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외전 역전의 제나 1
제목 : 야 니들중에 그거 예매 성공한 사람 있냐?
내용 : 슈퍼 필드 티켓 ㅇㅇ
ㄴ : 만 장이 넘는데 무슨 1초만에 매진되더라
ㄴ : 가족들 총동원했는데 다 실패함 ㅋㅋ
ㄴ : 이게 티켓을 빼먹을 수가 없는 구조더라 ㅇㅇ; 견고해
ㄴ 글쓴이 : 그래도 니들은 시도는 해 봤네...
ㄴ 글쓴이 : 난 사이트 서버 터져서 예매 시도도 못 해 보고 입구컷 당함...
ㄴ : 평소 클럽에서 입구컷 당하는 건 클럽 서버가 터져서 그런 건가요?
ㄴ : 얼굴 서버가 터져서
ㄴ 글쓴이 : 개새기들이네 진짜
ㄴ : 아니 근데 솔직히 그 매진 속도가 말이 되냐고 ㅋㅋ
ㄴ : 그니까; 수능때 이상의 집중력으로 욕심 버리고 처음부터 구석자리 노렸는데 ㅅㅂ 구석자리 1초컷이 말이 됨?
ㄴ : 슈퍼 필드 티켓 예매 성공하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인데 도대체 니가 버린 욕심은 무슨 욕심이냐?
ㄴ : 예매를 성공하겠다는 욕심
ㄴ : 욕심을 버리니까 실패하지 이 무지몽매한 것아 ㅉㅉ;
ㄴ : 오 님 성공함?
ㄴ : 근데 안 버려도 실패하더라
ㄴ : 우리가 버려야 하는 건 희망이었던 걸까?
ㄴ : 너무 슬퍼요 여기 분위기 숨이 막혀 막
ㄴ : 야 근데 왜 나 아직도 예매 성공했다는 년 한 명을 못 본 것 같냐?
ㄴ : ㄹㅇ ㅋㅋ 나도 주변에서 성공했다는 년 한 명을 못 봄
ㄴ : 사실, 티켓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ㄴ : 티케팅을 하면서 우리가 만든 추억과 경험, 그리고 인연. 그게 진짜 티켓 아니었을까?
ㄴ : 우리들의 티켓팅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ㄴ : 주변에 성공했다는 년이 왜 없긴 ㅋㅋ 암표상 새끼들이 메크로로 싹 쓸어가서 그렇지
ㄴ : 이거 근데 암표상이랑 매크로새끼들 ㅈㄹ 못하게 뭐 해놨다던데?
ㄴ : ㅇㅇ 나 중고월드에서 암표상 새끼들 확인해 봤더니 매물 한 장도 없었음
ㄴ : 암표상 말고 엄한 애들이 표 팔고 있더라 ㅋㅋ
ㄴ: 그 새끼들이 이제 암표상인 거지
ㄴ : 근데 표 얼마임?
ㄴ : B급 좌석 100만
ㄴ : 하 ㅅㅂ 쎄긴 한데 그 정도면 욕심내 볼 만한데?
ㄴ : 으로 시작했는데 댓글창에서 경매 열리더니 500만 까지감
ㄴ : 500만... 메소요?
ㄴ : 500만 ㅋㅋ ㅈㄹ났네
ㄴ : 아니 상식적으로 500만이 말이 됨?
ㄴ : 공연 라인업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고...
ㄴ : ㄹㅇ 정신 나갔더라 슈퍼볼급
ㄴ : 레오필이 잘나가긴 하는구나...
ㄴ : 그거 표 사겠다는 애들 중에 외국인들도 ㅈㄴ많이 보이더라 ㄴ : 하... 우리나라에서 해가지고 이번이 직관할 마지막 기회였는데 어림도 없었네
레전드 오브 필드, 그 이름이 사람들에게 각인된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고.
그 동안 레오필을 중심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게임과 E스포츠의 위상이었다.
레오필의 완벽에 가까운 그래픽과 자유도로 구현되는 플레이어들 간의 경기.
이는 영화나 스포츠 경기는 주지 못하는 색다른, 그렇기에 독보적인 매력과 경험을 선사했다.
레오필로 인해 격상한 E스포츠의 위상을 미국의 가장 저명한 스포츠 매거진에서 표현하길-
-꽉 막힌 어르신들조차 E스포츠를 우스갯거리 취급하지 않는 세상이 마침내 도래했다.
전세계 강자들이 집결해 최고 중 최고를 가리는 레오필 공식 월드 챔피언십인 슈퍼 필드.
그 인기는 대표 스포츠 축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으며.
-조사에 따르면 요즘 10대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 축제는 슈퍼볼도, 월드컵도, 올림픽도 아닌 슈퍼필드였다.
10대들 사이에서 그 인기는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세계 4대 레오필 리그의 나라인 미국에 사는 조이는 그러한 10대 중 한 명이었다.
"와, 진짜… 와…."
"조이, 그렇게 좋니?"
슈퍼 필드가 진행되는 서울 E스타디움에 입장한 조이.
그녀는 서울 밤거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보다도 반짝이는 눈으로 스타디움 내부를 둘러봤다.
영상으로 이 장소를 몇 번이나 접했는지 모른다.
레전드 오브 필드의 첫 공식 대회가 개최된 장소로서, 전설이 시작된 장소.
레전드 오브 필드와 E스포츠 팬들에게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장소였다.
요즘 미국 10대들에게 있어서 성지란 예루살렘이 아닌 이곳이라 봐도 무방햇다.
자신은 지금 그런 장소에 슈퍼 필드 관람객 자격으로 서 있는 것이다.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을 실물로 접한 뒤 귀국해서 학교 친구들과 SNS에 자랑한다.
아름답기만 한 미래에 효심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엄마, 진짜… 진짜 사랑해요. 진짜, 진짜 와…."
그런 자식을 보며 엄마는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씁쓸했다.
여전히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만 달러….'
때문이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배틀 필드 2인 석 A급 좌석 티켓팅에 기적적으로 성공했던 당시의 그녀는 딸의 미소를 볼 생각에 마냥 기뻤다.
그런데, 티켓의 가치를 알게 되자 그 기쁨은 깊은 고뇌로 바뀐다.
'이 사백 달러짜리 티켓의 양도 가격이 최소 만 달러라니!?'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인 그녀에겐 공연 한 번 보자고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막대한 액수였다.
이 돈이면 몇 년을 더욱 풍족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이 티켓을 양도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딸과 함께 있었다.
'가장'이 아닌 '여성'으로서 내린 판단이었다.
슈퍼볼 직관은 모든 미국 여자들에게 있어서 평생의 숙원이었다.
그녀는 만약 자신에게 슈퍼볼 직관 티켓을 만 달러에 구매할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슈퍼볼이, 10대들에게 있어서는 슈퍼 필드 다음이라 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녀는 같은 미국 여자로서 딸을 이해하고, 기꺼이 만 달러라는 거액의 기회비용을 감수했다.
"엄마가 널 이만큼 사랑한다… 크흑…."
'그나저나-'
그녀도 뒤늦게 경기장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40대였고, 또래의 여느 이들처럼 아직 'E스포츠'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은 상태였다.
'비디오 게임은 어린 애들이나 하는 것'
'프로 게이머는 비전이 없는 변변찮은 직업'
그런데-
"허, 참나…."
백 명의 선수를 수용하기 위해 광활한 경기장을 꽉 채운 무수히 많은 기기들과 거대한 모니터.
아직 경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관객과 그들의 기대에서 비롯된 열기로 가득 찬 관객석.
일사분란하게 날아다니는 드론들.
모녀의 자리는 A급 좌석인 만큼 경기장의 중심과 가까웠고, 그 만큼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분위기를 받아들이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갔다.
피부의 잔털들이 쭈볏쭈볏 서는 기분.
그녀는 생각했다.
그동안 티비 화면 너머로만 지켜본 슈퍼볼 경기장에 직관을 오면, 이러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
"…마. 엄마!?"
"어, 어?"
화이트 노이즈처럼 귓가에 맴돌고 있었던 경기장의 소음을 뚫고 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문제 있어요? 왜 갑자기 그리 멍하니…."
"어, 아니…."
그녀는 이내 피식 미소 지으며, 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싶어서."
머지않아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축하 공연이 시작된다.
거대한 경기장의 중앙을 차지한 커다란 무대가 세계 최정상 뮤지션들로 수놓아진다.
라디오에서 틀고 또 틀어줘 이제는 질려버린 빌보드의 그 노래가, 현장에서 라이브로 울려 퍼지자 심장 박동이 리듬과 박자를 쫓아가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한 전율을 선사한다.
경기장에 짙게 깔려 있던 기대의 열기가 폭발을 일으켜, 공연이 끝날 무렵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자 그럼,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지금, 정점에 이르렀다.
-우아아아악!!!!!!!!!!!!!!
-무사! 무사! 무사!!!
관객석 곳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입장하는 미국 대표 팀 무리 선두에 선 'MUSA'에게 열광했다.
작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프로게이머로서 미국 저명 매거진인 MOMENT에서 '금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스포츠 스타 10명'에 꼽힌 세계 최정상급 플레이어.
미국인들을 제외하고도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은 많았다.
"너가 좋아하는 선수가 저, MUSA라는 친구였었지?"
"와아아아악!!! 어? 아, 네!!!"
"듣자 하니, 이번 대회 유력 우승 후보라던데? 거는 기대가 크겠어?"
MUSA를 보고 반쯤 광란하던 조이가 모친을 보더니 격렬하게 고갤 끄덕였다.
"무사 아니면, 그 사람 못 잡아요."
"그 사람? 아."
그녀는 레오필과 그 리그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딸이 좋아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선수에 대해선 이름 정도만 어렴풋 알고 있을 뿐.
그런 그녀조차도.
'그 사람'에 대해선 자세히 알고 있었다.
누군가가 말하길 이 분야의 마이클 조던과도 같은 존재라 했던가.
이 분야의 정점으로서 아이콘적인 존재.
"마지막 팀인, 대한민국 대표팀들이 입장합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무대 위에 올라오는 무리.
그 선두에 있는 선수를 본 이들이, 자리에서 기립했다.
MUSA를 응원하는 조이조차도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스크린에 얼굴이 비춰진 그가, 스크린을 향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장소를 두드렸다.
대기가 진동하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
그러한 열기 안에서 홀로 얼떨떨한 그녀는 스크린을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남자네…?"
* * *
전세계가 지켜봤다.
한국에서 최초로 개최된 레오필 공식 대회를.
그 대회에서 활약하는 한국 플레이어들을.
당시 페이스를 비롯하여 E스포츠 분야에서 정점을 차지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을 중심으로 상향평준화되어, 몇 단계는 앞서 있는 한국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과연 제 4의 종족.
과연 E스포츠의 종주국.
출범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이던 레오필 리그는 한국 리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회를 지켜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팀들이 한국인 용병을 적극적으로 섭외하기에 나섰다.
그로 인해, 레오필 팬들은 역사적인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인 제 1회 슈퍼 필드에서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모이는 슈퍼 필드 참가자 중 절반이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한국인.
중국의 한국인.
일본의 한국인.
각국의 에이스들 역시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육상 대회가 흑인들로 도배되듯, 레오필 대회가 한국인들로 도배되었다.
출신은 한국인일지라도 팀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소속된 팀과, 그 팀이 속한 국가를 대표한다.
팬들은 한국인 강점기에 큰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움은 느낀다.
적어도, 자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자신과 같은 국가의 출신이길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레오필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인 풍조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인을 이겨라'.
MUSA는 4대 리그에서 두 번째 위상을 가진 만큼 한국인 용병들의 실력도 출중한 APL에서, 최초로 한국인들을 밀어내고 모국의 에이스로 거듭난 선수였다.
젊은 나이에 천재적인 재능.
그녀는 올해, 미국 스포츠 선수들 중 가장 화려한 한 해를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슈퍼 필드 시즌인 지금, 그 기대가 극에 달했다.
'그'를 상대로 승리하고 정상을 차지하여 미국의, 미국인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을 것인가.
"아!!! 결국 MUSA가 대한민국 DUG의 TANSAN 선수를 처치하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생존자가 두 명으로 좁혀집니다!"
"이렇게 되면!?!"
"그렇죠, 이렇게 되면!!!"
"모두가 고대하던 이 두 선수의 전면전 구도가 성사됐습니다!!"
"맞습니다! 결국, 레오필 팬들의 바람이 이렇게 이루어지네요!"
경기장의 거대한 메인 스크린에 무사의 플레이 화면과 함께 그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 그간 MUSA에게서 보지 못한 긴장된 모습인데요!"
"그러게요! 마치 페이스 선수를 연상시키는 초연한 태도로 유명한 MUSA 선수에겐 상당히 낯선 모습이네요!"
"APL 결승전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았던 선수가 아니였나요!?"
"어쩔 수 없죠! APL엔 이 선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렇죠! MUSA 선수 지금 어떤 심경일까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할 수 있어….'
극후반에 접어든 경기.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경기 시작부터- 어쩌면 그 한참 전부터 비축해둔 집중을 모두 짜냈다.
현재 레오필 모든 플레이의 기반이 되는 메타의 창시자.
동시에, 계속해서 그 메타를 발전시켜나가는 선구자.
최고를 넘어서 기준이 되어 버린 플레이어.
그의 존재로 인해, 그녀는 최고가 되었음에도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일부 극단적인 팬들에겐 그의 아류, 하위호환 취급을 받기 일쑤.
그것도 오늘까지다.
마침내 증명의 순간이 다가왔고, 훌륭히 입증해낼 것이다.
이제 진정한 최고는 자신임을.
<구역이 제한되었습니다!>
* * *
쾅!
경기장에 적막을 가져온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개인 부스 안의 MUSA가 키보드를 내려치는 것을 신호로 산화되었다.
선수들에게나 관객들에게나 특히나 길게 느껴진 전투가 막을 내렸다.
결과.
"마무리 일격에 성공하면서, MUSA를… 처치! 하는데 성공합니다!
MUSA의 패배였다.
"그야말로 땀에 손을 쥐게 하는 승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려 정 해설자 님의 언어회로가 고장 날 정도로 혼을 쏙 빼 놓는 명경기였습니다!"
"끝까지 멋진 승부 보여준 MUSA 선수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해설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치열한 명승부.
하지만 MUSA가 느끼기엔 틀렸다.
이는 서로가 치열하게 겨뤘다기보다는, MUSA가 분전했다는 표현이 옳았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가 느낀 바는 그랬다.
압도적인 패배.
좌절감은 분노가 되고, 원래는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한 그녀의 호흡이 거센 화마가 되었다.
그녀가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는 와중.
부스 밖에선 다른 의미로 격앙된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 4회 슈퍼 필드 개인전의 챔피언에게도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부스를 두드렸다.
당연하지만 자신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열렬한 반응.
그녀는 단번에 주연에서 조연으로 추락하여 다시금 그의 그림자에 잡아먹혔다.
MUSA는 자리에서 힘없이 자신의 기기들을 챙긴 뒤 부스 밖으로 나섰다.
먼저 부스에서 나온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그것도 잠시.
그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아직 열리지 않은 마지막 부스.
그 문이 열린다.
"결국, 이변은 없었습니다! 제 4회 슈퍼 필드컵 역시, 제 1회, 제 2회, 제3회 슈퍼필드와 같이!"
"숨컷이 차지합니다!!!"
관객들, 심지어는 미국과 MUSA의 팬들조차 그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 소음 속에서, MUSA는 타오르는 눈동자로 숨컷을 응시했다.
그 시선을 느낀 숨컷이 MUSA를 응시하더니-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앞에 다가와 손을 건넸다.
순간.
그녀가 맹렬히 피워내던 불꽃이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진화되었다.
그녀가 멋쩍은 얼굴로 뒷목을 긁적이고 괜스레 눈치를 본 뒤, 그 손을 마주잡았다.
그가 말했다.
"좋은 게임이었습니다."
미국인인 그녀에게 저도 모르게 한국어로.
그에, MUSA가 답했다.
"안 수 배웟, 슴니다."
이 순간을 위해 틈틈이 익혀두었던 어눌한 한국어를 아주 수줍은 태도로 말한다.
눈썹을 들썩인 숨컷이 이내 한쪽 입꼬릴 끌어올리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저야말로, 크게 배웠어요."
그녀는 입술을 악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미소를 참기 위해.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있어 방금 막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발을 잘못 디뎌 추락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결승에서 만난 그와 악수를 나누며 미소와 함께 인정을 받는다.
레오필 플레이어에게 있어 그보다 더한 영광은 많지 않았으니.
둘이 악수한 모습이 스크린에 비춰지고 경기장 내부가 박수갈채로 채워졌다.
그렇게 개인전이 성황리에 종료되고 이어진 하프타임 공연 역시 종료되면서-
"자 그럼, 팀전이 시작됩니다!"
빈 무대 위가 다시금 선수들로 채워진다.
이번에도 역시 마지막 순서는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첫 번째 팀과 두 번째 팀이 무대 위로 오르고 마지막 팀이 입장한다.
숨컷을 필두로 한 세계 최강의 팀'CCC'였다.
해설자가 그 팀원 한 명 한 명을 언급할 때마다, 숨컷에게 밀리지 않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과 선수들 더러는 그들을 우러러보며 상상했다.
레오필과 함께 휘황찬란한 전성기를 구가중이며, 그보다 더욱 찬란한 미래가 보장된 그들과 같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마지막으로, 삼피!
그들이 등장한 이후, 경기장의 열기는 배틀 필드가 종료될 때까지 사그라들지 않았다.
* * *
이제는 크루겸 팀이 된 CCC에서 제나는 일행들과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충실한 나날이었다.
모든 일이 쉽진 않았지만 순조로웠고, 그 과정은 몹시 보람찼다.
성공이라는 철로는 끊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제나는 난생 처음으로 형성한 관계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지난 몇 년간 그들과 함께하며 얻은 행복과 즐거움이, 지금까지 고독하게 살아왔던 수십 년 동안 얻은 것보다 컸다.
그런데도 왜일까.
제나는 요즘 들어 혼자서 잠을 청할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미래를 떠올렸고.
그럴 때마다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지금의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리고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최재훈.
미래에 그는 어떤 모습일까. 쉽게 상상이 된다.
다른 동료들의 모습과, 다 함께 있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
그런데.
그와 자신이 단 둘이 있는 모습은, 유독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상상을 멈추고 핸드폰을 들어 바탕화면을 응시했다.
거기엔 그토록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 모습이 있었다.
특유의 미소를 지은 최재훈의 거리낌 없는 어깨동무에 눈을 커다랗게 뜰 정도로 놀란 제나.
기습으로 찍힌 그 사진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그녀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내, 그녀는 쭈뼛거리며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
려다가 말고는 스스로를 어둠으로 끌어당기듯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항상 느끼는데, 새로운 집과 침대가 참으로 넓었다.
* * *
제나의 새로운 침대는 정말 넓었다.
그녀가 잠꼬대를 하며 옆으로 두 번 굴러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퍽!
"악!"
그렇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잠에서 깨어나다니.
"아이 씨…."
바닥에 쳐박힌 그녀가 안 그래도 언짢아 보이는 얼굴을 한 층 더 구기며 기상했다.
그리곤 가장 먼저 핸드폰을 확인-
"…어?"
하려던 그녀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시야에 들어온 방 내부의 풍경을 보고 그렇게 됐다.
"뭐…지?"
어제, 자신의 방에서 잠이 들었던 그녀는 지금 난생 처음 와 보는 방 안에 있었다.
가장 먼저 낯설음이 느껴졌고, 그 뒤를 낯설음을 아득히 뒤덮는 강한 위화감이 따라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제나는 자신의 감각과는 완전히 정 반대되는, 이 '남성'의 숨결이 물씬 느껴지는 방이 왜인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또 다른 자신의 방'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