지만 눈치 없이 끼어든 김경식의 목소리에 금방 가라앉는다.

"야, 니가 가져와. 그 시발아게인지 뭔지."

"아, 넵."

닭튀김을 가져오려는 최재훈을 다시 앉히고 대화를 재개한다.

"아, 그러면 무슨 영상을-"

"아."

제나가 최재훈의 말을 가로챘다.

"오케이 여기까지. 지금부턴 대충 다 알아들을 것 같으니, 내가 생각해 둔 계획 말해줄게. 그것대로 해."

"계획?"

"일단 내 인스타그램에, 내가 너랑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 언급할 거야."

"뭐?"

"며칠 전에 전학을 왔는데 마침 너랑 같은 학교였다고. 그리고, 니가 나 구해줬었던 사건 언급하면서 그거 때문에 알게 된 사이라 하는 거지."

"그 사건? 아."

최재훈은 난간에서 떨어지는 제나를 구해줬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사건만 퍼지면 일단, 니 안 좋은 인식 반은 사라질 거야. 사라지는 게 뭐야, 다 니 팬 될걸? 그때, 너 존나 멋있었거든 진짜."

"헤헤. 아, 근데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사람들이 믿어줄까?"

"믿고 자시고, 증거를 보여주면 되지."

"증거?"

"그때 신소하가 너 촬영했었잖아."

"어… 그런가? 119 부르는 거라 했던 것 같은데."

"어떤 새끼가 핸드폰을 그렇게 잡고 119를 불러. 뭐, 영상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없어. 증인이 많으니까."

"어, 그런데 효과 없는 거 아니야? 우리 학교 애들 그거 있는데도 나 무서워하던데?"

"보니까, 그게 넌 줄 못 알아보던데?"

"왜??????"

"누가 학교 다니는 내내 반 구석에 쳐박혀 잠만 자래?"

"들어보니 또 그렇네???????"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지금 당장 신소하한테 연락해서, 영상 뜯어내 봐."

"…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오케이, 걔 자극한 건 내 실수였어. 인정."

"앗 차가. 야 근데, 나 지금 핸드폰이 없는데?"

제나는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직 포장도 안 뜯은 아이플폰 최신 기종이었다.

"이제 있네?"

"어… 아니, 야, 이거, 엄청 비싼 거잖아…."

알기로 200만 원에 근접하는 가격이었다.

"자기 한 몸 바쳐서 사람 목숨 구했는데 이 정돈 받아야지, 라더라. 우리 어머니가."

"아이고… 이런 걸 어떻게 받아…."

"싫어? 싫으면 대충 내가 쓰던 공기계 주고."

"그래, 그게 낫겠다."

제나는 최재훈의 재미없는 성실한 반응에 고개를 찌푸리며 그의 정강일 걷어찼다.

"악!"

"유 뻐킹 루저, 이런 거 줄 때면 그냥 감사합니다~ 실실 쪼개면서 받는 게 베스트인 거 몰라?"

그 태도에 최재훈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순수이 따랐다.

하기사-

'노라 씨라고 했나?'

그분 말대로, 자신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있긴 했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나중에 따로 연락해서 감사하다 말씀드려야겠네."

최재훈이 한 손에 쏙 들어오면서 가득 차는 아이플폰의 그립감에 눈을 반짝였다.

"이 영롱한 아이플폰의 자태를 봐~"

그도 사람은 사람이었기에, 처음 가져 보는 최고급폰의 자태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팔고, 싼 폰을 사서 만든 차액을 생활비로 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실례지….'

선물을 팔다니.

더 생각이 복잡해지기 전에 그는 그냥 고개를 털어 고민을 끝냈다.

가방에서 고장 난 핸드폰의 유심칩을 꺼낸다.

흥분되는 핸드폰 교체의 순간.

제나도 최재훈도 묘하게 들떠서 그 유심이 들어가는-

"…유심 기종이 안 맞네. 내일 가서 따로 개통해야 할 듯?"

"…썅, 김 빠지게. 야, 여기. 내 꺼 써."

"오케이."

제나의 핸드폰을 받아든 그가 즉시 다이얼을 누르려다가-

"…잠깐, 걔 번호가 어떻게 됐지?"

"…."

둘이 시선을 마주하고 눈을 꿈뻑였다.

그때-

"여기 카라아게 나왔습니다~"

김경식이 카라아게를 중심으로 알뜰하게 채운 접시를 가져왔다.

“야, 안경. 니 신소하 전화번호 있냐?”

제나가 마침 잘 됐다며 물었다.

"전화번호? 아니?"

"진짜 드럽게도 쓸모가 없네 이 자식은."

"머쓱."

"그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그 영상은 내일 학교에서 받는 걸로 하고, 오늘은 니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거? 그게 뭔데?"

"얼마나 맛있길래 그 지랄인가 했더니 그냥 평범하구만! 뒤질래!?!"

제나는 김경식에게 윽박을 지르며 아까, 분위기가 깨졌을 때 담아놓은 걸 해결했다.

그렇게 김경식을 쭈구리로 만든 뒤, 최재훈의 질문에 답했다.

"사람들한테 니가 쓰레기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영상."

최재훈이 도대체 어떤 영상을 찍어야 갈피도 못 잡고 있던 그때, 제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간단하구만."

"응?"

"그냥 니가 얼마나 바보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 보여주면 되잖아."

VLOG.

제나가 유창한 영어로 발음으로 최재훈-

아니지.

'숨컷'의 첫 행보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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