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하늘전의 여파 1
이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 갇힌 지 얼마나 됐을까.
모른다.
지금의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곤, 내 몸이 서서히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예상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쓸쓸한 곳에서 그보다 더욱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리라는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처음의 분노조차도 이 냉기에 식어 버려 지금의 나는 그저 공허하다.
끼익-
아.
누군가가 또 저 저주스러운 문을 열었다.
폭탄이 터지며 발하는 섬광만큼이나 야속한 빛이 세상을 감싼다.
하지만 단지 그뿐.
나는 일말의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그러기엔, 내가 겪은 배신과 실망이 너무나도 많기에.
그런데.
"어, 이런 게 있었네? 마침 당 땡겼는데, 아다리가 개오지는구만."
뭔가 이상하다.
내 몸이 부유한다.
저 저주스러운 손이, 나를 붙잡고.
찢는다.
비로소 느꼈다.
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는구나.
어둠이 찾아왔다.
전혀 차갑지 않은 포근한 어둠이.
* * *
오늘 찹쌀떡이 상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사실 잘 모르겠다.
(초코크림슈크림 : 슈크림 시발아)
* * *
숨컷의 최초 전 1위로 떠들썩해진 커뮤니티가 잠잠해지려 하니, 서포터 인식 개석 프로젝트가.
서포터 인식 개선 프로젝트로 떠들썩해진 커뮤니티가 잠잠해지려하니, 또 숨컷의 하늘전 MVP가.
숨컷 때문에 커뮤니티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제목 : 와 숨컷 설마설마 했더니 이걸 ㄹㅇ; 우승시키네
내용 : 내가 죽기 전에 세연대 이 ㅈ밥들이 우승하는 걸 보다니...
이거 때문에 우리 우주의 세계선이 어긋났으면 어떡하냐?
ㄴ : 세계선이 어긋나면 세계쓰러진이 되나요
ㄴ : 머리 ㅈㄴ 세계맞고쓰러진디 되고 싶나요?
ㄴ : 아니 근데 이거 도대체 어케 그렇게 압도적으로 이긴 거냐?
ㄴ : 그니까 인세대 고구려대 저기는 ㅅㅂ 무슨 레오레 전형이 있냐? 죄다 마스터 그마 챌 이 ㅈㄹ인데 세연대는 죄다 다이아였잖아
ㄴ : 어 ㅋ '최재훈'학도 한 명으로 수준 쌉상향평준화 됐어 ㄴ : '1위'
ㄴ : ㄹㅇ ㅋㅋ 학생 대표가 숨컷이였던 게 ㅈㄴ 큰거지 용병까지 한 명 더 데려올 수 있었으니
ㄴ : 인세대랑 고구려대가 그동안 유리했던 이유 세연대에서 그대로 계승한 것 뿐임 ㅇㅇ 솔직히 하늘전은 용병 수준도 수준인데 학생들 수준이 더 중요한 듯
ㄴ : 걍 조컷 이 새기 팀원들이 조금만 받쳐주니까 김희은이랑 날라다니더라
숨컷.
그가 그 이례적인 실력으로 '낸 일'이 한두 개여야지.
사람들은 이제 그가 또 무슨 일을 낸다 해도 놀랄 것도 없다며 그려려니~ 할 줄 알았으나.
막상 닥쳐보니 아니었다.
설마 설마 했던 무승 최약 팀 세연대 우승을 정말로 이루어내다니.
또 고점을 갱신해 버리는 그에게 사람들은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하늘전이 팀 게임이었다는 점.
그리고 프로가 한 명씩 포함되어 대항 구도를 이루었다는 점을 토대로.
제목 : 야 솔직히 숨컷 프로로 따지면 어느 정도냐
내용 : 솔직히 조건부 1군급은 가능하다 ㅇㅈ?
ㄴ : 일단 동부 리그 애들보단 나은 건 ㅇㅈ ㅋㅋ
ㄴ : ㅈㄹ 아무리 그래도 솔랭 전사를 프로랑 비비냐 ㅋㅋ
ㄴ : 숨컷 챔프폭 니네 눈 간격만큼 좁은 거 모르나 ㅄ들아
ㄴ : 내 눈 간격 개 넓은데 ㅄ아? ㅋㅋ
ㄴ : 그건 그것대로 문젠데요
ㄴ : 그니까 조건부 ㅋㅋ
ㄴ : 암살제 메타 오고 숨컷이 모스트 벤만 안 당하면 1등 쌉가능
ㄴ : 그렇게 전제 달달이 붙이면 10등따리 미드도 나머지 다 총으로 쏴죽이면 1등 쌉가능 아님?
ㄴ : 선생님께서 전교 1등을 한 비결인가요?
ㄴ : 오늘부터 1등 신부감 프로젝트 가동한다
ㄴ : 프로젝트 범위는? (꿀꺽)
ㄴ : '전세계'
ㄴ : 남자들이 차라리 난죽택을 하지 않을까요
ㄴ : 만약 님이 이브였으면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걸요 님 얼굴 보는 순간 자결해서
그런 식으로.
또 다른 팀 게임이며 프로가 존재하는, 프로 무대에서도 통할 거라.
그의 실력을 단순히 솔랭 전사, 그러니까 아마추어를 넘어서.
프로 급, 그것도-
ㄴ : 솔직히 조컷 프로데뷔했으면 최소 서부리그 안에 들어갔을 듯 ㅇㅇ
프로 상위권 급의 실력과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평가받기 시작한다.
ㄴ : 그럼 하면 되지 왜 안 하냐? ㅋ
ㄴ : 왜 안 하긴 ㅋ 방송으로 이미 ㅈㄴ 성공햇으니까
ㄴ : ㄹㅇ ㅋㅋ 힘들게 프로 해 봐야 뭐 하나 방송하면서 꿀빠는게 1리지
ㄴ : 이거 어디서도 본 전개 같은데?
솔랭 전사의 실력에 대한 평가가 높아져.
[근데 님 숨컷 실력 어케 생각하심?]
"아, 숨컷 님이요? 아, 음… 솔직히. 숨컷, 그분 실력은. 내가 감히 평가할 수준이 못 되지 싶어요. 아니 솔직히, 나 솔랭에서 그분 만날 때마다 발리다시피 하는데. 저 그 사람, 프로 리그에서 만난다고 이길 거란 확신이 안 들어요."
[ㅁㅊ;;]
[와사비피셜 ) 숨컷>와사비]
[아니 근데 너무 과한 거 아님? 숨컷 걔 챔프폭이랑 플레이 스타일 폭 맨날 똑같잖아]
"아,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분이 연습하면 또 모르지. 안 그래요?"
[리그 5등 미드 공인 5등 이상 실력 ㄷㄷ]
프로로 데뷔해서 검증하기 이전에도, 프로급의 평가와 존중을 받는.
독보적인 입지에 오르게 된다.
흡사-
[완전 하이로드 MK2네 ㄷㄷ]
숨컷은 데뷔한지 겨우 두 달 만에 그 압도적인 행보로써.
수 년 동안 정상으로 군림해온 하이로드의 입지를 따라잡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숨컷이 이번 하늘전으로 주목받은 능력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제목 : 우리 지현이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내용 : [링크]
이게... 지현이라고요?
아닙니다.. 우리 지현이 이런 아이 아니예요
우리 찐따같던 지현이 돌려주세요...
미드에서 똥 찔찔 흘리면서 팀원들한테 욕 먹고 눈물 찔찔 짜던 우리 지현이 돌려달라고!
ㄴ : 이게 ^^ㅣ발 팬이야 헤이터야
ㄴ : 방송인이 극한직업인 이유가 있네요
ㄴ : 애 막힌 혈 뚫어서 고수 만들어 놨더니 다시 ㅈ밥으로 만들어 놓으라네 ㄷㄷ
ㄴ : 이 새기 사실 권지현 라이벌일듯
ㄴ 글쓴이 : 들켰누
ㄴ : 와 근데 ㄹㅇ;; 권지현 몰라보겠더라
ㄴ : 그니까 느낌 오지던데
ㄴ : 사람이 그렇게 확 바뀔 수도 있나?
ㄴ : 나 일단 이번 겨울 방학에 20KG 찌긴 했어
ㄴ : 꿀꿀꿀 꿀꿀 꿀 ㅋ (20KG정도야 뭐 금방 빼겠지 너무 주눅들지마 넌 아직 날씬하니까)
ㄴ : ^^ㅣ발이
제목 : 데라가 권지현 재능 있다한 게 ㄹㅇ이었누
내용 : 솔직히 본인은 권찐따쉑 서폿 포변한다 했을 때 유틸 서폿만 골라서 따까리짓만 ㅈㄴ 할 줄 알았는데
ㄴ : ㄹㅇ ; 무슨 서폿주제 게임을 파괴하더라
ㄴ : 솔직히 숨컵듀오도 숨컵듀오인데 권지현 얘도 ㅈㄴ 컸음
ㄴ : 챌린저 서폿 그냥 바르던데?
ㄴ : 얘 솔랭 전적 보면 와리가리하다가 그냥 며칠 사이에 몇백 점 올려 버리더라 ㄹㅇ '각성'해 버린듯
ㄴ : 그 찐따같던 권지현이 맞냐?
ㄴ : 숨컷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지난 며칠간.
최재훈이 하늘전과 권지현 지도를 병행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 권지현에게 그 정도 재능이 있다 상상하는 게 쉬운 사람은 많지 않았고.
결국, 권지현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숨컷의 지도에서 찾는다.
숨컷의 '코칭'에 뭔가가 있다 믿는다.
이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재훈은 일찍이 자신의 한계.
그러니까, 플레이와 챔피언의 폭을 늘리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했었다.
그 피나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나.
적어도, 무의미하진 않았다.
그 과정에서 최재훈은 레오레라는 게임의 이론에 통달한 플레이어가 되었기에.
그 해박한 이해도는 그는 특정 분야 한정이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정상급 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솔랭에서 최상위권 유저들을 상대로 오더를 내리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가 하면.
중국에서 프로 활동을 할 때도.
감독과 코치들이 도리어 선수인 그를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가 은퇴했을 때도 그런 권유들을 받았었다.
혹시 감독이나 코치를 해 볼 생각은 없냐고.
그건 그저 젊은 나이에 한계를 느끼고 업계를 떠나는 불쌍한 선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분명 특출 났다.
그 권유가 1군 프로팀에서도 왔었던 사실이 그걸 증명했고.
이번 세계에서도 역시.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이들이 그걸 증명했다.
모와이.
그녀가 권지현이 하늘전에서 보여준 활약을.
성장을.
스승겸 코치인 데라에게 신나서 보여주었다.
"권지현 그 사람, 진짜 싹수가 보인다던 코치님 말씀 대로던데요? 와, 성장속도가 아주 그냥."
자신을 지도해 줬었던 코치의 말이 맞아 떨어졌다는.
선구안, 능력이 한 번 더 검증됐다는 사실이 신나서 말이다.
모와이는 평소 덤덤하기 그지없는 코치가, 이번에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허나.
"…."
하지만.
영상을 보는 데라의 상태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어딘가, 당황한 듯 보였다.
"코치 님?"
뭔가 심상찮아서 묻는 모와이.
데라가 중얼거렸다.
"벌써?"
"네? 벌써라뇨?"
"어떻게 벌써 이렇게 성장한 거지?"
코치는 권지현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동요하는 일이 극도로 적은 코치가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코치의 당황에 모와이 또한 당황해서 말했다.
"코치 님께서 그러지 않으셨었나요? 권지현, 저분 재능 있다고."
"그랬었죠."
"그런데 왜…."
"그걸 감안해도…."
데라가 영상을 조금 더 지켜보더니 중얼거렸다.
"이렇게 단기간에 저 정도로 발전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권지현이 단기간에 이루어낸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랐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돼 버린 것 같다며.
이는 그녀의 변화를 예견했던 데라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변화를 예견한 데라에게도, 그녀의 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운-아니지.
급격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뭘 한 거지?"
데라가 잠깐 동안 뜸을 들이더니, 모와이에게 말했다.
"혹시, 지현 씨랑 친분이 있으신가요?"
"예? 아, 친분이랄 것까진 없지만. 그래도, 코치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숨컷 님이랑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연이 있으니까, 지현 씨랑 친분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갑자기 왜요?"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봬서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요."
"예? 어떤, 이야기를요?"
"포지션 변경해서 적응해 나갈 때.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가능하다면 이야기를 듣고 참고하고 싶어서요."
모와이가 깜짝 놀랐다.
먼저 누군가에게 흥미를 갖는 일이 드문 데라였다.
그런 데라가 먼저 관심을 보이다니.
게다가.
데라의 말을 들어보면 꼭, 데라가 '한 수'배우고 싶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코칭 능력으로는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전설'이 말이다.
모와이가 깜짝 놀란 걸 어떻게 해석했는지, 데라가 말했다.
"힘들까요?"
"아, 그건 아닌데… 아니, 제가 지현 씨 만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요?"
"그… 지현 씨 포지션 변경할 때 어떻게 했는지, 지현 씨한테 이야기 듣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
"그거…."
모와이가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정리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숨컷 씨가, 아주 도움을 많이 주신 걸로 알거든요. 그, '가르쳐 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숨컷 씨요?"
그 이야기를 들은 데라는 격렬하게 당황했다.
안 그래도.
숨컷이 가진 선수로서의 재능에.
인재 발굴을 담당하는 코치이자 스카우터로서 관심을 갖고 있던 데라였다.
그가 보여주는 퍼포먼스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그 플레이 스타일이랑 챔피언 폭만 어떻게 늘리면….'
최정상을 아주 간단히 노려볼 만한 괴물이 탄생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실력을 아주 높게 평가하고 있으나.
그가 프로 진출 의향이 없다 생각하여 입맛만 다시고 있던 데라였는데.
그런 그가-
자신조차 깜짝 놀란 '발전'의 주동자였다고?
이제 솔직히, 숨컷이 뭐를 보여준다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던 데라였다.
그런데 이건 논외다.
데라가 느끼길, 권지현의 재능은 분명 인재가 부족한 서포터 역할군에서 프로를 노려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재능이 완벽하게 발현되기까지 얼마나 노력이, 시간이 들어가는가는 별개의 이야기다.
줄곧 하위권 미드 라이너로서 살아온 권지현이 가진, 상위권 서포터로서의 능력을 발현시킨다.
데라가 진단한 바.
자신에게 최소 1개월이 걸렸다.
권지현에게 열정과 시간을 거기에 고스란히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권지현은 그 능력이 발현된 상태였고.
거기에 이르기까지 약 보름에 달하는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다.
자신의 반절.
자신의 두 배.
자신이 권지현의 능력을 과소평가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누군가가 권지현의 발전에 끼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했다.
그러니까.
그 코칭 능력 말이다.
세계 최고의 팀인 TC1의, 세계 수준의 코치인 데라.
데라와 비견할 만한-
어쩌면 그 이상이라 볼 수 있는 코칭 능력.
데라는 생각해 보았다.
그 코칭 능력이 팀을 위해 사용된다면.
그 팀은, 얼마나 많은 인재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팀의 선수들은, 얼마나 많은 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렇게 데라는 결론 내렸다.
숨컷.
다른 건 몰라도 이 사람을 다른 팀에 뺏기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그 의견을, 곧장 감독에게 보고했다.
그 일련의 과정은 TC1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희은아."
"넵!?"
"너, 그… 음… 뭐라고 해야 되나."
"응? 무슨 일이심까?"
TEAM BAY의 스크림 시간.
코치의 역할 또한 겸하는 그녀의 스승인 이사영이, 스크림 내내 김희은을 인상 깊게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뭐 했니?"
"예!? 뭐, 뭘 말이심까?"
"속보!! 김희은 뭐 했다!!!"
"속보!!! 김희은 처녀 딱지 뗐나!?!!!?"
"속보!!!! 김희은 임신!?!!?"
"김희은 결혼하냐!?"
"은퇴하냐!!!!!"
"니가 사실 키라였다고!?"
"L은 누군데!?"
"제가 사실 L입니다."
"넌 XXL잖아!"
"이런 십새가, 밖으로 나와!"
이사영의 모호한 말투에 연습실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그런 장난스러운 분위기에, 김희은은 동화되지 못했다.
쿵!
쿵!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감독이 애기하는 '뭔가'가.
자신과 최재훈의 '관계'를 얘기하는 줄 알고 말이다.
'나랑 재훈 씨는….'
딱히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어떤 특별한 사이가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김희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왜 혼자서 뜨끔하는 걸까.
왜 그를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까.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걸까.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말이다.
그녀는 최재훈이 언급되자 다시 또 마냥 혼란스러워졌고.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음…."
이사영의 침묵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이내,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딱히 아무것도 없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심까?"
"그런데 왜 이렇게… 좋아졌지?"
"…에? 뭐가 말씀이심까?"
"아니, 나도 긴가민가한데. 얘들아. 희은이 플레이 어딘가 좋아졌다고 느끼지 않았어?"
"어?"
"그러고 보니…."
팀원들끼리 서로 눈치를 보더니.
정글인 김희은의 플레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미드 라이너, 김사임이 말한다.
"어디가 정확히 더 좋아졌다고 말은 못하겠는데. 그, 뭐라고 해야 하나. 희은이 플레이에 있는 '불순물'이라고 해야 하나?"
"에?"
"그런 게 조금 더 빠졌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긴 해요. 기분 탓인지 몰라도. 게임하기가 더욱 편해졌어요."
"에?"
"그렇지? 너희가 생각해도 그렇지?"
"예."
"네."
"흐… 도대체 뭐지. 뭐가 좋아진 거지. 어떻게 좋아진 거고. 희은아, 넌 짚이는 거 없어? 너 혼자서 피드백하거나 할 때."
"어…."
김희은은 얼떨떨했다.
자신의 플레이가 좋아졌다고?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혼자서 따로 피드백을 한다거나 하는 둥의, 스스로도 짚이는 부분이 없었-
"어, 잠깐."
그러고 보니.
"응? 뭐 짚이는 거 있어?"
"그… 하늘전 연습할 때 말임다."
"응 하늘전?"
"예. 그, 연습을 하는데…."
김희은은 떠올랐다.
'방금 같은 경우 희은 씨 대처 아주 좋았는데- …제 생각엔 그렇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희은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습을 진행할 때 몇 차례 있었던 숨컷의 아주 정중하고 조심스러웠던 피드백.
그 피드백을 새겨듣고, 그대로 반영하여-
'아, 역시. 머그컵 선수! 척하면 척이네요!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띄워 주셔도 나오는 거 없어요.'
최재훈에게 그런 칭찬을 듣고 내심 좋아했던 게 말이다.
김희은은 그 '피드백'에 관한 부분만 이야기해 보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사영은 잠깐 동안 골몰히 고민하더니-
"하."
헛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