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하애민 1
배로그 유행 당시, 최재훈에겐 그 유행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레오레 프로로서 성적으로 죽을 쑤는 와중이었기에.
하지만 '최재훈'은 달랐나보다.
[아이디 검색 결과]
1. clzlszld1
"음…."
최재훈이 그걸 잠깐 동안 쳐다보더니 말했다.
"버근가?"
[네 버그시네요]
[진짜 버그 그 자체십니다 선생님]
[그냥 버그도 아니고 대벌레 수준이네요]
"아니 잠깐! 버그가 아니라 해킹일 듯!? 내 개인정보! 중국인, 또 너야!?"
[clzlszld1 : 아니요 전 해킹이 아니라 치킨킹인데요?]
[니 씨빨 늠마 (중국어로 밥 먹었냐는 뜻 ㅎ)]
[아 ㅋㅋ 개인정보 유출은 ㅇㅈ이긴 하지 ㅋㅋ]
[ㅇㅈ은 무슨 ㅋㅋ 아니 ^^ㅣ발 이게 뭐야 ㅋㅋ]
당당함이 뻔뻔함이 되어 버리는 상황.
어떤 후폭풍이 닥쳐올지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해설자들이 아찔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그에 대비했고.
"살다 살다 계정 털어 가는 해킹범은 많이 봤어도, 계정 만들어 주는 해킹범은 처음이네. 해킹 좀 하게 계정 좀 키워 놓으라는 건가? 하하하하!"
"아, 그! 저도 그러고 보니, 그런 경험이 있었던 것 같슴다!"
차현하와 김희은은 열심히 최재훈을 옹호했다.
그렇게, 시작된다.
[뭐긴 뭐야 ㅋㅋ '조컷'한 거죠]
[ㄹㅇ; 광대 다 되셨네요 선생님]
[그럼 그렇지 ㅋㅋ 그 실력에 첨은 무슨]
[아니 ㅅㅂ ㅋㅋ 걍 어이가 없네]
[옐로TV의 수치 조컷! 옐로TV의 수치 조컷! 옐로TV의 수치 조컷! 옐로TV의 수치 조컷!]
[세연대의 수치 조컷! 세연대의 수치 조컷! 세연대의 수치 조컷! 세연대의 수치 조컷!]
[이래도 세연대입니까?]
[오늘부터 SKY가 아니라 KY......... S입니다]
[걍 SI발 KY로 하죠]
[이런 얼빠진련이 다니는 대학이 한국 3대 대학이다? ㅋㅋ 나라 망하지]
"…응?"
해설자 중 한 명이 얼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채팅창의 반응은 예상대로 격렬했으나.
동시에, 예상과 달리 긍정적이었기에.
방금 분위기에서 보통 방송인이 숨컷과 같은 행동을 했다면.
지금 채팅창에서는 거의 폭동이 일어나고 있었을 것이다.
단두대 위에 그 방송인의 목을 올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보통 방송인이 아니었다.
현시점, 미튜브 어워드 게임 부문에서 페이스를 제치고 투표 1위를 차지한 방송인이었다.
지금의 그는 무슨 행동을 하건 게임 팬들에겐 마냥 호의적으로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렇게, 레오레 팬 혹은 FPS팬이기 이전에 게임 팬인 시청자들은 숨컷의 행동 일련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특유의 '얼빠진 짓'으로 여겼고.
즐거워했다.
방송에는 어느새 새로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숨컷의 방송에 흐르는 분위기가 말이다.
일찍이 선호하는 게임 장르로 이분되어 있었던 채팅창이, 숨컷이라는 구심점으로 하나가 되었다.
'오오… 이걸 예상한 건가?'
'이야….'
'역시….'
이 또한 1위의 효과였다.
해설자들이 이 모든 걸 숨컷의 의도대로라 생각하고, 그에게 감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재훈으로선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지려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라는 격언을 몸소 체감하는 경지에 오르게 되었음을 실감한 건 분명 기뻤으나.
이대로라면, 사람들에게 자신이 배로그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자신을 향한 관심과 기대를 더욱 증폭시키려던 계획이 무산될 판이었으니.
지금, 최재훈은 분명 페이스를 제치고 미튜브 어워드 게임 부문 1위에 위치하고 있지만.
모르는 일이다.
아직 투표가 종료되기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방금 전 시범 게임에서, 최재훈은 분명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줬으나.
그런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인 최재훈을 가볍게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쥔 건 결국 포그였다.
그리고 예정대로 남은 두 게임이 진행되면.
숨컷의 평가는 더욱 낮아질 것이다.
레이지와 재미니, 포그 같은 정상급 플레이어가.
방금 전 게임과 같은 요행에 한 번 더 당해 주진 않을 테니.
반면에, 포그는 계속해서 활약하고 그녀에 대한 평가는 더욱 높아지겠지.
그렇게 시범 경기가 끝나고 머지않아 정식으로 서버가 열리면.
사람들은 누구의 방송을 더 선호하게 될까.
시범 경기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준 숨컷.
시범 경기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포그.
상식대로라면 후자일 것이다.
물론, 지금 숨컷의 인기가 인기인지라 극단적인 수준으로 시청자가 유출되진 않겠지.
그럼에도 분명 손해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위는, 투표의 결과에 영향을 줄 공산이 높았다.
그런 부정적인 변수의 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최재훈은 이, 수십 만 명이 바로보고.
머지않아 레오필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가 보게 될 상황에서.
기대감을 심어 줄 필요가 있었다.
'숨컷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으려나?'라는 생각으로, 방송과 미튜브 채널에 발길을 옮기게 만들 기대감을 말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로그 경험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했다.
'아니, '재훈'아.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이야. 우리, 순혈 레창 아니였냐? 너에게 경멸감이 들려고 한다.'
그렇게 최재훈이 미련을 못 버리고 계정을 뒤적거리던 와중.
"어!?"
발견하는 정보.
0승 1패.
마지막 게임 기록, 2년 전.
"여러분들, 이 봐! 어!? 내가 뭐랬어!"
그 전적을 보자, 심상 깊숙한 곳에 쳐 박혀 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뭐야 이게. 레오레나 해야지.
게임 시작하자 마자 죽고 다시 레오레로 귀환한 '최재훈'의 기억이.
"젠장, 믿고 있었다고 '최재훈'!"
('최재훈' : 아, 까비)
'뭐 새꺄?'
[뭐야 진짜야? ㄵ]
[ㄵ]
"아니, 반응이 뭐 이리 미적지근해? 어? 여러분들, 좀 더 적절한 반응이 있잖아. 찬양이라던가, 감탄이라던가."
[오~ ㅋㅋ 겜 시작하자마자 개발리고 환불 빤스런~]
[주제 파악 능력이 뛰어나시네요 ㅋㅋ]
[주제를아는 잡종 ㄷㄷ]
[역시 분수에 맞게 평생 레오레나 하다 죽읍시다 ㅋㅋ]
"크,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에겐 너무 과분한 극찬이지만,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실, 저도 제 능력에 수시로 놀라곤 합니다."
[내가 다 봤는데 그런 채팅 없었음 내가 다 봤는데 그런 채팅 없었음 내가 다 봤는데 그런 채팅 없었음 내가 다 봤는데 그런 채팅 없었음 내가 다 봤는데 그런 채팅 없었음 ]
[조컷 수준의 방송인이 되면 '개안'이 돼서, 보통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채팅창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냥 '정신병' 아닌가요]
그렇게, 짓궂은 분위기가 흐르던 것도 잠깐.
"와, 근데 자기. 진짜 배로그 한 번도 안 해 봤어?"
"그런데 방금 그 정도라니, 대단하심다! 진짜 성장이- 어, 음. 기대 되네요."
두 여자의 극찬을 시작으로.
[와 근데 ㄹㅇ 오지긴 하네 ㅋㅋ]
[방금 그게 배로그 첨 해 본 플레이라고?]
[배로그 첫판에 레이지를 잡은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근데 이건 배로그가 아니라 레오필이잖아]
[어쨌든 ㅋ 레이지는 레오레 어느정도 해 봤을 거 아냐]
[그니까 ㅋ]
[지금 조컷 비유하자면 그거냐? 스킬포인트 하나도 안 쓴 ㄷㄷㄷ]
비로소.
최재훈이 원하던 결과물이 나왔다.
숨컷의 성장에 대한 기대!
다시금 호전된 분위기 속에서 남은 두 경기는 차질없이 진행됐다.
그 두 경기 동안.
세 FPS 정상급 플레이어가 숨컷의 '요행'에 다시 당해주는 일은.
숨컷이 첫 경기처럼 활약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여섯 플레이어 중 가장 수준 낮은 플레이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웃고 있었다.
[아니 조컷 전 판 보다 실력 는 것 같은데?]
[ㄹㅇ 에임 조금 더 좋아진 듯?]
[와 좋아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네 ㄷㄷ]
[이게 '재능'?]
[wodms18 : '재능'어때? '나능'좋아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 '저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wodms18 : 님은 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그냥 드립이 '저능'하다고요]
[wodms18 : 힝]
시청자들이 자신에게 향해오는 것은 실망이 아닌 기대였으니.
그렇게-
"자 그러면 여기서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곧 있을 '오픈 베타'때, 전설의 필드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미니 멸망전'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결과적으론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자기, 너무 슬퍼하지 마."
"아니 뭐, 질 수도 있지. 아니, 지는 게 당연하지. 난 처음인데. 괜찮으니까, 신경 안 써 주셔도 돼요."
"아니 그거 말고. 이제 나랑 헤어질 시간이잖아."
"끼얏호!!! 워우 예!!!!! 전방에 힘찬 발사 함성!!!"
"그렇지!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즐기자고!!!"
"아니, 진짜 답 없네 이 인간."
"…저기요, 숨컷 씨."
"아, 네?"
"뭐야!? 희은 씨도 끼게?"
"…저 잠시, 숨컷 씨랑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겠슴까?"
"쓰으! 자기랑 같이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와중에!? 너무 무리한 부탁인걸!?"
"아 거, 아줌마. 진상 좀 그만 부리고 좀 가 있어 봐요."
"음, 하긴! 원래 사랑이란 게 방해물이 많을수록 불타오르는 법 아니겠어!? 오케이! 헤이, 재민이랑 레이지랑 포그 선수.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번호 교환이나 합시다!"
"하이고야, 정신 없어. 예, 그래서. 무슨 볼일이세요, 희은 씨."
"…그때, 그, 손수건이요."
"손수건? 아! 예, 네, 말씀하세요."
"잃어버렸어요."
"네?"
사실이 아니다.
현재 김희은의 방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 예 뭐. 괜찮아요, 신경 안 쓰셔도."
"…화 안 내요?"
"화를요? 왜요?"
"제가 그쪽 물건 마음대로 잃어버렸잖아요."
"아~ 괜찮아요. 우리 사이에 뭐 그 정도야~"
"우리가 어떤 사인데요?"
"고난을 함께 헤쳐 나갔던 사이."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에 김희은의 무장이 해제된다.
새침 모드가 풀린 그녀의 얼굴에 평소 그녀의 활기찬 미소가 그려졌다.
"어, 웃었다. 아, 드디어 희은 씨 웃는 걸 다시 보네."
"…어이가 없어서 웃은 거거든요? 아, 어쨌거나~"
그녀가 무언갈 보란듯 꺼내며 흔들었다.
"그러면 이건 괜히 준비했네~"
조그만한 상자였다.
아마도, 사죄의 선물이리라.
"예, 괜찮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
그 배려심 넘치면서도 둔감한 답변에 김희은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 진짜 필요 없어요?"
"아유~ 괜찮아요."
"엄청, 비싸고 좋은 건데요…? ‘명품’…이랍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휴~ 뭘 그런 걸 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김희은이 잠깐 동안 난처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더니-
"숨컷 씨가 안 받으면 얘는 버림 받는 건데, 그래도 좋아요!?"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그녀의 구릿빛 피부에 다소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최재훈이 하,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제가 염치 불구하고, 잘 받도록 하겠습니다."
최재훈이 양손으로 선물을 건네받자,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미소 짓는 김희은.
"확인 안 하세요?"
그녀가 새침스럽게 구는 것도 깜빡하고.
평소의 활기찬 분위기로 최재훈을 촉구했다.
손수건이었다.
몹시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니나 다를까, 명품에 관심이 없는 최재훈도 알 법한 유명한 명품의 로고가 박혀져 있었다.
'이거 뭐, 천 쪼가리 하나에 5만 원 하는 거 아니야?'
최재훈은 기겁하는 대신, 김희은을 신경 써서 짐짓 기뻐하며 말했다.
"아이고, 이런 걸 또. 고마워요, 희은 씨. 이거, 희은 씨한테 좀 자주, 여러가지 빌려드려야겠는데요? 다음번엔 중고차를 한 번 빌려드려 볼까?"
"하하하! 그게 뭠까! 완전- 웃겨. 흥. 아무튼, 전 볼일 끝났으니까 이만."
"아, 예. 오늘 수고하셨어요~"
힘이 들어간 김희은의 얼굴은 새침스럽게 굳어 있었지만, 그 발걸음은 '룰루랄라'소리가 절로 나오는 듯 가볍고 경쾌했다.
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어른들.
뭐야, 과할 정도로 풋풋한 저 광경은.
세 해설자가 흐뭇함을 담아 쓰게 웃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리가 해산되던 와중.
"저기요."
하애민이 다가와 최재훈에게 말을 붙였다.
숨컷보다 약간 작은 키에서 올려다보는 그녀의 실눈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덜했다.
"네?"
"…."
최재훈을 못마땅하게 노려보다가 마침내 입을 열길.
"솔직히 말해 봐요. 거짓말이죠?"
"응? 뭐가요?"
"배로그 한 번도 안 해 봤다는 거요."
"아~"
최재훈은 이 어린 아가씨의 주변에 흐르고 있는 '못마땅~'오라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다.
그가 목욕하기 싫다며 윈드밀을 도는 최재은 달래듯 인자한 태도로 답했다.
"아까 보셨잖아요."
"그게 뭐요. 그런 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거잖아요. 가족 정보로 만든다던가 해서."
"그러니까, 몇년 전 배로그 유행할 때. 제가 미래에 방송인으로 성공할 걸 예상하고, 거기서 자랑하려고 일부러 계정을 가족들 정보로 만들었다. 이건가요?"
"비꼬지 말고요! 지금 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설마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포그 씨가 생각해도 좀 말이 안 되지 않아요?"
"…."
하애민의 입이 다물어졌다.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기 싫었다.
자신이 FPS선수라고 일부러 모른 척 무시하는 이 무례한 '레오레충'에게 그 정도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어라?'
잠깐.
생각해 보니.
그가 정말로 배로그를 한 판도 해 본 적이 없다면.
배로그에 관심이 조금도 없다면.
자신을 모르는 것도 납득이 된다.
지금 그의 친절한 태도는.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자신은 그토록 공격적으로 굴었는데.
이 사람은 왜 이리도 자신에게 친절한가?
고민하느라 잠깐 아래를 향했던 하애민의 실눈이 다시 그를 향한다.
"…."
"?"
"저기요."
"네?"
"진짜로 저 모르세요?"
"아, 미안해요 정말. 무안 주려고 그려던 게 아니라. 제가, 레오레 말곤 다른 거에 관심을 잘 안 가지는 렐창이라."
"…아무리 그래도, 아예 모르는 건 너무하지 않아요?"
"오늘 가서 꺼라 위키 정독할 테니까, 용서해 주세요. 네?"
"…저에 대해 궁금하세요?"
"예?"
왜인지 기대 섞인 듯, 당돌하게 들리는 질문.
최재훈이 피식 웃더니 답했다.
"예, 뭐. 궁금하네요."
"…궁금한 건데, 아까부터 저한테 왜 이렇게 친절해요?"
"네?"
"저는 아까 그렇게 기분 나쁘게 굴었는데."
"아~"
최재훈이 고갤 끄덕이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별로 기분 안 나쁘던데요?"
집에 있는 누구씨 옛날 중2병 걸렸을 때 생각나서 오히려 귀여울 정도였다.
'세상은 쓰레기야.'
라고 시니컬하게 자조하면서도 용돈 따박따박 타 가고, 밥상에 고기 없으면 입 삐죽 내미는 그 모습이란.
"…."
그렇게 인자하게 미소 짓는 연상 오빠를, 소녀는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기요 혹시-"
"네?"
"오빠 저, 좋아하세요?"
어딘가 기대 담긴 듯한 목소리.
최재훈은 이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날이 바짝 선 실눈이 인상적인 미역머리 미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잉?"
그는 이 특히나 당돌하고 과민한 18세 소녀의 감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