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17화 (317/361)

317. 초심자

하애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했지?

'이런 게임은 처음이라고?'

이런 게임은 레오필을 말하는 거겠고.

레오필을 말하는 것은 곧, 레오필과 배틀 로얄 그라운드 둘 중 하나를 말하는 거겠지.

그 중, 레오레를 처음 했을 리는 없을 테니-

'배로그가 처음이라고?'

실제로.

하애민은 방금 전 숨컷의 플레이에서, 레오필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 중.

배로그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결여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도, 배로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인 레이지를 처치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배로그와는 다소 다른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형과 시야.

그러니까, '레오레'의 요소를 최대한 활용한 기습이 제대로 먹혀들어.

레이지를 일격에 처치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만약 레이지의 경우에도, 포그의 경우처럼 암살에 성공하지 못하여 전면전을 치러야 했었다면?

마찬가지로 그는 처참하게 패배했으리라.

그의 배로그와 관련된 능력치는 감각과 센스를 제외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하애민은 그게 경험 부족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각 게임에 대한 세분화된 능력을 '캐릭터'로 비유한다면.

숨컷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는 새로운 게임을 접한다 해도 금방 그 캐릭터의 '직업'과 함께 운명이 정해진다.

'망캐'인지.

'축캐'인지.

배로그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숨컷처럼 게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이가 배로그를 안 해 봤을 리는 없다.

그러니, 그의 캐릭터는 이미 직업이 정해진 상태일 것이다.

그런 논리에 따라, 하애민은 숨컷이 '망캐'라는.

지금 아직 덜 성장된 상태라고 해도, 망캐인 이상 커 봤자라는.

그에 따라서 레오필의,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러한 결론에, 숨컷이 배로그 같은 게임이 처음이라는 전제가 추가된다면?

그의 배로그에 대한 이해도는 분명 처참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직업이 정해졌다는 가정 하에서였다.

만약, 그가 아직 캐릭터조차 생산되지 않은 백지 상태라면?

그런 상태에서, 저 정도의 능력치가 나온다면?

'거짓말.'

하애민은 그러한 결론에 이른다.

본인이 느낀.

'숨컷의 재능에 대한 경계심'을.

본인의 수준대로 해석한다.

18세라 쳐도 승부와 관련된 일이 되면 특히나 유치빵꾸똥꾸해지는 그녀의 수준대로 말이다.

숨컷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무시하고 있던 나, 하애민에게 패배해서 굴욕스러운 나머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이다.

괘씸하고 또 비겁하다고 느낀 하애민은, 자신의 본심을 숨길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아니! 이런 배틀 로얄 류 게임을 처음 해 보신다고요!?"

"세상에!"

그렇게, 세 해설자가 진행하던 인터뷰 사이에-

"거짓말!"

잡음이 낀다.

공적인 자리에서 상대방의 발언을 전면 부정한다.

그것도, 지금 절대적인 입지를 구가하고 있는 숨컷의 발언을.

명백한 방송사고!

"그러게요, 정말로 거짓말 같은 일이네요!"

"거짓말 같은 재능!"

"이게 페이스를 이긴 플레이어인가요!?"

가 되도록 놔둘 만큼, 대한민국 E스포츠를 대표하는 세 해설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애민의 발언을 묻어버리-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거짓말이라고요. 여러분은 저 사람이 한 말을 진짜로 믿어요?"

게 놔둘 만큼, 철없는 18세도 마찬가지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믿습니다!"

"믿고 말고요."

"그저 황컷! 이라고 하나요 이럴 땐?"

하지만 그래 봤자.

세 어른들에게 농락 당할 뿐이었다.

"애민 씨…."

"부탁이니까 일단 좀 진정합시다, 예?"

레이지와 재미니가 그녀를 다급히 말렸다.

마음 같아선 이런 철없는 꼬맹이 따윈 망하든 말든 나몰라라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하애민은 이런 부분.

그러니까, 자신들을 '2류'로 만들어 버리는 '레오레 플레이어'들과 관련된 일만 되면 그 혈기가 사리분별이 안 될 정도로 끓어오른다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존경과 호감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방금 전, 레이지와 재미니가 하애민의 무례한 태도에도 불쾌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녀들은 하애민이 선배인 자신들을 얼마나 존중해 주며 또 존경하는지.

그녀의 평소 행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오레 대한 경쟁심에서 비롯된 건지는 몰라도.

아니면, 레오레에 대한 경쟁심이 그에서부터 비롯된 건지는 몰라도.

그녀의 동종업계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각별했다.

선수와 방송인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으로, PC카페를 만들어.

리그의 쇠퇴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진 2군 선수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는가 하면.

선뜻 베풀어주기엔 과할 정도의 금전적인 원조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에 가능한 엄청난 호의.

그렇기에.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하애민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부분을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여 비대해진 자아로 잘못된 길에 드는 이들은 많다.

하애민 정도면,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 사정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FPS업계 이들에 한해서 말이다.

"끄응…."

두 선배가 진심으로 곤란해하여 부탁하자 하애민은 결국 자신의 뜻을 굽혔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포그 저거 또 또 ㅈㄹ이네 ㅋㅋ]

[페이스에 이어서 조컷까지 ㄷㄷㄷ]

[크 빠꾸없는 거 보소 이게 상여자지 ㄹㅇ ㅋㅋ]

[ㄹㅇ ㅋㅋ 이게 FPS다 레오레 쌉레즈새기들아]

[빠꾸가 아니라 다른 게 없는 것 같은데요?]

[ㄹㅇ ㅋㅋ XX가 없네]

[아니 그렇다고 패드립 까지야]

[하여간 렐충새끼들 ㅋㅋ 수틀리면 패드립부터 나오는 거 봐라]

[? 개념 말한 건데요]

[ㄷㄷㄷ 얼마나 더러운 마음을 가졌어야 저게 패드립으로 보이는 거죠?]

[더러운 건 FPS충새끼들이었고 ㄷㄷ]

[아니 'XX가 없네'저기에 어떻게 개념이 들어가요 개념들아 '개념가 없네'이게 말이 돼?]

[코쟁이들 게임하는 렐충들 아니랄까봐 ㅋ 국어가 9등급 수준이네]

[안되긴 왜 않되 ㅄ들아 문학적 허용 몰라?]

[문학적 허용이 무슨 ㅅㅂ 만능 드래곤볼인 줄 아누]

[그 않되도 문학적 허용으로 허용해 줘야 하는 부분이냐?]

[저건 그냥 문학적이잖아 문학의 적]

채팅창은 어느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다시 또 레오레파와 FPS파로 나뉘어져서 말이다.

[아니 그래서 포그가 틀린 말 했음?]

[ㄹㅇ ㅋㅋ 배로그 한 번도 안 해 봤다는 걸 ㄹㅇ 믿는 거임 렐충들은?]

[응애 나 아기 렐충 숨컷은 게임 천재니까 미들거야]

[패드립으로 가득찬 그 머리가 사실을 꽃밭이었구나...]

[숨컷이 사실 메시아라고 해도 믿겠누 ㅋ]

[숨컷이 사실 메시였다고?]

[숨컷이 뭔 메시야 ㅄ들아 호날두지]

[이게 메호대전으로 번지네]

[아니 ㅄ들아 말 돌리지 말고]

[배로그 한 번도 안 해 봤으면서 저런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ㅋㅋ]

[ㄹㅇ ㅋㅋ 선 넘엇지]

[조컷아 이번 허세는 조금 역했다 ㅇㅇ;;]

[남자니까 내숭이라고 해 주죠 ㅋ]

[와 FPS충새끼들 성차별 개역겹네 ㅋㅋ]

[ㄹㅇ ㅋㅋ 숨컷 정도 된느 애를 남자라고 무시한다고?]

[ㅈㄹ 위장 렐충이겠지]

[숨컷 남자라고 무시했던건 느그들 렐충이고 ㅋ]

거기에 헤이터들이 은근슬쩍 껴서 분탕을 한 움큼 뿌려주자.

활활 타오르던 채팅창이 '채팅창 통제 불능 통구이'라는 훌륭한 요리로 거듭난다.

안 그래도 복합적인 사정으로 견원지간에 있는 두 집단이, 서로에게 무관심함으로써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던 평화가 깨지는 데엔 조그마한 불씨 하나면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건 조그마한 불씨도 아니었다.

방금 숨컷이 보여준 수준 높은 플레이.

아무리 봐도 배로그를 처음 경험해 보는 플레이라곤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애민과 FPS팬들 뿐만이 아니라 레오레 팬들 마찬가지로 숨컷의 말이 거짓인 걸 알았다.

그럼에도 반발 심리로 그를 옹호한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격한 상황인 연출된다.

"아, 그, 그러면 다음은…."

"어… 일단! 다음 게임을 진행하는 게-"

"음…."

레오필이 오픈베타를 앞두고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현재 시청자 수 또한 엄청났기에.

세 베테랑 해설자들조차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서로의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던 그때였다.

"아, 여러분들. 이렇게 좋은 날에 왜 또 싸우고 그래~"

그가 특유의 능청스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이거, 또, 또. 응? 나라는 미라클한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해 가지고. 하긴, 그럴 수 있어. 이해 해. 여러분, 이해합니다. 포그 씨? 역시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기다려 봐요. 내가 금방 오해 풀어 드릴게."

그러자-

[ㅋㅋㅋㅋ 또 또 또 그 표정 ^^ㅣ발 ㅋㅋㅋ]

[와! 이해를 잘 하시는구나! 그러면 저희가 줘패도 이해 해 주시는 거죠?!]

[안 풀어 줘도 되니까 저희는 트라이앵클 초크 걸고 안 풀어도 되나요?]

[아 ㅋㅋ 이 새기 면상 보니까 걍 웃음이 나오네 ㅋㅋ]

[어디 한 번 지껄여 보쇼 ㅋㅋㅋ]

FPS 팬들이 숨컷에게 문제를 제기하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레오레 팬들을 향한 경쟁심과 반발심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본디 숨컷에겐 악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 여성 게이머 절대다수는 이, 남성 게이머에게 열광하고 있었는데.

FPS팬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기에.

그렇기에, 숨컷이 그렇게 특유의 능청을 떨자.

진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채팅창은 단번에 진정된다.

"아 좋습니다~ 그러면 바로 보여드릴게요~"

최재훈이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걸 확인한 스태프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방송에 송출되는 장면이 숨컷의 컴퓨터 화면으로 변경된다.

그는 현재 레오레 사이트에 접속한 상태였다.

[???]

[갑자기 레오레는 왜?]

[숨컷 : 불만 있는 새끼들 다 미드로 기어와라]

[아 ㅋㅋ]

[해명이 중세식 해명이었고 ㅋㅋ]

[명예 결투 ON]

[이 해명엔 진실과 사망자만이 존재할 것이다]

[아니 ㄹㅇ 뭐하는 건데 ㅋㅋ]

"아~ 있어 봐요. 자고로 이런 중대한 일엔 빌드업이 필요한 법이니까."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ID 찾기]를 클릭한 뒤-

진행한다.

이름 - 최재훈

생년월일 - …

"여러분, 이 이름이랑 생년월일. 누구일까요?"

[엌ㅋㅋㅋㅋㅋ 이름이 재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훈이 누나는 어디 가고 혼자 있어? 누나랑 봇듀오 갈래?]

"그래요 이 새끼들아, 접니다. 저고요, 저 이름이랑 생년월일이 제 정보인 거 확실히 기억해 두세요. 자, 여기."

[확인]

[아이디 검색 결과]

1. clzlszld1

2. clzlszld2

3. clzlszld3

최재훈이 찾기 결과에 나온 아이디 중 하나인 clzlszld2로 접속했다.

그러자-

[캬 ㄷㄷㄷㄷㄷㄷㄷㄷ]

[크 ㄷㄷㄷ]

[난데없이 자랑 뭔디 ㅋㅋ]

[이건 자랑할 만하긴 해 ㅋ]

[그래서 저게 뭔데 씹덕년들아]

[또또 렐충새끼들 지만 아는 이야기 하지]

[저 새끼들 게임엔 랭킹까지 없나? ㅋㅋ]

[ㄹㅇ ㅋㅋ 랭킹1위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고]

방금 전 개인정보로 찾은 아이디인 clzlszld2가 분명 최재훈의 아이디임을 증명해 주는 증거.

랭킹 페이지와 함께, 이제는 모든 레오레 유저가 아는 그 닉네임이 표시된다.

[치킨킹치킹]

"자, 맞죠? 방금 그 개인 정보가 제 개인정보인 거 밝혀졌죠?"

뒤이어 최재훈은 배로그 사이트에 접속하여.

마찬가지로-

[ID 찾기]를 실행했다.

최재훈에게 배로그 플레이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배로그가 한창 유행했을 시기, 최재훈은 중국에서 프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던 그에게 다른 게임이 눈길을 줄 여유 따윈 없었다.

그는 아직 배로그에 '회원 가입' 조차 하지 않았다.

텅 빈 [ID 찾기] 결과 창은, 그가 배로그를 한 번도 플레이 해 본 적 없다는 발언을 뒷받침해줄 더는 없을 정도로 극명한 증거가 되어줄 터였다.

(자기과시의 최재훈 : 선생님 이게 웬 떡입니까)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일련의 퍼포먼스는 사람들에게 '최재훈은 배로그를 플레이한 게 이번이 처음이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줄 것이다.

그 각인은 곧, 관심과 기대가 되겠지.

'처음인데 이렇게 잘하면, 성장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라는 기대가 말이다.

그리고.

방금 레오필 플레이를 해 본 바, 최재훈은 그 기대를 충족시켜 줄 자신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어느새 최재훈에게 있어 해명의 장이 아닌, 자기 어필의 장이 되어 있었다.

최재훈은 적의로 그런 판을 깔아준 하애민에게 감사마저 느끼며-

"자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겠습니다이~ 따라라란~ 따라란~ 쿵작작 쿵작작~ 따라라라란~"

[확인]을 클릭하며.

"짜잔~"

당당하게 화면을 가리켰다.

그러자, 채팅창에 [?]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최재훈은 그 반응을 즐기다 말했다.

"오잉."

[사쿠라여?]

[사쿠라네?]

[아이디 검색 결과]

1. clzlszld1

[재훈아...]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최재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 '재훈'아….'

('최재훈' : ㅎㅎ;; ㅋㅋ…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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