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08화 (308/361)

308. 새로운 시대 1

그 '페이스'가 이번 시즌 솔랭에 공식적으로 참가를 선언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E스포츠 스타로서, E스포츠의 상징이 되어 버린 존재.

현존하는 모든 레오레 대회의 우승을 당연한 듯 차지해 버려, 우승이라는 글자로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존재.

의도하진 않았으나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성격으로, 극도로 폐쇄적인 활동을 하여 극단적인 신비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한 달에 한 번 방송을 켜면 많이 켠다 할 수 있는 그 페이스가.

시즌 마무리까지 그 모든 과정을 방송한다.

엄청난 말로도 다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번 시즌 솔랭의 주인공은 페이스가 아니었다.

CSN와, 숨컷.

그 둘이었다.

아마추어의 입장으로 페이스와 비견되는.

레오레 판에서 페이스의 다음으로써 '2위'- 아니지, '또 다른 1인자'라 할 수 있는.

인터넷 방송 계의 최대규모급 슈퍼스타.

하이로드.

그 둘이라면, 하이로드가 끔찍하게도 긴 시간동안 이어왔음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절대적인 장기 집권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이로드는 마왕, '보스'였던 것이다.

그리고, 페이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렐드컵에서조차 자연재해로 칭해지는 페이스다.

그런데 솔랭에선 오죽할까?

당연히 논외.

절대로 쓰러트릴 수 없는 '이벤트 보스'.

'보스'를 무찌를 수 있을 것인가.

'이벤트 보스'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것인가.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두 가지 이벤트를 전부 수행할 수 있는 CSN와 숨컷을 주인공으로 여기고 관심과 기대를 보냈던 것이다.

이입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입이 깨져 버린다.

아니, 옮겨져 버린다.

하이로드에게로.

하이로드와 페이스의 전면전이 시작된 이후부터다.

사실, 지금 숨컷과 CSN는 한창 신예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어서 그렇지.

원래 같았다면, 하이로드에 감히 비견될 수조차 없는 입장이었다.

하이로드가 이미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공룡 기업이라 하면.

둘은 이제 막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 해야 하나?

그럼에도 사람들이 하이로드가 아닌 숨컷과 CSN를 택한 이유.

하이로드는 이미 몇 년 간 정상으로 군림해옴으로써 이미 '모든 걸'보여준 반면에.

둘은 아직 보여줄 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둘을 향한 관심은 하이로드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페이스를 상대로 한 퍼포먼스에서 '숨컷의 완벽한 하위 호환'이라는 평가를 받아 버린 CSN는 차치하고.

아직,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않은 숨컷에 대한 기대까지도 식어 버린 이유?

하이로드가 페이스를 상대하면서 보여준 '퍼포먼스'.

그 퍼포먼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들게 한 생각 때문이었다.

'숨컷은 이 이상을 보여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

하이로드와 페이스의 플레이가 '완벽'에 가까우며.

갈수록 '완벽에 가까운' 그 이상인, 완벽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당사자들 또한 그렇게 느꼈다.

하이로드는, 시즌 종료에 이르렀을 땐 모종의 황홀경마저 느꼈다.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생각했던 자신이,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했음을 느꼈기에.

그렇게.

진정한 '완벽'에 다다랐으며.

결국엔 페이스마저 넘어설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에.

그만큼, 충격은 컸다.

"…."

<패배>

수차례 패배한 끝에 전의를 상실해 버린 하이로드.

상실해 버린 게 전의뿐만이 아닌 듯-

아직도 그 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얼굴에는 여러 가지가 결여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하이로드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자신은 '완벽'에 다다랐을 터인데.

'왜, 이렇게 져 버린 거지…?'

하다못해, 패배를 안겨준 상대가 페이스였다면.

용납할 수 없을지언정 이해는 됐을 터다.

페이스는 자신과 같이, 서로를 밟고 올라가며 완벽이라는 정상에 가까워지고 있던-경쟁자였으니.

그런데.

갑자기 웬 안중에도 없던 잔챙이 한 마리가 난입해서는.

자그마치 '페이스'를 기준으로 쌓아온 자신의 탑을 부정한다.

하다못해.

페이스 때처럼 '일부'만 부정했다면-

역시 용납할 수 없을지언정 이해는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근간'그 자체를 부정하고, 전부 무너트려 버린다.

하이로드는 멍하니 <패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패배의 증거가 아닌.

지난 며칠간 하이로드가 완전히 심취해서 모든 걸 걸고 쌓아 올렸던 탑.

그것이 무너진 잔해였다.

용납할 수 없었고, 이해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뭔가 잘못 됐어….'

그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아 나선다.

드디어 넋이 되돌아온 하이로드였으나, 상태가 방금 전보다 낫다곤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절박하기 짝이 없는 얼굴.

절박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 샅샅이 훑는다.

뭐든 좋다.

자신이 페이스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만 있다면.

'하다못해….'

'하다못해….'

이미 모든 목표에 도달했다.

그렇게 방황하며 공허한 삶을 살아가던 와중, 겨우 새로운 목표를 발견했다.

지난 며칠 동안 하이로드가 페이스를 따라 걸어온 길은.

겨우 찾아낸 새로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금 보다 높은 곳'이라는 목표에 말이다.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의 모든걸 걸었다.

그런데.

그 길은, 목표의 바로 앞에서 끊기고 마는 잘못된 길이었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목표가 바로 저기 있는데.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는데.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하이로드는 말 그대로 '발버둥'쳐 보았다.

그럼에도 결국 닿지 않았다.

분명해지는 것은, 역시 이 길은 잘못된 길이라는 사실뿐이었다.

"…하."

하이로드는 결국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페이스를 따라간다 하여, '지금보다 높은 곳'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 길은 틀린 길이었다.

길 뿐만이 아니라, 목표 또한 마찬가지.

하이로드의 환상이 깨졌다.

아무리 페이스일지라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자신의 위에 있지 않았다.

페이스조차 자신을 밑에 둘 수 없다.

그 사실은, 하이로드에게 조금의 위안도 되지 못했다.

올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는 하이로드에겐 말이다.

잘못된 길로부터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오자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하이로드가 갇혀 있던 어둠 속을 은은하게 밝혔던 길과 목표가.

그 얼굴은 길에 오르기 이전보다 훨씬 메말라 있었다.

압도적 상실감과 절망감이 찾아온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그 말을 할 기운도 없어, 말없이 방송을 종료하려던 순간-잠깐 들렸던 채팅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아니 ㅅㅂ ㅋㅋㅋㅋㅋㅋㅋ CSN 정체 조컷이라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ㅣ발 이럴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ㅅㅂ 페이스가 아니라며]

[ㅅㅂ 뭐가 뭔지]

[아니 뭔 상황인데 ㅅㅂ 일단 CSN 방송 가고 보면 되는 거지?]

빛을 잃었던 하이로드의 눈이, 빛을 되찾는다.

'이런 멍청한….'

며칠 전부터-

아니지.

옛날부터 쭉 심취하고 있었던 페이스에게서 드디어 벗어남으로써 말이다.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듯.

'지금까지 뭐한 거지?'

페이스는 하이로드가 유일하게 자신의 위라 인정하는 상대였다.

그렇기에 페이스에게 인정받고자 했고.

페이스를 넘어서고자 했다.

그렇게 페이스를 목표 삼음으로써 더 높은 곳에 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페이스가 사실 자신의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더 높은 곳에 도달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믿었다.

하이로드가 알기로, 자신의 위에 있는 존재는 페이스가 유일했기에.

하지만 지금 비로소 페이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까지는 하이로드에게 있어서 그저 '페이스에게 참패한 플레이어'에 불과했던 CSN.

그저 '하이로드에게 인정 받은 플레이어'에 불과했던 숨컷,

그들이-

아니지.

그가.

비로소 그 자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체로 보이는 숨컷은-

[와 숨컷 ㅋㅋㅋㅋㅋ 미쳤네 페이스가 졌다고 인정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소리임?]

[페이스가 졌다고 지 입으로 인정햇다고?]

[걔 그런 적 단 한 번도 없잖아 ㅋ]

[걍 시청자들이 뭐라뭐라 한 거겠지]

-찰랑!

-아니 진짜야 ㅄ들아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CLIP 영상]

[와 ㅁㅊ]

[진짜네?]

['졌습니다' '잘하시네요'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아니 말이 되나 이게]

[저거 페이스 맞긴 함?]

[또또 말같잖은 소리 하네 ㅋㅋ]

[ㄹㅇ ㅋㅋ 당연한 거 묻지 말라고 클론인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페이스가 저렇게 웃으면서 패배 인정하면서 칭찬한다? ㅋㅋ 저을대 불가능하지]

[제가 생각해 봤는데 김이리 1.8버전 같네요 ㅇㅇ;; 감정 기능이 업그레이드 되고 실력은 다운그레이드 된]

['문제 해결']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렇게, 너무나도 먼 곳에 있어 자신의 위에 있는 건지.

정말로 빛나는 게 맞는 건지.

모호하며 은은했던 목표, '페이스'와는 달리.

같은 세계에 살아 분명하다.

분명하게, 자신보다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고고하게 자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내려주면서 말이다.

하이로드는 어느새 CSN의 방송에 입장한 상태였다.

-숨태용의 트릭쇼, 여기서 마칩니다.

저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특유의 미소.

"아니, 이게 도대체 뭔… 미친…."

보고 있노라니, 절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이로드의 시청자들은 그 헛웃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아니 근데 조컷새기 저거 기만 ㅈ되네]

[그니까 ㅋㅋ]

[그럼 저거 하이로드 선생님이 숨컷 챌린지 할 때 지가 못하게 지가 저격해서 방해했던 거네?]

[와 ㅋㅋㅋ]

[아니 근데 저격 하이로드 공인 자유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게 뭐고 이건 뭔데요]

[아니 페이스가 CSN 숨컷 아니라 하지 않았나? 그건 뭔데?]

[둘이 뭐 있는 거 아님?]

하이로드에게 찬동하고자.

하이로드에게 패배의 굴욕을 안겨 준 숨컷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헛웃음의 진짜 의미는-

그냥 헛웃음이었다.

하이로드는 숨컷의 얼굴을.

실체를.

제대로 흥미를 갖고 마주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페이스라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으니.

그렇게 처음으로 마주한, 그 '페이스'를 대체할 새로운 목표가 저런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있으니.

하이로드로서는 헛웃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감정의 고조였다.

그동안 하이로드는 페이스를 자신의 목표로 삼으면서도 줄곧 긴가민가했다.

프로씬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분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페이스를 목표로 삼는 건, 정말로 괜찮을 걸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숨컷은 다르다.

자신과 정확히 같은 분야에 있어.

잡다한 전제, 가정, 수식 따위를 붙일 필요가 없었다.

항상 그 자리에 서서 고고하게 도전자들을 기다릴 것이다.

'목표'로 삼기에 더는 없을 정도로 적합했다.

숨컷을 보고 있노라니 그 사실이 다시 상기되기 시작하며, 감정이 벅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하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하이로드는 큭큭거리며-

새로운 목표가 되어준 그에게 감사를.

존경을 표하고자 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

하이로드는 두 가지를 열었다.

하나는 지갑이었고, 또 하나는 후원 창이었다.

'지금 1920점이랬지….'

잠시 뒤.

숨컷의 방송에는 괜시리 더 묵직하게 들리는 '찰랑!'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DAORAW 님이 19, 2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선생님 1등 축하드립니다. 한 수 크게 배웠고, 다음 시즌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페이스는 경쟁심이 아주 강했다.

쪼잔할 정도로 말이다.

-찰랑!

-TC1 FACE 님이 19, 3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한 수 배웠습니다 다음 시즌에 봬요.

[하이로드보다 정확히 10만원 더 후원하는 거 실환가 ㅋ]

페이스 역시 하이로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었다.

페이스에게 '경쟁심'은 하이로드에게 있어서 '성취감'만큼이나 강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높이 올라와 버린 탓일까.

대등함 그 이상의 입장으로써, 자신과 '경쟁'해 줄 상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페이스가 만성적인 따분함 속에서 고통 받고 있던 와중.

지금, 숨컷이 그 '경쟁자'가 되어준 것이다.

페이스는 그에 대하여 숨컷에게 감사와 존중을 표했다.

페이스와 하이로드는 경제적으로 초연한 입장에 있는 이들이었다.

지금 그들이 숨컷 덕분에 느낀 정신적 만족감.

마음 같아선, 여기에 공 몇 개를 더 붙어서 후원하고 싶었다.

예술가를 후원하는 부호의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과유불급.

그렇기에, 이 정도로 참는다.

-DAORAW 님이…원을 후원했습니다.

-TC1 FACE 님이 …원을 후원했습니다.

그들의 인정.

추종자들이 일제히 비난을 그만두고,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을 그를 위한 시간이었다.

페이스와 하이로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방송을 종료했고.

그렇게.

현재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CSN의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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