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 천외전 1
레오필.
그 차원을 달리하는 그래픽과, 현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작의 결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더해진다.
거기에 0시즌 오픈!
마치, 블랙 프라이 데이에 유명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을 파는 격.
지역과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게이머들이 레오필에 집결했다.
'월드 오브 워'와, '레아블로3'.
심지어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마저 뛰어넘는 역대급 센세이션.
'난리'가 날 거라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 근데 ㅅㅂ 서버 왜 안 터지냐?]
[ㄹㅇ;; 왜'로스트 월드' 안 하는 거냐고]
[왜 대기열 안 떠!!!]
[아니 ^^ㅣ발 서버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아이엇!!!]
[사실 지금 밤낮으로 하늘에 떠 있는 게 사실 태양이랑 달이 아니라 아이엇이 띄어 올린 서버용 인공 위성이라던데요]
[몇몇 분들은 그래픽 보시고 눈치 채셨겠지만 레오필은 사실 게임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것 뿐이에요]
[아이엇... 그들은 신인가?]
[이게 정말 그 찐따같던 중소인디기업이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진짜 아이엇은 전설이다 ㄹㅇ;]
그리고, 그 '난리'란 놀랍게도 서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말로 서버에 외계인을 갈아서 바르기라도 한 건지 레오필은 그 많은 유저들이 몰렸음에도 간혈적인 끊김과, 일부 유저들에게만 드물게 일어나는 다운 현상만 있을 뿐.
그 외엔 이렇다 할 문제 없이 그 천문학적인 유저들 전부를 수용하는 위용을 선보였다.
난리란 '공식'이 형성되어가는 과도기를 뜻했다.
레오레의 EU 메타처럼.
모든 게임에는 '공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게임을 승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
현재 레오필 플레이어들은 그 '공식'을 찾아내기 위해 랭크 게임에서 몸과 뇌를 부대끼고 있었다.
그 공식을 완전히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출시한지 오랜 세월이 지난 스타 오브 워와 레오레조차도 여전히 그 공식의 수준이 발달해가고 있는 실정이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과도기라는 난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저 틀이 잡히는 정도면 충분하다.
1년.
사람들은 그 '공식의 틀'이 잡히기까지 1년 정도를 잡고 있었다.
내년 필시 개최될 '월드 챔피언 십'에서 세계를 평정한 누군가가 그 '공식의 틀'을 제시해 주리라.
과거, 렐드컵 초대 챔피언들이 레오레 공식의 틀이 되는 EU 메타를 제시해 줬던 것처럼.
그런 그들의 예상은 깨지고 말았다.
[와 ㅅㅂ 또 김치우먼들이야? (영어)]
[역시 김치에 뭔가 있다니까? (영어)]
[오늘 저녁은 한식이다 (영어)]
[김치하니까 생각난 건데 우리 동네에 'KIM'S KIMCHI'라는 가게 있거든? 저 KIM이 뭔가 했더니 한국인들 성이래 ㅋㅋㅋ 저 나라 사람들은 성에도 김치가 들어가 시발 ㅋㅋ(영어)]
[한국인들은 김치를 얼마나 사랑하는 거냐... (영어)]
[아니 우리 김치 별로 안 좋아해 미친년들아(영어)]
[한국에서 김치 피클 같은 거야 인종차별 코쟁이 새끼들아 씨팔 나치의 후예새끼들아 제국주의 흑인 원주민 학살자들의 후예 좆만이들아]
[쟤 뭐라는 거야? (영어)]
[많이 섭섭하다며 니네 엄마가 나치래 그리고 아빠는 유태인이래(영어)]
[욕이야? 아니면 금술 존나 좋다고 칭찬하는 거야? (영어)]
[아니 시발 이거 이번에 김치우먼들 이야기 하는 쓰레드 아니였어? 병신들이 뭔 김치랑 나치유태인 부부 얘기 하고 있네(영어)]
[야 근데 이번 일을 '이번에도 김치우먼들이야?'라고 하기엔 어폐가 좀 있지 않냐? (영어)]
[나도 그 생각 했는데(영어)]
김치우먼이 아닌 '김치맨'.
[일 낸 건 숨컷, 그 친구 하나고 심지어 그 친구는 남자잖아(영어)]
[김치우먼들이 일냈다기엔 '들'도 아니고 '우먼'도 아니네]
[아니 근데 아직도 얼떨떨하네 숨컷 걔가 남자라고? ㅋㅋ(영어)]
숨컷, 그에 의해서 겨우 일주일 만에 말이다.
그가 플레이하는 한국 서버에는 '페이스'와 '포그'가 있다.
레오레와 배로그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정점.
사람들은 레오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당연히 그 둘 중 한 명의 소행 혹은 업적이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서버의 1위라던가.
최초의 '공식' 정립이라던가.
하지만 정작 그들은 차례대로 2, 3위였고 '치킨킹치킹'은 그 둘의 위에 있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격차로.
압도적인 격차로 세계 최초 '다이아몬드'를 달성하고.
세계 최초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에 이은, ‘챌린저’를 달성했다.
두 전설은 그에게 한 발짝 뒤쳐져 그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현재 숨컷이 세계 최초 챌린저를 달성한 시점에서, 그 둘은 아직 그랜드 마스터였고.
그 과정에서 숨컷을 만나 몇 번이고, 최후의 1:1 상황에서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말이 되나?
숨컷의 실력이 뛰어난 건 이미 유명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국엔 솔랭 전사.
우물 안 개구리.
아마추어다.
그런 그가, 당연한 듯 둘의 위에 서 있다고?
[사실 페이스랑 포그 레오필은 못하는 거 아님?]
결국엔 두 전설의 위신이 추락하기에 이른다.
'차밍챠오'.
그녀는 중국의 플레이어로서, 현재 '한국 서버 정벌'을 진행 중이었다.
뒤늦게 시작했으나-
제목 : 와 차밍챠오 얘 뭐임?
내용 : 못 보던 앤데 폼 ㅈㄴ좋네
평균 등수랑 킬수 뭔디?
ㄴ : 중국인인가?
ㄴ : 첨 듣는 이름인데
ㄴ : 얘도 레오필와서 용 된 케이스인 듯?
ㄴ : ㅈㄴ 잘하긴 하더라 ㄷㄷ 프로들 상대로 이기고
ㄴ : 레오필에 프로가 어딨어 ㅄ아
ㄴ : 레오/필 프로 ^^ㅣ발아
ㄴ : 아 ㅋ
놀라운 퍼포먼스로 빠르게 한국의 랭커들을 뒤쫓으며 화자되고 있는 그녀가-
"오!"
페이스를 만났다.
'듣자 하니, 페이스 레오필 와서 퇴물 다 됐다던데.
배로그와 레오레, 그 어느 쪽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이번 레오필로 기세를 타기 시작한 방송인인 그녀에겐 더는 없을 정도로 훌륭한 '사냥감'이었다.
듣자 하니, 페이스는 현재 '진드라'를 중점적으로 플레이하며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진드라에 대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진드라는 마나 회복과, 재사용 대기 시간 감소를 큰 폭으로 상승시켜주는 '마나의 지팡이'를 코어 아이템으로 확보하기 이전까지는 제 구실을 못할 정도로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마나의 지팡이’의 재료가 되는 '남신의 눈물'과 '거대한 지팡이' 확보가 진드라의 최우선 과제.
그 점을 노린다면 페드라의 공략은 아주 수월해질 터다.
차밍챠우는 '렝가르'를 선택했다.
진드라와 달리, 코어 아이템이 뜨기 이전 타이밍부터 강해서 게임을 좀 더 빠른 템포로 가져갈 수 있으면서.
동시에, 지형물과 지형물 사이를 넘어 다니는 스킬인 '덮치기'로 인해.
지형물이 많은 지형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하는 캐릭터다.
'남신의 눈물'과 '거대한 지팡이'를 드랍하는 몬스터는 모두 숲 한 가운데에서 출현한다.
즉.
'렝가르'는 초반에 약한 상태로 지형물인 나무가 많은 장소에서 불가피하게 전투를 벌여야 하는 진드라의 담당일찐이라 할 수 있는 챔피언이었던 것이다.
[졸렬한 새끼 ㅋㅋ]
[페따거 이기려고 작정을 했구만]
[저새끼들 다 빵쯔냐? ㅋ 중국인이 한국인 이기면 좋은 거지]
[ㄹㅇ ㅋㅋ 레오레도 아니고 레오필에서 페따거 ㅇㅈㄹ]
[아마추어한테 털리면서 아직도 지들이 e스포츠 종주국인 줄 알고 뻗대는 빵쯔들 혼내주고 이제 누가 주인인지 보여주자고]
[차밍챠우 꼭 이겨라 이기면 1만 위엔 쏜다]
"물론이지."
표정이 자신감과 기대로 가득 찬 그녀는 머릿속에서 이미 페이스를 압살하고 얻은 유명세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음~ 한국인들 이기는 게 케이크 먹는 것처럼 간단하구만."
차밍챠오는 초반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렝가르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플레이어들을 하나둘 처치해 나간다.
그렇게 몬스터가 출현하기 직전, 상대적으로 높은 레벨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상태로 나무 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내려다보는 장소는 '남신의 눈물'을 드랍하는 몬스터인 '오염된 물의 정령'이 출현하는 '웅덩이'.
마나의 지팡이의 재료로는 남신의 눈물 외에도 거대한 지팡이가 있었지만.
캐릭터에 따라 재료 아이템 사이에도 급은 존재한다.
남신의 눈물로 제작할 수 있는 진드라의 코어 아이템은 마나의 지팡이를 비롯하여 네 가지.
반면에 거대한 지팡이로 제작할 수 있는 진드라의 코어 아이템은 마나의 지팡이 하나뿐이었다.
범용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남신의 눈물이, 중요도 또한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마나의 지팡이'가 없는 진드라는 '똥캐'지만.
'남신의 눈물'이 없는 진드라는 캐릭터조차도 못 된다.
그냥 똥.
진드라는 다른 플레이어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노릴 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남신의 눈물을 확보하기 위해 이 곳 '웅덩이'에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뭐지?"
'오염된 물의 정령'이 이미 출현했는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진드라.
설마, 일찍이 위험을 감지하고 포기한 건가?
진드라가 남신의 눈물을?
그럴 리가.
차밍챠우는 조금만 더 끈기를 갖고 대기했다.
그러자-
"그럼 그렇지!"
머지 않아 등장하는 페이스.
그녀는 곧장 달려들-
'…뭐야?'
지 못한다.
진드라의 레벨이 이상했다.
어떻게-
[와 진드라 레벨 왜 저래?]
[마나 지팡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렝가르보다 레벨이 높냐?]
[그저 페드라 ㄷㄷㄷㄷㄷ(한국어)]
[짱개새끼 얼타는 거 보소 ㅋ(한국어)]
[뭐라는 거야 빵쯔 새끼들아 좀 꺼져]
[짱깨 새끼들 페드라 보더니 또 발작 일으키누 ㅋㅋ]
렝가르인 차밍챠우보다 높을 수가 있는가.
"…."
진드라가 렝가르보다 레벨이 높다곤 하나, 이런 지형에서 매복하고 있던 렝가르가 기습한다면.
상성상 그 격차를 쉽게 극복이 가능하다.
실제로, 차밍챠오는 어지간해선 망설임 없이 기습을 이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페이스'였다.
그녀가 무시하고 있었던 그 이름의 무게가 저 불가해한 성장 상태로 인해 소생했다.
그렇게 다시금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즉.
그녀는 쫄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뭐지?'
진드라가 '오물정'을 지나쳐 그대로 나무 사이로 들어간다.
'…아!'
혹시, 매복을 하려는 걸까?
'페드라'의 남신의 눈물 확보를 저지하러 올 누군가를 대비해서?
'귀엽네.'
어쩌나.
자신은 이미 이 위에 있는데.
머지않아 누군가가 난입한다면 페이스는 그를 기습할 것이다.
그렇게 전투에 돌입해 자신의 기습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것이다.
머지않아 누군가가 난입하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
페이스의 성미상, 불확실한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기다리느니, 기습의 위험을 감안해서라도 행동에 착수하고 말겠지.
왜냐? 자신 있을 테니까.
기습 당해도 이길 거라는 자신이!
그 자신감을, 오만함을 파고드는 것이다.
차밍챠오는 그 '페이스'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뒤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꼈다.
그 감정을 만끽하며 여유롭게 페이스의 다음 행동을 기다린다.
이윽고-
'오…!'
예상대로 누군가가 나타나 오물정의 주위를 둘러보더니 매복을 하려고 한다.
'왔다.'
페이스는 그가 매복하기 전에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그렇게 둘이 전투에 돌입하여 소모전이 어느정도 진행되었을 때 자신이 난입한다면?
"후후."
이겼다.
그녀는 시작되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가지고 페이스의 등장을 기다린다.
그러나.
"뭐야, 뭐하는 거야?"
그가 매복을 위해 지형물에 숨어드는데도 행동에 나서지 않는 진드라.
뭐지?
매복을 하도록 방치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텐데?
확실하게, 그가 먼저 오물정을 공격해서 전투에 돌입해 무방비한 상태가 되는 걸 기다릴 생각인가?
그때까지 마냥 기다린다고?
'…아니.'
그런 식의 비효율적인 플레이로는 1등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페이스는 그런 식의 플레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아뿔싸.'
그때였다.
동시에, 차밍챠오와 제 2의 매복자는 뇌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드라가 남신의 눈물을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이번 게임엔 진드라의 담당 일진이라 할 수 있는 '렝가르'가 존재하며.
렝가르가 진드라에게 순수이 남신의 눈물을 내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렝가르와 진드라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기에.
누군가가 어부지리를 노리고 난입할 가능성 역시 높다.
무수히 많은 위험 요소.
즉, 예외라 부를 만한 상황이었다.
남신의 눈물을 포기하는 걸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상황.
그 경우, 1위는 포기해야겠지만.
적어도, 극 초반에 탈락한 위험은 대폭 하락하며.
페이스라면 남신의 눈물이 없다 해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 재량을 갖추고 있다.
즉.
자신들이 이렇게 매복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 페이스는 착실하고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자신의 적이 말이다.
'이런 젠장!'
'지금쯤이면 둘이 싸우고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현장을 급습했다가 허탕을 치고 '아직 둘 다 안 왔구나'라고 생각한 제2의 매복자는.
그제서야 '자신이 가장 빨리 도착한 게 아니라'.
자신보다 먼저 도착하여 매복한 상태로 페이스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을 깨닫는다.
렝가르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뒤로 누군가가 더 찾아올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상대방을 처치한 뒤 남신의 눈물을 확보하여 자리를 떠야 한다!
둘이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곤, 서로를 기습했다.
치열하게 오가는 공방 속에서 소모전이 진행된다.
이윽고 승부가 결정되려던 결정적인 순간.
-쾅!
어디에선가 날아온 두 개의 어둠 구체가 둘을 동시에 정확하게 가격했다.
'뭐?'
스킬 '어둠 방출'에 적중 당해 상태이상 '기절'에 걸린 건 그들의 캐릭터인데.
정작, 플레이어인 그들까지도 상태이상 '기절'에 걸린 듯 넋이 나가 버린다.
어둠의 구체가 날아온 방향에서는 진드라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 상황의 마무리는 애초부터 그녀의 등장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듯, 아주 당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