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외전 역전의 제나 10
"와… 무슨 걔 얘기밖에 없네…."
신소하는 학교의 다양한 대화방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수는 자그마치 수십.
수십 개의 대화방에서 전부 전학생과 '걔'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학생 모두가 그 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긴.'
그런 엄청난 같은 일이 있었는데 관심이 쏠릴 만했다.
'이 계기로 좀 인싸 되려나?'
신소하가 저도 모르게 아깝다고 느꼈다.
왜 아까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흡사, 혼자만 알던 가수가 유명해졌을 때의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는 모르며, 안다 해도 부정하겠지만 말이다.
"응?"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걔 도대체 누구냐?
-아는 사람 없음?
"뭐지?"
'걔'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게 말이 돼?'
어제 현장에 있었던, 최재훈을 가끔이나마 접할 수 있는 2학년 3반 학생은 신소하뿐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사진을 찍거나 촬영한 사람 역시 신소하 뿐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하 걔네랑 같이 가지 않았었어?
-걔 남자 누구였음?
-그 뒤로 어떻게 됐어?
모두가 어제 그 대단했던 정체불명의 남학생에 대해 궁금해 한다.
하지만 그 정체불명의 남학생에 대해 아는 건 자신뿐이다.
최재훈이, 그런 사람인 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신소하는 전신의 피부가 오싹거리는 걸 느꼈다.
난생 처음 겪는 고양감이었다.
그녀는 들떠서 즉시 자랑하려다가-
"…."
자랑했을 경우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다음날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겠지.
많은 사람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신소하는 갑자기 형용 못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반대로, 자랑하지 않았을 경우.
그러니까, 최재훈에 대한 사실을 다른 애들에게 비밀로 했을 경우를 생각해본다.
최재훈은 그런 일을 신나서 자랑하는 성격 같아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어른스러운 성격이니까….'
고로, 평소처럼 하루 종일 학교에서 태평하게 잘 것이다.
평소처럼, 그 누구도 최재훈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최재훈이 어떤 사람인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자신을 제외하곤.
"…."
결국 신소하는 정체 불명의 학생에 대해 물어오는 친구들에게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 * *
사건 다음날, 신소하는 여느 날과 달리 모든 대화방과 친구들의 SNS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다.
곧장 욕실로 가 목욕을 한 뒤.
단발 머리를 말리며 고데기로 특유의 히피 웨이브 펌- 친구들에겐 미역 머리라 불린다-을 만들곤 들뜬 기분으로 학교로 직행했다.
하늘이 아직 어두스름했다.
시간을 보니 평소보다 40분은 빨랐다.
'너무 빨리 나왔나…?'
걔는 보나마나 종 치기 직전에 등교할 거고, 딱히 할 일도 없을 텐데.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그는 이미 책상에 뻗어 있었다.
평소엔 신경을 안 써서 몰랐는데 그는 의외로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하는 것 같았다.
'빨리 와서 하루 종일 잔다고? 부지런하게 게으른 성격?'
"뭐야 그게."
신소하가 입가를 가리고 까르륵 웃었다.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도 잘 보여주지 않는,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 티없는 웃음이었다.
불을 키지 않은 교실 안은 적적했다.
채워져 있는 자리가 열 자리도 채 되지 않았다.
엎드려 있는 최재훈의 주변 자리는 전부 비어 있었다.
신소하는 최재훈의 맞은편 자리의 의자를 돌려 그와 마주 앉았다.
최재훈의 옆자리 책상을 그의 책상 옆에 갖다 붙여, 최재훈 바로 옆에 엎드렸다.
옆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엎드려 있는 최재훈을 빼꼼 쳐다봤다.
그 상태로 한숨 내쉬듯 나지막하게 불렀다.
"야."
"…."
대답이 없다.
단순한 시체인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아아~~~"
애교 섞인 콧소리가 떨렸지만, 역시 최재훈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귀에 입가를 갖다 대고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재훈이, 왜?"
최재훈의 두 칸 앞 자리, 지금은 신소하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남학생이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세웠다.
신소하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뒤를 돌아봤다.
김경석.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애였다.
하지만 학생 사이에서 입지는 자신보다 낮다.
"뭐?"
눈웃음 지으며 최재훈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부정적이지도 호의적이지도 않은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중요한 볼일 있는 거 아니면 걔 그냥 자게 내버려 둬."
옆으로 돌아 앉은 김경식은 핸드폰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무심하게 받아쳤다.
허!
신소하가 기가 찬다며 코웃음을 쳤다.
"어이없어. 너가 뭔 상관인데?"
"걔 지금 엄청 피곤할걸."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너보단 잘 알걸."
그러고 보니 김경식은 반에서 최재훈과 교류하는 유일한, 친구라고 부를 법한 관계에 있었다.
신소하는 영문은 모르겠지만 김경식의 존재에 불쾌함을 느꼈다.
그녀 스스로는 모르지만, 자신보다 최재훈에 대해 더 잘 알며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왜인지 김경식의 태도가, 자신의 앞에서 최재훈과의 관계를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김경식을 노려봤다.
하지만.
최재훈의 유일한 친구인 그와 사이가 틀어진다?
최재훈에게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들어갈 가능성이 있었고.
나중에 최재훈과 대화할 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기에, 그녀는 일단 한 수 접어주기로 했다.
그녀가 다소 누그러진, 그렇게 뚱해진 표정과 어조로 말했다.
"뭐, 왜. 뭐길래 학교에서 맨날 퍼질러 잘 정도로 피곤한데."
"그건 집적 물어보고."
"뭐?"
김경식은 친구의 기구한 가정 사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떠벌리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 속 깊은 이유를 말하진 않았기에 신소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깨우지 말라 해 놓고, 직접 물어보라고?"
"일어나 있을 때 물어보면 되지."
"아, 됐어!"
신소하가 빽! 신경질을 냈다.
"뭐, 보나마나 게임하다가 늦게 잔 거겠지!"
'아주 날카로운데?'
김경식은 내심 감탄했다.
뭐, 정말로 중요한 건 최재훈이 매일 밤늦게까지 뭘 하느냐가 아니라.
매일 밤늦게까지 뭘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지만.
그렇기에 김경식은 신소하의 말에 별다른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소하는 더욱 뚱한 표정이 되더니 이내, 의아하다는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너 진짜 웃긴다?"
"뭐?"
"그렇게 얘가 걱정되면서, 고2라는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종일 퍼질러 자는데 그냥 냅둬?"
'뭣도 모르고 지껄이는 거 봐라?'
신소하의 말에 김경식은 발끈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뭣도 모르는 신소하의 입장에선 지극히 건실한 정론이었기에.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얘길 하는 거지?'
분위기를 보니 단순히 말싸움에서 이기려고 하는 말이 아닌, 정말로 최재훈을 깊게 생각해서 나온 말 같았다.
김경식은 문득 아까 신소하가 최재훈 옆에 누워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여자와 대화 해 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뛰어난 '대마법사' 후보생 답게 맥락없이 툭 내뱉었다.
"너, 재훈이 좋아하냐?"
그 배려심이라곤 1도 없는 화법에 신소하가 입을 쩌억 벌리며 질색했다.
"어떡해… 개싫어…."
"뭐야, 진짠가 보네."
"너 여자한테 인기 없지?"
"어차피 난 여자한테 관심 없어."
"너같은 애들 대부분이 진짜 그래서가 아니라, 합리화하려고 방어기제로 그러는 거 알아?"
"니가 뭐 어떻게 알아. 니도 뭐, 남자한테 관심 없냐?"
"니 같은 남자한텐 당연히 관심 없지."
"나도 니 같은 여자한텐 당연히 관심 없는데."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비어 있던 자리가 하나 둘 차기 시작했다.
"소하야, 거서 뭐해~?"
신소하의 친구들 역시 도착할 시간이 되자, 둘은 곧장 싸움을 멈추고 기름과 물처럼 완전히 분리되었다.
김경식이 다시 핸드폰에 신경을 집중했다.
신소하는 그녀의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기적으로 시선이 힐끔힐끔 최재훈에게 향했다.
'밤에 도대체 뭘 하길래….'
갈수록 그가 신경 쓰였다.
그녀는 어제처럼 거리낌없이 최재훈을 깨워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어제완 다르게, 피곤한 그를 깨우면 그가 짜증을 내진 않을까 싶은 걱정에 결국 그가 일어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마침내 찾아왔을 때였다.
"야, 맞다. 오늘 점심 뭐냐?"
"오늘-…"
"켁, 시발. 쓰레기네. 오늘은 걍 매점에서 떼워야지."
"다 니랑 똑같은 생각해서 지금 매점 미어터질 걸?"
"하, 씨. 귀찮네. 아, 맞다. 경식아!"
곧장 최재훈의 자리로 향하려던 신소하의 관심이 유우준 일행에게 갔다.
평소 최재훈을 깨워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김경식이 유우준에게 불려간 것이다.
"야, 인사 해. 내 친구 경식이."
유우준이 김경식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자신의 일행에게 소개했다.
"어, 경식아 안녕~"
"우준이 친구 경식이 반가워~ 큭큭."
사실 말이 친구고 소개지.
누가 봐도 괴롭힘의 현장이었다.
아침에 신소하와 뻔뻔하게 잘만 이야기하던 김경식은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둘은 비록 똑같이 학교 내에서 '일찐'이라는 부류에 속하지만.
그 부류 안에서도 종류와 급이 나뉘었다.
신소하처럼 자기 관리와 대인 관계가 철저하여 인기 있는 부류가 있다면.
유우준처럼 폭력으로 남들 위에 서는 부류가 있었다.
더군다나 유우준은 본 학교에서 가장 높은 입지에 있는 부류였다.
"그때 말했었지? 그때 새로 사귄 친구 경식이."
"그때? 아, 그때 그, 피방에서 돈 떨어져서 잦될 뻔했는데 도와줬다는~"
"그렇지~ 걔가 경식이야. 우리 경식이가 존나 착해서, 곤란한 사람이 있으면 그냥 못 지나쳐. 그치?"
"어… 응…."
"그래서 말인데 친구야, 지금 나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뭔데…?"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나 대신 매점 좀 가서 내가 말하는 것 좀 사다줄 수 있을까? 남은 돈으로 니꺼도 좀 사고. 사와서 같이 먹자."
유우준은 마지못해 고갤 끄덕이는 김경식에게 심부름 거릴 말한 뒤, 일행들과 키득거렸다.
"거 봐~ 우리 경식이 쿨하게 바로 알겠다 하는 거~"
"크~ 천사네 천사."
"와, 개부럽다 진짜. 나도 경식이랑 친구하고 싶다~"
"아 젖까 새끼들아~ 경식인 내 친구니까."
김경식이 그런 그들의 곁에서 머뭇거렸다.
"응? 뭐.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그… 돈은…?"
그 말을 들은 유우준 일행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맞아. 돈, 줘야지. 미안 미안."
현재 유우준의 돈은 가방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 원 지폐 딸랑 하나 들어있는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곧이어 짐짓 당황한 척을 하며 주머니를 까뒤집었다.
"아 씨- 맞다, 하… 돈이 없네…."
그리고 면목없다는 얼굴로 김경식에게 천 원을 건네며 말했다.
"경식아 미안하다, 내가 지금 돈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런데. 나머지는 좀, 니 돈으로 어떻게 안 될까? 아, 달라는 게 아니고 잠깐 빌리는 거야. 뭔 말인지 알지?"
"어… 그때 피씨방에서 빌려준 돈도 아직-"
"아, 씨."
김경식의 말을 끊고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린다.
"경식아, 나 친구들 앞인데 꼭 그렇게 쪽 줘야겠냐?"
"아 뭐야~ 유우준~ 아직 돈도 안 갚았어~?"
"우유잔 개거진가 보네~"
"…미안."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껴안는다.
"하, 그래. 친구 끼리 그럴 수도 있지. 마음이 아프지만, 친구니까 용서해 줄게. 친구가 그런 거 아니겠냐, 응? 서로 이해해 주고. 내가 다음엔 꼭 갚을게. 이번 것까지 쳐서 두 배로. 그러니까 응? 마지막으로 좀 부탁하자. 친구야."
김경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천 원을 건네받았다.
뒤돌아 가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반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학생들은 김경식에게 동정의 시선을 향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위해 나서진 못했다.
그 상대가 유우준이었으니까.
그러던 그때-
"으으으윽~"
반에서 얼굴 보기가 힘든 구석자리의 학생.
맨날 퍼질러 자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요란스럽게.
그가 이목을 끄는 게 드문 일인 만큼 모두의 이목이 즉각 그쪽으로 쏠렸다.
그 학생, 최재훈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김경식에게 다가가 그를 툭 치며 말했다.
"아, 배고프다. 경식아, 오늘 점심 메뉴 뭐냐?"
"어, 그…."
당황한 김경식이 힘없이 그의 질문에 답햇다.
"아, 뭐야. 오늘 반찬 또 곱창났네. 엊그제 메뉴가 오늘 거까지 가불한 거였어? 하, 씨. 아, 몰라, 어쨌든. 가자."
"어, 그… 재훈아… 나는 오늘… 매점 가서 해결하려고…."
김경식이 유우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뭐 매점?"
"응… 우준이가 부탁한 것 부터 좀 사다 주고…."
"뭐? 니가 쟤 껄 왜 사다 줘?"
"아 그, 우준이가 지금 좀 바빠서…."
지금 좀 바쁜 유우준은 일행들과 낄낄거리고 있었다.
"별로 안 바빠 보이는데?"
"아, 그 상관 없어. 어차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 그, 돈도 받았고, 돈 남으면 내 것도 사도 된다고 했거든…."
굴욕감에 얼굴이 빨개진 김경식이 횡설수설 합리화를 하며 변명을 했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치 없는 최재훈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아니지.'
하지만 곧바로 엄한 최재훈을 원망하는 것 말곤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해, 자신을 원망했다.
그런 김경식을 보며 최재훈이 요란을 떨었다.
"뭐!? 아니, 이 새끼! 지 혼자 꿀 빨려고! 야 그럼, 나도 같이 가자. 돈 남으면 내 것도 좀 사 줘라. 얼마 받았냐?"
최재훈이 그가 집고 있는 돈을 확인했다.
"엥? 천 원?!"
보란 듯 당황한 뒤, 유우준을 쳐다봤다.
"뭐지?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디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났나?
유우준은 그런 최재훈을 '이 새낀 뭐지?'라는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니 뭐냐?"
"친구야, 경식이한테 돈 잘못 준 것 같은데?"
"친구? 니 나 알아? 니 나랑 친해?"
"아, 잘못 말했다. 경식이 친구야."
최재훈이 상대방이 누구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가 신경을 건드린다.
유우준이 당장이라도 달려가 한 대 칠 기세로 그를 노려봤다.
급격히 날카로워지는 분위기.
모두가 참사 현장을 보는 것 같은 얼굴로 최재훈과 유우준을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저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이 험한 꼴을 당할 게 뻔했다.
그렇기에 신소하는 저도 모르게 나서버렸다.
"에이 유우준~ 왜 그래~ 같은 반 친구들끼리 이러지 말자, 응?"
신소하가 애교 담긴 어조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유우준과 이따금 대화를 나누는 사이고, 그때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유우준이 이번에도 역시 그래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우준이 신소하에게 고갤 돌리고 말했다.
"야 신소하."
"응응?"
"니 요즘 왜 이렇게 나대냐?"
"…어?"
"분위기 못 읽어?"
"…."
"적당히 나대, 지가 뭐라도 되는지 아네."
그 한마디에 유들거리던 신소하의 분위기가 죽었다.
당황한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유우준이 시선을 떼자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뒤통수에 꽂히는 시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던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시선이 미적지근했다.
방금 유우준이 했던 말이 그녀의 입지를 격하시킨 것이다.
신소하가 격한 후회에 몸을 떨었다.
이제 교실 안의 분위기는 거의 처형장에 가까웠다.
집행자는 유우준이었다.
그는 자신이 장소를 완벽하게 좌지우지하고 있음에 고양감을 느꼈다.
입가에 사나운 미소를 띠운 그가 최재훈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니, 니 일로 와 봐."
하지만 최재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유우준이 다시 인상을 구겼다.
"이리 오라고 시발아."
그제서야 최재훈은 답했다.
"거, 아까부터 오라, 가라, 가서 뭐 좀 사서 오라, 돈 좀 줘라, 먹을 것 좀 존나게 많이 사 줘라."
그가 못말리겠다며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구야… 거 좀, 응?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겠지? 니 몸에 구속해 놓은 칼로리들을 이제 그만 해방시켜 주라. 그거 봐, 니 교복이 지금 터질려 하잖아. 그게 다 칼로리들의 비명인데, 안 느껴지니?"
"이거 교복 줄인 거야 찐따 새끼야!"
유우준이 벌떡 일어서서 버럭 소리쳤다.
학생들이 움찔했다.
"니 몸을 늘려서?"
하지만 다음 최재훈의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시발 새끼가…."
얼굴이 다양한 이유로 붉어진 그가 씩씩거리며 최재훈에게 다가가며 팔을 휘둘렀다.
* * *
"큭큭큭,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유우준의 일행이 촬영한 영상을 본 김민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기냐?"
유우준이 언짢다며 김민성을 째릿 노려봤다.
"그래, 웃기다 임마."
"이런 씹-"
"아아악!!"
하지만 거기까지, 방금과는 전혀 다른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김민성에게 달려들어 헤드락을 건다.
"아,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까. 오늘 학교 끝나고, 체육관 따라 와라. 내가 좋은 구경 시켜줄라니까."
유우준이 패거리에게 말했다.
패거리는 어색하게 김태한의 반응을 살폈다.
평소 같았으면 싸움 구경에 반색했을 김태한의 태도가 애매했다.
그는 지금 어색하게 제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거칠고 저급한 분위기를 제나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신경이 쓰였다.
"야, 뭐야. 김태한. 반응이 왜-"
섭섭하다는 듯 말하던 유우준이 말을 끊고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김태한이 그를 노려봤다.
그리곤 말했다.
"난 관심 없어. 오늘 전학생 동네 소개시켜주기로 해서."
전학생, 제나가 그에 답했다.
"어 그래? 난 저거 구경가고 싶은데?"
"어, 어? 뭐야, 저런 거 좋아해?
김태한이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뭐, 그냥. 궁금하잖아."
흥미롭다는 제나의 태도,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아니 뭐, 그렇긴 하지. 그러면 뭐, 거기부터 들렸다 갈까?"
김태한이 제나에게 공명하듯 따라서 즐거워하자 패거리의 분위기가 그제서야 왁자지껄해진다.
"아니, 전학생 의외네 그런-…"
"야 그런데 걔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야 근데 걔, 피하는 거 보니까 뭐 따로 배운 것 같던데 걱정 안 되냐 유준아?"
"걱정은 시발-"
그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러듣는 제나는-
'이걸….'
최재훈의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제나에겐 있어 그 사람의 꼴사나운 모습을 상상하는 건, 안간힘을 써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여, 그녀는 속 편히 그저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해야 자신이 세워 둔 계획에 보탬이 될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때-
"아, 맞다. 좋은 생각 났다. 김민성. 오늘 이거, 방송하자."
"뭐? 이걸? 에반데~"
"에바긴 새꺄, 이런 좋은 컨텐츠가 어딨어."
"그래도 싸우는 거 방송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서로 동의하에 각서 쓰고, 그냥 싸움도 아니고 스파링하는 건데 뭐. 문제 될 게 있냐? 이게 문제면, 격투기들도 다 문제지."
"쓰… 그런가?"
새로 나온 주제에 제나가 귀를 쫑긋였다.
"뭐야 너, 방송 해?"
제나의 관심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김민성이 우쭐거렸다.
"어 뭐, 대단한 건 아닌데~"
"민성이 구독자 20만 명이나 된다?"
외향적 성격, 수려한 외모, 좋은 목소리를 가진 김민성은의 채널은 고등학생 VLOG 컨텐츠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20만 명?"
의외로 상당한 규모에 제나가 눈썹을 튕겼다.
그리곤-
"오호…."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방송 켜면 보통 몇 명 정도 보는데?"
"내 채널은 뭐, 영상이 주라. 미튜브로 가끔 방송 켜면, 천 명 정도 보나?"
구독자 20만에 평균 시청자 천 명의 방송.
그런 방송에서-
'얼굴을 알린다라….'
소심한 반 친구를 괴롭히는 일찐을 정의구현 하는 정의로운 성격의 엄청난 미남 - 제나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고등학생.
제나의 눈이 반짝였다.
"…."
그런 제나를 힐끔 훔쳐보는-
'그놈, 어제 걔였지?'
김태한은 왠지 묘한 불안감과 짜증을 느꼈다.
* * *
유우준 일행이 떠난 교실은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그 활기 사이사이로 텁텁한 기류가 흘렀다.
"…."
유우준이 떠나자, 신소하는 터덜터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평소 신소하와 어울리던 여학생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저들끼리 식당으로 향했다.
사라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신소하가 책상에 푹 엎드렸다.
'왜 되도 않게 설쳐서….'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게 무너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자신의 학교 생활은-
"하…."
그녀가 침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힘없이 일그러진 눈에서 당장 눈물이 새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신소하."
그때, 누군가의 부름에 그녀가 몸을 흠칫 떨었다.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
그녀는 엎드린 그대로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미역 덤불 안에서 커다란 눈망울이 빼곰 나와 최재훈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오늘 또 도와줬네, 고마워."
그리곤 어제와 달리, 차분한 미소와 어조로 말했다.
"…."
신소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흠칫 정신을 차리더니 그를 거부하듯 고개를 홱 돌려 다시 미역 덤불 안에 숨었다.
'얘만 아니였어도….'
자신이 나서는 일은 없었을 텐데.
'얘가 뭐라고….'
신소하는 최재훈이 원망스러웠다.
꼴보기도 싫었다.
당장 눈 앞에서 꺼졌으면 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방금 전 친구들이 매정하게 멀어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겠지.
다른 모두가 걔네들처럼 멀어지겠지.
그녀의 기분이 질척하게 녹아내렸다.
"점심 안 먹게?"
그런 와중 눈치 밥 말아먹은 최재훈이 다시 또 말을 걸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칙칙한 감정들을 밀어냈다.
신소하는 '기운이 난다'는 느낌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최재훈은 말 없이 조용히 신소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내 신소하는-
벌떡!
최재훈을 한 대 칠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그를 치는 대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가자. 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녀가 최재훈에게 보란듯 씩씩하게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
"…."
그런데 자신이 일어서는 순간 반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신소하를 말없이 쳐다봤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들의 삭막한 관심이 칼날이 되어 피부를 찢는 듯했다.
그녀의 씩씩했던 기세가 실시간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때-
"아!"
그녀가 발을 옮기는 순간에 맞춰, 그 가까이 앉아 있던 남학생이 다리를 걸었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넘어지-
"어이쿠."
-려는 순간, 최재훈이 그녀의 팔을 잡아 줬다.
앞으로 쓰러지려던 신소하의 몸이 씩씩한 팔에 의해 껴안듯 최재훈에게 기대는 형태가 됐다.
"""오오오~~~"""
주변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그 탄성엔 은근한 멸시가 담겨 있었다.
탄성 대신 '알라리깔라리'가 들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신소하가 얼굴을 부딪친 탓에 최재훈의 교복에 우스꽝스러운 화장 자국이 남았다.
"어, 미, 미안해…."
일련의 과정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기는 신소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최재훈은 그에 대답하는 대신, 신소하에게 발을 걸었던 남학생에게 다가갔다.
앉은 자세 마냥 껄렁거리는 인상의 남학생이었다.
아까, 유우준의 근처에 있던 패거리 중 한 명이었다.
"아~ 쏘리. 스트레칭 좀 한다는 게~"
시치미를 떼는 남학생.
최재훈은 그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왜 그러냐~"
"아, 실수라니까, 씨발."
그러자 최재훈은 몸을 숙여 그에게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뭐하냐? 면상 치워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남학생은 조금도 위압되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치우라고 씨발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양팔로 최재훈의 몸을 있는 힘껏 밀쳤다.
"…."
하지만 최재훈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도리어 밀친 그가 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최재훈이 그런 그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능청스럽게 웃었다.
털털한 분위기.
그러나 반달처럼 휘는 눈이 날카로웠다.
"같은 반 친구끼리 이러지 말자, 응?"
그 말에, 신소하가 몸을 흠칫 떨었다.
방금 그녀가 유우준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유우준은 신소하에게 망신을 줬었다.
이번에 그 말을 들은 남학생은-
"…."
어깨에 올려진 손이 돌처럼 무거웠다.
맨날 엎드려 있었을 땐 연기처럼 흐릿했고, 지금은 공기처럼 가벼운 인상 때문에 몰랐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니까 최재훈 그는 의외로- 덩치가 상당했다.
존재감이 상당했다.
비대한 몸을 가진 유우준보다 크게 느껴질 정도.
"아니, 실수라니까…."
그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뭐라고?"
최재훈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잘 안 들려가지고. 웅얼거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 줘 봐."
그 날카로운 눈이 더욱 가까워졌다.
오기로 그 시선을 받아치던 남학생이 결국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미안, 해…."
최재훈은 사과를 들은 뒤로도 한참 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어느새 반 안은 조용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최재훈은 어느새 서늘하게 굳어 있던 표정을 풀며 씨익 웃었다.
"왜 나한테 사과를 해 임마. 설마 이 새끼!? 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도 무슨 죄 지었냐!?"
"어, 어? 아… 그… 신소하, 미안하다… 다리… 걸어서."
"어, 어? 그, 그래…."
"그래 임마, 얼마나 좋아."
신소하가 얼떨떨해 하며 사과를 받아주자, 남학생의 어깨에 올려놓았던 팔을 몇 번 들었다 놓아 그를 툭툭 두드리곤 멀어진다.
그렇게 최재훈이 신소하와 김경식을 대동하여 반에서 나가자, 남아 있는 학생들은 마치 꽉 차 있던 반이 텅 빈 듯한 느낌을 받았다.
* * *
최재훈 일행이 매장으로 향하는 동안 교실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했다.
김경식과 신소하에게 시비를 거는 학생들.
그럴 때마다, 최재훈의 대응 또한 몇 차례 반복됐고-
"…."
"…."
"…."
2학년 식당은 빈자리 없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앉은 테이블 구역만은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신소하와 김경식을 함부로 건들지 못했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그 셋을 철장 안 맹수 대하듯 경계했지만 이내, 없는 사람처럼 무시했다.
유우준과 엮인 그들과 엮이기 싫었다.
예상과는 달리 쾌적한 식사에 김경식과 신소하는 얼떨떨했다.
김경식은 처음엔 최재훈이 원망-까지는 아니지만, 야속했다.
가만히 가면 단순한 괴롭힘으로 끝나는 문제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드는 걸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는 그가 걱정이 되었다.
남들은 다 가만히 있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감싸준 최재훈, 그가 자신을 도와주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 걱정은 지금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왜인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신소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후낭, 재후낭."
그녀의 얼굴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어느새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오늘 급식 완전 맛없다 그치?"
그런 그녀를 보며 김경식은 고갤 갸웃거렸다.
'가깝…지 않나?'
착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 최재훈의 옆에 꼭 달라 붙어 있었다.
팔짱이라도 낄 기세였다.
"인정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구연."
"그치? 그치? 우리 그럼 매점 갈까?"
"나 돈 없다~"
"내가 사 줄게!"
"됐다, 나 군것질 별로 안 좋아해."
"치~ 노잼~"
그녀가 최재훈의 팔을 콕콕 찌르며 실실댔다.
최재훈이 말 없이 잠깐 가만히 있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 어디 가!?"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실실대던 신소하가 사색이 되어 따라 일어섰다.
"더 먹게."
"아, 그래?"
대답을 듣더니, 다시 또 실실거리며 식판을 들고 그의 뒤에 따라 붙었다.
"그러면 나도 더 먹어야징~"
김경식은 그런 신소하를 보고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역시 그 둘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방과 후.
소문이 2학년을 넘어서 학교 전체로 퍼져나갔다.
-야 ㅅㅂ ㅋㅋ 2학년 그 인간전차 새끼랑 누구 스파링 뜬다는데?
-누구?
-ㅁㄹ ㅋㅋ
-어서 싸운대?
-김민성이 방송으로 중계한데
-오 ㅅㅂ ㅋㅋ 개꿀띠
한성 체육관에 도착한 김민성이 방송을 켜자, 시청자 수가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 수는 금새 1천 명이 넘었다.
"시청자 오르는 속도 보니, 우리 학교 애들 다 몰려온 것 같은데?"
-김하
-민성이 오빠 안녕하세여~~~ 저 1학년 민주인데 기억하시나용~~-아니 김민성 이 새끼 또 뭐하고 있냐 ㅋㅋ-민성아 선배님들 공부해야되는데 ㅅㅂ 이런 자극적인 컨텐츠 방송 할래?
그 말대로, 현재 시청자 대부분은 덕성고의 학생이었다.
유우준은 그 압도적 덩치와 입지 덕분에 덕성고 내에서도 상당한 유명인이었다.
그런 그가 누군가와 각서를 쓰고 스파링을 한다니, 관심이 안 갈 래야 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 근데 우유잔이랑 맞장뜨는 새끼 도대체 누구냐?
-누군지 몰라도 ㅈㄴ 불쌍하네 ㅋㅋ
-구급차 불러둬야 하는 거 아님?
-걔가 먼저 유우준한테 시비걸었다며
-ㄴㄴ ㅋㅋ 유우준이 걔 친구 삥 뜯는 거 실드쳐주다가 그랬다는데?
-오 ㄷㄷ 정의의 사자였누
-死子입니다
-死者야 ㅄ아
-BEAR VS LION ㄷㄷㄷㄷ
-싸움 수준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야 민성아 유준이 누구랑 싸우냐? 좀 보여줘 봐
"아, 오케이~ 잠시만요~"
김민성이 요청에 따라 링 위를 비추었다.
거기엔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한 유우준과-
-머임?
-누구지?
-첨 보는데?
-우리 학교 애 맞음?
최재훈이 서 있었다.
그가 김태한 패거리 쪽을 쳐다보곤 눈썹을 튕겼다.
그 안에 있는 제나와 포함된 것이다.
'주인님, 왜 거기 계십니까.'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표정에, 제나가 입만 움직여 화답했다.
죽여 버려.
둘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우리 학교 애 맞고요~ 최재훈이라는 앱니다. 유우준이랑 같은 반, 맨날 퍼질러 자는 애 있어."
-아니 이거 끕이 너무 안 맞는 거 아님? ㅋㅋ 웬 듣보 새끼가 -우준아 살살 해라 -저새낀 도대체 뭐 믿고 깝친 거임?
-??? 이거 지금 무슨 방송임?
-일찐이 찐따 패는 방송입니다
-누가 일찐이고 누가 찐딴데
-딱보면 모르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두 명 다 준비 됐어?"
관장과 코치가 부재인 시간을 틈타 방문했기에, 심판을 보는 건 일개 훈련생이었다.
그는 김태한 패거리와 형 동생 하는 사이이기도 했다.
"야, 뭐 할 말 없냐?"
유우준이 이죽거렸다.
상체를 벗은 그의 양 팔은 소위 이레즈미라 불리는 문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건달이었지만-
최재훈은 이 학세권 동네의 치안이 얼마나 좋은지 알며.
그렇기에 건달이라 부를 만한 불량배 집단 역시 없는 것도 안다.
끽 해 봐야 좀 불량한 학생들이 몇이서 모여 다니는 수준.
주눅 들 이유가 없는 최재훈은 그저 그의 문신을 보며-
'무슨, 1등급 마크 잔뜩 찍어 놓은 돼지 같네.'.
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뭐 이 시발아?"
아, 생각만 한 게 아니었나 보다.
"이 십새끼, 너는 방금 마지막 버스 놓친 거야."
유우준이 살벌하게 웃으며 거리를 좁혀 왔다.
그는 문신을 자랑하듯 양팔을 앞으로 세워 안면과 가슴을 가렸다.
사람들이 복싱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본적인 자세였다.
유우준과 같은 거한이 그런 자세를 취하고 전진하자 엄청난 위압감을 자아냈다.
-워 시발 ㅋㅋ
-살벌한 거 봐라 ㅋㅋ
-ㄹㅇ;; 앞에 있으면 다리 풀릴 듯
폭력적인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유우준의 모습에 채팅창과 현장의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재훈은-
"…?"
홀로 이질적이었다.
모두가 감탄하는 유우준의 모습을 보곤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볍게 뒤로 스텝을 밟아 거리를 유지하며 말했다.
"큭큭큭, 찐따 새끼. 도망치는 거 봐라. 계속 그렇게 도망 쳐 봐라~"
"그럴까? 야, 근데, 너 복싱 하냐?"
"하, 병신 새끼. 이 자세하면 다 복싱 배우는 것 같지 그냥?"
"아니, 딱 봐도 안 배운 것 같아서."
"뭐?"
유우준이 아무리 좁히려 해도 좁혀지지 않던 거리가 일순에 좁혀졌다.
유우준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한 전력이 담긴 주먹에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이어서-
-퍽!
타격음.
그런데 이상하다.
저 거대한 덩치의 유우준이 전력을 담아 휘두른 주먹이 만든 소리라기엔 너무나도 경쾌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기세가 죽어 뒷걸음질 친 유우준.
그의 두 팔이 얼굴을 견고하게 방어하고 있었다.
아니지, 가리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정작 방어해야 할 땐 그러지 못했으니.
유우준이 팔을, 가드를 풀었다.
그렇게 그의 얼굴이 보인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그의 코가 점점 붉게 달아오르더니-
-주륵
수줍게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씨발, 뭐야…?"
유우준이 글러브로 코를 툭툭 두드려 코피를 확인하곤 당황하여 중얼거렸다.
최재훈은 그와 반대로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여유롭고, 또 도발적으로 미소 지었다.
"자 이제 니가 술래."
"뭐…?"
역시나 혈기와 야성이 가득 담겨, 제나가 알고 있는 성인 최재훈과는 사뭇 다른 미소를.
"주먹으로 나 한 대라도 정타 맞추면, 니가 이긴 걸로 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