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수상식 2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지현 씨에게 손을 건넸다.
"갑시다."
"앗! 넵!"
"어~~~ 재훈 씨~ 저도 일으켜 주세요~"
"저도요~"
"확, 업어 버리기 전에 일어나세요들. 응?"
"나, 나쁘지 않을지도?"
보니까, 두 주접꾼 말고도 아직 한 명이 더 아직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김희은 선수.
어떤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있다.
"희은 씨. 희은 씨?"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 보았다.
그러자-
"에? 아!"
비로소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들어 나와 마주한다.
"…."
"?"
그러더니, 그 상태로 굳어 버린다.
내 눈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눈과 입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저희 팀, 수상됐어요. 올라가셔야죠."
"예? 아! 감사-"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도망치듯 상체를 뒤로 내빼며 옆으로 움직이며 일어선다.
그러더니-
"아, 예. 가요."
활기차게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다시 또 매정 모드가 되어선 매몰차게 말한다.
정말이지 나를-
'끔찍하게도 싫어하는구만.'
그 오해에 대해 고백한 이후로 줄곧 이런 식이다.
관계를 풀어 보려고 살갑게 대해도,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욱 매정하게 대하며 거리를 벌릴 뿐.
결국, 이번 하늘전 동안 화해하려던 계획은 실패로 끝나 버렸다.
'하긴, 나 같아도….'
내 팬이 날 보고 열광해서 좋아라 했는데-
[아 ㅈㅅ 페이스인줄 알았음]
이러면.
'어우….'
그 성격 좋은 희은 씨가 저렇게 화날 정도면,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는 거겠지.
마음이 무겁다.
다시 한번 사과하기 위해, 나를 제쳐 앞서가는 희은 씨의 등에다 대고 말했다.
"희은 씨.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그때 SGF에서 있었던 오해. 정말로 죄송했어요. 용서 안 해 주셔도 되니까, 그거 때문에 더 이상 불쾌한 감정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희은 씨가 바라시는 건 뭐든 할 테니까."
잠깐의 침묵 뒤 희은 씨가 답했다.
"…뭐든지요?"
"예, 뭐든지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
희은 씨가 갑자기 패딩의 오른쪽 주머니에 한 쪽 손을 집어넣고 손을 부스럭거렸다.
그러다가 말한다.
"…깜빡했어요."
"예? 뭐가요?"
"손수건 갖다 드린다는 거, 오늘 깜빡했네요."
"아~"
"뭐요. 불만… 있으세요?"
"예? 아. 불만이라뇨. 괜찮아요. 그거, 그냥 가지셔요. 버리셔도 되고요."
"아뇨!"
"예?"
"…그걸 왜 버려요. 어… 그러니까… 그래, 아깝게. 물건을 아껴 써야죠. 응. 그런 생각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예? 아, 큭큭.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지실래요?"
"…그것도 좋긴 한데."
"네?"
"아니! 제가, 그걸 왜 가져요. 남의 물건을. 사람을 뭘로 보시고!"
"아이고~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나중에 따로 갖다드릴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아, 네. 그렇게 알겠습니다~"
무대에 올라가면서 약간 희은 씨의 얼굴이 보였는데, 내 사과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린 걸까.
그 입가에는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무대에 오늘 나는 가장 먼저 마비와 마주했다.
날 바라보는 마비의 눈에는 반가움과 호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내 팬이라는 건 어쩌면 정말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레오레 우승 팀인 세연대 다섯 선수를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빗소리처럼 자연스럽게 깔리는 관객들의 환호성을 뒤로하고 마비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먼저, 원딜러이신 배차현 선수. 소감 한 마디 말씀해 주시자면요?"
"마비 오빠 팬이에요!!!"
"아~ 하하하핳, 우승 소감을 또 이렇게 또. 감사합니다. 그러면, 우승 선수이기 이전에 제 팬이길 자처하셨으니까. 우승의 영광은 제가 가져가는 걸로, 괜찮으시겠죠?"
"네!!!!!"
"아싸! 이득, 이득!"
그 자연스러운 진행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지현 씨의 차례가 온다.
"아, 그, 저도, 일단! 마비 씨 팬이에요! 아, 그 일단이 그 나쁜 의미가 아니라 말하기에 앞서라는 의미로! 그리고, 저희가 우승할 수 있었던 건 다, 팀원 모든 분들이 서로 다 잘해 가지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또, 저희 팀원 여러분들 감사하고! 특히 숨컷 - 아니, 재훈 씨 감사드리고! 그리고 저희 크루 여러분들 항상 감사하고! 아, 팀원 여러분들도 정말 감사해요!"
무대에 오를 때부터 이미 반쯤 패닉 상태였던 지현 씨가 횡설수설 소감을 말했다.
"힘내 찐따!!!!!!!!"
"찐따 화이팅!"
다행히 관객석에서는 어색한 침묵이나 경멸의 비웃음 대신,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으…."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지현 씨.
마비가 그런 지현 씨를 보며 흐뭇하게 웃더니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먼저, 제 팬이시고?"
"예? 아! 예!"
"승리할 수 있었던 건, 훌륭한 팀원 여러분과 항상 지현 선수를 응원해 주시는 동료 분들 덕분이고?"
"네! 네!"
"그래서 그분들께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특히 재훈 선수에게 더 많이. 맞나요?"
"네! 맞아요!"
그 깔끔한 정리- 아니, 해석에 관객석에서 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비가 공연을 마친 마술사처럼 능청스럽고 절도 있게 객석을 향해 두 차례 허리를 숙였다.
역시 스타는 스타구만.
그 노련함에서 이런 무대에 한두 번 서본 게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자, 그러면 다음은- 최재훈 선수와 김희은 용병 두 분이 남았는데요. 이 두 분의 소감은 잠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아!!!!!!!!!"
"왜요!!!!!!!!!!!!"
"머그컵 누나 안돼!!!!!!!!!!!!"
"조컷 내놔!!!!!!!!!!!!"
"자, 자. 여러분. 진정하세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냐!? 바로, 다음 수상 진행하겠습니다! 레오레 부문 최고의 용병입니다! 길게 말 할 거 있나요? 69퍼, 75퍼, 56퍼! 명불허전! 이번 시즌 LKL 최고 정글러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 주며, 세연대를 최초 우승으로 이끈 김희은- 아니지. 머그컵 선수입니다! 박수!"
한바탕 환호 세례가 쏟아진 뒤에야, 희은 씨에게 마이크가 돌아왔다.
"먼저. 이런 뜻깊은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학생 여러분들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 세연대를 최초 우승으로 이끌었다고 마비 씨께서 말씀하셨는데."
"아- 아닌가요?"
"저는 그저 이 팀의 일원으로서 맡은 바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니깐요. 제가 그런 과분한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 주신 팀원 분들께 감사 말씀을 전할 따름입니다."
"이야~"
"오…."
마비- 뿐만이 아니다.
희은 씨의 소감을 들은 모든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과연, 대한민국 LKL 2등 팀의 에이스로서 숱하게 인터뷰를 경험해 본 희은 씨라고 해야 하나.
평소의 활기를 자제한 그 사뭇 성숙한 태도에서는 노련함이 물씬 묻어 나왔다.
그리고.
"이상, 머그컵 선수였습니다. 자, 그러면. 드디어! 모두가 고대하시던! 레오레 부문, 최고의 학생 대표 선수! 아! 이게 가능한 수치인가요!? 99퍼! 93퍼! 95퍼! 1퍼 누구야!!! "
그렇게 내가 입을 열려던 찰나-
"잠깐!"
"아!!!"
"왜요!!!"
객석으로부터 볼멘소리가 나온다.
"왜긴요, 아직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죠!"
"응?"
"레오레 부문을 넘어서, '하늘전의 MVP'!"
MVP.
종목과 역할을 불문하고.
하늘전에서 가장 돋보인 1인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99퍼, 67퍼, 71퍼! 바로, 숨컷- 아니지. 최재훈 선수입니다!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그러자.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객석에서 하늘전이 진행되면서 있었던 것 중 가장 큰 함성 소리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귀가 먹먹할 수준.
여태껏 서 봤던 무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대.
의외로, 나는 조금도 긴장되지 않았다.
나는 마이크를 건네받고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끊이지 않는 함성 속에서 소감을 말하고.
"자, 그러면! 여기에서 끝내기 아쉽죠!?"
"""네!!!!!!!!"
""
"MVP 수상자이신 재훈 선수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할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아, 참고로! 제 사심이 많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나는 피식 웃음으로써 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마비 또한 신나서 말을 잇는다.
"재훈 선수께서는, 어떻게. 평소 제 노래를 자주 즐겨 들으시는 편인가요?"
정말 사심 가득 담긴 질문이었다.
"우!"
객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고-
"조용히 해 봐! 숨컷 님 말하잖아!"
마비가 장난스럽게 그걸 일갈하자, 야유가 웃음으로.
"하."
나 또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 물론이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분이 마비 씨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도, 바로 '123'입니다."
"아~ 정말요!?"
적어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사실~ 저도 우리 숨컷 씨 엄청난 팬이거든요~ 다들 알다시피 제가 게임 광팬인데, 제가 제일 존경하는 게이머가 숨컷 씨세요!"
"아~ 이거. 영광입니다."
"앗! 별로 안 좋아하신다!"
"으악!!!!!!!! 마비가 내 팬이래 어떠켕!!!!!!!!!!!!!!!!!"
"엥? 아하하하! 그게 뭐예요! 에라 모르겠다! 꺄아아아악!!!!!!! 숨컷 씨가 내 팬이래!!!!!"
관객들의 웃음소리를 BGM으로 한바탕 호들갑을 떤 뒤.
"자 그러면, 이번 건 좀 진지한 질문입니다. 모두가 궁금해 하고 계실 질문이죠."
"오십쇼."
"아, 큭큭. 예! 갈게요! 이번 시즌, 숨컷 선수께서는 진 1위로 시즌을 마무리 하겠다 선언하셨었죠?"
"맞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고수인 MK를 제치고, 이번엔 전통 강자인 하이로드와! 의문의 중국인 고수 CSN를 무찌르고 말이죠!"
"넵."
"그런데 말이죠!"
페이스.
그 이름이 언급되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나 버렸네요! 바로, 페이스 선수가! 바로 오늘! 최초로 시즌 1위에 도전하겠다 선언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이번 시즌에!"
나도 들은 사실이다.
듣자 하니-
오랜만에 방송 켜서 솔랭을 진행하길래 누군가-
[뭐 하시나요?]
하고 물었더니.
-솔랭이요.
[오! 전적 검색해 보니 처음 보는 아이딘데 점수 엄청 높네요? 목표가 어딘가요?]
-이번 시즌 1위요.
[???]
아주 덤덤하게 폭탄선언을 했다나.
"데뷔 이후, 솔랭에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던 페이스 선수가 갑작스럽게 이번 시즌 경쟁 참가 의사를 밝혔는데요. 숨컷 선수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이로드! CSN, 그리고 페이스 선수까지! 이런 엄청난 강자들을 제치고, 이번 시즌 1위. 정말로 가능하실까요?"
페이스의 참전.
나 역시 깜짝 놀랐다.
그렇게 드는 감정.
걱정.
불안.
아니.
기대였다.
페이스.
레오레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그 양반이.
레오레의 모든 커리어는 독점하다시피 하여, 솔랭'따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그 양반이.
갑자기 왜 솔랭에 관심을 갖게 됐는가.
그것도 하필이면 내게 있어 아주 중요한 시즌에.
모른다.
적어도 분명한 건.
내게 페이스와 진심으로 겨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이었다.
1승 199패하고, [너 존나 못하잖아~]를 시전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것도 무려 페이스에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느끼며 말했다.
"뒤졌다, 페이스."
* * *
드디어 찾아온 시즌의 마지막.
"좋아."
시작해 보자.
나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방송국에 공지사항을 올렸다.
* * *
제목 : 숨컷 빨랑 방송 켜!!!!!!!
내용 : 시즌 막판 달려야지 안 키고 뭐 해!!!
ㄴ: 임마 이거... 좀 뜨더니 바로 빠지는 거 보소 ㅋㅋ
ㄴ: 아 ㅋㅋ '그 표정' 연상되네 ㅅㅂ
ㄴ: ??? : 아~ 이 우매하고 불쌍한 것들이 월클인 이 몸만을 목빠져라 기다리고 있겠군. 어디, 자비를 배풀어 보실까
ㄴ: 으아악 ^^ㅣ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켜!!!!!
ㄴ: 벌써 한 시간 지각이야!!!
ㄴ: 야 근데 조컷이 말 없이 지각한 적 잇냐?
ㄴ: 거의 없을 건데
ㄴ: 이 새기 무슨 일 생겼나?
ㄴ: 월클병 말기가 아닐까 싶네요
ㄴ: 어 야 방송국에 공지사항 올라왔다
ㄴ: 오 머라는데
ㄴ: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머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 아니 이 새기 입원했다는데? 인증샷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