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15화 (315/361)

315. 하애민 2

숨컷은 기록적이라 불렸던 하애민의 성장속도를 가볍게 상회했다.

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은 아직 해내지 못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제목 : 숨컷, 페이스를 무릎 꿇리다]

그토록 염원했던, '페이스에게서 거둔 승리'.

그것을, 자신보다 훨씬 먼저.

직접적으로 이루어, 가로채간 것이다.

그의 존재는 마치 '초신성'이라고 불리는 하애민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했다.

이는 그녀의 혈기를.

자신감을 자극했다.

그렇기에.

하애민은 그 누구보다도 '레오필'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숨컷과 만날 날을 날만을.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자신의 숙적.

라이벌로 인정하고 말이다.

그런데-

"…장난치나."

한창 프로모션 영상 촬영 준비가 한창이 스튜디오.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겨울과 봄처럼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겨울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FOG를 중심으로 한 'FPS'그룹이었다.

하애민은 방금 전 숨컷과의 첫 조우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처음 숨컷과 직접 대면한 하애민은 모종의 반가움마저 느꼈다.

자신이 그를 라이벌이라 여기는 것처럼, 그 또한 당연히 자신을 라이벌이라 여길 줄 알았다.

자신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호감을 표해 올까?

아니면, 경쟁심을 표해 올까?

어쨌거나.

항상 인정 욕구가 고픈 어린 챔피언은, 자신이 인정한 라이벌에게서 '인정'받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 모른다고…?"

지금까지 숨컷의 행보로 미루어 보아, 그가 레오레 외의 게임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어린 챔피언의 미숙한 사고는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격렬한 배신감과 굴욕감.

따위의, 피해망상적인 감정을 느낀다.

숨컷이 자신을 몰라보는 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무시로 느낀다.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

"와, 숨컷 님 실물 진짜…."

"아니, 저분 방송할 때 조명 안 키시나…? 저 깜짝 놀랐잖아요."

"그러니까요, 보통 캠방송 하시는 분들 화면에 보정이니 조명이니 떡칠을 해 놔서 실물로 보면 별로인 경우가 많은데 저분은…."

"크…."

"쓰…. 부럽다. 저 두 분."

"그러니까요. 숨컷 님이랑 엄청 친해 보이시네."

"저희도 가서 한 번 말 붙여 볼까요?"

"네?"

"아니, 저희도 저 두 분처럼 프로에 촬영 동료잖아요."

"아니, 어, 그런가?"

"가시죠, 아, 애민 씨. 같이 가실래요?"

숨컷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차현하와 김희은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는.

언더워치의 프로 JAEMINI, 일명 잼민이와.

배틀 로얄 그라운드의 프로 RAGE였다.

둘이 애민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러자-

하애민의 실눈이 그녀들을 응시한다.

얼핏 보면 웃는 듯 보이는 그 얼굴로-

"선배님들은 자존심도 없어요?"

"예?"

"네?"

FOG는 현재 FPS계에서, 레오레의 페이스의 입장에 있었다.

인기는 물론이고, 존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각 FOG의 2, 3년 선배인 재민이와 레이지는 서열상 그녀의 아래에 있었다.

나이 역시 그만큼 어린 FOG의 시선에, 두 연상이 당황했다.

삐질거리며 눈치를 본다.

"왜, 왜 그러세요 애민 씨."

"무슨 문제라도…?"

문제. 당연히 있다.

지금 저 숨컷이, FPS의 대표인 자신을 '무시'했는데.

FPS의 일원인 당신들이 그런 숨컷을 보며 헤벌레하고 있다니.

라고, 생각하는 FOG였다.

다소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아직 유치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였다.

"선배님들도 보셨잖아요. 방금 저 사람이 저 무시한 거. 그런데도, 친하게 지내고 싶으세요? 자존심도 없어요?"

화낼 때도 여전히 실눈이라.

미녀가 웃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를 보고, 두 선배는 당황하며 답했다.

"숨컷 님이 애민 씨를 무시하다뇨…?"

"아까 보셨잖아요. 제 쪽에서 먼저 인사해 줬는데도, 저 모른다고 무안 주는 거."

"그건…."

"무시하다기 보다는…."

"네? 뭐라고요!?"

"아, 아뇨…."

"그거 참… 유감이라고요. 왜 그러셨을까…."

두 선배는 FOG의 눈치를 보며 그녀에게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힝….'

'끄응….'

아무래도 숨컷과의 담소는 물 건너간 듯했다.

'롤 적폐 자식들….'

그렇게, 하애민의 숨컷을 향한.

레오레계를 향한 분노와 경쟁심은 더욱 커졌다.

이번 멸망전에 초청된 레오레 프로 팀은 열 명인데, FPS 팀은 고작 두 팀씩이고.

방송인도 레오레 쪽은 일곱 명인데, FPS는 고작 세 명이었다.

자신의 어깨가 무거웠다.

'반드시….'

이번 멸망전에서.

레오필에서.

입증하고 말리라.

FPS 플레이어들이, 레오레 플레이어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자신이.

숨컷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자, 그럼 여러분.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프로모션 영상의 컨셉은 간단했다.

"여기 자리엔 숨컷 님이 앉아 주시고, 여기엔 차현하 선수가-"

"어!?"

"앗, 무슨 문제라도?"

"자기랑 같이 앉고 싶은걸!?"

"어… 그러면…."

"현하 씨."

"네? 희은 씨."

"원만한 촬영을 위해서 스태프 분들 말씀 따르는 게 어떨까 싶슴다."

"흐음~? 그런가~?"

"그런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줌마, 쿨하게 행동해요."

"크, 우리 자기 또 내가 옆에 앉는다니까 쑥스러워서. 이거, 어쩔 수 없구만. 내가 배려해 줘야지!"

"죽일까."

"…현하 씨,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숨컷 씨 너무 거리낌 없이 대하시는 건…."

"응~? 뭐야~? 우리 희은 씨 설마, 질투하시나~?"

"무슨 소릴!"

"아님말공~"

"아, 하하… 그러면, 여기엔 차현하 선수께서 앉아 주시고. 재미니 선수?"

레오레 플레이어들과, FPS 플레이어들이 뒤섞여 함께 레오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레오필이 레오레 팬들과, FPS팬들.

게임계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두 팬들을 모두 아우르며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그렇게.

차현하는 재미니와.

김희은은 레이지와.

그리고, 숨컷은 포그와 마주앉는 구도가 되었다.

"…."

포그는 저도 모르게 숨컷을 흘낏 훔쳐봤다.

"응?"

그러다가 자칫 숨컷과 눈이 마주쳐 버리자.

"…."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본다.

'사과하면 받아줄 의향은 있어요.'

라는 의미를 담아서.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최재훈은 조금도 잘못한 게 없었다.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의 유명인을 모르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최재훈은 하애민에게 '잘못했다'는 자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밉보였구나'정도로 느끼고 있을 뿐.

그가 존중의 표시로 알아서 눈을 깔았다.

스스로 사과할 '기회'를 줬다 생각한 유치한 하애민은.

그에 존중이 아닌 굴욕을 느끼고.

다시 한번 적의와 경쟁심을 불태운다.

현재 그들의 화면에는, '레오필'의 플레이 화면이 띄워져 있었는데.

이는 인게임이 아닌, 순조로운 촬영을 위해 이미 녹화된 영상이었다.

"숨컷, 거기로 갔어!"

그래서인지, 안 그래도 어설픈 그들의 연기력인데.

몰입도가 떨어지는 만큼 더욱 어색했다.

재미니가 대사를 던지자.

여기 오기 전, 국내 대표 성우와 함께 한 녹음작업으로 인해.

근거라곤 조금도 없는 자신감이 생겨 버린 최재훈이, 넘치는 자신감으로 아주 진지하게 대사를 내뱉었다.

"오.케.이. 내.가.해.치.울.게."

그러자-

"푸흡!"

"큭!"

"크흐-엇! 컷!"

주변의 모두가 일제히 못 참고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감독까지.

"…."

숨컷이 불만스럽게 그들을 바라봤다.

"아주 모욕적인 반응인걸."

"아, 그. 미안해 자기. 우리 자기가 너무 귀여워서."

"불꽃 주먹에 강냉이가 팝콘이 되어도 나를 계속 귀여워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해 주세요."

"응? 아니, 희은 씨도 웃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안 웃었습니다."

"…."

"…기침한 검다."

"아, 그. 숨컷 님. 죄송해요. 진짜, 비웃으려던 게 아니라…."

"이 자식, 왜 웃고는 그래 웃고는!"

짝!

짝!

"크흠, 숨컷 씨. 저는 웃은 게 아니라, 다른 분들 웃으셔서 컷, 이라고 한 겁니다. 잘하고 계세요. 다른 분들도, 진지하게 해 주세요."

레이지와 재미니.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까지.

현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

유일하게 웃지 않은 FOG는 그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숨컷이 주인공이 되는 지금 이 상황이 말이다.

그녀의 실눈이 축 쳐지고.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보통.

FOG가 그런 태도- 그러니까, 언짢은 걸 티내면.

보통 주변에서 그녀의 분위기에 맞춰 주느라 어색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와, 끝.내.주. 는데!"

"푸흑!"

"컷!컷! 그, 현하 씨. 갑자기 연기가 왜 그래요!"

"아니, 우리 자기 연기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아서…."

"큭큭큭."

"아, 모르겠다. 한 번, 하고 싶은 대로들 해 보세요!"

시종일관 촬영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저 숨컷을 중심으로 말이다.

"숨컷! 거기로 갔어!"

그렇게 다시 숨컷의 대사.

"오.케.이. 내.가.해.치.우.지."

"…!"

"…ㅅ!"

주변에서 가까스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좋.았.어!"

숨컷이 대사를 이어나간다.

"어.이.포.그. 내.실.력.어.땠. 어?"

주변 선수들의 안면 근육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선수들의 초인적인 정신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숨컷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는 스태프들이 몸에 경련마저 일으키며 소리 없이 대소박장을 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포그의 차례가 찾아왔다.

그녀의 대사는 '끝내주던데?'였다.

숨컷에게 처치당한 뒤, 그의 실력을 칭찬해주는 역할.

흐름에 따라 모두의 이목과 카메라의 렌즈가 그녀에게 집중된 가운데.

"…."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

의문이 향해지는 가운데,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 대사 좀 바꿔 주세요."

낭랑 18세 FOG씨는.

숨컷에게 지는 역할을 연기하는 게 끝내 못마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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