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304화 (304/361)

304. 반복 2

[???]

[뭐?]

모두의 예상을 깨는 발언.

아랑곳 않고 페이스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간다.

"이 사람이 그분이라기엔…."

<승리!>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네요."

반론을 허하지 않는 직설.

그럼에도 누군가가 말하자-

[조컷이 정체 숨기려고 일부러 대충 했을 가능성은? ㅋㅋ]

페이스는 이번에도 담담하게 답했고.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그런 실력 못 가져요.”

이번에야 말로 논란은 종식되었다.

CSN는 숨컷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 * *

그 시각 최재훈.

그는 지금 폭발 일보 직전 상태였다.

<패배!>

그 창이 떠오르는 순간.

최재훈은 격렬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빠…."

사랑하는 여동생의 걱정 가득 담긴 시선은, 지금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최재훈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화장실을 향해!

"끼요오오오옷!!!!!!"

그는 위아래로 포효했다.

게임이 시작된 순간, 최재훈의 병실에는 쿠르릉 콰르릉 천둥이 몰아치고.

최재훈의 얼굴에는 비가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르륵의 최재훈 : 여어~)

갑작스럽게 재방한 식중독의 복통!

그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인내했다.

겜창인 그에게 있어 게임 도중에 포기하는 일이란 없을 수 없었기에!

더군다나 그냥 게임도 아닌 페이스와의 대결!

그러나!

그 초인적인 인내력과는 별개로, 그런 상태에서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리 만무했고.

최재훈은 결국 자신의 본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판이었다.

초인적인 정신력만 있다면 이런 상태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판단은 말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오판으로 인해, 페이스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에 최재훈이 느낀 감정.

"어, 오빠, 괜찮아?"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재은이 걱정 섞인 얼굴로 최재훈을 쳐다봤다.

"응?"

그리곤 눈썹을 튕긴다.

최재훈의 표정을 보고 그렇게 되었다.

페이스에게 허무하게 져 버려서 상심이 클 줄 알았는데.

그 표정은 호기롭기 그지없었다.

최재훈이 방금 페이스와 게임을 하고 느낀 감정.

바로-

뿌듯함.

그리고-

* * *

-찰랑!

-그런데 페이스님 왜 갑자기 암살자류 챔피언들만 하세요? 맛 들리신 건가?

페이스가 그 질문에 답하자-

"요즘, 숨컷 님 플레이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서요."

채팅창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눈치 챈 것이다.

최재훈처럼.

지금, 페이스가 무얼 하고 있는지.

페이스에겐 지독한 악취미가 있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

페이스가, 전례 없는 참신한 플레이 스타일로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는 '비엑스'를 렐드컵의 결승전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일이다.

"페이스 선수, 비엑스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참신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 말은- 북미 팬으로서 위협적이라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예."

"와우! 그렇다면, 그 위협적인 비엑스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처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경기 이전 인터뷰의 질문에서, 페이스는 그렇게 답했다.

"비엑스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공부!"

그 발언에, 북미 팬들은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그 페이스가 '공부'라니!

페이스가 다른 선수에게 그 정도의 존경을 표하는 일은 몹시 드물었기에.

그렇게 북미 팬들의 기대 속에서 결승이.

첫 경기가 시작되고.

"…?"

카메라에 비춰지는 비엑스의 얼굴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기.

"…."

카메라에 비춰지는 비엑스의 얼굴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고.

마지막 경기.

"하."

카메라에 비춰지는 비엑스의 얼굴에는, 체념이 담겨 있었다.

"아!!!!!!"

북미의 해설자는 북미권 특유의 영어 늬앙스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요!!! 페이스!!!!! 비엑스 선수를 '공부'하고 있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요!?"

그렇게, 지금의 페이스를 정의 짓는 어떠한 단어를 말한다.

위조자.

모방꾼.

가짜.

그런 의미를 함유하고 있는 단어를 말이다.

"FACE가 아니라 FAKER!!! FAKER입니다!! 비엑스의 모스트 챔피언으로, 비엑스의 플레이 스타일을 '모방'해서! 비엑스 선수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퍼포먼스!!! 동시에, 엄청난 악취미입니다!!! 그저 젠틀한 숙녀인 줄 알았던 페이스에게 저런 악랄한 면이 있었나요!?! 비엑스! 비엑스, 멘탈 괜찮나요!?"

페이스에겐 자신이 흥미를 느낀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모방'하고.

그렇게 만들어 낸 '모조품'으로써 '진품'을 넘어서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경쟁심'에서 비롯되었으나.

상대방의 입장에선 '악의적이기 그지없는 악취미'가 있었다.

숨컷이 그 악취미의 대상이 되었다는 페이스의 말을 전해들은 시청자들은 일단은 감탄했다.

북미를 세계 3대 강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비엑스를 비롯하여.

페이스에게 '모방'을 당한 대상들은, 세계 최고라 평가 받던 이들이었으니.

숨컷은 페이스의 공인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어 반열에 든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감탄하는 한 편, 동정했다.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플레이 스타일을 '흉내'냈을 뿐인 상대방에게 패배한다.

여지껏 페이스의 '모방'에 당한 이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기에.

비엑스처럼 '체념'하고, 겸연히 받아들이는가.

혹은 '절망'하고 수렁에, 슬럼프에 빠지는가.

대부분 후자에 속했다.

페이스가 이번 시즌 참가 의사를 밝히자.

사람들은 분명 '숨, 페, C, 하' 네 명의 4파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게 곧-

'네 명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라는 의문이 되는 건 아니었다.

제목 : 아 페이스 생태계 교란 뭔데 ㅋㅋ

내용 : 이러면 ㅅㅂ ㅋㅋ 숨컷이랑 하이로드랑 CSN는 뭐가 되냐고

ㄴ : ㄹㅇ;;

ㄴ : 우리 이리는 감정이 없어서 말해도 몰라요

ㄴ : 1010101010210101010

ㄴ : 로봇에게 감정을 논하지 마세요

ㄴ : 월YI 보면 로봇들도 감정을 알던데요?

ㄴ : 터미네이터 보고 오시면 됩니다

ㄴ : 아

페이스가 참가를 밝힌 순간.

그들의 안에서, 이번 시즌 최후의 승자는 당연한 듯 페이스로 굳어졌다.

그들은 그저 과정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밝혀진 페이스의 숨컷 모방 사실에 따르면.

그 과정은 꽤나-

잔인해질 듯싶었다.

그들은 생각했다.

숨컷이 입원으로 인해 이대로 시즌 마무리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도.

그에게는 나쁘지 않은-

아니지.

오히려 좋은 일이 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걱정과 달리, 숨컷은 이미 '모방'을 겪어 버렸음을.

그리고-

"오빠, 왜 그래… 왜 웃는 거야. 식중독이 뇌에도 문제가 생기는 거였나? 오, 오빠… 이 뻐큐가 몇 개…?"

그 모방을 겪은 숨컷은 체념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았음을.

그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 담긴 감정은- 같잖음.

가소로움이었다.

페이스는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플레이어다.

그건 최재훈에게도 역시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방'으로 자신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특정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상대방보다 더욱 높은 이해도를 구축함으로써, 압도한다.

그게, 페이스의 '모방'의 실체였다.

80%의 이해도를 갖고 있는 이에겐 85%의 이해도로.

85%의 이해도를 갖고 있는 이에겐 90%의 이해도로.

그래서였다.

최재훈이 페이스를 가소롭다 느낀 것은.

최재훈의 유일한 단점은 플레이 스타일의 폭이 좁다는 것이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는 그가 다룰 수 있는 플레이 스타일에 한해선-

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그 누구보다도 노력했던 최재훈은 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구사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가 100%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플레이 스타일로써, 결코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디 보자….'

최재훈은 방금 전 페이스의 플레이를 되짚어 보았다.

그렇게, '최고'를 '평가'해 보았다.

그렇게 나온 결론.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에 대한 현재 페이스의 이해도는-

80% 정도였다.

택도 없다.

그거 가지곤-

'지금 한창 악에 받쳤을 '그 인간'도 못 이기지. 그 인간, 지금 폐관수련 들어갔다 했지?'

* * *

CSN에 대한 '혹평'으로 커뮤니티를 한바탕 뜨겁게 달군 페이스는 멈추지 않고 방송을 속행했다.

학살을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어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오늘 무슨 날이냐? ㅋㅋㅋㅋㅋ]

[아빠 있어봐요 지금 공무원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나 너희 아빤데 이건 ㅇㅈ한다]

CSN에 이어서, 다시 또 빅 매치가 성사되었다.

[하이로드 니가 왜 거기서 나와 ㅋㅋㅋㅋㅋㅋ]

CSN를 상대하며 '발전'의 필요성을 느낀 바.

방송을 접고 '폐관 수련'에 들어갔었던 하이로드가 그 귀환을 알렸다.

페이스가 독차지하고 있었던 시청자 중 일부가 떨어져 나와, 하이로드의 방송에 흡수된다.

둘의 조우에 대한 소식은 삽시간에 퍼진다.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 역시-

4파전 때처럼.

그 결과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다.

과정에 대한 기대.

그러니까-

하이로드가 페이스에게 얼마나 버틸 것인가.

그게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이었다.

하이로드와 호각을 다투었던.

어쩌면 하이로드를 상회했던.

CSN.

그 CSN를 가볍게 제압한 페이스가, 하이로드 역시 가볍게 제압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페이스가 적팀의 하이로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CSN처럼.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조품'의 완성도를 실험하기에 딱 좋은 상대다.

그리고 실험의 결과.

예상대로였다.

<패배!>

최재훈의, 예상대로였다.

[아니 ㅁㅊ]

[뭐냐고 하이로드!!!!!!]

[아니 어케 이겼어?]

[아니 이건 이긴 수준이 아닌데?]

누군가의 말대로, 방금 전 페이스와 하이로드의 경기는 단순히 이긴 수준이 아니었다.

[ㄹㅇ ㅋㅋ 그냥 발랐는데?]

[아니 도대체 ㅅㅂ 폐관수련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CSN.

그리고 숨컷.

둘에게 위기감을 느낀 하이로드는.

둘에게 대처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그들의 플레이를 연구하고 분석하면서- 파훼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고 판단된 지금 귀환했고.

그렇게-

'숨컷'을 모방한 페이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따분함에 절어 있었던 하이로드의 표정에 희열이 그려졌다.

'몇 년 전 하이로드'처럼.

그리고, 페이스.

그녀는 지금 좌절을 경험했다.

'몇 년 전, 아직 완전해지지 못했던 숨컷'처럼.

그들은, 일찍이 최재훈이 지나쳐 온 길을.

이제 막 밟고 있었다.

최재훈은 그 끝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큭큭…."

꾸르르릉.

"오빠, 화장실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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