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하애민 1
대한민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이었다.
한국이 제4의 종족이라 취급 받는 RTS장르.
페이스가 있는 AOS 장르.
'NEEK'이 있는 격투 게임 장르.
등.
다양한 장르에서 정상을 차지하여 그에 걸맞는 면모를 보였다.
그런 한국이 지배하지 못한 종목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종목이 바로,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FPS 장르였다.
사실, 이는 그렇게 새삼스러울 일이 못 됐다.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는 레오레의 영향으로 AOS가 국민 대표 종목이 되었다시피 한 반면에, 영국은 옛날부터 꾸준히 FPS가 국민 대표 종목이었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FPS가 대표 인기 장르가 아니라고 해서 비인기 장르란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언더워치나 배틀 로얄 그라운드.
FPS장르를 대표하는 두 게임을 합치면 레오레의 인기에 비견될 정도였으니.
허나 독자적으로 놓고 보면 레오레가 가장 큰 시장이었기에.
난다긴다 하는 인재들은 모두 가장 큰 무대를 찾아 레오레로 향했다.
반면에 영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은 모두 FPS로 향했고.
영국은 본래 레오레의 전통 강호였으나, 시간이 지나 인기가 쇠퇴함에 따라 그 이름을 자연스레 한국에게 빼앗겨 버린 탓에.
한국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AOS장르에서는 영국 팬이 한국 팬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는 구도가.
그리고 FPS에서는 한국 팬이 영국 팬에서 일방적으로 얻어 맞는 구도의 형성을 낳는다.
이번 시즌 배틀 로얄 그라운드의 월드 챔피언십, 일명 배드컵에서도 그랬다.
제목 : 우리 가엾은 푸어 리틀 김치들 손 푸는 거 봐라 ㅋ(영어)
내용 : 저 초등학생 같이 생긴 애들을 우리가 패야 한다고?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영어)
ㄴ : 뭐 ^^ㅣ발 코쟁아 우리도 유태인 수용소에 가둬 버리게? (영어)
ㄴ : 뭔 염병할 소리야 그건 독일이야 머저리들아(영어)
ㄴ : 나치새끼들이 니들 보어학살에 영감 받은 거니까 그게 그거지 ㅋ(영어)
ㄴ : 그리고 너희도 북한이랑 남한 구별 못하잖아(영어)
ㄴ : 어차피 북한이나 남한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야? ㅋ (영어)
ㄴ : 핵 있는 나라가 북한이고 없는 나라가 남한이잖아 ㅋ(영어)
ㄴ : ^^ㅣ발 그렇게 말하면 우리 나라가 북한보다 못사는 것 같잖아(영어)
ㄴ : 핵을 나라 분류의 기준으로 삼다니 사신의 나라 답네요(영어)
ㄴ : 없는데 ^^ㅣ발아 너희가 보태준 거 있어? (영어)
ㄴ : 인도랑 파키스탄한테 보태준 건 있지 ㅋㅋ(영어)
ㄴ : 없으면 ^^ㅣ발아 어쩔래 중국처럼 아편으로 절여버리게? (영어)
ㄴ : 이 영아치새끼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거 보소 (영어)
ㄴ : 영파네 ㄷㄷ (영어)
ㄴ : 하여간 제국주의 빨아재끼는 십새들 중에 정상이 없어요(영어)
ㄴ : 우리도 속죄하고 있으니 분노를 가라앉히시오 동방의 숙녀들이여(영어)
ㄴ : 어떻게 속죄하고있는데 ^^ㅣ발(영어)
ㄴ : 우리 나라 요리로 속죄하고있소 (영어)
ㄴ : 그럼 일본은 방사능으로 속죄하는거야 ^^ㅣ발아? (영어)
ㄴ : 야 그런데 영국새기들 요리 왤케 ㅈㄴ못하냐? (영어)
ㄴ : 맨날 다른 나라 수탈하면서 그 나라 음식만 먹다 보니 본인들 나라 요리 개발하는 걸 까먹었다는 게 학계 정설 (영어)
ㄴ : 님들 제가 한마디로 영아치들 빡치게 해 봄 '영국식 영어' (영어)
ㄴ : 엌ㅋㅋㅋㅋㅋㅋㅋㅋ(영어)
ㄴ : '한국식 한국어' 엌ㅋㅋㅋㅋㅋㅋㅋㅋ(영어)
ㄴ : 아 ㅋㅋ 김치 새끼들 개새끼마냥 잘 짖는구만 (영어)
ㄴ : 그래 니들이 할 수 있는 게 끽 해 봐야 지는 거겠지 ㅋ (영어)
ㄴ : 속 풀릴 만큼 짖어 한없이 짖어 (영어)
ㄴ : 하 ^^ㅣ발
ㄴ : 이걸 가불기를 당하네
한국이 배드컵에 진출한 건 올해로 3번 째.
3년 연속이다.
그 세 번의 출전 기록 중, 이렇다 할 수상 기록이라 하면 4강 진출이 유일했다.
반면에 영국은 3년 연속 우승.
영국팀과 만나기라도 하는 날은, 한국인들 대 조리돌림의 날이라 볼 수 있었다.
올해가 그렇게 될 전망이었다.
헌데-
"아, 이게 뭔가요!? KCW의 FOG선수! FOG 선수! F9의 RAINY를 제압! 이어서 F9의 IH를 원샷으로 제압! 1:4 구도는 어느새 1:2구도가 돼 버렸습니다! F9, 이러면 안 됩니다! 안 돼요! 아무리 여유롭다 해도 긴장을 끝가지 놓아선 안 됩니다! 다행히, 표정을 보니 더 이상의 방심은 없을 것 같군요!"
"계속해서 좁혀지는 구역! F9의 MC와 TIER선수! 양면에서 FOG를 둘러쌉니다! FOG! 제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립니다! 마지막까지 뭔가를 노리는 걸까요? 아니면, 체념한 걸까요! 후자였으면 좋겠는데요!
"MC와 TIER! 거의 다 다가갔- 아! 잠깐! FOG선수! 두명이 도착하기 직전 정확히 MC쪽으로 이동합니다! 정교하기 그지없는 사운드 플레이! 이렇게 협공을 피해 MC와의 정면대결을 성사시킵니다! 각개격파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 걸까요? 하지만! 이건 MC를 너무 물로 봤습니다! MC, 영국에서 저격전으로만 따지면 최고라 할 수 있는 선수와 저격전이라뇨!"
해설자와 캐스터가 열성적으로 말을 이어가던 와중.
-탕!
-탕!
-탕!
몇 발의 격발음이 대회장 안에 울려 퍼지더니,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잠시 뒤-
"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MC! KCW의 FOG선수에게 아주 간발의 차로 격파 당했습니다! 이럴 수가! 하지만, 아직 괜찮습니다! TIER선수! MC의 콜을 받고 다급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FOG선수가 치료를 하기 전에 신속히 이송하여 급습- 아, 잠깐!
FOG 선수! 여기서 치료 대신 전진합니다! TIER선수가 MC 선수의 콜을 받고 곧장 달려오는 걸 노리는 노림수! 골목에 은폐합니다! 이거! 너무 파격적이에요! TIER선수 예상 못합니다! 안됩니다! TIER 선수! 거기는-"
또 한 번의 격발음과 함께.
아!!!!
영국인들로 가득 찬 경기장 안에 탄식이 흐른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찾아온다.
"아, 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1:4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던 F9! KCW의 선수 단 한 명에게, 모두 격파 당해 버리고 맙니다.
F.O.G, FOG선수! 낯설다면 낯설고, 익숙하다면 익숙한 이름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엄청난 활약으로 그 이름을 이미 전세계 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그녀의 나이 겨우 열여덟입니다! 초신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군요!"
"세상에, 한국이 기어코 FPS에까지 그 손길을 뻗치려는 걸까요?"
"한국에서 또 한 명의 페이스를 배출해냈습니다! 다들, FOG 선수에게 진심 어린 박수 부탁드립니다!"
한국을 최초로 FPS의 왕좌에 올려놓음으로써 전세계 FPS팬들에게 그 이름을 각인시킨 FOG, 하애민.
미역같이 꼬불거리는 머리에, 아주 가는 눈.
하애민은 만화에 등장했으면 소위 '실눈캐'라고 불렸을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상시 웃고 있는 듯한 가는 눈에 어울리는 살가운 태도로 주변을 대하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하지만-
"데뷔와 동시에 영국의 강호인 F9를 꺾고 월드 챔피언십 우승! 로얄 로드를 달성함으로써 'FPS계의 FACE' 일명 'FFACE', 그리고 'F의 의지를 잇는다' 등. E스포츠의 전설인 FACE 선수에 비견되는 엄청난 극찬을 받은 FOG 선수, 감회가 깊으실 것 같은데요. 소감 한 말씀?"
"기쁘긴 한데-"
"예?"
"솔직히 그거는, 우승해서라고 생각합니다. F9를 이겨서가 아니라. 올해 F9는 수준이 너무 낮았거든요."
그런 '실눈캐'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성격은 까칠하고 냉철하기 그지없었으며-
"그리고, 그 FACE 선수에 비교하는 것도 말인데요."
"…네?"
"FACE 선수와 저는 엄연히 활동하는 종목이 다릅니다. 야구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펠레나 마라도나 같았다고 하진 않잖아요? 저희 종목 선수들을 존중한다면 이런 자리에서 그런 잘못된 비유를 사용해선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레오레가 아닌 다른 게임의 선수'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무례하다고 느껴지네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렸다.
어린 나이 특유의 넘치는 혈기와, '인정 욕구'는 그런 식으로 발현되곤 했다.
해당 인터뷰는 당연하게도 거대한 구설수에 올랐다.
제목 : 아니 ^^ㅣ발 FOG인지 FIG인지ㅋㅋ
내용 : ㅈㄴ 얼탱이 없는 련이네
ㅈ듣보 새기가 페이스랑 비교해서 불쾌하다고?
지가 뭔데 ㅅㅂ ㅋㅋ
겨우 ㅈ만한 대회 한 번 우승한 걸로 지가 페이스급 월클이라도 된 줄 아네
ㄴ : 그니까 ㅋㅋ
ㄴ : FIG님을 보니 위풍당당하게 진주만 공습을 조지는 일본의 늠름한 모습이 떠오르네요
ㄴ : 별 듣보새끼가 페이스랑 비교해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ㅋㅋ
ㄴ : F의 의지를 FUCK U으로 계승하네 ㅋㅋ
ㄴ : F의 의지 ㅇㅈㄹ 저딴 새끼랑 페이스랑 엮지 마셈ㄴ : ㄹㅇ 솔직히 개역겨웠음 저딴새끼 페이스랑 엮어서 억지로 띄워주는 거 ㅋ
FACE와 관련하여 지나치게 솔직했던 그 인터뷰가, 일부 팬들에겐 FACE를 모욕했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
한국 게임계에서 FACE는 가히 성역으로 추앙받는 만큼, 그 반발은 엄청났다.
FOG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하지만-
제목 : 크 속시원해 이게 FOG지
내용 : 아니 말이 되냐? ㅋㅋ
배드컵 우승 선수를 다른 게임 선수랑 삐까친다고 칭찬하는 게?
솔직히 FOG가 뭐 틀린 말 했음?
ㄴ : 전혀 ㅋㅋ
ㄴ : ㄹㅇ 솔직히 인터뷰 자리에서까지 'FPS계의 FACE FFACE'이 ㅈㄹ하는 건 선 넘었지
ㄴ : 렐충새끼들 눈에 뵈는 거 없는 거 봐 그냥 ㅋㅋ ㅈㄴ 꼴보기싫어
ㄴ : 지들도 페이스 FRO.G랑 비교하면 눈깔 돌아갈 거면서
ㄴ : 사과하지마 ㅅㅂ 뭘 잘못햇다고 사과해
ㄴ : 엎드려 살지 마라 서서 죽는 거다
그 발언은 FACE 팬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동시에.
FPS팬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FPS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FOG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마찬가지로, 레오레의 아성에 묻혀 그들에게 무시당하던 'FPS'업계 팬들.
나아가-
제목 : 이번 FOG 사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
내용 : 나 역시 프로게이머로서 FACE를 존경하지만
FOG의 말마따나 우리들은 서로 종목이 다른 선수다
FOG와 우리 FPS 팬들을 진정으로 존중햇다면 그런 표현을 사용해선 안 됐다 FOG의 소신 발언을 지지한다
[와 ㅋㅋ FRO.G가 FOG 지지했네]
[FOG 얘 FRO.G 광팬아니냐?]
[닉부터 비슷하잖아 ㅋㅋ]
[FRO.G에서 R빼면 FOG네 ㅇㅇ]
[R이 없다고? 혹시 FRO.G가 남자인가요? 촤하하~]
[귀하께서는 그럼 M이 없으신지요? 촤하하~]
[어허]
업계 종사자들에게까지.
말 그대로, FPS계 전체가 FOG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었다.
[와 근데 일 ㅈㄴ 커지네 ㅋㅋ]
그렇게 FOG의 인터뷰는 단순히 페이스 팬들과 FOG의 지지측간의 단순 분쟁에서.
레오레와 FPS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졌고.
그 싸움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된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오고 있었다.
FACE와 FOG를 중심으로 말이다.
그렇게 FOG는 FPS계 안에서 FACE와 대척하는.
'FPS계의 FACE'가 아닌, 'FPS의 FOG'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목표.
"그렇다면 FOG선수,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자면요?"
"레오레 선수들이 저와 비견될 만큼 성공하고 싶네요."
"아, 그, 크흠. 네! FOG선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FPS'장르를 넘어선 'E스포츠계의 정상'에 서는 것이었다.
페이스를 제치고 말이다.
그걸 위한 올해 첫 번째 목적은 이뤘다.
배드컵 우승.
다음은-
미튜브 어워드 1위 수상이었다.
그러니까.
항상 페이스의 차지였던 트로피를 탈취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페이스를 넘어서는 것이다.
페이스가 렐드컵에서 우승에 실패한 올해는 그녀에게 더는 없을 정도로 좋은 기회였다.
채널을 개설한 지 7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배드컵 우승과, 그곳에서 한 인터뷰로 뜨기 시작한 그녀의 채널 성장속도는 실로 엄청났다.
막 1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그 구독자는 벌써 200만을 넘겨, 210만이라는 숫자에 도달했으니.
이 기세라면, 순조롭게 이번 어워드에서 페이스를 넘어서고.
머지않아, 어워드뿐만이 아니라 게임 채널 순위에서까지.
그러니까, 진정한 순위에서까지.
하이로드와 페이스.
'레오레 적폐'인 그 둘을 넘어서, 진정한 1위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FOG는.
하애민은 확인했다.
'레전드 오브 필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은 자신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와중-
"컷!"
그는 갑작스럽게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