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27화 (326/361)

327. 역지사지 1

레오필은 기본적으로 100명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하여 경쟁하는 배틀 로얄 게임이다.

우승 방법은 최후까지 생존하는 것.

그렇다면, 한 명 외엔 모두 패배자가 되는가?

아니다.

1등에서 50등까지 상위권으로 분류하며, 등수와 킬 스코어에 따라 차등으로 점수가 상승하며.

51등에서 100등까지는 하위권으로 분류되며, 마찬가지로 등수와 킬 스코어에 따라 차등으로 감소한다.

포그는 이번 게임에서 11킬의 스코어로 2등을 기록했다.

1등의 평균 킬 스코어가 5킬 내외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성적이었고.

따라서 획득 점수 또한 높았다.

어지간한 1등보다 많은 점수를 획득하는.

어지간한 1등보다 대단한 2등인 것이다.

하지만, 포그에게 있어선 '실패'에 불과했다.

1등 실패.

그리고, 그 상대가 '숨컷'이라면?

'실패'는 '패배'가 된다.

포그가 갑작스러운 패배의 굴욕을 추스리고 있는 와중.

-아, 이거 연승 중에 죄송해서 어째. 아, 맞다 한 수 가르쳐 주면, 연승 끊어도 원망하기 없다고 그랬었지, 참.

후원으로 재생된 영상 클립 안의 숨컷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 취소, 수고링.

손을 척, 하고 올리며 작별인사를 고한다.

그렇게, 마무리 일격을 날린다.

실로 유치한 도발이었으나-

"…."

실로 유치한 상대에겐 아주 잘 먹혀든다.

빠직!

포그의 실눈이 경련을 일으키듯 휘었다.

만만하게 보고 있던 최재훈을 도발하다가, 당한 뒤 도리어 도발을 당했다.

그녀의 자존심으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 참나~"

그녀가 진짜 조금도, 요만큼도, 코딱지만큼도, 당황하지 않았음을 제발 알아줬으면 한다는 듯.

짐짓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운 좋게 이겨 놓고 까부는 거 봐."

[웬 운?]

[지가 이기면 실력이고 지면 운이누 ㅋㅋ]

[지면 '운'이긴 해 지금 이 새기 울려 하고 있잖아 ㅋㅋ]

[아 ㅋㅋ 그 운이었냐고]

"아니, 웬 운이긴요. 방금 못 봤어요? 뽀록샷 다다닥! 터져 가지고, 제 피 우수수! 깎였잖아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템 차이 극복하고 내가 바르는 건데!"

[다다닥! 우수수!]

[표현이 참 저렴해서 귀엽네요]

[전신 승리 프로토콜 풀가동]

[실례지만 불타고 계십니다]

그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결과가 숨컷의 행운이 작용한 결과라고.

놀랍게도, 이는 자존심을 부리는 것도 정신승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그렇긴 해 ㅋ]

[ㄹㅇ ㅋㅋ 방금 거리에서 조컷이 그런샷빨이 나온다? 말 안 되거든요]

[잠깐 FPS신이 빙의한 듯 ㄷㄷ]

[그럼 대리받은 거네]

[ㄷㄷ 불편충 새기들 사고 회로가 어떻게 돼 있길래]

[숨컷/논란/대리]

[고스트 레오필왕]

숨컷의 '에임 랭커'에 대한 정보는 아직 완전히 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그를 '미니 멸망전' 때의 숨컷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겐 매우 합당한 결론이었던 것이다.

"하, 어쨌든 뭐. 그래요. 진 건 진 거니까. 인정."

그럼에도 그녀는 결과적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오 ㅋㅋ 웬 일]

[애민이 다 컸누? ㅋㅋ]

[애민이 철 다들었누 ㅋㅋ]

"상관없어. 어차피, 이제 운 좋아도 못 이길 거니까."

결국엔, 자신이 승리할 것을 알았기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자신은 한층 더 진화한다.

하애민이 아직 동심과 유치함을 간직한 초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각성기-

"이제부터 제대로 한다."

'이제부터 제대로 함'을 시전했다.

효과는 엄청났다!

패배했음에도 자신감에 들어찬 그녀가 곧장 게임 서칭을 시작했다.

[오 ㅋㅋㅋㅋ]

[아니 이걸 또 만나네]

[ㄷㄷ 이게 운명...?]

[ㄷㄷ 님들 운명에서 운을 뒤집어 보셈]

[공명? ㅁㅊ 소름]

[그게 왜 소름인데 ㅄ아]

[공명의 함정 ㄷㄷㄷ]

[짜맞추는 거 보소 저런 애들이 음모론 같은 거 믿지]

[ㅜ 이것도 뒤집어 보세요]

[음모론? ㅗㅜㅑ;]

[뭘 대출하는 건가요 ㄷㄷ]

[대출같은 소리하네 대가리 출타한 새기들박에 업누]

[아니 근데 ㄹㅇ 이걸 또 만나네]

누구의 말대로 운명이 작용한 걸까?

"죽었어."

이번에도 숨컷과 포그는 다시 한번 맞닥뜨렸다.

그리고 이는 운명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 시스템이 작용한 결과였다.

랭크 게임이 오픈되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오픈부터 쉴 새 없이 플레이 했다면 10게임을.

그러니까, 배치고사를 충분히 끝낼 시간이었다.

배치고사를 끝내고 티어를 배정받은 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숨컷과 포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둘의 티어는 플래티넘이었다.

그렇기에, 둘은 만난 것이다.

레오레고, 배로그고.

플래티넘 유저만 수십만 명에 이른다.

두 게임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당연히, 같은 플래티넘 티어라서 만난 거다'라는 말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플래티넘'은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제목 : 와 저 지금 박레드 님이랑 같은팀 잡힘 ㅋㅋ

내용 : 찐이라던데 대박 ㅋㅋ

ㄴ : 배틀 로얄게임 배치고사에서 박레드 만난게 과연 대박인 일일까요?

ㄴ : 대가리 박살

ㄴ : 이 새기 게임하러 갔냐?

ㄴ : 금방 돌아오겠네요

ㄴ 글쓴이 : 아 ^^^^^^^^ㅣ발 하필 박레드 새끼랑 근처에서 시작해서 시작하자마자 뒤지고 100위 찍었네

ㄴ : 말 끝나기가 무섭게

ㄴ : 박레드 님에서 박레드 새끼가 됐누

ㄴ : 근데 ㄹㅇ 박레드면 거의 자연재해네

ㄴ : 걔 그래도 레오레는 좀 못하지 않냐? 파밍으로 압살하면 이론상은 가능할 것 같은데

ㄴ : 나도 방금 그 판에 있었는데 파밍이고 뭐고 ^^ㅣ발만나면 걍 박레드가 이김 ㅋ

ㄴ : 데미지가 두 배면 뭐해 ^^ㅣ발 저 새기 총알은 내 머리에만 박히고, 내 총알은 ㅄ이 맞지도 않는데

ㄴ : 누가 보면 총알이 푸켓몬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요

ㄴ : 아 이래서 랭크 게임 좀 있다가 돌리라는 거였구나

ㄴ : 지금 랭크 게임 헬이라더라 ㄹㅇ ㅋㅋ

게임의 '첫' 배치고사인 만큼 모든 이가 공평하게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

즉.

먹이 사슬의 위에 있어야 할 존재들이, 먹이 사슬 최하위로 떨어져.

먹이 사슬 아래쪽 주민들을 잡아먹으며 차근차근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자연재해라 부를 만했다.

지금 랭크 게임은 폭풍, 지진, 분화, 태풍.

자연재해란 모든 자연재해가 몰아치고 있는 마경이었다.

말이 안 되는 난이도!

거기에-

제목 : 배치고사 끝났다 티어 핑까좀

내용 : [사진]

ㄴ : 우욱 똥론즈

ㄴ : 뭘 짓을 했길래 똥구덩이오물론즈에 배치되셨나요

ㄴ : 베토벤 접신해서 게임 서칭한 다음 눈 감고 키보드로 월광 소나타라도 치셨나요?

ㄴ : 원래 티어는 어디였는데

ㄴ 글쓴이 : 오늘 오픈한 게임에 원래 티어가 어딨어 ^^ㅣ발 브론즈돼서 심란해 죽겠는데 헛소리 할래?

ㄴ : 배로그나 레오레 말하는 거잖아 ^^ㅣ발아

ㄴ 글쓴이 : 배로그랑 레오레 둘다실버

ㄴ : 아니 실버나 브론즈나 ㅅㅂ아

ㄴ : 애 상태 보니까 브론즈 받을 만 했네

ㄴ 글쓴이 : 하 ^^ㅣ발 수치스러워서 브론즈 달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 걍 한강 갈까

ㄴ : 실딱새기 육갑을 떠네

ㄴ : 계정을 다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ㄴ : 다른 계정을 재생성 하려느 것 같은데요

ㄴ : 아 ㅋㅋ 브론즈급 겜실력이면 인생 재생성 사유 ㅇㅈ이지

ㄴ : 아니 근데 이거점수 ㅈㄴ 짜게 주긴 해

ㄴ : ㄹㅇ;; 본인은 골드인데 막판 운 좋게 50위에 들어서 겨우 실버5 턱걸이함ㄴ : 너무 짜서 ^^ㅣ발 바닷물로 희석시킬 수 있을 수준이야

첫 배치고사인 만큼 낮은 시작점!

이 두 가지가 겹쳐져.

배치고사가 일단락된 현재 랭크 게임 플레이어들의 티어의 평균은 대체적으로 낮게 형성되어 있었다.

제목 : 아니 ㅋㅋ 뭐냐 이거?

내용 : 배로그, 레오레 더블챌 유저 방송 보는 중인데

얘 배치고사 ㅈㄴ 잘 봤는데도 겨우 골드 3이네

ㄴ : 지금 프로들도 골드 뜨는 마당에 ㅋ

ㄴ : 골드러시 ㄷㄷㄷㄷ

ㄴ :10판 다 10위 안에 들은 프로도 골드 2던데?

난다 긴다 하던 챌린저 상위권 유저들과, 프로들마저도 골드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ㄴ : 이거 이론상 최대 플래티넘까지 뜰 수 있지 않음?

ㄴ : 지금 플래티넘 있긴 하냐?

그런 상황에서-

ㄴ : 어 있네 ㅋㅋ 3명 ㅋㅋㅋ

ㄴ :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플래티넘은 더 이상 플래티넘이 아니었다.

독보적인 기세로 앞서나가고 있는 그들이 거듭해서 맞닥뜨리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위부터 100위가 표시되는 랭킹 1 페이지.

'황금'으로 도배된 그곳의 정상에, 세 '백금'이 고고하게 우뚝 서 있었다.

그건 일종의 상징과도 같이 느껴졌다.

'어나더 레벨'.

자신이 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포그를 그를 당연히 여기면서도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

"나머지는 누군데?"

[일단 페이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같은 '정상'.

자신이 라이벌로 여기는 상대.

페이스라면 당연히 자신과 같은 곳에 설 줄 알았다.

"응? 그런데 세 명라고? 또 한 명은 누군데?"

[조컷이요]

숨컷, 그 역시 포그가 라이벌로 여기는 상대였다.

"…오빠가?"

그런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페이스에게 느끼는 라이벌 의식과, 숨컷에게 느끼는 라이벌 의식은 그 성질이 달랐기에.

그녀는 배로그라는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존재였다.

페이스 또한 레오레라는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정점인 페이스를 게이머로서 동등하게, 라이벌로 인정하고 있었다.

반면에 숨컷.

하애민은 분명 그를 게이머로서 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급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숨컷이 아무리 뛰어나 봐야 결국엔 솔랭 전사,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

그녀는 숨컷을 그저 방송인으로서 라이벌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페이스와 자신과 나란히-

아니.

[지금 너랑 페이스 둘다 플5인데 숨컷 혼자만 플4임 ㅋ]

그 위에 서 있다니?

"…."

하애민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녀가 알고 있는 '미니 멸망전'에서의 숨컷과, 지금 그들이 말하는 숨컷과의 괴리가 너무나도 컸다.

애당초, 말이 되나?

배로그라는 기준으로 놓고 보면, 명확히 자신에 아래에 있는.

레오레라는 기준으로 놓고 보면, 명확히 페이스의 아래에 있는.

'오빠가 우리 둘을 제치고 그 위에 있는 게?'

사실이다.

최재훈은 FPS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포그보다 부족했고.

AOS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페이스보다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FPS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페이스보다 뛰어났고.

AOS를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포그보다 뛰어났다.

배로그와 레오레 재능의 결합.

새로운 재능.

역사상, 페이스보다 뇌지컬 혹은 피지컬이 뛰어났던 선수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종합적인 능력이 그보다 뛰어난 플레이어는 전무했다.

포그는 분명 숨컷보다 FPS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다.

하지만, 종합적인 능력을 놓고 보자면?

페이스는 분명 숨컷보다 AOS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다.

하지만, 종합적인 능력을 놓고 보자면?

간단한 이야기였다.

현 시점, 새로운 무대에서 숨컷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로딩이 시작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으로, 확신으로 가득차 있던 하애민의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방금 전, 숨컷과 맞닥뜨렸을 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소생한다.

그녀가 한 명을 찾아내어 처치할 때.

그는 두 명을 찾아내어 처치한다.

그녀가 수차례 위기를 겪을 때, 그는 단 한 번의 위기도 겪지 않는다.

극도로 효율적이며 체계적인 그 움직임은 마치 '핵'을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근본적인 격차를 만들어낸다.

압도적인 전술, 전략 능력.

자신에겐 없는 것이다.

대신, 이 전투 능력이 있다.

그와의 격차를 메꿀 수 있는 유일한 칼날.

하지만, 그마저도 박히지 않는다.

우연이라.

그에겐 행운이, 자신에겐 불행이 작용한 결과라.

그렇기에, 다음번엔 그 칼날이 반드시 박히리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간다.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하, 어이가 없네."

그녀는 응당 그걸 부정한다.

이 새로운 무대에서 재능이라는 원초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이 '절대' 넘어서지 못할 벽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그 좌절감을.

항상 남들에게 느끼도록 하는 입장에서, 이제는 자신이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 판 진짜, 제대로 한다."

하애민은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

응원을 하듯.

그 말을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그녀의 주문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가 이전까지는 없었던 수준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힘이 들어간 그녀의 실눈이 약간 벌어져 드러난 뱀과도 같은 갈색 눈동자에서 새어나오는 총기는 날카롭기까지 하다.

모든 감각과 사고가 오롯이 한 가지만을 위해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승리.

[오 ㅅㅂ ㅋㅋ뭐야]

[갑자기 더 잘해진 것 같은데?]

[아니 ㅋㅋㅋ 제대로 한다는 게 ㄹㅇ이었어?]

그런 채팅 따윈 당연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화면을 가두고 있는 모니터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이는 자신의 손마저.

그녀의 세상은 더 이상 가상현실과 현실, 두 가지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하나의 무언가.

그 이상이 존재할 수가 없는 고도의 집중.

그로 인한 각성 상태.

의도한다 해서 나오는 상태가 아니다.

그녀가 최근 그와 비슷한 상태를 겪은 건, 월드 챔피언 십 결승전 정도가 있었다.

그만큼 그녀에게 있어 이번 숨컷과의 승부는, 저번 게임의 결과를 부정하는 일은 중요했다.

<전설이 시작됩니다>

<전설이 시작될 위치를 지정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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