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하늘전의 여파 2
이사영은 김희은이 참가하는 하늘전에 이전부터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렇기에, 권지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권지현의 그 급격한 성장에, 숨컷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런데.
자신은 더 이상 발전시켜주지 못했던 김희은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준 것 또한 숨컷이라니.
TEAM BAY의 감독인 이사영이 숨컷에게 느끼고 있던 모종의 가능성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말이 되나?"
"예?"
"희은아."
"아, 네."
"그, 혹시 가능하면…."
"넵…?"
"그, 숨컷 그 사람한테 이 이야기 좀 꺼내줄 수- 아니, 아니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직접 이야기 해 봐야겠다. 알았어, 고맙다. 얘들아. 오늘 수고했고, 난 잠깐 볼일 좀-"
LKL을 대표하는 TC1와 TEAM BAY.
그 두 팀을 비롯한 큼직한 프로팀들.
뿐만이 아니다.
해외의 몇몇 프로 팀들도 이번, 숨컷에 대한 정보를 접하곤.
그에게 코치직을 제안했다.
경쟁자가 반드시 있을 거라 확신이라도 하듯, 전에 없던 파격적인 조건으로 말이다.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엔 '레오레 학원'이 존재했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 그 가게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크게 성공했고.
창립 이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그 학원에서도, 숨컷에게 연락을 보냈다.
학원 입장에서는 홍보 차원으로.
그의 입장에서는 컨텐츠 차원으로.
-숨컷 님만 원하신다면, 파트타임으로. 원하시는 기간, 시간 대 언제든지 비정규 강사로 활동하실 수도 있습니다. 조건은 최대한 원하시는 대로-
학원에서 일일 교사로 활동해 볼 생각은 없냐고 말이다.
그를 찾는 곳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재훈의 하늘전 MVP수상은 그가 지금껏 이루었던 업적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 영향력이 단순히 게임계나 인터넷 방송계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다.
하늘전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축제 중 하나였고.
그 파급력은, 대한민국의 청년층 대부분에게 유효하다 봐도 무방했다.
하늘전의 MVP가 청년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업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말씀 드렸다시피-"
답지 않게, 잔뜩 흥분한 이린이 전해온 소식.
바로-
청년층을 주 고객으로 갖고 있는 기업들의 협찬, 광고 문의였다.
"레이지에, 나이스에, 블랙드래곤에… 아니, 난리 났네?"
이린이 흥분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게이밍 기어의 대명사인 레이지.
스포츠 웨어의 대명사인 나이스.
컴퓨터 부품의 대명사인 블랙드래곤.
그 하나하나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업계에서 대명사 격의 입지를 구가하고 있는 대기업들이었기에.
최재훈은 상상도 못했다.
자신이 살면서 이런 기업들에게 먼저 러브콜을 받는 날이 오게 되리라곤 말이다.
그는 얼떨떨해서 헛웃었다.
"실환가?"
그러자-
"게다가-"
이린이 흥분해서 덧붙인 말을 듣고는.
최재훈은 포털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니 또 다시터지는 헛웃음.
-인물 정보-
이름 : 최재훈
직업 : 프로게이머
학력 : 세연대학교
사이트 : 미튜브, 인싸그램, 방송국
유명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 정보'가 최상단에서 그를 맞이했기에.
포털 사이트의 인물 정보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등록 신청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최재훈은 신청을 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포털 사이트 측에서 임의로 등록한 게 된다.
숨컷이 하늘전에서 MVP에 선정된 이후 줄곧.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는 숨컷, 혹은 최재훈.
그 이름이 고정되어 있었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근데 왜 프로게이머지?'
나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좋다.
지금.
숨컷, 그 이름은 게임계와 인터넷 방송계를 넘어서 거세게 확산되고 있었다.
[댓글 : 하늘전 보고 온 사람 손]
추천 : 1만 8천
[댓글 : 숨컷 보고 옐로TV 처음 알게된 사람 손 ㅋㅋㅋ]
추천 : 1만 1천
숨튜브 최신 영상에는 그런 댓글들이 달리고 있었다.
당장 겉으로 보이는 유입만 해도 그 정도.
실상은 더욱 엄청나다.
"와아!!! 재훈 씨, 이야기 들었어요 축하드려요!"
미튜브 국내 게임 채널 순위.
숨튜브가 드디어- 한 자릿수 랭킹에 돌입했다.
7위.
그리고 그 구독자는 무려-
[1, 630, 103명]에 달하여.
멸망전 참가자 중-
네 번째로 높은 방송인이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이젠 정말로 월클이라 해도 무방하겠네요."
얼마나 들뜬 건지.
이린이 평소답지 않게 한껏 고양된 어조로 말했다.
이대로라면, 올해 미튜브 게임 부문 수상도.
300만 구독자에게 주어지는, 다이아몬드 버튼도.
멀지 않다.
'최고'.
최재훈의 목표가 눈에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 그러게요."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엔 어딘가 힘이 없었다.
"…괜찮냐?"
크루원들이 그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이곳은 지금 개인 병실이었다.
그녀들은 병문안을 온 참이고.
환자는-
최재훈이었다.
"아니, 유통기한 좀 확인하지. 뭔, 유통기한이 한 달도 더 지난 슈크림을 쳐먹냐 너는. 그 뭐지? 초코슈크림?"
"초코크림슈크림…."
"이름도 뭔 거지발싸개 같네."
"그러니까요. 나도 이딴 거 먹고 식중독중독 걸려서 두 배로 억울해."
뭐 그래도.
최재훈이 그렇게 말을 이으며 피식 웃었다.
"어찌 보면, 잘된 걸 수도 있겠네."
"어? 왜, 왜용?"
"마침, 변명 거리가 필요했거든요."
"변명 거리, 입니까?"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또 변명 거리씩이나 필요해?"
"안 그래도, 시즌 마무리 단계인데 어떻게 해야 의심 안 당하고 본캐 안 하고 부캐 할 수 있나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딱 좋은 변명거리잖아요?"
제나가 미간을 구겼다.
"아니 잠깐. 니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니, 본캐 안 돌린다. 그러니까, 1위 도전 안 한다고? 니 뭐, 머리까지 아프냐?"
"제대로 이해 못 하셨는데요 제나 씨. 머리는 내가 아니라 제나 씨가 아픈 것 같은데, 어떻게. 같이 입원 하실래? 여기로 오실라우?"
최재훈이 이불을 드러내고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뭐, 뭐…?"
그에 제나가 넋이 나가길 잠깐.
"뭐, 뭐라는 거야 미쳤어!?"
옆의 여자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변명하듯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크흠, 그래서 숨컷 님. 그- 본캐 안 하고 부캐를 하신다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그거 있잖아요. KCC CSN. 이번 시즌은 그걸로 1위 찍고, 사람들한테 서프라이즈~ 하기로 한 계획."
그러자.
병실 안에 침묵이 찾아왔고.
"네!?"
"뭐?!"
"…예?"
셋이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놀랐다.
"응? 뭐여? 뭔 일이여."
최재훈을 밤새 간병하다 피곤해, 최재훈의 침대에 엎어진 채로 잠든 최재은이 그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그러게 뭔 일이지. 여러분 무슨 일이에요?"
"아, 아니, 재훈 씨…."
"넹?"
"니, 그거 CSN인지 뭔지 그 중국년이…."
"…숨컷 님이셨다고요?"
그 반응에 최재훈은 뒤늦게 아, 반응하고는 말한다.
"아참, 말씀드리는 거 깜빡했구나."
적군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최재훈은 딱히 그 격언을 실천하고자 동료들에게 자신이 'CSN'이라 밝힌 건 아니다.
그저, 당시 너무 경황이 없어서 깜빡했을 뿐.
최재훈이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더니, 자신의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데헷. 어쨌거나, 여러분들 반응 보니까."
그리곤-
"이거, 의문의 중국인 고수 CSN로 하이로드, 숨컷, 페이스 다 제치고 1위하고 커밍아웃하면. 반응, 볼 만하겠는데요?"
기대에 찬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이린이 질려서 물었다.
"설마 재훈 씨…."
"컴퓨터 구비된 1일 병실을 일주일 대실하신 것도…."
"시즌 마무리까지 여기서 보내려고?"
"네, 가끔 병실 브이로그 하면서 알리바이도 만들 겸."
세 여자가 동시에 "헝…."소리를 내거나, 미간을 문지르거나 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녀들은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는 이미 충분한 성공을 거두지 않았던가.
이러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구태여, CSN로 1위를 진행하는 게.
정말로 합리적인 일인가?
하지만.
'….'
곧바로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꾸짖는다.
합리적이냐 아니냐로 따지면 당연히, 합리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그게 최재훈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었다.
합리적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리스크를 떠안는다.
그럼으로써.
거대한 리턴을 취한다.
최재훈.
그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은 분명 비합리적일지 몰라도.
성공할 경우.
사람들이 느끼게 될 충격은- 말로 이루 다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평범한 길이라면 불가능한 속도로.
평범한 길이라면 불가능한 높이까지.
그를 데려다 줄 것이다.
그녀들은 새삼 경외감을 느꼈다.
그런 비합리적인 일을 당연하게끔 실행하는 최재훈의 결단력과 행동력.
그리고 그걸 가능케 하는 능력에.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니, 정말로 가능하겠어? 이번 시즌 1위? 그 인간 상대로?"
역시나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페이스.
그 이름 석 자 때문에 말이다.
"솔직히, 힘들죠."
최재훈이 시무룩,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인다.
"어? 아니. 뭐야. 언제는 자신 있다며."
그러자 당황하는 제나에게, 그는 말한다.
"힘든데, 제나 씨가 화이팅 해 주시면 가능할 듯…?"
제나가 여자들의 눈치를 보더니, 툭 내뱉는다.
"꺼, 꺼져."
그에 최재훈은 충분하다는 듯 태세를 전환하곤.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우리 제나 씨가 파이팅도 해 줬겠다, 합니다. 반드시."
그 자신감 넘치는 표정에, 여자들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이 어느 정도 가신다.
하지만.
마음속 한 켠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었다.
최재훈.
아무리 그라고 해도-
정말로 가능할까?
그 괴물을 상대로 왕좌를 차지하는 게?
페이스.
그 이름에 담긴 무게는, 최재훈을 전적으로 믿는 그녀들조차도 그런 의구심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최재은이 말했다.
"오빠, 게임하다 마려우면 어떡해!?"
그 노골적인 언사에 세 여자가 얼굴을 붉혔다.
"재은이가 도와줄 거니까 괜찮아."
"머요?"
"재은이가 도와줄 거니까 괜찮아."
"머라고요?"
"재은이가 도와줄 거니까 괜찮아."
"아니. 아니, 잠깐만요. 저기요? 어떻게요?"
"그건 그때 가서 얘기하자고."
"아니, 아니-"
최재은이 세 여자에게 시선으로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 그… 재훈 씨! 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마음 같아선 같이 있어 드리고 싶지만, 재훈 씨 불편하실까봐…."
"…간다. 필요하면- …부르던가."
"이번에 온 메일들 정리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들어들 가세요! 병문안 와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니, 언니들! 잠깐만요! 날 두고 가지 마!"
"혼자… 남았구나…."
"끼아아아악!!!"
머지않아.
최재훈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제나 : 화이팅
제나 : 하던가 말던가
그렇게.
"자, 가자 재은아."
"어딜요, 어딜요, 어딜요."
미소를 머금은 최재훈이 이 길고 긴 설계의 본격적인 마무리 작업에 나섰다.
* * *
숨컷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공지사항을 처음 봤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또 이 인간이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시작되는 그의 '병실 브이로그'.
환자복에, 담당 의사의 찬조 출연까지.
그렇게 숨컷의 입원이 쇼가 아님이 밝혀짐으로써, 그가 식중독에 걸렸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그렇게 그의 시즌 마무리 참가가 불확실해지자 커뮤니티는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페이스.
CSN.
숨컷.
하이로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 4파전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제목 : 그래도 단순 식중독이면
내용 : 2~3일 정도면 상태 호전되지 않을까?
ㄴ : 그렇지 ㅇㅇ;;
ㄴ : 이 겜창 새기면 가능하다...
ㄴ : ㄹㅇ;; 16시간 내리 랭겜 돌리던 게임 정신력의 소유자잖아
ㄴ : 숨컷의 겜창력을 믿죠...
ㄴ : 너는 겜창 그 자체야 숨컷!
ㄴ : 이거 응원하는 거 맞죠?
그들은 숨컷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잠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제목 : 야 ㅅㅂ ㅋㅋ
내용 : 니들 지금 방송 보고 있냐?
ㄴ : 누구 방송?
ㄴ 글쓴이 : 누구 방송이겠어 당연히 페이스지
ㄴ : 나 일 중이라 못 보고 있는데 왜?
ㄴ 글쓴이 : ㅄ아 일이 중요하냐 지금? 하여간 출근충 새끼들 ㅋㅋ
ㄴ : ㅠㅠㅠ 왜용
ㄴ 글쓴이 : 지금 페이스랑 CSN 만났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