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합당한 파멸 2
평소 남을 대할 때 싹싹하기 그지없던 김희은의 태도는 지금, 무뚝뚝하기 그지없었다.
무뚝뚝함으로써, 경멸과 혐오를 표출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대할 때 차별이 없는.
무례하고 예의없는 사람을 대할 때조차, 웃음을 잃지 않은 김희은이다.
그런 그녀가, 예외적으로 혐오하는 부류가 있었다.
딱 잘라- 서수나 같은 부류였다.
뒤에서 서로를 이간질하고, 집단을 와해시키려 하는 부류들.
옛날부터 운동부 활동으로 집단 활동을 해옴으로써, 공동체간의 화합을 가장 중요히 하는 그녀에게 있어.
서수나는, 절대로 상종하기 싫은 상대였다.
이전, 서수나에게 연락으로 '최재훈이 너의 뒷담을 깠다'고 전해 들은 김희은은 곧바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최재훈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 * *
"숨컷 씨, 사실이에요? 정말로 제 뒷담 하셨나요?"
-예? 희은 씨 뒷담이요?
뒷담한 사람에게, 정말로 내 뒷담을 했냐 물어본다.
그런 당돌한 행위를 서슴없이 할 정도로, 그런 상황과 관련했을 때의 김희은의 태도는 몹시 단호했다.
그에 대한 숨컷의 답은 일단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그에, 김희은은 심장이 덜컥거렸다.
정말로, 이 남자가 그렇게 추잡한 짓을 했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뒷담이라… 기억이 안 나네요. 뒤에서 칭찬한 건 기억이 나는데.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라도 하듯.
그는 능청스러운, 그 특유의 미소가 절로 연상되도록 말했다.
뒷담할 정도로 비열한 사람이, 뒷담을 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해서 곧이곧대로 답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김희은은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안도한 김희은이-
아, 예! 역시 그럴 줄 알았슴다!
그렇게, 활기차게 대답하려다가도.
곧장 쑥쓰러워져서-
"아, 예. 알겠습니다."
퉁명스럽게 곧장 전화를 끊었다.
그랬다가도-
"…."
이건 너무 무례하다 싶어서.
-아, 희은 씨.
"아, 그… 갑작스럽게 죄송했…어요…."
다시 전화를 걸어, 그녀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사과한다.
-아, 갑작스러워서 죄송하다뇨. 우리 머그컵 선수 연락이 갑작스러우면, 응? 그게 서프라이즈고 선물이지.
그에, 최재훈이 또 그다운 대답을 하자-
"…아, 아무튼 그런 줄 아세요!"
이번에야말로 얼굴이 빨개진 김희은이, 당황해서 전화를 끊었다.
"하…."
그렇게 스스로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을 정도로 들떴다가도-
"…."
이후 할 일을 생각하니 곧바로 식는 표정.
그녀가 서수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녹음'기능을 켠 채로.
그렇게 묻는다.
최재훈이 자신의 뒷담을 하려 한 게 정말로 사실이냐고.
그에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긴 했으나, 결과적으론 긍정했다.
최재훈이 2차 연습 피드백 자리에서, 김희은을 뒷담 했다고 말이다.
그 녹음본을-
김희은은 최재훈에게 전달했다.
* * *
"예…?"
여기서 최재훈의 편을 든다고?
'벼, 병신인가?'
'수업 못 따라가서 도태되고 휴학을 결정한 모자란 놈'
'평생 게임이나 한 한심한 겜창 년.'
지금 서수나에게 비춰지는 김희은과 최재훈의 모습이었다.
그 둘을 상대하고 있노라니, 자신의 수준마저 덩달아 낮아지는 기분이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회 경험 없는 겜창 년이라 해도 그렇지, 여기서 최재훈의 편을 들다니?
기본적인 사리분별조차 안 되는 건가?
'아, 설마?'
최재훈이 가진 자신감의 근거가 이거였던 걸까?
김희은의 지지?
'하, 어이가 없네.'
쌍으로 아주 지랄이 났다.
유명 방송인에, 프로게이머니.
여론이 무조건 자신들의 편이라 생각한 걸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애당초 전제부터가 잘못됐다.
그 유명세와 영향력을 이용해서 기껏 한다는 게, 권위를 내세워서 독단적이고 일방적으로 팀에서 퇴출시키는 거라니.
[아니 뭐야 머그컵까지?]
[이거 도대체 누가 잘못한 거지?]
[아모른직다 중립기어 박자]
[학생 대표 선수들 말을 들어봐야지 ㅇㅇ]
[그게 맞지]
[ㄹㅇ; 아무리 봐도 못한다고 상의도없이 방출시키는 건 아니지]
[이거 ㄹㅇ 상의 안 하고 최재훈이랑 김희은 둘이서 결정한거면 문제있을듯]
지금.
김수환과 강수화가 자신을 옹호해 주는 순간, 최재훈과 김희은의 결정이 팀원과 상의되지 않은.
유명인들끼리의 독단이었음이 밝혀질 테고, 여론은 단번에 기울 것이다.
즉, 이미 상황은 종료된 것이나 다름없다.
김수환과 강수화는 자신의 편이었으니.
"수, 수환아… 너, 넌. 어떻게 생각해… 너도 정말로… 내가 팀을 위해서, 팀에서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
서수나는 반쯤 울먹거리는 연기를 하며 김수환에게 말했다.
이러면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김수환은-
'그쪽들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서수나를 감싸고 나서서 둘을 비난함으로써 상황을 종료시킬 것이다.
'자, 어서….'
서수나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김수환의 답을 기다렸다.
"저도, 팀을 위해서 그쪽이 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뭐?"
서수나가 연기하는 것도 깜빡하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김수환을 바라보았다.
최재훈을 경멸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할 김수환은.
지금, 서수나를 경멸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며 최재훈을 옹호하고 있었다.
호칭도 어느새 '누나'에서, '그쪽'이 되어 있었다.
"뭐, 뭐? 뭐라고?"
그녀로선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쟤가 갑자기 왜 저러지?
김수환이 서수나와 갑자기 반목하고, 최재훈을 옹호한다.
사실, 그걸 가능케 하는 전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다.
그저.
최재훈이 김수환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
서수나의 사고는 그런 평범하기 그지없는 전제에 미치지 못한다.
최재훈이 김수환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한다.
그도 그럴게.
서수나가 생각하는 최재훈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보유자로서 사회성이 결여돼 그런 게 가능할 사람이 아니었으니.
결국, 지금의 상황은.
서수나의 파멸은.
전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볼 수 있었다.
서수나.
그녀가, 본인이 하찮게 여기던.
본인이 뜻대로 다룰 수 있을 거라 여기던 최재훈이.
자신보다 잘난 존재가 되었다는.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감정으로부터 말이다.
서수나가 만약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그녀는 분노에 눈이 멀어, 그를 매장시키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매장시키기 위해, 이런 무모한 정치질을 벌이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대에게.
어쩌면, 자신보다 급이 높을 상대에게.
섣불리 싸움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서수나는 옛날의 최재훈-
아니지.
'자신이 믿고 싶어 하던 최재훈'과 싸우고 있었다.
개미를 짓밟는 느낌으로 어엿한 인간을 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멸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아, 아니. 수환아. 가, 갑자기 왜 그래. 수, 수화야. 수환이까지 이상하다. 너, 너가 뭐라고 말 좀 해 줘봐. 응? 너 알잖아. 선배님이 이거, 하늘전 준비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더 이상 연기가 아니다.
서수나는 정말로 절박한 심정으로 비굴하게, 강수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러게-"
강수화는 매정히-
아니지.
마땅히 눈을 피하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좀, 적당히 하시지 그랬어요."
"…뭐? 수화야, 너 지금 뭐라고-"
"선배님- 아니지. 당신, 왜 그렇게 뻔뻔해요? 아까 숨컷 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하던데. 어떻게 그래요?"
"뭐? 아니, 수화야- 너 지금-"
서수나가 다급히 주변의 눈치를 보며 강수화의 발언을 멈추려 했지만-
"당신. 나랑 수환이한테 따로 시켰잖아. 숨컷 오더 절대 듣지 말라고. 우리랑 숨컷 씨 이간질했잖아. 오늘도, 숨컷 씨가 분명 픽 뭐로 하는지 정해주고, 플레이 방침까지 정해줬는데. 그거, 다 무시했으면서. 어떻게 뻔뻔하게 그딴 소리를-"
이제는 선배가 아닌 추잡하고 한심한 인간일 뿐이다.
강수화는 더 이상 서수나의 눈치 따윈 보지 않았다.
만만해서 데리고 다녀 준 강수화에게까지 무시당하자, 서수나가 마침내 폭발했다.
"야 강수화!"
움찔!
"너 진짜, 지금 뭐라는 거냐!? 니, 뭐, 어!? 숨컷 광팬이니 뭐니 노래를 부르더만. 이렇게, 편 들어주는 거야? 니 뭐, 그러면 저 인간이 너랑 뭐라도 해 준대!? 어떻게 그렇게 눈 하나 안 깜빡이고, 사람 하나 병신 만드냐!?"
물론,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한 연기를 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로 억울했다.
김수환, 강수화.
저 두 연놈이 자신을 배신한 게.
그렇게, 억울함에 받쳐서 호소한다.
시청자들에게.
"여러분, 이게 정말 말이 되나요? 제가 이거 하늘전 때문에 얼마나 노력했는데. 고작, 게임 하나 못한다고! 숨컷이랑 김희은, 저 둘이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제 후배들이랑 말 맞춰가며 절, 쓰레기로 만드는데. 이게 말이, 말이…."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힘없는 일반인 피해자라는.
숨컷 쪽이 유명인으로서 영향력을 권위로 내세우는 가해자라는 프레임을 어떻게든 유지해 보고자.
하지만-
-아, 응.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또 다른 서수나의 목소리.
-그러니까. 재훈이 걔, 진자 변했다니까? 뭐만하면 우리 탓하고. 무시하고. 뭐? 우리가 정말 잘못한 거 아니냐고? 에이~ 수환아.
바로, 김수환의 핸드폰에서 나오는-
-그런 사람 말 다 무시해 버려. 응? 걔가 뭔데? 게임 좀 잘하는 찐따일 뿐이야. 아니, 솔직히. 게임도 못하더만. 그냥, 걔 말 신경 쓸 거 없어.
그가 최재훈과의 대화 이후.
향후 이런 일이 있을까봐 미리 증거로 확보해 놓은, 서수나와의 통화 녹음본에 담긴 목소리였다.
녹음본 안의 서수나는, 주저하는 김수환을 설득해가며.
정말로 열정적으로, 숨컷과 김수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
숨컷의 오더를 부정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김희은의 핸드폰에서 나온 서수나의 목소리도.
강수화의 핸드폰에서 나온 서수나의 목소리도.
지금의 서수나가 표방하고 있는 '힘없고 억울한 피해자'라는 입장을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김수환이 덧붙였다.
"이렇듯. 저희 팀의 대표인 서수나는, 숨컷 님과 저희 선수들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숨컷 님을 따돌리는 등의 행위로 팀의 불화를 유발하며, 팀을 진보가 아닌 퇴보의 길로 유도했습니다."
그가 최재훈에게 시선으로 바톤을 터치했다.
"그렇게 서수나 씨를 제외한 팀원들끼리 상의한 바, 만장일치로 서수나 씨에 대한 방출이 결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수나 씨는 정말로 학생으로서 하늘전에 참가하는 모교인 세연대의 입장을 위해주신다면. 팀원들의 결정을 존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바톤을 이어받은 최재훈이- 막타를 날렸다.
"저, 저, 씨- 미친년을 봤나!!! 놔! 이거 놔!!! 저 썅년 내가 모가지를-"
"얘들아 민아 씨 붙잡아!! 사람 잡겠다!"
"악! 힘 존나 쎄!!!"
현장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채팅창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와 저거 개또라이년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ㄹㅇ 숨컷 매장하려고 작정을 한 거네?]
[서수나 저새끼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쓰레기잖아 ㅋㅋ]
[기어코 일 냈누 ㅋ]
[에혀 한심한 새끼 ㅋ]
"…."
서수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자신은 지금- 파멸해 버렸음을.
'아니.'
아니다.
이 모든 건-
"…."
저놈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주제, 자신을 무시하는 저 같잖은 새끼 때문이다.
최재훈.
그가 서수나를 보며-
픽.
하고 미소 지었다.
그러자 픽-
하고.
서수나의 이성 또한 끊어졌다.
그녀가 최재훈에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가볍게 몸을 옆으로 돌리며, 투우사처럼 그녀를 흘려낸다.
"시-발놈이!!!"
황소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꺄악!!"
"어떡해!"
"야씨, 말려!"
몸을 날리는 데엔 실패했으나 어쨌거나 접근하는 덴 성공했다.
서수나가 최재훈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크게.
아주 크게.
최재훈에겐 일부러 맞아줄래야 맞아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최재훈의 몸에 각인된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그 일격을 피하게 했다.
그리고는 물 흐르는 듯한-
잽.
"이 개샊-!…"
잽이 정확히 턱에 꽂힌 서수나의 몸이 고꾸라진다.
"어, 어이고!"
그리고, 최재훈의 몸에 각인된 경험이.
무방비하게 뒤로 자빠지려는 여자의 몸을 붙잡아줬다.
그렇게.
'남자'가, 자신에게 달려든 아주 건장한 '여성'을 아주 능숙하게 제압한 뒤.
자신을 해꼬지하려 했던 그녀를 쓰러지는 걸 자비롭게도 구해주는.
"…."
"…."
"…."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말문이 막혀버린 사람들.
"어…."
최재훈은 자신의 반사 신경이 만들어 낸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고민한 끝에-말했다.
"여러분, 저 몰랐는데. 방송인이나 휴학생도, 학생 대표로 출전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 용병이 아니라 학생 대표로 참가하겠습니다."
그렇게 산통을-
동결된 분위기를 깨자-
“근데 학생 대표로 참가하신다고요…?”
넥슬이 물었다.
"아."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시선을 카메라를 향한 채 품을 뒤적거렸다.
그렇게,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내민다.
그건-
"…뭐야?"
"사진?"
"응?"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무언가를 꺼냈는지 확인하는 최재훈.
"아."
그의 지갑 가장 위에 수납된, 사진이었다.
꼬꼬마 시절, 멜빵을 입고 사탕을 든 채 콧물을 흘리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여동생의 사진.
"개귀엽졍?"
느닷없이 '엄마 미소'를 한가득 짓고 말하는 '오빠'.
"어, 어… 네…."
당황하는 사람들에게서 동의를 받아내자-
"아무튼, 제가 보여주려던 게 이게 아니라."
이번에야 말로 그는, 지갑에서 제대로 꺼내서 보여주었다.
세연대의 학생증을.
"자, 이러면 불만 없제!?"
그러자.
주변에서.
채팅창에서.
일제히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그제서야-
"오케이, 불만 없는 것 같으니. 내 자리 맡고 있었던 또라이-"
최재훈은 특유의 미소를 짓곤.
축 늘어진 서수나의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