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39화 (338/361)

339. 외전 역전의 제나 4

-전학 오기 싫었는데 억지로 온 건가?

-전학가고 싶어 하는 놈이 어딨어.

-왕따 같은 거 당하면 전학가고 싶을 수도 있지.

-저 얼굴에, 저 인상인데 왕따를 당한다고? 야, 왕따를 하면 했겠지.

-야 그러게. 무슨 문제 일으켜서 전학 온 걸 수도 있겠네.

-야, 야. 임마. 들리겠다.

-그러고 보니 쟤 한국어는 알아들으려나?

-그러게, 쟤 한국어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영어 선생님이 따라다니면서 통역이라도 해 주겠지.

-큭큭.

세상 모든 게 짜증나고 하찮다는 듯한 얼굴의, 미모의 서양인 전학생.

그런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모든 2학년이 몰려온 듯했다.

이미 복도가 사람으로 가득찼음에도 인파는 계속해서 몰리고.

-아, 밀지 마!

-다 봤으면 좀 꺼져!!!

인파에 따라서 현장의 온도 역시 올라간다.

그 인파 한가운데에 있는 남학생.

그는 주변에 비해 머리가 한 개는 더 큰 건장한 체구 덕에, 자리가 그리 좋지는 않음에도 쾌적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툭툭 치며 옆으로 밀어내려 하는 게 아닌가.

"밀지 마."

-툭툭.

"밀지 말라고."

-툭툭툭!

"아, 이런 씨. 밀지 말라니까. 어떤 새끼야?!"

그가 신경질적으로 돌아보며 노려봤다.

그 체구 덕분에, 그 모습엔 어지간한 성인도 주눅들 위압감이 실렸다.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고, 거기에 한창때의 혈기가 더해져.

그는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온다면 언제든지 받아 줄 의향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고, 시선을 내린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밀던 이의 얼굴이 보였다.

명백히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남학생을 보고 그는-

"아, 어…."

곤두선 꼬리를 즉시 말아 내렸다.

그를 건들거리며 올려다보는 남학생, 김민성.

그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을 뿐더러 분위기도 곱상했다.

남학생이 싸움꾼이라면 김민성은 모델 같았다.

겉보기에 둘을 맞부딪히면 당연히 김민성이 부러질 듯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민, 민성아. 너였어?"

"그래 임마."

"미안, 모, 몰랐어."

하지만 남자는 비굴한 태도로 급히 몸을 돌려 김민성에게 길을 터 줬다.

이곳 덕성 고등학교는 인근의 인문계 고등학교 중에서는 수준이 가장 높은 편에 속했다.

명문대 진학률, 교사들의 수준, 설비를 비롯하여.

학생들의 수준 까지도.

인근 중학교에서 내신이 상위권에 속하는 모범생들이 모이는 학교가 바로 이곳, 덕성 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

또한 같은 부류끼리 모이면 그 안에서 또 종류와 급이 나눠지기 마련.

덕성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도 그들만의 신분제는 존재했고, 그렇게 급이 나뉘어졌다.

김민성은 이 학교 2학년의 가장 꼭대기에 군림하는 패거리의 일원이었기다.

김민성은 꽉 막힌 인파를 노아마냥 시원하게 가르며 인파의 맨 앞 열로 향했다.

"어, 민성이 왔냐."

방금 남학생보다 체구가 크다- 기 보다는 비대한 남학생, 유우준이 그를 반겼다.

"우유잔아, 이게 뭔 난리냐."

황태성이 유우준의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아이, 디지려고."

유우준이 주먹질을 하는 시늉을 하자 둘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마지막으로 인파를 가르고 합류하는 학생.

고등학생 답지 않게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와 구릿빛 피부.

전학생과 같은 금발이었다.

하지만, 전학생과 달리 자연 금발이 아닌 염색 금발.

"어, 태한이 왔냐."

패거리의 주축이 되는 김태한이었다.

"싸움난 거 맞지? 누구야? 우리가 아는 애들?"

"그건 아니고, 전학생 왔댄다."

"전학생? 겨우 전학생 왔다고 이 난리라고?"

"겨우 전학생이 아니라는데?"

"뭐, 연예인이라도 돼?"

"연예인급이긴 해."

"뭐?"

김민성의 턱짓에 김태한이 전학생을 바라봤다.

뒤돌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도 김태한의 눈썹이 들썩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생머리는 인위적으로 물들인 자신의 머리보다도 선명했고, 인공적으론 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170중반으로 추정되는, 여자치곤 큰 신장을 뽐내기라도 하듯 쭉쭉 뻗은 팔과 다리는 로션을 덕지덕지 발라놓기라도 한 듯 희다.

김태한은 고갤 끄덕여 저 이국적 외모가 싸움구경만큼 자극적인 구경거리라는 데에 동의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김태한은 흰 피부와 길어서 가늘게 느껴지는 팔다리를 보고 가냘프다는 느낌을 받고 오히려 흥미를 잃는다.

김태한의 취향은 연상 타입.

정확히는, 카리스마 있는 타입이었다.

전학생에게서 받은 이미지가 자신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기에,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긴다.

"뭐야, 태한이. 얼굴 안 보고 가?"

"어."

그런 김태한을 보며 김민성은 쾌재를 불렀다.

"나이스. 일단 태한이 관심 없고~"

"저 전학생도 니한테 관심 없을걸?"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찌찌 커지니까 여자의 마음도 알겠냐?"

"이런 십새-"

"악!! 아악! 아, 머리. 머리 새끼야!!"

"어, 야 잠깐."

옆쪽에 시선을 빼앗긴 유우준이 속삭였다.

"우리 학교에 저런 애도 있었나?"

"응?"

김민성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전학생을 보고 그녀를 보니 감각이 마비되는 듯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으나 전학생의 비현실적인 신체 비율을 보유하고 있는 여학생이 서 있었다.

외모 역시 지지 않는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한 그 분위기는 어찌 보면 어지간한 3학년보다 성숙하게 느껴졌지만 숨길 수 없는 풋풋함이 묻어나온다.

명찰의 색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노란색이었다.

"최재…은?"

김민성이 눈가에 힘을 준 채로 중얼거렸다.

"아는 애야?"

"아니 명찰 보고."

"새끼, 눈 좋은 거 봐라. 야 어쨌든, 쟤 딱 내 취향인데. 민성아. 니가 번호 좀 따다 줘라."

유우준의 말에 김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아, 또 나보고 따라 그러지 말고~ 응~?"

뒤늦게 아,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운 김민성이 그제야 유우준에게 답했다.

"야 젖소야. 꿈 깨라."

"아~ 이 새끼 진짜~"

"아니 임마, 그게 아니라."

"응?"

"저 1학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 생각 좀 해 봤는데. 예전에, 정찬욱 형한테서 이야기 들었던 거더라."

"찬욱이 형?"

3학년에서 김태한과 같은 입지에 있는 학생이었다.

"찬욱이 형이 뭐랬는데."

-아 맞다. 민성아. 니, 1학년에 최재은이라는 애한테 깔짝대지 마라. 좆되는 수가 있어.

"하, 씨 뭐야. 찬욱이형 지인이었어?"

지인이라.

그 말을 들은 김민성이 고갤 갸웃거렸다.

당시 정찬욱의 모습은 엄포를 놓아서 경고를 한다기 보다는-질색을 하며 충고를 하는 것 같았으니.

어쨌거나 확실한 건-

"번호 따고 싶으면 니가 가서 따라~"

"아, 꺼져. 좆될 뻔 했네."

그렇게 둘은 불가항력으로 1학년에게서 떼어낸 관심을 다시 전학생에게로 향했다.

그때, 교무실 문이 열리고 교사가 나와 인파를 해산시키려던 찰나-

"오…."

김민성은 드디어 전학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녀가 자기 쪽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그 시선은 미묘하게 빗나가 있었지만, 김민성은 자신을 보는 거라 여겼다.

그 외모에 시선을 빼앗긴 김민성의 수려한 입꼬리가 올라갔다.

예감이 좋았다.

* * *

"…재은아,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전학생 구경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는 길.

최재은의 단짝인 최혜원이, 아까부터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최재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야, 혜원아! 말 걸지 마! 재은이 바쁘잖아!"

마찬가지로 최재은의 단짝으로서, 최 트리오의 일원인 최수진이 최혜원을 다그쳤다.

"재은이가 지금 얼마나 바쁜데."

"헐, 뭔데, 뭔데?"

"야한 생각 하잖아."

"헐… 그렇구낭…."

"뭐라는 거야 이 가시내들은."

최재은이 뒤늦게 상념속에서 빠져나와 말했다.

"혜원아."

"응?"

"수진아."

"응?"

"그, 뭐냐. 서양에선 요즘 그렇고 그런게 유행 중이잖아?"

"그렇고 그런거?"

"그 뭐냐… 거시기끼리 거시기하고 저시기끼리 저시기하는 거 있잖아."

"뭐라는지 모르겠엉…."

"그니까 그거, 게이랑 레즈비언."

"아, 아!"

"동성애 말하는 거임?"

"그래, 그거. 그거때문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 말에 혜원과 수진이 멈칫, 제자리에 섰다.

"응?"

최재은도 멈추고 고갤 돌리자, 음흉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둘이 보엿다.

"재은이 설마…."

"말 끝에 점 세 개를 붙이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여자!?"

"앗, 혹시 방금 그 전학생 선배님…!?"

"대박! 그 선배님 보고 첫 눈에!"

"아니면 혹시…!?"

"혹시!?"

"수진이를!?"

"에바! 내 생각엔 넌 것 같애!"

"나!?!"

"이응이응!"

"미안해 재은아…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팔짱을 눈을 감은 채 고갤 끄덕이던 최재은이 손가락을 까닥여 손짓했다.

"시, 싫어! 때릴 거잖아!"

"맞아! 폭력 반대!"

"맞을 짓을 했다는 자각이 있군. 그렇다면 더더욱 처맞아야겠어. 맞을 짓인 걸 알면서도 했다는 거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 가시내, 니도 그 선배님한테 씨익 웃어줬잖아!"

"아니 그럼 선배님이 씨익 웃는데, 어떡할까. 그냥 쌩까? 그 선배님 분위기 못 봤어? 내가 쌩깠으면 1주일 만에 2학년 먹어버리고, 1학년 집합 걸었을껄!?"

"재은아! 우리 1학년들을 살리기 위해 니 순결을 바친 거구나!"

"내 순결 날라가 버린 거냐!?"

"그렇지!"

"그런가…?"

"어쨌든 얘들아…."

"응…?"

"나는 동양인이야…."

"그래서…?"

"오호."

"동양인인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생각해 보니 그럴 지도."

"어… 애들아, 일단 그런 접근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해."

"어쨌거나, 찌질이들. 그래도 아주 뇌가 썩진 않았군. 반은 맞춘 것 같으니."

"대박! 거봐, 내가 그 선배- 하니으에에에-"

"진짜 그 선배니- 믈 조하으에에에-"

혜원과 수진의 찰떡같은 볼이 최재은의 기느다란 손가락에 이끌려 쭈욱 늘어났다.

"혜원아…."

"응, 재으나."

"수진아…."

"예, 언니."

"아무래도 이, 마성의 여자 최재은이 한 사람을 더 실연의 굴레에 빠트린 것 같다."

"이거 놔후호 얘히해주면 안핼하?"

"우흔 일힌엥?"

"아무래도 그 선배, 나한테 반한 것 같아."

"헤~박."

"으얼 어헣헤 알하?"

"나 최재은, 많은 사람들을 폴 인 러브라는 상태이상에 빠트린 요물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식스센스를 발동시킨 것이지."

"와~ 댸수없어~"

"얘은이가 인기가 많긴 해…."

"시종일관 똥 시식하던 얼굴이던 그 선배님이 날 보더니 갑자기 되지도 않는 미소 지으면서 손 흔드는데, 너흰 뭐 못 느꼈니?"

"으러킨 해?"

"으런가…?"

"게다가 그 사람 생긴 걸 봐. 겁나 서양스러운 게, 겁나 레즈비언 할 것 처럼 생겼잖아."

"오호라."

"얘들아… 으런 차별적인 접근방식은 알못됐다니까…."

"어쨌든. 그래서 고민이라는 거지.

구속이 풀려난 혜원이 울상으로 볼을 문질렀고.

수진 역시 뚱한 얼굴로 볼을 문질렀고, 최재은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심상치 않거든. 날 쳐다보는 그 눈에 담겨있던 열기. 수업 끝나자 마자 쳐들어와서, 고백을 하는 게 아닐까."

"막, 연극에서 왕자 배역이 연기하듯이. 내 사랑, 내 마음을 받아주시오! 그럴 것 같지 않아!?"

"만약 진짜 그렇게 되면 어떡할 거야?"

최재은이 눈을 반짝거리는 두 친구를 보며, 뭘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듯 인상을 팍 썼다.

"난 언레즈비언이야."

"그 표현이 맞나…?"

"근데, 재은아. 근데 넌 어떠 남자가 스타일이야?"

"갑자기 그건 왜."

1학기가 시작한지 머지않은 지금.

최재은이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 그러니까 그녀들의 나이대 남학생만 벌써 10명이 넘어갔다.

혜원과 수진이 보기에 하나같이 잘생기고 외향적인 남학생들이었지만, 최재은은 그들을 길거리 돌맹이 보듯 했다.

최재은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걔네는 너무, 음, 남자로 안 보인다 해야 하나? 너무 꼬꼬마 같애."

꼬꼬마의 화신 같은 재은이가 이런 말을 하다니.

게다가, 그 훤칠하게 잘생긴 애들이?

둘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의 말이 대강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둘이 생각하기에, 자신들 역시 꼬꼬마였다.

하루아침에 집안의 생계가 어려워지면 자신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도 저도 아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최재은은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족이 진 짐을 나눠 짊어지기 위해.

물론, 성적을 유지하지 못할 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겠다는 조건에 따라 지금은 그만뒀지만.

어쨌거나, 그런 그녀에게 학업은 뒷전이고 부모가 사 준 명품으로 치장하면서 놀기 바쁜 또래는 이성이기 이전에 꼬꼬마로밖엔 보이지 않으리라.

'게다가….'

최재은 스스로도 엄청난 미녀고-

'오빠 분이 그런 사람이니까….'

어지간한 남자 정도론 눈에 안 차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 재은이 이상형은-"

"재훈 오빠 같은 사람인가?"

둘의 말에 최재은은 공중 화장실의 열어선 안 될 변기뚜껑을 연 것 같은 표정이 됐다.

"왜 여기서 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

"왜긴…."

"재훈 오빠 멋있자낭?"

"세상에…."

최재은이 심려 가득 묻어나는 둘을 바라봤다.

"너희 둘, 그 짐승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어? 뭐, 그 인간이 도촬이라도 한 다음에 '큭큭 이 사진이 인터넷상에 퍼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를 우러러봐라.' 이러기라도 했어?"

"헤헤, 재은이 부끄러워한다."

"우리 재은이 깜찍한 거 봐라~"

최재은은 질색팔색십팔색을하며 말을 돌렸다.

"어쨌든. 너희들도 좀 같이 생각해 봐바바. 1학년이면 생각없셈~ 하고 그냥 보내면 되는데. 그래도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꺼져, 그래도 달라붙으면 퍼버벅! 근데, 선배님이잖아. 게다가 여자고! 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오케이, 내 뇌를 빌려주지."

"음…."

다른 의미로 신난 둘과 달리 최혜원은 영 미적지근했다.

둘의 가정이 너무 얼토당토않았으니까.

'그렇게 예쁜 선배가 동성애자라 재은이한테 반해 가지고 전학 첫 날 부터 다짜고짜 쳐들어온다니….'

그녀는 두 친구를 적당히 진정시켰다.

장담컨대, 그럴 일이 있을 리 만무하다고.

* * *

'바로 처들어가야지.'

최재훈이라는 실뭉치의 실타래, 최재은을 발견한 제나는 생각했다.

최재은 반 찾아내서, 오늘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찾아갈 것이라고.

그녀의 만족스러움이 입가에 특유의 비소가 그려짐으로써 표출됐다.

3자가 보기엔 아주 흡족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남의 아구창을 날리려는 표정 같았다.

'응? 잠깐.'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걔랑 동생이랑 나이차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게 불가능한 나이차였다.

최재은이 고등학교 1학년이라 해도, 최재훈은 이미 대학생에 있을 나이.

그리고, 자신은 그런 최재훈보다 연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최재은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자신은 2학년이고.

"…세상에."

제나는 그렇게, 그의 연상이었던 자신이 연하가 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떻게 내가 더 어려진 거지!?

라는 의문 따위를 느끼기엔, 이미 그보다 더한 과거 회귀라는 현상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제나는 이번에도 역시 '아~ 여기에선 내가 걔보다 나이가 적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아니, 잠깐.'

돌연, 제나의 눈이 커다래지고 손발이 벌벌 떨렸다.

'썅….'

그녀는 현 상황에서 비롯되는 중대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걔한테 누나라고 한 번도 못 들어 봤네….'

그의 연상에서 연하가 됨으로써,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판타지를 충족시킬 기회의 기약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잠깐.'

더군다나-

'그럼 이제 내가 걔를 오, 오빠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잠깐 떠올렸을 뿐인데도-

'아악!!!' 담임을 따라 반으로 향하던 그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저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데.

그런데 잘 보면, 마냥 싫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아, 맞다. 걔도 날 누나라고 안 부르고 제나 씨라고 불렀었잖아. 그럼 나도 걜 재훈 씨라고 부르면- 아니, 아니지. 그건 걔나 나나 사회인이라 그랬던 거고. 난 지금 고2고, 걔는 끽해 봐야 대학생일 텐데. 재훈 씨라고 부른다고? 그건 너무… 어색한데?'

그렇게.

그녀는 다시 한번 상상해 봤다.

제나가 최재훈의 뒤통수에다 대고 부른다.

'재, 재훈 오빠.'

그러자 뒤돌아보며 대답하는 그.

'응? 제나야.'

"오, 마이, 헬…."

그녀는 너무나도 '끔찍해서'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응? 제나야? 제나야!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이동하며 이런 저런 말을 건네 제나의 긴장을 풀어주던 그녀의 새로운 담임, 장태식이 당황해서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의 귀가 홍당무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아뇨… 그냥 좀… 긴장돼서…."

어느새 문 앞이었다.

종이 치기 전과 후의 학교 복도는 서로 별개의 세계 같다.

복도를 가득 메우며 그녀에게 폭발적 관심을 보였던 이들은 더 이상 안 보인다.

하지만 문 너머로 들어가면, 다시 종이 치면.

그녀에게 있어 학창시절은 다시는 겪지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로 기억되어 있다.

그 기억에 의하면 제나는 이번에도 역시 여러 모로 피곤한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 터였다.

허나 피곤하되, 그때처럼 괴로운 나날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제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때와는 달리 혼자가 아니고, 그때와는 달리 그 사람이 있으니.

자신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도 변했다.

제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두 번째 학창시절은 잊고 싶은 과거가 아닌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자신이 18살 꼬꼬마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됐지만 말이다.

"준비 됐어?"

"네."

드르륵.

문이 열리고 엄격한 담임이 등장하자 교실은 곧바로 정숙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

"쟤!"

선생님을 뒤따라 입장한 전학생을 확인하는 동시에-

"와아아아아!!!"

"대박!!!"

"우리 반이었어?"

"지렸다 지렸어~"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

반 전체가 자신에게 열광하는 상황.

하지만 일말의 긴장도 없다.

이것보다 더, 훨씬 더한 상황도 겪었다.

당장 며칠 전만 해도 수만 명의 관객, 수억의 시청자들이 일제히 자신에게 보내오는 열광을 무대 위에서 몸소 느꼈다.

"자 그럼, 제나? 새로운 동급생들에게 자기소개 한번."

학생들이 소란을 떨며 그녀의 자기소개를 기다렸다.

"…."

제나는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피식, 특유의 비소를 지었다.

옛날, 그녀의 비소는 오만하게 상대방을 비웃는 느낌을 줬지만.

지금에 와서는 넘치는 자신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칠판으로 가까이 다가가 분필팬을 들었다.

어느새 반의 소란은 가라앉아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로서 관객과 시청자들을 휘어잡았던 그녀의 분위기가 어김없이 발휘되며 자연스레 그들을 사로잡았다.

분필팬이 움직이며 칠판 위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Jenna West]

[제나 웨스트]

글을 써 내려가며 그녀는 새로운 자신에 대한, 새로운 부분을 알게 된다.

새로운 자신은 기존의 자신과 달리 한국의 토박이보단 외지인에 가까웠다.

옛날부터 한국 출장을 거듭하던 아버지, 에단 웨스트가 한국 지부장으로 발령 나면서 4년 전에 이민을 왔으니.

본래는 아버지 홀로 한국행을 할 예정이었는데, 당시 학교생활이 잘 풀리지 않았고 가족 관계에 의존이 심하며 K-POP에 빠졌던 자신이 충동적으로 동행 의사를 밝힘으로써 가족의 단체 이민이 돼 버린 거라고.

정작 그러면서 지금은 K-POP에 관심은 거의 없고, 사춘기에 들어서 부모님과의 관계는 서먹하여 때때로 한국에 온 걸 후회하며 미국을 그리워한다.

'병신 아니야.'

그런 연유로 아직은 한국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며, 원래 한국어도 서툴었었다.

부모와 선생에게 '갑자기 발음이 좋아졌네?'라는 소리를 들은 건 이 때문인 듯하다.

"영어로도 해 줘!!!"

"말하면 알아들어? (영어)"

"""오오오~~~~~~~"""

"와 발음 봐."

"근데 뭐라 한 거야?"

"알아들을 수 있어? 대충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와, 넌 또 그걸 알아듣네."

"근데 우리 영어 선생님보다 발음 좋은, 나쁜 것 같은데?"

국제 활동을 대비하여 다시 배우기 시작한 아직은 어눌했던 영어가 능숙해진 것 역시 이 때문인 듯하고.

"어쨌든, 내 소개는 여기까지."

18살답지 않은 존재감을 가진 그녀의 자기소개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학생들이 일제히 환호와 박수를 터뜨렸다.

18살 꼬꼬마들이 귀엽다는 듯한 그녀 특유의 비소가 열기를 한 층 더 끌어 올렸다.

'응?'

그 과정에서, 그녀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와아아악!!!"

"눈나 나 죽어!!!"

열광하는 '남자'.

그리고-

"꺄아아악~~~ 말투 개터프해~"

"개섹시해~~~"

열광하는 '여자'.

'…?'

남자 쪽 반응은 그렇다 쳐도.

'여자'쪽의 반응을 확인한 제나가 저도 모르게 표정을 구길 뻔했다.

저 반응은 너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남자'같지 않은가.

성관념적인 부분에 아무런 관심도, 편견도 없는.

그러니까, 평범한 성관념을 갖고 있는 제나였다.

그렇듯 평범한 '여성'이기에, 그녀는 묘하게 '남성'스러운 '여자'들의 태도가 영 눈꼴시려웠다.

'뭐, 내가 모르는 새로운 시비 거는 방법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편하다.

18살 꼬꼬마의 도발이라니.

제나와 눈빛을 교환한 담임이 그녀에게 준비된 자리를 배정해 주려던 찰나였다.

"질문!"

"응?"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QNA 타임!"

"오~ 민성이~"

담임이 제나의 눈치를 보자, 그녀는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민성이라 불린 학생에게 턱짓했다.

그러고 보니, 이 학교 '남학생'들은 특이하게도 대부분이 화장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남들보다 피부 톤이 한 층 더 밝고, 눈썹이 말끔하게 손질된 뒤 진하게 칠해진 저 민성이라는 녀석을 보고 깨달았다.

중성적으로 곱상한 미남이었다.

표정은 여유로운 자신감이 웃는 상으로서 표출되고 있었다.

어딘가-

'걔 화장했을 때랑 비슷하네.'

그런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제나의 질문 허가에 김민성이 신나서 입을 열었다.

"오케이~ 그럼… 음… 제나는 전학 오기 전에, 썸 타던 애 있었어?"

남자는 '올~' 여자들은 '꺅'.

이런 질문에 이런 분위기라면 십중팔구 확답을 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없다고 하거나 말이다.

"노 코멘트."

역시.

"""에이~~~"""

"""우~~"""

야유가 나온다.

짓궂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김민성이 의도한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그러면-"

의도한 질문을 말한다.

"나 어때, 가능성 있나?"

오오오오올~~~

여지껏 가장 흥미진진하고 뜨거운 반응.

김민성의 예상대로라면 제나는 자신이 의도한, 기대한 답을 돌려줄 것이다.

방금 전처럼 '노 코멘트'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이 분위기에서 그렇게 얼버무린다면?

반 안에서 둘의 관계는 사실상 기정사실이 될 것이다.

그는 제나가 호감을 느낄 만한 미소를 지으며 제나의 대답을 촉구했다.

교무실 앞에서, 자신에게 미소지어주던 모습을 떠올린다.

예감이 좋았다.

이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No-"

그녀의 입술이 예상한 모양이 되-

"…?"

다가 허무하게 닫힌다.

산뜻한 비웃음과 함께 단호하게 말해진 전학생의 대답.

-pe"

Nope, 이었다.

명품으로 치장했으면 자기관리에 철저한 18세 미소년.

남자로서 엄청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김민성이었지만-어제 봤던 그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명하게 아른거리던 제나에겐 아니었다.

그때, 전학생의 시선이 김민성을 지나쳐 그 뒤에 고정됐다.

구석 자리에서 책상에 엎어져 있다가, 막 일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학생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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