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13화 (313/361)

313. 스타 플레이어 3

"그런데, 제가 연기하는 게 아니면. 왜 저를 여기에…?"

"아, 일단 죄송합니다. 그, 모종의 사정으로 일정이 연기된 탓에… 현장에서 대기하시는 것보다, 이렇게 견학하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

아까부터 타니아의 안색이 어두운 게 이 때문이었나 보다.

설명하는 그녀는 마치 죄를 고하는 죄인 같았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 녹음 현장이라니. 일정 꼬여서 개이득이네요. 제가 살면서 더빙 현장 구경할 일이 언제 또 있겠어요. 안 그래요?"

최재훈의 배려의 의미에서 능청스럽게 웃자, 그녀의 안색이 그제야 좋아졌다.

"그나저나, 저는 저 '자락'이라는 캐릭터가 조연쯤 되는 줄 알았는데. 저 정도 되는 성우 분이 연기할 정도면, 그건 또 아닌가 보네요?"

"아. 아! 내 정신 좀 봐. '자락'이 무슨 캐릭터인지 말씀드리는 것도 깜빡했네요. 저 자락은- 레오필은 출시와 함께 선보이게 될 '첫' 신규 챔피언입니다."

"아~ 어쩐지."

하긴.

아이엇이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치기로서니, 저 정도 되는 성우의 비싼 목소리를 단발성으로 소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챔피언 정도는 돼야-

"응?"

잠깐.

"아니, 잠깐. 잠깐만요. 제가 그런 챔피언 더빙 후보로 거론됐었다고요?"

세계 최고 인기 게임인 레오레와 IP를 공유하는 정신적 후속작인 레오필.

그 레오필의 '개업'에서 얼굴 마담을 맡을 신규 챔피언이라니.

그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을.

그보다 막중한 임무를 맡는 역할이 또 있을까?

그 정도면, 이번 레오필 '오픈 베타'의 핵심이라 봐도 무방할 진데.

그런 챔피언의 이미지를 담당하게 될 성우의 후보로, 비전문가인 자신이 고려됐다고?

'왜, 와이?'

지금 숨컷이라는 방송인이 무진장 잘 나가서?

정말로 그게 이유라면, 최재훈은 아이엇의 주식을 들고 있는 이들을 측은하게 여길 자신이 있었다.

그 사안을 통과시킨 총 책임자의 면전에다 '실례지만 또라이신가요?'라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최재훈은 질문했다.

그렇게 답을 들은 최재훈은 진정하기는커녕-

도리어 더욱 격렬하게 당황했다.

"다름이 아니라, 숨컷 님을 모델로 제작된 챔피언이거든요."

숨컷을 모델로 제작된 챔피언.

사실, 그보다 더욱 정확한 표현이 존재했다.

하지만, 타니아는 그 표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엇 안에서도 아는 이가 드물 정도로 아주 민감한 사안과 관련된 표현이었기에.

오늘날의 'E스포츠'를 있게 한, 최초의 E스포츠 스타인 꽃미남- 아니, 꽃미녀 프로게이머.

황제 '임요진'.

지표에 따르면, 레오레 리그에 대한 관심도를 약 1, 5배 상승시켰다고 하는.

레오레 최초의 스타 슈퍼 플레이어인 '데라'.

그리고.

타 팀 대비, 화제성이 최소 3배에 달한다고 하는 경기의 주인공인 '페이스'.

그들의 사례로 증명된 바.

게임과, 그 게임의 '리그'의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부요인이 있다.

바로-

'스타 플레이어'.

레오필이 단순히 게임을 넘어서 '현상'이 되려면-

그러니까-

'레오레처럼' 되려면 스타 플레이어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페이스'의 계보를 이어 나갈 스타플레이어가 말이다.

그게 아이엇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스타 플레이어'의 출연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운에 맡기기엔, 걸린 게 너무 많았기에.

그렇게 직접 차세대 '스타 플레이어'를 만들어 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도유망한 유망주들을 밀어줌으로써 말이다.

언더워치에서는 최초의 스타 플레이어인 'FRO.G'선수를 밀어주기 위해, 해당 선수가 주로 다루는 챔피언들의 위력을 향상시켰었다.

레오레에서는 '데라' 활약을 위해, 말살을 고려했던 EU메타를 방치했다.

그런 전례로 알 수 있듯.

스타 플레이어를 위해 기업 단위로 행동하는 일은 의외로 업계에서는 흔했다.

그렇다면.

아이엇에서 차세대 게임계를 이끌어 나갈 스타 플레이어 유망주로서 꼽은 그 플레이어가 도대체 누군가?

대한민국엔 총 두 명이 있었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가 모델이라그여…?"

지금 진상의 일각을 보았을 뿐인데도 넋이 나가 있는 숨컷이었다.

아주 당연하게도 말이다.

아주 수려한 외모에 확실한 캐릭터성.

검증된 품성.

지금까지의 행보로 입증된 게임 실력과 화제성.

마지막으로, 게이머들에게 향해지는 모멸적 편견을 희석시켜줄 '세연대'라는 요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정도인데-

그는 심지어 '남성'이기까지 했다.

언더 워치에 'METEOR'라는 플레이어가 있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성격에, 평범한 캐릭터성.

실력은 뛰어난 편에 속했지만 최고라고 부르기엔 아쉬움이 있는.

특출 날 것 없는 플레이어였는데.

그 인기는, 가히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그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이 지배하는 게임계에서,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겨룰 수 있는 플레이어의 등장은, 게임 외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끌어 모았고.

이는 곧, 게임을 향한 관심이 되었다.

'메테오 덕분에 언더워치는 한 때 레오레를 위협할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평범에 가까웠던 플레이어조차 그 정돈데.

만약 숨컷이 레오필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막 출시된 레오필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렇게 숨컷에 의한.

숨컷을 위한 캐릭터인 '자락'은 탄생했다.

자락은 그 디자이너인 타니아 리가 숨컷에게 영감을 받아 착안한 캐릭터였기에.

그 '분위기'가 어딘가 숨컷을 연상시켰다.

'자락'을 떠올리면, 왜인지 모르게 '숨컷'또한 떠올려 연관 지을 만큼.

뿐만이 아니다.

숨컷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게임에 대한 엄청난 이해도를 바탕으로, 시간으로 따지자면 1초를 백 등분 한 것과도 같은 희미한 빈틈을 억지로 찾아내 공략하는 암살자'였다.

현존하는 챔피언 중에서 그 플레이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건 이미 잘 알려진 '텔론'이 있었는데.

'텔론'이 가장 잘 맞는 기성 제품이라면, '자락'은 맞춤 제작품이었다.

숨컷의 플레이 스타일과, 이 '레오필'이라는 게임에 맞춰서.

그리고, '게임의 형평성을 헤치지 않는 합법적인 선'에서.

숨컷을 위해 제작된 맞춤 제작품.

"허, 참나…."

최재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기대한 건 기껏 해 봐야 엑스트라나 조역으로서, 단발성으로 출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대뜸 '자신을 모델로 만들어 진 챔피언'이라니.

갑자기 일이 너무 커져서 좋다기보단 얼떨떨했다.

그리고-

"이건 너무, 부담스러운데…."

그에, 타니아 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숨컷 님을 모델로 했다기 보다는. 제작자들이 캐릭터를 디자인하면서 숨컷 님에게 적잖게 영향을 받았다- 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

타니아 리가 굳이 '자락'이 당신을 모델로 했다 언급한 이유는 숨컷이 자락에게 애정을 갖고, 선호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숨컷이 자락을 최대한 편하게 느끼도록 표현을 정정했다.

게다가, 사실 아이엇에서는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게임의 흥행을 목적으로, 특정 플레이어를 위해 맞춤 챔피언을 출시하는 등의 일은 말이다.

그러자, 그제서야 얼굴에서 당혹의 색이 빠지고-

"크, 제작자 분들한테 영감을 줄 정도라니."

순수하게 기뻐하기 시작하는 최재훈.

"앗! 잠깐!"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에 보일 정도로 아쉬워한다.

"무슨 문제라도…?"

"그러면, 이게 끝인가요?"

"네?"

"제가 작품에 출연하는 거요."

"아… 뭔가 기대하시던 부분이라도…?"

"가령, 신 챔프 트레일러 영상에 나와서. 신 챔프한테 죽는 엑스트라 역 한 번 맡아보면 소원이 없겟구나~ 싶었거든요."

"와, 그거 참…."

특이한 취향일세.

"아, 그러면 마침. 자락의 트레일러 영상에 그런 장면이 하나 있긴 한데… 한 번…."

"오!"

최재훈이 반색하며 격하게 고갤 끄덕였다.

"제발, 죽여주세요!"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자락'의 더빙 작업이 일단락되고.

"끄아아아아악!!!!!"

스튜디오 안에는 최재훈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좋았나요?"

"아, 예. 아주…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죽음직스러웠다?"

"어… 예, 뭐…."

"하~ 반응 보니 아닌데? 한 번 더! 이번엔 끄아아악!!! 이 아니라 끄흐아학!!! 으로."

"아, 예, 뭐… 만족하실 때까지… 예, 실컷 죽으세요…."

계속해서.

계속해서.

"성우 님은 어떻게 보셨나요?"

슬슬 관중들이 청각에 피로를 호소하게 될 때 쯤.

당황한 성우가 핸드폰을 들어 최재훈에게 보여줬다.

거기엔 119가 눌려져 있었다.

"숨컷 님한테 진짜로 무슨 일 생긴 지 알고 하마터면…."

"크~ 10점, 10점이요…."

"와~ 10점이~"

그렇게 국내 대표급 성우의 뛰어난 재기 덕분에, 그들은 마침내 해방될 수 있었다.

더빙 작업은, 순조롭게 마무리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 숨컷님.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 문제 잘 해결 됐나요?"

"예, 그러면. 가실까요?"

"와, 근데…."

"예?"

자신을 모델로 한 챔피언이라니.

레오레에선, 일종의 트로피로서 렐드컵의 우승자들을 모델로 챔피언의 스킨을 만들어 출시한다.

최재훈이 가장 동경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

그런데.

자신을 모델로 한 스킨을 넘어서, 자신을 모델로 한 챔피언이라니.

"참나."

최재훈이 벅차오르는 감정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상치도 못한 부분에서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꿈을 이룸으로써 '성공'을 선명하게 실감하고 말이다.

최재훈이 신규 챔피언과, '레오필'에 대한 기대감을 가득 안고 녹음 스튜디오를 뒤로했다.

그렇게.

촬영 스튜디오, '본격적이다'라는 인상을 주는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어?"

그렇게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어!? 자기!"

먼저 과할 정도로 반갑게 맞이하는 TC1 SIGHT, 차현하와.

"어…."

분명 봤음에도 어설프게 못 본 척, 관심 없는 척을 하는 BAY MUGCUP, 김희은.

그리고-

"어, 숨컷 님이다! 저, 언더워치 프로-"

언더워치 유명 프로 한 명과.

배틀 로얄 그라운드 유명 프로 한 명.

마지막으로-

"아,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최재훈의 뒤를 이어 도착한 한 사람.

그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숨컷 씨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네요."

"아. 안녕하세요."

"저 FOG라고 하는데, 아시나요?"

숨컷을 바라보는 그녀는 웃고 있었고.

어찌 보면 웃는 상이라 할 수 있는, 또 어찌 보면 뱀처럼 날카롭다 할 수 있는 실 같은 눈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저는 아는데."

경쟁심이었다.

'저는 모르는데.'

최재훈은 표정관리를 하며-

"아, 예! 포그님 당연히-"

"모르시네요."

"…중요한 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났다는 사실 아닐까요?"

이번에 아이엇에서 꼽은 '스타 플레이어 유망주'.

동시에, 멸망전 우승 후보이자.

미튜브 어워드 수상 후보인 둘이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람이….'

올해, 분명 자신의 것이어야 했을 주인공의 자리를 빼앗아간-아니.

빼앗아 가려고 하는 남자.

미튜브 어워드의 투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녀가 방금 확인한 바.

현재 순위 1위가 숨컷이고, 자신이 2위였다.

'안 되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자 그러면, 스탠바이 들어가겠습니다!"

FOG의 날카로운 경쟁심을 머금은 실같이 가는 눈이 숨컷을 응시했다.

이내, 촬영 준비가 시작됐다.

'레오필'의 프로모션 영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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