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 개막 그리고 2
이린.
권지현.
최재훈.
삼피.
그리고 최재은까지.
'컷컷컷'크루 완성체는 오늘 세연대에서 있는, 최재훈과 권지현의 경기.
하늘전 '레오레전'을 직관하기 위해서.
한참 진행되고 있는 하늘전, 그 현장에 있었다.
세연대의 정문에 위치한, 세연대의 상징물인 '야' 조형물.
최재훈이 처음 왔을 때는 텅 비어 있었던 그 곳이.
지금은 가득 차 있었다.
'야' 조형물이 '●ㅑ'조형물이 될 정도로.
오늘, 하늘전에 참가하는 세 대학교인 '세연대, 고구려대, 인세대'는.
각,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의 상징 색을 갖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그 세 가지 색은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세연대의 응원단인 '청하라'에 합류해서 홈 팀인 예정된 승리자, 세연대를 응원해 주세요!"
"오늘 있는 경기가 뭔지 아시죠들!? 레오레, 야구! 이 두 개의 공통점이 뭔지들 아시나요!? 바로, 우리 고구려대가 강한 종목이라는 겁니다! 다들 지금 바로, 고구려대 응원단인 '누리미조'에 합류하세요!"
"여러분, 저 사람들 티셔츠랑 머리띠 디자인 꼬라지 보세요! 저희 인세대가 뭐로 유명한지 아시죠들? 패션 디자인 학과! 여러분이 다 아는 그 명품 브랜드 제품들, 다 저희 선배가 디자인한 거예요! 몇 년 있으면 프리미엄 붙어서 수십 만 원이 될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지금 미리, 아주 저렴한 기회로 만나 보세요!!!"
그 열기가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정문을 지나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 세 가지 색상 중 한 가지 색이 입혀져, 하늘전의 일부가 되었다.
바야흐로 축제라는 분위기였다.
"오오… 이것이 하늘전…."
최재은이 '야'에서 엄청난 퀄리티로 분장한 예술대 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이들을 구경하며 중얼거렸다.
"경기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어떻게 할래, 재은아."
"응? 오빠는?"
"오빠는 경기 시작하기까지 팀원 분들이랑 시간 보내기로 했거든."
"아~~~ 그러면 나는 뭐. 우리 언니들이랑 다니면 되겠네."
"예?"
"뭐?"
최재은의 말에 이린과 제나가 서로에게 불편한 시선을 향했다.
서로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성격상, 서로가 편하기 힘든 둘이었다.
"아, 그러면 되- 려나? 제나 씨, 이린 씨. 괜찮겠어요? 저희 동생이 엄청 귀찮게 할 텐데."
제나가 '귀찮아'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표정을 했지만.
그녀는 알았다.
최재훈이 여동생을 얼마나 아끼는지.
"뭐, 귀찮긴 한데. 니 동생 혼자 두면 니가 걱정될 거 아냐? 믿을 만한 사람 한 명은 붙어 있어 줘야 마음이 편하겠지. 안 그래?"
그녀가 특유의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에-
"아, 그거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은 학생은 제가 잘 챙겨 드릴 테니."
이린이 답했다.
"제나 님께서는 예정대로 '혼자만의'시간을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앙?"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에게 무관심했던 둘의 시선이 교차하며, 불꽃이 튀었다.
시누이 쟁탈전이 시작됐다.
"하~ 나란 여자~ 죄 많은 여자~ 이렇게 잘 나가는 언니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다니. 언니들, 걱정하지 마세요. 제 팔은 두 개고 눈도 두 개고, 뇌도 두 개니까!"
"재은아 뇌는 하나야."
"좌뇌, 우뇌!"
"재은아, 세연대에서 오빠 부끄럽게 할래."
"오빠 울어?"
"응, 울 것 같아."
"그럼 자네, 우네?"
푸흡!
"…."
"…."
시선이 웃음을 터뜨린 이린에게 집중됐다.
"아니, 우리 이린 씨는. 옛날부터 생각했는데 취향이 참…."
"…무슨 말씀이신지."
"어! 시치미 뗀다!"
"자네, 웃네!"
푸흡!
"그, 그만! 하세요."
"이건 좋았다 재은아. 세연대 드립 전형으로 정문 박차고 들어가자."
"오예. 어쨌든, 자! 우리, 팔짱 끼고 사이 좋게 갑시다!"
최재은이 그녀들에게 양팔을 내밀었다.
제나와 이린이 동시에 질색했다.
"힝."
"아, 어쨌거나. 제나 씨? 이린 씨?"
최재훈이 둘을 보며 미소지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니, 그런데 듣다 보니 어이 없네? 내가 애야!?"
"민증 있니?"
"칙쇼! 이미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완전한 성장을 거두었거늘, 법이 나를 가로막는군."
"아무튼, 제나 씨. 이린 씨. 우린 재은이 좀 잘 부탁드릴게요. 재차 감사해요."
"아, 응. 뭐."
"별말씀을요."
그렇게 그들이 최재은과 함께 떠나려던 찰나.
"아참, 숨컷 님?"
"네?"
"오늘, 반드시 좋은 결과 거두실 겁니다."
이린이 최재훈에게 말했다.
그에, 최재훈이 미소로 화답했다.
"아~ 원래 좀 걱정됐는데. 이걸 이렇게, 응? 우리 갓집자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갑자기 자신감이 확 솟는데요?"
원래부터 걱정이나 망설임은 조금도 없었음에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 갓집자'님이라고 말하며.
이린이 싱긋 미소짔더니 고개를 꾸벅 숙이곤, 고개를 돌렸다.
"…헿."
어디선가 그런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린은 곧바로 최재은을 데리고-
"응?"
출발하려는데.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최재은은 먼저 출발해 응원 용품 상점을 둘러보고 있었다.
'고구려대'의 응원 용품 상점을.
"재은 학생 거기는-!"
그녀가 다급히 최재은에게 다가갔다.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했다.
"…."
제나가 그 뒤를 따라가려다 말고, 최재훈을 쳐다봤다.
"응? 제나 씨, 무슨 하실 말이라도 있어요?"
그녀는 뚱한 얼굴로 잠깐 동안 뜸을 들이다 말했다.
"야."
"응? 네?"
그리곤 다시 또 뜸을 들인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표정은 점점 썩어들어갔다.
3자로서는 실로 언짢은 그 표정이 쑥스러워하는 표정이란 걸 알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내라."
"네? 뭐라고요?"
"아. 씨. 오늘, 힘내라고!"
응원을 하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찐따랑 같이 발려서, 같은 크루원인 나 망신시키지 말고. 뭔 말인지 알겠어!?"
그녀가 약간 붉어진 귀로 윽박을 질렀다.
그러자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오~ 제나 씨.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걱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녀가 획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응원이지 이건."
"네?"
"아, 됐어. 꺼져. 귓구멍이 쳐 막혀서는. 쳐 지던가 말던가."
더욱 붉어진 귀의 제나가-
"저 멍청이들은 왜 저깄어?"
'인세대'응원 용품 상점에 있는 최재은과 이린을 뒤따랐다.
그렇게 둘이 남은 권지현과 최재훈이 서로를 마주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머지 않아-
저 멀리에서, 김희은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직 약속 시간 10분 전인데도.
그녀는 성실하게도 저 멀리에서부터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달려온 그녀가 몸을 수구려, 무릎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후우! 스읍, 하!"
몇 번의 심호흡을 걸친 끝에, 숨을 깔끔하게 갈무리하곤.
수구렸던 몸을 핀다.
그 동작이 얼마나 활기찬지, 그녀의 숏컷이 나부꼈다.
야주 약간의 땀기가 맴도는 갈색 피부가, 화창한 햇살에 반짝였다.
씨익 웃은 그녀에게서 활력이 뿜어져 나왔다.
"늦어져서 죄송함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 아녜요! 아직 10분이나 남았는데요!"
"아, 그런가요!? 휴! 다행이네요! 지현 씨!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
"아, 안녕하세요!"
"숨컷 씨도-!"
권지현 다음으로 최재훈을 쳐다본 김희은의 표정이-
"…."
어색하게 굳는다.
화창한 날씨에 어울렸던 표정에서, 겨울의 찬 공기에 어울리는 표정이 된 그녀가 다시 최재훈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곁눈질을 하며-
"그쪽도… 안녕하신가요?"
그녀답지 않은 매몰찬 태도로 인사했다.
그에, 최재훈은 상관없이-
"그러게요~ 날씨 좋네요~ 그래도, 바람은 차니까. 감기, 조심하셔야죠. 여기요."
넉살 좋게 말하며,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
김희은이 그 손수건과 최재훈을 번갈아 보았다.
"뭐, 어쩌라고요…?"
그렇게 망설이던 와중.
-휘이이잉-
간혈적인 겨울의 차고 건조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그에-
"으으으~"
피부에 땀기가 감도는 김희은이 직격당해, 저도 모르게 몸을 으스스 떨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최재훈 역시.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다시 회수하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다.
화장을 했는지 아닌지.
하지 않았단 걸 확인하자, 저도 모르게 나가는 손.
손수건이 새끼 고양이 대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피부를 톡톡 두드렸다.
"엣!? 뭔…!"
김희은이 당황해서 최재훈의 표정을 살폈다.
"감기 걸리실라…."
그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최재은을 보살피던 시절 생긴 버릇에서 비롯된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
김희은으로선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그저, 수줍음에 몸에 열이 오르는 걸 느꼈다.
특히 얼굴.
뜨거워진 얼굴에서 땀이 나온다.
최재훈의 손수건이 흡수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땀이.
그때, 문득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땀 냄새 나진 않을까…?'
매일 운동을 하고 하루에 목욕을 두 번씩 하는 그녀의 몸에선 '냄새'라 할 만한 게 나지 않았다.
그걸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김희은이 화들짝 놀라며- 최재훈에게서 떨어졌다.
"에? 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재훈이 멋쩍게 웃었다.
김희은은 왜인지 죄책감을 느끼고-
"아, 아닙니다! 그냥-"
"그냥?"
"…."
말하던 그녀의 시선이 최재훈의 손수건에 못박혔다.
그녀는 자신의 땀이.
땀 냄새가, 저기에 달라 붙어 있는 게 심히 신경 쓰였다.
도무지 가만 놔둘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치밀어 오르는 수치심에 저도 모르게-
휙!
"어?"
최재훈의 손수건을 낚아챘다.
"아, 그! 감사함다! 신경써 주셔서. 이건 그, 제가 빨아서 돌려드리겠습니다!"
"아, 괜찮은데."
"제가! 안 괜찮아요!"
그녀가 수치심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예. 뭐. 그러시다면야."
그럼에도 피식 웃어주는 최재훈에게 다시 또 느껴지는 죄책감.
김희은은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랐고-
"…그러게, 왜 그랬어요! 더럽게!"
짐짓 또 성질을 내 버린다.
그에 최재훈은-
"더러워요? 뭐가요?"
정말로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답했다.
얼굴의 온도가 한계에 달한 김희은이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무튼! 이건 제가 빨아서 돌려 드릴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알겠죠!? 반박하지 마세요!"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헝… 재훈 씨, 희은 씨… 싸우지 마세용…."
"앗, 싸, 싸우는 거 아님다! 걱정하지 마세요!"
"앗, 넹."
"그러니까요. 우리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안 그래요?"
"흥!"
"허허."
그렇게 매몰차게 고개를 돌리면서도.
김희은은 자신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최재훈의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하늘전이 끝나도 그와 다시 만날 구실이-
"…!"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숏컷 머리를 찰랑였다.
그렇게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쑥스러운 생각을 지웠다.
머지않아-
나머지 팀원들이 도착한다.
"어? 수환 씨?"
그리고 반가운 얼굴이 하나 더.
그는, 어떤 미녀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오~ 뭐야~ 벌써 짝 구하셨나~?"
"재훈 씨가 벌레 떼어 주신 덕분에요."
"큭큭큭. 그나저나 웬 일이세요?"
"오늘 경기, 제 몫까지 힘내 주시라고요."
"아~ 물론이죠."
그렇게 김수환과 헤어진 세연대 레오레 팀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축제를 즐겼다.
"어, 숨컷! 숨컷이다!!!!!!!"
"와 숨컷!!!!!!!"
"찐따!!!"
"헝…."
"꺄아아악!!!!!!! 머그컵 선수!!!!!!!"
"희은이 저깄다!!!!!!"
물론.
그건 축제를 즐긴다기보다는, 그들을 찾아다니던 팬들을 위한 팬서비스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크, 이놈의 월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레오레 경기가 진행되는 체육관.
"자 그러면 여러분! 고대하시던 경기가, 드디어 시작됩니다!"
그동안 스크림에서 들어 왔던 반가운 진행자의 목소리가 관 안에 울려 퍼졌다.
넓디넓은 체육관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파란 구역,
빨간 구역.
노란 구역.
"자 그러면, 인세대 팀. 입장해 주세요!"
그리고 각 구역은.
같은 색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들이 입장할 때만-
"와!!!"
"인세대! 인세대!"
화학반응을 일으키듯, 격렬히 응원한다.
고구려대가 입장할 때는 빨간색 부분만.
그리고 세연대가 입장할 때는-
"와!!!!!!!!!"
"숨컷! 숨컷! 숨컷! 숨컷!"
"숨컷!!!!!!!!!!!!!!"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구역에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윽고-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세연대 대표이신 숨컷- 아니지. 최재훈 학생. 경기에 앞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전광판에 최재훈의 얼굴이 떠오른다.
"다들, 경기 보시러 오기 전에 복습하셨을 거예요. 4차 스크림. 맞죠?"
-네~~~~~~~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 하늘전의 결과도 알고 계시겠고요. 그쵸?"
그러자.
""""와아아아아악!!!!!!!!!!!!!!!!"
""""
경기장에선 고함-에 가까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날.
아주 예외적으로.
그러나 모두 예상했다시피.
세연대가 하늘전 역사상 최초로 레오레 종목에서 우승을 거두었다.
최재훈이.
세연대를 하늘전 레오레 종목에서 첫 우승을 거둘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가-
세연대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써 말이다.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최재훈!"
""
그는 명실공이 이번 하늘전의 주인공이었다.
하늘전이 지속되는 동안-
아니지.
그 이후 줄곧.
E스포츠 업계는 온통 그 세 글자로 떠들썩했다.
'최재훈'.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 그 세 글자로.
바로-
[속보) 페이스 이번 시즌 진1위 쟁탈전 참가 선언]
또 다른 세 글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