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3차 스크림의 여파 2
선수들이 김이리의 개인실 쪽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쟤 진짜 이번에 칼 갈았네?"
"숨컷도 진짜 대단하다, 쟤한테 삘을 받고 '그걸' 하게 만드네."
"그러니까."
"야, 그런데 숨컷 진짜 어떡하냐? 데뷔 첫 시즌이라, 엄청 의미가 클 텐데. 저 자식이 저러면-"
팀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차현하에게 묻는다.
"어떻게, 자칭 숨컷 여자친구분. 이번에 이거,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숨컷이 '그거'에 발동 건 이리 상대로 1위 사수할 수 있을까요?"
"난 우리 자기 믿어."
그에 차현하는 특유의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일말의 주저도 없이 답했다.
"이리한테 '그거'당해서 이번에 벽 느끼고 져도, 잘 버텨낼 거라고."
김이리에겐.
페이스에겐.
업계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악취미가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인정한 플레이어에게만 하는 '그거'에 당한 이후의 플레이어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벽'을 느끼고 슬럼프를 맞닥뜨리는가.
혹은, 버텨내고 그 가치를 입증하던가.
차현하는 숨컷이 후자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솔직히.
후자를 넘어서, 그라면 또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을까도 기대했으나-
"…아~"
역시 안 되겠네.
그녀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녀의 예상을.
상상력을.
페이스라는 벽이 가로막아 버렸다.
"어? 야!"
"응?"
"큭큭큭, 와 진짜 이 사람 지금 진짜 잘나가긴 하나보다. 야, 검색어 순위 확인해봐."
"순위?"
"와, 미친."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
'숨컷 세연대'라는 단어가 당당하게 그 사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10위로 시작한 그 순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1위마저 달성해 버린다.
그렇게.
숨컷을 이미 아는 이들은 물론이며.
아직, 그를 모르는 이들에게 또한.
숨컷의 이름이 전해진다.
[아니 ㅅㅂ ㅋㅋ 남자가 이 얼굴에 겜 실력에 성격에 학벌까지 가졌다고?]
[세상 조깠네]
[아 거 누군지 몰라도 밸런스패치 조까치하네~]
다소 비현실적인.
그래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방송인의 존재가 말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가 있었다.
"어!?"
숨컷이 참가했었던 코스프레 대회에서, 아이엇 사의 담당자였던 타니아 리였다.
그녀가 숨컷에 대한 소식을.
그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접하고는-
"이거면…?"
잠깐의 고민 뒤, 기대감 담긴 미소를 그렸다.
그녀는 숨컷의 텔론 코스프레에서 엄청난 영감을 받고, 그 영감에서 비롯된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하지만.
기존에 예정되어 있었던 규모를 훨씬 상회하는 그 프로젝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숨컷의 이미지가, 그녀가 제안한 프로젝트를 설득하기엔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새로이 추가된 숨컷의 이미지.
'강한 남성', 그리고 '엘리트'.
이 두 가지면-
'가능해.'
그녀가 기대에 부풀며, 새로운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타니아 리 말고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편집자 이린이었다.
숨튜브에 새로운 물이 대거 유입되는 지금, 때맞춰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 된다.
유입 키워드인 '세연대'를 당연하게도 포함하는 하늘전과 관련된 영상이.
그렇게-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실시간 인기 급상승 게임 채널 1위.
그리고, 실시간 인기 급상승 게임 영상 순위에 숨튜브 그 세 글자가 도배되었다.
숨튜브의 구독자 수치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숨튜브]
[구독자 : 1, 350, 103명]
구독자 120만을 돌파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 두 번째 자릿수를 갱신하는데 성공한다.
그럼으로써-
국내 게임 채널 17위에 해당했었던 순위는, 13위까지 상승하고.
멸망전 참가자 중 또 한 명을 제치고.
멸망전 참가자 중 7 번째로 구독자가 높은 방송인이 되었다.
최재훈은 모두가 말하길, 거품이라고 말했던 그 말도 안되는 기세를 이어가며 정상에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게, 3차 스크림은 엄청난 관심을 끌어모았고.
제목 : 야 그래서 숨컷 학생 대표 되고 용병 자리 빈 거지?
내용 : 숨컷 누구 데려오려나?
ㄴ : 지금 숨컷 클라스면 누굴 데려와도 안 이상할듯
ㄴ : 세연대 이번 스크림도 개발렸다던데 솔직히 그 트롤 원딜 나가고 새로운 용병 들어오면 가능성 있지 않냐?
ㄴ : ㅇㅇ 있지
ㄴ : 이번에 세연대 ㄹㅇ 보여주나 ㄷㄷㄷㄷㄷㄷㄷ
ㄴ : 숨컷 약해연대 우승시키나 ㄷㄷㄷ
하늘전 최약팀인 동시에, 최고 기대팀인 세연대의 새로운 용병에 대해 크나큰 관심이 쏠린다.
빈 자리는 원딜러.
가장 먼저 언급된 용병은-
[역시 장혜환 아님?]
[ㅇㅇ 숨컷이랑 같은 플랫폼이니까]
장혜환.
숨컷이 소속된 옐로TV의 플랫폼에서 3대장이라 불리는, 대표 방송인이었다.
장혜환의 포지션은 원딜러였고.
게임이 불리한 상황에서 말없이 묵묵하게 압도적 퍼포먼스를 보이며, 아군을 승리로 이끈 뒤.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리며-
"캐뤼."
라고 외치는 그 시그니쳐는 레오레 유저 모두가 알 정도다.
장혜환은 솔랭 원딜 포지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최상급 실력자였다.
방송인으로서나, 플레이어로서나 엄청난 인재.
그런 장혜환을 아무리 하늘전일지라도 '땜빵'으로 섭외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숨컷이라면 가능하겠지 ㅋㅋ]
지금의 숨컷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장혜환이 땜빵일지언정 흔쾌히 응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솔직히 장혜환 아니여도 ㅋㅋ]
그리고, 장혜환이 아니여도.
지금의 숨컷이라면, 장혜환에 준하는 엄청난 거물을 데려오리라.
그럼으로써 세연대에-
하늘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리라.
엄청난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헤헤, 안녕하세요. 리치- 아니, 아니, 아니! 옐로TV! 옐로TV에서 방송하는 권지현이라고 합니다! 옐로TV요!"
짜잔!
"오옹?"
"에엥?"
"이잉?"
[???]
[오잉?]
[뭐여?]
아주 의외의 인물의 등장에 사람들이 표정으로 [잉?]이라는 글자를 그렸다.
[상상도 못한 정체 ㄴㅇㄱ]
[아니 갑자기 웬 권찐따?]
[아니 하늘전에 나오기엔 권지현 급이 좀 ㅋㅋ]
[아니지 요즘 권지현이면 ㅇㅈ이지 ㅇㅇ]
[ㅇㅇ 솔직히 급이 문제가 아니라 ㅋ;;]
컷컷컷 크루의 일원이자.
이전 있었던 '서포터 인식 개선 프로젝트'의 주인공인 권지현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기와 영향력을 구가하고 있었다.
하늘전에 참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얘 ㅅㅂ 미드잖아]
[ㄴㄴ 지금은 서폿]
[미드건 서폿이건 남은 자리는 원딜이잖아]
[게다가 얘 그마딱 아님?]
방송인이 아닌, 용병으로서의 가치 때문이었다.
'원딜러 용병 자리'에 권지현은 너무나도 부적합하며 또 미달되었던 것이다.
그런 권지현은 컷컷컷 크루의 일원.
그러니까, 숨컷의 동료였다.
그렇기에-
[아니 이거 설마 권지현 같은 크루원이랍시고 하늘전에 참가시켜줘서 밀어주려는 거임? ㅋㅋ]
[에반데]
[선 넘네]
[걍 하늘전이고 뭐고 이익 챙길 생각 뿐이네]
[실망이 큰데;]
[ㄹㅇ;]
마땅히 그런 이야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숨컷에게 하늘전은 뒷전이고, 이익을 챙길 생각 밖에 없다고.
하지만.
[의심하지마!!!!!!!!!]
[나는 숨컷 믿어 숨컷 믿는 나를 믿어]
[숨명의 계략이다! 당황하지 마라!!!]
[저거 보고 기대하는 흑우 업제?]
일련의 사건으로 숨컷이 하늘전에서 다진 입지가 입지인 탓에.
그 누구도, 권지현의 용병 참가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단지 궁금해 할 뿐이다.
숨컷이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말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세연대 팀의 새로운 용병은, 방송인이신 권지현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면,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팀원 경매.
결과.
[아~~~ 휴~ ㅋㅋ 권지현 겨우 지켜냈네~]
[다행이다!]
[부럽다!]
[아 ㅋㅋ 이거이거 아쉽게 됐구만~]
[ㄹㅇ ㅋㅋ 꼭.데.려.오.고.싶.었.는. 데]
"헝…."
세연대는 방어에 성공했고.
권지현의 낙찰가 총액은-
약 130만 원으로.
하늘전 역사상 최저액수였다.
너무나도 너무한 액수에 권지현이-
"오! 휴, 다행이다. 백만 원 넘겼당."
안도했다.
자신 같은 하꼬가 하늘전 참가라니.
최저선인 백만원 대조차 넘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소박한 걱정을 하고 있던 그녀였기에.
소박한 액수에도 만족하는 것이다.
너무하게 너무한 액수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최재훈은 저도 모르게 축하를 보냈다.
"지현 씨~ 축하해요~ 역시 지현 씨~"
"찐따야… 그래, 너가 기쁘면 된 거야…."
"아, 그… 대단하심다!"
[오메데토-]
[축하해]
[바로 그거야]
[멋있었어]
[경사났네~]
짝짝짝.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자-
권지현이 진심으로 미소 지으며-
"고마워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뭐여, 이게."
누군가 내뱉은 그 말은 박수 소리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머지않아 팀원 경매가 끝나고.
진행자가
"자, 그러면. 마지막 스크림-"
의 시작을 알리려던 찰나였다.
"아, 잠깐만요."
모두의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숨컷이 그걸 제지했다.
또 무언가를 하기 위해.
그가 말한다.
"저희 세연대 팀. 선수 교체하려고 합니다."
최재훈.
그리고 김수환.
서로 눈을 마주친 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수환 선수를, 배차연 선수로 교체하겠습니다."
그 결정에, 모든 팀이 경악했다.
"아니-"
"이제 와서?"
팀 게임에서는 개인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팀원 간의 합이 가장 중요하다.
그걸 위해, 지난 몇 주간 세 팀은 부단히도 연습해오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인세대와, 고구려대는 세연대의 변화를 아주 위협적이라 느끼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선수의 교체로 선수 개인의 전력은 상승할지언정.
그간 쌓아온 팀원간의 합이 크게 감소한다고 볼 수 있었으니.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한 명 더 교체해 버린다고?
[권지현 써먹으려면 서포터가 맞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크림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틀 뒤.
하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이틀 동안.
새로운 팀원 두 명과 합을 맞추겠다고?
그걸로.
지금까지 합을 맞춰 온 팀들을 상대하겠다고?
"하."
누군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만큼, 세연대의 시도는 무모했다.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연습경기.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 대로-
되지 않았다.
인세대와 고구려대는 1차 스크림 이후로 줄곧.
서포터를 차출해 와서 '숨컵'듀오를 상대로 수적 우세를 토대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채택해 왔다.
그 전략을 타파하기 위해서-
세연대 팀은 바텀의 전력 보강이 필요했다.
전력 보강을 통해 채택할 수 있는 대응책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일단은, 숨컵 듀오가 2:3으로 버티는 사이.
2:1로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된 세연대 팀의 바텀이, 상대 바텀을 압도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책이 효율적으로 작용하려면 숨컷 팀의 '원딜'이 팀 내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해야했다.
'숨컵'듀오가 '원딜'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게 되니까.
하지만.
세연대 팀이 새로 데려온 원딜은, 서수나보다 티어가 낮은 다이아3이었다.
그렇게, 세연대가 채택해야 하는 계책은 두 번째가 된다.
바로, 세연대의 서포터 역시 숨컵에게 힘을 실어줘 3:3를 구도를 이루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서포터에게 높은 실력이 요구됐다.
고구려대의 서포터는 챌린저였고, 인세대의 서포터는 그랜드 마스터였으니.
그런 점에서 권지현은, 약간 아쉽다고 할 수 있었다.
세간에 알려진 그녀의 티어는 그랜드마스터였으니.
설상가상으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구려대와 인세대의 서포터는, 지금까지 쭉 미드정글과 합을 맞춰 왔다.
하지만.
권지현은 끽해봐야 오늘, 혹은 며칠 전 서수나가 방출되었을 때 막 합류했을 뿐이다.
때문에.
그 팀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합'에서, 두 팀에 비해 절망적으로 부족했다.
고구려대와 인세대는 이번 마지막 스크림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막 결성되어 그 이음새가 부실하기 그지없는 '숨컵현' 트리오를.
무참히 짓밟는 그림을 예상했다.
그러나.
"아니, 저게 가능한가…."
'숨컵현'트리오는 전혀 무참히 짓밟히지 않았다.
선방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마지막 스크림의 결과.
세연대 2승 0패였다.
그 원동력은 다름아닌, 권지현이었다.
그녀와 숨컵 듀오의 합은-
지금까지 쭉 합을 맞춰온 세연대와 고구려대를 상회했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바로, '최재훈의 권지현 서포터 적응 서포팅'덕분이었다.
권지현은 서포터 개선 프로젝트 이후, 꾸준히 서포터를 연습해왔다.
숨컷에게 지도를 받으며-
그러니까.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며'
'그와 합을 맞추며' 말이다.
둘의 공동 작업은 첫 스크림이 시작되기도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게.
권지현은 세연대 팀의 오더를 담당하는 최재훈의 생각을, 판단 기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신속하고 확실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김희은은 권지현의 그런 플레이를 평가하길-
-와, 지현 씨. 무슨, 숨컷 씨가 하나 더 조종하는 것 같슴다!
"아, 권지현 선수! 오늘 마지막 스크림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셨는데요. 모두가 가장 놀란 부분은 역시, 그랜드 마스터 티어인 권지현 선수가 챌린저 티어인 고구려대의 서포터를 상대로 라인전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에, 권지현이 눈을 깜빡이더니 답했다.
"어… 저…."
"예, 말씀하세요."
"저도… 챌린전데요…?"
묘기를 부린 뒤 가족의 반응을 기다리는 골든리트리버처럼.
어딘가 자랑스러운 듯, 우쭐거리는 듯한 얼굴에 반짝이는 눈으로 말이다.
그녀가 "헤헤헤." 멋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