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전환 1
최재훈이 세연대 팀의 용병에서, 학생 대표 선수로 변경된다.
이는, 세연대 팀의 급격한 전력 상승을 의미했다.
그도 그럴게, 누가 봐도 구멍이었던 '서수나'의 자리를 무려 '숨컷'이 대체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용병의 자리가 하나 공석이 되어 버렸으니.
며칠에 걸쳐, '숨컵'에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 세연대 팀의 공략 방법을 간신히 찾아낸 다른 팀들에겐 달가울 리 없는 상황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달갑지 않은 건 단연코 넥슬이었다.
겨우.
마침내.
숨컷 팀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함으로써, 풋내기에 불과했던 그에게서 우위를 빼앗겼다는 굴욕으로부터 벗어난 찰나였는데.
그 확신에 지대한 영향을 줄 이런 변수가 발생하다니.
그녀는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느 정도 눈치 챈 상황이었으나.
그럼에도.
질문으로써 현실부정을 행한다.
“근데 학생 대표로 참가하신다고요…?”
그러자-
그는 당당하게 학생증을 내밈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세연대의 학생이었다.
'이 인간이, 세연대생…?'
넥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람의 인상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그 무수히 많은 요소 중 대표적인 것들을 꼽으라 하면-
가장 먼저 대표적으로, 절대 진리에 가까운 외모가 있었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
보통 사람 같았으면 '쯧, 자기 관리 좀 하지.'는 소리를 듣고 다닐 남루한 복장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하면-
'역시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구나, 저게 성공의 비결이겠지? 대단해. 동경하게 돼. 나도 내일부터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거지처럼 하고 다녀야지.'라는 소감을 자아내듯.
보통 사람 같았으면 '아으, 진짜 비호감이다. 왜 저런다냐?' 소리를 들을 행동을.
미인이 하면-
'와~ 내숭 없고 성격 털털한 거 봐. 진짜 호감이다.' 라는 소감을 자아내듯.
그 대표적 요소들은, 해당 인물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될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학력 또한 거기에 포함되었다.
신체능력보다 지성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현대에서.
학력은 지성의, 능력의, 가능성의 보편적인 판단 기준이라 할 수 있었으니.
시청자들에게 비추어지는 숨컷은 어떤 인간일까.
언동으로나, 행보로나.
형식을 깨는 파격적인 인물이었다.
이는 대체적으로-
[캬 ㅋㅋㅋㅋ 역시 이게 방송이고 이게 방송인이지]
[ㄹㅇ; 이게 창의성이고 크리엑티비티지]
[미친새기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유쾌하네]
[숨컷이 또 거짓말을 하면? 또라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강제 퇴장당했습니다.
그런, 크리에이티브라는 직업에 적합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인상을 주었으나.
삐딱한 시선으로 남들을 평가하는 이들.
대체로 헤이터들에겐-
[ㅋㅋ 인방충 새끼 하는 꼬라지 봐]
[ㅈ대로 살다가 운 좋게 뜬 양아치 새기들이 다 그렇지 뭐 ㅋ]
[하 ㅅㅂ ㅋㅋ 저딴 근본 없는 새끼들도 운좋게 떠서 떼돈을 버는데]
경박한.
저급한.
못 배워먹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억까'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넥슬은 후자에 속했다.
물론, 찐득한 악의로 대하는 헤이터들 수준은 아니고.
'웬 듣도 보도 못한 게….'
텃세, 라고 해야 할까.
7년.
넥슬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걸린 기간이었다.
처음 1년 차에는 기존의 직업과 병행 활동을 하며, 나름 노력했고 구독자 1만 명과 평균 시청자 100명에 근접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능성을 느끼고, 전업으로 전환.
그렇게 2년 차를 시작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성장세는 시원찮았고.
결국 구독자 1만 5천과, 평균 시청자 200명에 그친다.
3년째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단념하고 꿈을 접으려던 찰나, 운 좋게 기회가 찾아왔고.
온갖 노력 끝에 그걸 붙잡고, 붙잡은 이후에도 노력을 이어감으로써 가까스로 지금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룬 것을 저 숨컷은 데뷔한지 1년은커녕-겨우 2달째가 다 되어 가는데 자신의 뒤를 뒤쫓고 있었다.
넥슬은 본인이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다 믿었다.
특별한 재능으로써 성공에 도달한 그 과정이 '옳다'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옳은 과정을 전면에서 부정해 버리는.
특별한 재능을 전면에서 부정해 버리는.
압도적인 재능을 보자-
그런데, 그를 훨씬 상회하는 숨컷의 존재를 보자.
저도 모르게-
'부당하다'느껴 버린다.
그렇게 숨컷의 존재를 부당하게 느끼고, 인정하지 못한다.
부정한다.
부정하고 또 부정하여 그의 존재를 깎아내리다 보니-
그를 얕보게 된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그의 게임 재능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가 아니던가.
더군다나 '남성'이라는 속성이 더해져 더욱 빛난다.
외모 또한 마찬가지.
그에게 굳이 결점이 있다면-
그래.
그 파격적일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격.
그 성격을, 경박하고 저급하다 느끼고.
그의 수준 자체를 폄훼한다면?
넥슬은 기꺼이 그렇게 함으로써, 숨컷을 얕보았고.
부정했고.
그를 통해 자신을 그 위에 세웠다.
그런데.
지금 그가 국내에서 최고를 다투는 명문대학교의 학생임이 밝혀졌다.
그에 따라서.
보통 같으면 남루하다 느껴질 복장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한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해석되어 성공의 비결처럼 보이던 것처럼.
보통 같으면 궁상맞다 느껴질 행동을 미인이 한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해석되어 내숭 없는 호감적인 행동이라 느껴지는 것처럼.
보통 같으면 수준 낮다고 여길 수 있는 '억까'의 여지를 주었던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이.
마냥 긍정적으로 해석되어, 순수하게 유쾌하며 겸손한 성격.
그리고, 여유와 품격의 발로라 여기게 된다.
사람에 따라 세세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분명한 건.
넥슬.
숨컷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바뀌었다.
시선에 담겼던 멸시 따위의 부정적인 감정이, 존중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가 자신 위에 서는 것을, 더 이상 부당하다 여기지 않는다.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학력을 알게 되자마자 그 태도의 변화가 너무 노골적인 게 아니냐.
속물적인 게 아니냐?
맞다.
하지만 그런 속물적인 일조차 하지 못하는-
서수나 같은 부류에 비하면.
넥슬은 충분할 정도로 성숙한 편에 속했다.
서수나는 자신보다 못했던 이가, 자신 위에 서는 것을 파멸할 때까지 인정하지 못한 반면에.
넥슬은 순수이 인정하였으니.
물론.
그럼에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최재훈이 자신의 위에 서는 것을 순수이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그게 곧, 그가 자신의 위에 서는 것을 가만히 방관한다는 게 되진 않는다.
그러니까.
최재훈이 세연대팀의 용병에서 학생 대표로 전환되어 잃어버린 승산을 되찾는 걸 순수이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넥슬이 지난 며칠간 하늘전을 대비한 연습을 해 오며 뼈저리게 느낀 점.
'진짜, 세연대 수준이 처참해서 천만 다행이지….'
숨컷의.
숨컵 듀오의 위력이었다.
고구려대는 슬슬, 숨컷이 있는 세연대 팀을 상대로 무난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세연대 팀 바텀의 수준이 형편없는 덕분이다.
그 덕분에, 고구려대 팀의 서포터는 마음 놓고 아군의 원딜러를 방치한 채 라인을 이탈하여 미드와 정글에 힘을 실어줄 수 있고.
그 덕분에, '잡슬'듀오는 '숨컵'듀오를 상대로 수적인 우세를 토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보통이라면.
서포터가 바텀 라인을 버리고 미드 정글에 힘을 실어줄 경우.
미드 정글은, 상대 미드정글을 완벽하게 압도해야 한다.
버림받은 원딜러가, 바텀이.
마찬가지로 수적인 열세에 처해 완벽하게 압도당할 테니까.
하지만 '잡슬'듀오+서포터는, '숨컵'듀오를 약간 압도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게임은 고구려대의 무난한 승리로 끝난다.
상대팀 바텀이 수적인 우세를 전혀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지금 고구려대가 세연대를 상대로 무난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세연대 팀 바텀에 있었다.
그런데, 그 바텀 중 한 명이 용병으로 대체된다?
일단.
모든 용병이 '숨컷'처럼 논외의 전력을 가진 건 아니다.
그럼에도, '서수나'가 하도 못하는 탓에.
어중간한 챌린저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하는 정도로도.
세연대 바텀의 전력은 대폭 상승할 터다.
세연대전에서 고구려대의 승률에, 대폭적인 변동이 있을 터다.
고로.
숨컷의 대표 선수 전환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저기, 그런데요 진행자 님?"
"아, 예. 말씀하세요."
"그, 지금 숨컷 님은 듣자 하니 휴학생-이신 데다가. 학생이 아닌 방송인 신분인데. 그런데도, 학생 대표로 참가하는 게 가능한가요?"
방금 전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내었던 숨컷을 위협하는 질문.
하지만, 그 누구도 넥슬을 제지하지 않았다.
합당한 지적이었기에.
진행자가 진지하게 고갤 끄덕이더니 답했다.
"일단, 규정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긴 합니다만…."
"이미 경매도 다 진행했는데요?"
"성금에 대한 정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언제든 환불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며.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서. 규정상으로도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런데, 규정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반드시 허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가령, 상대방 선수를 돈으로 매수한다던가. 그거에 대한 규정도 딱히 존재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허용된다는 건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죠."
진행자가 시선을 넥슬에게서 전체에게로 돌렸다.
"참가자 여러분? 학생 여러분? 지금 같은 상황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진행자 임의로 용병인 숨컷 님의 학생 대표로의 전환에 대한 허가 여부를 명확히 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찬반 투표의 진행을 제안 드리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시나요?"
그에, '여러분'이 눈치를 보았다.
숨컷의 눈치를 말이다.
그와 관련된 이권 분쟁에 대해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데, 그의 눈치를 본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으나.
방금 전 있었던 일련의 상황을 고려하자면 자연스럽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던 넥슬까지 그 생각이 변할 정도였는데.
애초부터 그에게 3억을 쾌척할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참가자와 시청자들은 오죽할까.
사람들은 숨컷에게 완벽하게 심취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에 숨컷이-
'규정에 없으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동의할 정도로.
어느새 서수나를 바닥에 내려놓은 숨컷이 잠깐 동안 고민에 잠기더니.
진지하게-
"음… 저는 찬반 투표 대신에 다른 걸 제안합니다."
"아, 예! 다른 의견이 있으시군요.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숨컷 투표를 제안합니다."
"숨컷… 투표요? 그게 뭐죠…?"
"공정하게 숨컷이 결정한 대로 가는 겁니다."
"…네?"
헛소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