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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322화 (322/361)

322. 제나 선생님 2

이런 인상으로.

지금 자신이 기대하는-

근질거리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인상에 불만을 느껴 본 제나가 불만스럽게 자신의 얼굴로 손을 가져가 점토 빚듯 주물럭거렸다.

그렇게-

"…."

덜 띠꺼운 표정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띠껍잖아 등신아."

그런데 나오는 건 썩소.

몇 번의 교정 작업을 거친 뒤에야-

그나마 미소라고 불러줄 수 있을 법한 표정이 나왔다.

그 상태로, 그녀는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똑똑.

문을 열자, 최재훈이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는 평소처럼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 주겠지.

-안녕하세요?

그에 자신은-

"어, 왔냐?"

그렇게 말하며, 연습했던 미소를 짓는다.

거울을 바라보던 제나의 미소가 점점 무너졌다.

이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듭했고-

"어, 왔어?"

평소 제나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의.

인상의, 제나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거울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드디어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뒤이어, 그 표정에 기대가 담긴다.

갑작스럽게 변한 자신의 태도를 보면, 그 남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당황하겠지?'

평소 당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그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다운 아주 자연스러운 미소를.

'…좋아.'

그렇게 자신감이 생긴다.

오늘,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똑똑!

"…!"

그러던 와중.

어느새 10분이 훌쩍 지난 건지, 문 쪽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

화들짝 놀란 그녀가 들떠서는 곧장 현관으로 향했다.

헌데, 현관에 가까워질수록 방금 전의 자신감이 흐릿해지고 다시금 긴장되기 시작한다.

"…후."

용기를 낸다.

그녀가 심호흡을 한 뒤-

"좋아."

각오를 다지고 문을 열었다.

준비해 두었던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로.

그를 살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긴장되고 또 멋쩍어서, 차마 눈은 마주칠 수 없었기에 시선은 아래로 내리깔고.

-끼익

문을 연 뒤 말한다.

"어, 왔어? 얼른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어."

제나가 정말로 그녀인지 헷갈릴 정도로 부드러운 분위기로, 손님을 맞이했다.

그에, 손님은 당황하길 잠깐.

아주 달가워하며 답했다.

"네, 네!? 우와, 제나씨…! 고마워요,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저도 제나 씨 만나는 거 기다리고 있었어요!!!"

"…?"

최재훈의 반응에 대한 기대로, 용기를 짜 내 '부드러운 제나'를 연기할 수 있었던 그녀의 표정이-서서히 원래의 '띠꺼운 제나'로 돌아왔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정면을 응시한다.

그러자.

평소 무서운 동료에게서 진심으로 환영받은 게 기쁜 골든리트리버가 '헤헤헤' 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

제나가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어제부터 심혈을 기울여 머릿속에 세팅해 놓은 둘만을 위한 공간에.

골든리트리버가 난입하여 신나게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어 놓더니, 그걸 자랑하기라도 하는 듯.

자신의 앞에 와서 마냥 좋다고 헥헥거린다.

지금, 눈앞에서-

"헤헤헿."

실실거리고 있는 것처럼.

허탈함에 몸에서 힘이 쭈욱하고 빠져나가, 제나가 고개를 떨궜다.

"아, 썅!!!!!! 권지현!!! 이런-… 썅!!!!!!"

그녀가 그 상태로 진절머리를 쳤다.

"헝…."

무뚝뚝한 동료가 반갑게 맞이해 준 게 신나, 보이지 않는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있던 권지현이 다시 실망해서 시무룩해졌다.

"뭐야, 왓츠 더 헤픈이야."

그제서야 '지현 씨, 저희 주차 끝나고 이거 다 들고 올라갈 테니. 먼저 올라가 계세요.'라며 권지현을 먼저 보냈던 최재훈이 등장했다.

"고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권지현 언니 또 뭔 짓을 저지른 거삼."

"아 저는 그 저, 그… 아, 미안해요 제나 씨…."

최재은과 이린을 대동하고 말이다.

그래 이것들도 있었지.

단번에 시끌벅적해지는 분위기.

둘만의 개인적인 시간?

오붓한 분위기?

그게 뭐지?

먹는 건가?

"흐흐."

제나가 허탈하게 웃었다.

머릿속이 온통 '최재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서 깜빡했던 것이다.

그와 단 둘이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 경쟁자가.

방해물이 있는지.

그걸 배제하려면 어제와 같은 은근하고, 모호한 태도로는.

각오로는 부족하다.

지금과 같은 결과를 낳을 뿐.

좀 더 확실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

제나가 최재훈을 응시했다.

"아, 제나 씨 안녕하세요."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야."

"네?"

방금 전 사건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서 말한다.

"나 너-"

하지만.

정신이 나간 건 고작 반쯤이기에.

반 밖에 나아가지 못한다.

뒤늦게 정신이 든 제나.

"…하, 됐다, 들어오던가 말던가."

오늘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고 집에 먼저 들어간다.

"…아니다, 야."

"네?"

"니, 그때 약속 기억하지? 니, 챌린저 도전할 때 내가 도와줘서. 내 부탁 하나 들어준다 했던 거."

"예? 아, 예. 기억하죠."

"그거, 지금 말한다. 이번에 멸망전 끝나고, 시간 좀 내라."

그녀가 잠깐 동안 뜸을 들인 뒤 말했다.

"그땐, 니 혼자만. 알겠어?"

특유의 비소를 머금은, 짓궂어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부자연스럽게 긴장되어 있었던 그녀의 표정이, 그제야 자연스러워졌다.

* * *

제나의 과감한 권유에도, 장소의 분위기는 어색해지지 않았다.

당사자인 최재훈과 제나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게 다 뭐야?"

"협찬 받은 물건들이요."

"하, 월클 납셨네."

최재훈이 방송 세팅에 앞서, 주섬주섬 준비해온 물건들을 꺼냈다.

협찬 받은 게이밍 기어들과, 의류였다.

"오빠 근데, 모니터랑 컴퓨터랑, 컴퓨터 책상이랑 의자는 왜 안 가져 왔어? 그것들도 협찬 받았잖아."

"그 말 듣고 오빠는 안심했어. 계약서 작성한 사람이 너처럼 창의적이진 않아서. 제나 씨, 잠깐 마우스랑 키보드 좀 빼도 되죠?"

"그러던가."

그렇게, 방송 준비가 끝나고.

"자, 그러면-"

방송용 컴퓨터와 송출용 컴퓨터.

그리고 평소 사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두 대.

제나의 널따란 스튜디오에는 두 개의 좌석이 존재했고.

거기엔 각 최재훈과 권지현이 앉아 있었다.

제나가 그들을 바라보며 운을 뗐다.

"니들 허접들,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레오필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배로그.

숨컷은 배로그 초심자였고.

권지현은 배로그 플래티넘이었다.

한 자릿수 랭커인 제나의 어깨가 무거웠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헤헤헤. 선생님."

"선생님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쨌든, 일단 실력이나 보자."

레오필 오픈까지 남은 몇 시간.

제목 : [컷컷컷] 허접들 사람 만들기

[머선 129]

[아니 ㅋㅋ 레오필 오픈까지 한참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방송을 켜 준다고라?]

[아 달아~ 너무 달아~]

[뭐야 배로그네 ㅋㅋ]

[레오필 오픈할 대까지 삼피가 조컷 배로그 뉴비쉑 가르쳐 주는 거임?]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뇌없페한테 강의받는 조컷이랑 권찐따쉑 레게노 ㅋㅋㅋ]

제나의 단기 속성 과외가 시작됐다.

"자, 일단. 둘이서 듀오로 돌려 봐."

"어, 그러고 보니 지현 씨랑 저랑 듀오해 보는 거, 이번이 처음이네요?"

"어!? 그, 그러게요!? 오왕, 대박! 잘 부탁드려요!"

"아, 그만 물고 빨고 서칭이나 돌려 이것들아."

<게임을 시작합니다>

레오레와는 달리, 서칭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되는 게임.

창공을 가로지르는 수송기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

화면에는 그들이 생존 전투를 벌이게 될 지역인, 핵 실험으로 폐허가 된 황무지의 지도가 표시됐다.

플레이어는 지도를 토대로 자신이 상륙할 위치를 정할 수 있다.

"지현 씨, 어디로 착륙할까요?"

"어, 저는-"

"아, 찐따 말고 너가 골라 봐."

"헝…."

"쟤는 이미 많이 해 봤을 거니까. 배로그거의 안 해 본 니가 어떻게 하는지나 보자."

"저요? 그러면-"

여기로 가죠.

"하."

제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최재훈이 지정한 위치는 무대의 핵심 지역이었다.

핵심 지역인 만큼, 경쟁이 아주 치열한 그곳을 말이다.

[ㅋㅋㅋㅋㅋㅋ조컷쉑 조땠네]

[딱 뉴비쉑 다운 발상이네]

[너무 커엽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대부분이 같은 생각을 가진 와중-

목적지에 도달하는 수송선.

권지현과 최재훈의 낙하산이 펼쳐진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ㅈㄴ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숨컷 하위

- : 조컷 뒤졌다 ㅋㅋ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 보이는 낙하산은 권지현과 최재훈 말고도 무수히 많았다.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 널려 있는 총기를 비롯한 흉기들.

난전이 예정된 격전지 속에, 최재훈과 권지현이 착륙했다.

탕!

탕!

탕!

[수육 수육 수육]

[방금 모스부호 해석하니까 '권찐따랑 조컷 뒤졌다'라는 말이 나오 네요]

[권찐이랑 나란히 100위 99위 하겠누 ㅋㅋㅋㅋㅋㅋㅋ]

[199위의 듀오가 간다]

착륙과 동시에 간간히 들려오는 격발음은-

머지않아 소나기 소리와 같이 촘촘하게 현장을 메우기 시작한다.

탄환의 소나기 속에서 하나둘 무참히 죽어나가는 플레이어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이 찐따와 초심자가 어떻게 될지는,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잠시 뒤, 소나기가 그친 전장은 이제 적막했고.

바쁘게 움직이던 이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있었다.

최후의 생존자는 그렇게 모든 게 사라지고 멈춰 버린 그 곳에 홀로 서 있었다.

"…."

'놀릴' 혹은 '갈굴' 건수가 나오기만 해 봐라.

비소를 머금고 최재훈의 화면을 바라보다, 언젠가부터 넋이 나가 버린 제나가 중얼거렸다.

"니 진짜 처음 맞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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