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합당한 파멸 1
세 번째 스크림.
두 번째 스크림보다 더욱 처참한 결과였다.
두 번째 스크림에선 그래도 고구려대에게 졌을지언정, 어느 정도 치열한 구도를 보여줬었는데.
세 번째 스크림에선-
[짜... 짱구야...]
[짱구가 다 컸네...]
[철이 다 들었네...]
[짱구가 철이 들면....? 앗...]
[??? : 아 언니들~~~ 달풍선 8282개 감사합니다~ 부리부리춤 한 번 조지겠습니다~]
[초코비 샤워 ㄷㄷ]
[좋은 그림... 좋은 그림... 깨꼬닥]
[R.I.P 숨컵 여기에 잠들다]
[위아래로 범람하는 똥물에 결국 익사해 버리신 ㅠㅠ]
[이게 바로 '대구려'대다 애송이들]
[어감이 좀 그런데요]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무참하게 짓밟혔다.
심지어는-
[앗... 설마...]
[설마... 우리한테까지...]
[아니 ㅋㅋ 당연히 우리가 점마들 표정 봐 ㅋㅋ]
['각오'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
[목에 폭탄목걸이가 걸려 있는데 게임을 안일하게 하겠냐고 ㅋㅋ]
[도대체 ... 방민아의 소집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 버러지들이 역전의 용사가 된 걸까요]
[친구한테 이야기 들어보니까 방민아 회의때 그냥 말 없이 무표정하게 리플레이 한 번 쭉 본다던데 ㅋㅋ]
[^^ㅣ발 그게 더 무서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미칠것같애]
[와 근데 이건 ㄹㅇ; 세연대가 ㅈㄴ 못하긴 한다]
[ㄹㅇ; 숨컵 둘이서도 못 살리는 팀이면 소크라테스가 와도 못 살리지 않냐]
[아 테스형 이번 인세대생들 수준이 왜 이래~]
[ㄹㅇ ㅋㅋ 사람을 살리는 건 의학이 아니라 철학이지 여러분 철학과로 오십쇼 ㅅㅂ 아주 그냥 어? ㅋㅋ]
[와! 철학과 아시는구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겁 나 간 지 납 니 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취직하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야됨]
인세대에게까지 패배해 버리고 만다.
[아...]
[역시 올해도 안 되나...]
[진짜 시발 세연대새끼들 레오레 감탄이 나오게 못하네]
[아니 ㅅㅂ 뭐 저딴 새기들을 데려다 놨나?]
[쟤네가 우리학교 원탑이야]
[세상에]
[이럴 줄 알았어... 기대하면 상처받을 줄 알았어... 그런데도 기대해 버렸어... 그래서 더 아파...]
[숨컵은 끝까지 노력해서 더 마음아프네 ㅠ]
[ㅈ연대가 미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ㅈ연대 죽어]
[숨컵을 부순 ㅈ연대를 부순다... 처음부터 그 생각 뿐이었다]
그리하여, 첫 스크림 때만 해도 희망과 활력이 넘쳐 파릇한 들판 같았던 세연대의 분위기는.
지금, 겨울이 찾아온 듯 황량해져 있었다.
이전의 하늘전과 다름없이.
아니지.
기대했다가 실망한 만큼.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전 하늘전 때보다, 그 분위기는 더욱 메말라 있었다.
그렇게.
세연대 레오레 팀의 대표인 서수나는 학우들의 실망을 한 몸에 느끼며-
'그렇지.'
진심으로 달가워했다.
용병으로서.
주역으로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
그런데 팀원들과의 불화.
아무리 노력을 해 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가는 걸 느낀다.
'자신이 아는 숨컷'-
아니.
'자신이 아는 그 보잘것없는 놈'은.
그런 상황에서 평정을 유지 못 할 한심한 놈이었으니까.
더 이상 저 같잖은 '연기'를 이어나가지 못하겠지.
그렇게 본모습으로-
옛날의 보잘것없던 '최재훈'으로 돌아오겠지.
그 상태에서.
김수환 강수화와 함께 '최재훈'을,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땐 유명인으로서 일반인인 팀원들을 무시하는 이중적 인성의 소유자라고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거다.
학교에 다닐 당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이었으면서, 방송에선 밝다는 사실과 함께.
여론은 숨컷의 편 아니냐?
맞다.
'일단'은 그렇다.
지금.
학생 대표들에게 실망하고 숨컷을 동정하는 세연대 학생들이나-
[하긴 우리 학교 수준은 뭐 ㅅㅂ 말 안 해도 유명했으니]
학생 대표들에겐 애초에 기대도 없었던 만큼, 그 실망은 크지도 길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실망이 끝나면?
[숨컷이 뭔가 해 줄 거라 기대했는데]
비로소 그 엄청난 기대의 대상이었던 최재훈에게, 기대만큼이나 컸던 실망이 향해지겠지.
거기에 맞춰서 인성 문제를 발화시킨다면?
"…."
서수나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제까짓 게.
별것도 아니었던 주제.
딴다라 짓 하다가 운 좋게 떴다고 자신을 무시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줄 차례였다.
'다음에….'
슬슬 숨컷에 대한 실망이 속출하기 시작할 시점인 지금.
슬슬 인성 문제에 대해 슬쩍 흘렸다가-
다음 스크림인, 마지막 스크림.
거기에서 승산이 전무하다는 게 밝혀질 처참한 경기력과 함께 터뜨린다면?
'완벽해.'
서수나가 표정에 아주 흡족한 미소를 그렸다.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더욱 더 흡족한 표정을 보기 위해, 최재훈을 쳐다본다.
지금, 서서히 일그러져가고 있는 그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서.
그러자-
"…."
그녀의 눈썹이 튕겼다.
'지 때문에 졌는데 좋아 뒤지는 거 보소, 속으로 또 생산성 조또 없는 지 같은 생각 하고 자빠졌겠구만.'
아주 흡족스럽게 웃고 있는 서수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며, 일말의 동정심조차 거두곤. 비소를 보내고 있는 최재훈을 보고 말이다.
[이 선수들! 팀이 2:0으로 지는데 웃고 있어요!]
[숨컷은 어이가 없어서 웃는다 쳐도 저 새낀 왜 웃어 ㅋㅋ]
[쳐맞다가 실성한거 아니누]
그 웃음의 의미를 서수나로선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수롭게 여기진 않는다.
자신이 아는 최재훈은-
지금 겉으론 저렇게 태연한 척 연기할 수는 있을지언정, 진심으로 평정을 유지할 위인이 못 됐으니.
어떤 마음으로 저렇게 꾸역꾸역 연기를 하고 있는 걸까.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서수나가 그렇게 다시 되찾은 미소로, 최재훈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아, 재훈아. 일단, 네 말 대로 하긴 했는데. 잘 안 됐네. 미안해, 내가 모자라서."
면목 없다는 듯.
미안하다는 듯.
시청자와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들으란 듯 크게.
거짓말이다.
그녀는 전혀 최재훈이 시킨 대로 하지 않았다.
시종일관 최재훈의 지시를 무시했다.
최재훈이 지시한 픽을 하지 않았으며.
그의 방침을 무시하고 실수를 빙자한 트롤을 몇 번이고 거듭했다.
그런데도 지금의 태도.
최재훈이 과연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소한.
답답한 마음에 언성이라도 높일 것이다.
표정이라도 구기거나 말이다.
그렇게 되는 순간, 시작이다.
시청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팀원에게 역정을 내는, 호감 이미지로 유명한 방송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인성 논란에 불이 붙는 순간, 서수나는 준비해 둔 기름을 부을 테고.
'자, 어서.'
서수나가 필시 답답할 최재훈이 속마음을 표출하기 쉽도록, 더욱 고까운 표정을 지어줬다.
정말로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
그를 보고, 최재훈은-
"그러게요."
서수나가 기대와는 정 반대되는 반응을 보인다.
쓰게 웃는 거였다.
정말로 아쉽다는 듯.
'이걸 참아? 독한 놈.'
서수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겉으론 실로 면목 없다는, 그래서 최재훈에겐 고까울 표정을 되돌려줬다.
그에 최재훈은-
"이렇게 된 이상, 수나 씨."
"응?"
"그때, 논의했던 것 밖에 없겠네요."
"그때 논의했던 거?"
"그거요. 수나 씨가 팀에 도움 된다면 뭐든 할 수 있다며 말씀하셨었잖아요. 저희들이 괜찮다고 하셨는데도 극구."
기억에 없는 소리다.
하지만-
"아, 그거~"
받아들여서 나쁠 것 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자신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소리였으니.
"응, 그래. 이제 뭐, 내가 어떻게 해 줄까? 재훈이가 시키는 거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재훈이가 하고 싶은 건 다 해 봐야지."
그렇게, 인자한 모습으로써 최재훈을 도발하자.
그는 싱긋 웃더니 진행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뒤, 진행자가 말하길.
"여러분, 알립니다. 세연대의 학생 대표 선수인 서수나 선수가, 숨컷 선수로 교체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세연대의 '용병' 자리 중 하나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
서수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분명한 건-
"안 될 거 있어요? 그쵸?"
최재훈이, 자신에게 저리도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수작을 부리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방송 같은 딴따라 짓으로 운 좋게 뜨기 전까진, 보잘것없었던 놈이.
주제도 모르고.
감히 자신에게
"뭔 개소릴 하고 자빠졌어 이 찐따 새끼야!"
울컥, 하고 그렇게 외치려던 서수나는-
"뭔 개-!…"
가까스로 참아냈다.
주변의 분위기를 느낀다.
현재, 모든 이목이 최재훈을 타고 자신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방금 전 그런 대화에 이어서 그런, 흥분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신이 최재훈에게 하려던 짓을 고스란히 당하는 꼴이다.
침착하자.
당황하지 말자.
'아니- 아니지. 차라리 여기서-'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당황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기꺼이 당황해야 할 상황이다.
'멍청한 놈.'
독단적으로 팀 대표인 자신을 교체하다니.
최재훈, 저놈이 알아서 자충수를 둬 준 꼴이니 말이다.
여기서 오히려 -
"아, 크흠. 죄송합니다. 잠깐, 당황해 가지고."
극도로 당황해 하면서-
"재훈아,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선수 교체라니…."
비굴한 태도로 말한다.
마치, 유명 방송인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최재훈에게 시달려 더 이상 아무런 반항도 못하게 된 것처럼.
피해자 포지션으로 가는 거다.
게임을 못했다는 이유로 팀에서 강제로 퇴출을 당한 불쌍한 팀원의 모습을 연기하는 거다.
그렇게만 하면, 최재훈은 단지 게임을 못했다고 독단적으로 팀원을 퇴출시킨 냉정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보유자가 될 것이다.
그 나머지 팀원들인 김수환과 강수화가 불쌍한 팀원의 편을 들어줄 터이니 말이다.
"팀을 위해 뭐든 하시겠다면서요?"
최재훈이 여유로운 비소를 지어 보였다.
'병신인가?'
설마, 지금 자신에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수나가 속으로 폭소하며.
"아, 아, 재훈아, 아니지. 재훈 씨… 퇴출이라뇨… 이렇게 갑작스럽게? 제가 그 정도로 팀한테 방해가 됐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퇴출이라니. 그건 너무… 아니지. 미안해요. 응? 제가 미안해요. 그러니까, 부탁이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가 이거 하늘전 때문에 연습을 얼마나 했는데요… 재훈 씨 말도 빠짐없이 잘 들었잖아요. 예? 제가 무조건 미안하니까,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비굴하게 말했다.
시청자들에게까지 확실히 전달되라고 감정에 복받친 듯 키운 언성으로.
[아니 머임 이 상황?]
[설마 저거 상의 안 된 거야?]
[팝콘!!!!! 가져와!!!!!!!!!!!!!!!!!!!!!!!!!!!!!!!!!!!!!!]
[아니 설마]
[숨컷이 설마 상의도 안 하고 선수를 교체했겠어?]
[교체당한 선수는 그렇다는데?]
[뭐고?]
[ㄹㅇ 숨컷이 그냥 홧김에 교체해버린 건가?]
[얼마나 역겹게 못했으면 ㄷㄷ]
[아니 아무리 못해도 상의도 없이 교체하는 건 아니지.]
"뭐야?"
"무슨 상황이야?"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는 분위기.
서수나는 그 안에서, 숨컷에 대한 곤혹을 느낀다.
그걸 놓치지 않고-
"희은 씨- 아니지, 머그컵 선수! 머그컵 선수가 재훈 씨한테 뭐라고 좀 말씀해 주세요… 저희, 팀원들 말은 답답하다고 듣질 않아 주시니까…."
기세를 몰아나간다.
김희은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거기에는 은근 슬쩍, 최재훈이 게임 실력이 부족한 팀원들을 무시한다는 거짓이 섞여 있지만-
'저 고졸 겜창 년도 생각이 있으면-'
여기에서 최재훈을 손절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저 거짓에 동의하지 않아도, 동의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김희은, 저 여자는 최재훈을 마음에 안 들어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김희은은 답한다.
"서수나 씨."
"네!"
"제가 생각해도, 서수나 씨께서 정말로 팀을 위한다면. 팀을 나가주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불이 붙었다.
최재훈의 인성 논란이 아닌-
서수나의 파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