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교체
세연대 E스포츠 동아리실.
"아, 세연대에 새로 불기 시작한 '연패'의 흐름! 첫 스크림부터 이어져오던 그 흐름이, 이렇게 다시 '연패'의 흐름으로 바뀌고 마는 걸까요!? 분전에도, 분명한 체급 차이로 패배하고 만 세연대! 역시, 레오레 명문대의 이름은 어디 안 갑니다! 아니면, 이번에도 넥슬이!? 고구려대의 승리입니다!"
두 번째 스크림이 종료되었다.
결과는 고구려대가 2승 0패로 1위.
"흠…."
"…."
"…."
[인세대 애들 분위기 봐 ㅋㅋㅋ]
[방민아 표정을 보세요 ㅋㅋ]
[오늘 스크림 끝나고 집합 잡히겠누 ㄷㄷ]
[학우들에게 X를 눌러 JOY를 표하세요]
[나만아니면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세대의 이름을 더럽힌 죄 달게 받아라]
[저러다간 인세대의 이름이 피로 더럽혀지겠는데요]
인세대가 0승 2패로 3위.
그리고.
세연대는 인세대 상대로 승리하는 덴 성공했으나, 고구려대를 상대로 패함으로써 1승 1패.
2위였다.
"넥슬 선수, 첫 스크림에서 세연대에게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그 그 과거를 훌륭히 설욕했습니다."
[숨컵 듀오 힘을 못 쓰네 ㄹㅇ;]
[ㄹㅇ; 더이상 짱구가 아니네]
[봉미선이라도 등판했나]
[어떡해 ㅋ 봇이랑 탑이 완전 밀리는데]
[봇이 봉 이고 탑이 미선이었네 ㄷㄷ]
[??? : 지는 팀 이기게 하는 게 가장 그림이 좋잖아요]
[속보) 좋은 그림을 추구하던 빈센트 반 숨컷 불우한 환경 속에서 쓸쓸히 사망]
"그 승리에 역전에 대해! 아주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요. 당사자의 의견을 말씀하시자면?"
하늘전은 자신의 홈그라운드다.
그러니, 여기에선 그 꼴같잖은 숨컷도 자신에겐 안 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팀원 경매, 첫 스크림에 임했었으나 참패하여 그 이후 줄곧 이를 갈고 있었던 넥슬.
그 오기가 결실을 보자, 만면에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도 없이. 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오오! 엄청난 자신감! 그 근거가 뭐죠?"
"하늘전은 하늘전이고, 고구려대는 고구려대잖아요?"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실로 다양했다.
이곳은 솔랭이 아닌 하늘전이니, 숨컷이 아닌 자신의 무대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숨컷을 내리깎고, 자신을 추켜세운다.
그리고 고구려대는 고구려대다.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컄ㅋㅋㅋㅋㅋㅋㅋ취한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지 ㅋㅋㅋ]
[역시 하늘전의 넥슬 ㄷㄷㄷ]
[이번 시즌에도 보여주나... 숨컷 상대로?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고구려대의 자랑 넥슬!]
그 공을 본인의 소속인 학교에 돌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짧고 굵은 소감이었다.
"""고구려대! 고구려대! 고구려대!"
""
첫 번째 스크림의 주인공이 누가 봐도 세연대였다면, 두 번째 스크림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고구려대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넥슬이 다시 한번 숨컷을 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의 반응을 즐기기 위해.
허나-
"방금 미드에서-"
"거기가 좀 아쉽긴 했슴다."
그는 팀원들과 방금 게임에 대해서 피드백을 하느라 그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
기분 좋았던 그녀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하."
다시 여유롭게 웃는다.
오늘 게임으로 느낀 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팀이 자리를 잡아갈수록, 세연대팀의 문제 또한 부각될 것이다.
분명, 세연대 팀 미드정글 듀오의 전력은 모든 팀을 통틀어서 최강이다.
하지만, 하늘전은 팀 게임이다.
그렇게, 팀 자체의 전력을 놓고 비교하자면?
모든 팀을 통틀어서 최약이다.
"…."
다음 연습경기 때.
세연대와 고구려대.
숨컷과 자신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 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가 숨컷에게 다가갔다.
"숨컷 씨."
처음으로, 이제서야.
그에게 말을 붙였다.
드디어 그를 상대로 여유를, 우위를 느꼈기에.
풋내기에 불과한 그에게 손상당했던 그녀의 자존심이 드디어 회복되었다.
"아, 넥슬 씨."
"오늘 고생하셨어요."
"넥슬 씨도요."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인사 나누네요."
"그러게요."
넥슬의 표면적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최재훈은 이미 그 안에 있는 그녀의 본심을 느끼고 있었다.
풋내기인 니 따위가 내 위에 있는 건 인정 못한다.
"와… 요즘 어딜 가도 그냥 숨컷 님 이야기가. '방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되셨다고'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같이 일하게 돼서, 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영광이네요."
그 어조는 정중하기 그지없었으나.
"영광은 제가 더 영광이죠. 그리고 뭐, 제가 아무리 대단해 봐야 넥슬님 만하겠어요?"
방송 선배이자 터줏대감인 넥슬이 그렇게 말하면, 숨컷은 겸양을 떨며 그녀를 추켜세워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대화는, 그녀가 자신의 우위를 만끽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넥슬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이고, 숨컷 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영광이네요. 우리 그러면 이번 대회, 잘 해 봐요. 서로 져도, 뒤끝 없기예요?"
라고.
-져도 찌질대지 말고 쿨하게 받아들여라.
그런 의도를 담아.
그에 최재훈 또한,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휴, 제가 뒤끝 가질 일 절대로 없을 테니, 걱정 하덜덜 마세요."
"…."
넥슬은 그 안에서 자신감과 여유를 읽고, 그렇게 해석했다.
'어차피 내가 이겨서 그럴 일 없을 거니까, 니나 잘하라고.'
가소로웠지만, 그녀는 여유롭게 웃을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이 이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
"예, 걱정. 안 하죠. 당연히."
그렇게 둘은 아주 사이좋게, 서로 미소 지으며 인사를 마쳤다.
그렇게 헤어진 이후 넥슬은 자리로 돌아갔고.
그때, 방민아 팀의 선수 중 한 명이 말한다.
"아, 그. 저 진행자 님?"
"아, 네 말씀하세요."
"저희 인세대팀, 선수 교체하려고 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처음 선별된 대표 선수들은, 학교에서 가장 티어가 높은 이들을 추려낸 것이다.
하지만.
하늘전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솔랭의 티어가 아닌, 팀 게임에 대한 소질.
그리고, 용병과의 궁합이었다.
그렇기에, 각 팀은 최상의 상태로 임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자유롭게 선수교체를 할 수 있었다.
"…."
최재훈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 * *
두 번째 스크림이 끝난 뒤.
세연대 팀은 해산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동아리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계를 겪은 지금,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세연대 팀은 첫 번째 스크림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줄곧 좋은 분위기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고작 첫 번째 패배로.
그 분위기는 완전히 박살이 나서 시궁창으로 쳐 박혀 버렸다.
"그, 역시. 수나 씨가 좀 더 수비적인 챔피언으로 가고. 수환 씨는 유틸 서포터 말고, 좀 더 공격적인 서포터 해 주시는 게 베스트일 것 같은데."
"지금 우리 탓 하시는 거예요?"
"탓이 아니라, 조율을 해 나가자는 거죠."
"누굴 바보로 아나. 그게 그 말이잖아요!"
김수환의 태도 때문이었다.
사실.
김수환 그도 알았다.
이번 게임에서 진 건, '봇 차이'때문임을.
헌데도, 그 점에 대해서 정중하게 개선을 제안하는 최재훈을 공격적으로 대한다.
처음부터, 시종일관 그랬다.
열등감.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남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차별로써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가 숨컷을 대상으로 그리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
"수환아, 진정해."
서수나 때문이었다.
원래.
김수환은 숨컷의 팬이었다.
여성들이 지배하는 레오레 업계에서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수고 정상에 오른 그를 존경했다.
그도 남자이자, 레오레 플레이어였기에.
그런 그는, 서수나와 이번 하늘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었다.
서수나는 잘 생기고 조건도 좋은 후배인 김수환에게 어김없이 친절한 선배를 표방함으로써 접근했고.
그렇게, 그와의 관계를 좁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녀가 숨컷과 개인적 친분이 있다며, 숨컷을 섭외하겠다며 나서자-김수환은 들떠서 물었다.
-어떻게, 잘 됐어요?
-쓰, 그게….
-왜 그래요?
숨컷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어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만만하게 여기고 있던 서수나였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웬 여자가 자신에게 망신을 줬다.
그리고 그건 그녀가 생각하기에, 최재훈 때문이었다.
서수나는 김수환에게 그 이야기를 약간 변형해서 말했다.
숨컷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말이다.
즉.
-헐, 대박! 아니, 나 그 사람 진짜 좋게 봤는데. 와….
서수나가 둘 사이를 이간질한 것이다.
그녀에겐 대수로울 일도 아니었다.
서수나가 김수환을 조심스럽게 달랜 뒤, 숨컷을 향해 말했다.
"그, 내 생각도 조금 그렇긴 해. 재훈아. 아무리 봐도 그 게임은, 우리 잘못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우린 너가 훈련하고, 실전에서도 그렇게 했을 뿐이잖아. 그런데 지더니 갑자기 우리 탓이라니. 그건 조금, 무책임하지 않나 싶어. 안 그래, 수화야?"
"예? 어, 어…."
강수화가 숨컷과 서수나의 눈치를 봤다.
솔직히 말해서.
그 역시 숨컷과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수화는 어떻게 생각해-'도 아닌.
'안 그래, 수화야?'.
의견을 묻는 어조가 아니었다.
소위 답정너라 말하는, 강압적인 화법.
강수화가 아무리 숨컷의 팬이라곤 하나.
그와 함께할 시간은 짧고, 선배인 서수나와 함께할 시간은 길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 예. 저도 뭐… 그렇게 생각해요."
"들었지?"
"…."
방금, 서수나의 행동은 얼핏 보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겉만 이쁘게 꾸몄을 뿐.
그 포장지를 벗겨 보면.
서수나가 한 행동은.
강압적으로 강수화를 끌어들인 뒤, 김수환과 그녀를 등에 업고.
'생산적인 조율, 대화'를 요구하기 위한 최재훈의 발언을 의도적으로 곡해함으로써.
그를, '자신의 무능함을 팀원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리더'로 만든 것이고.
'입장 상 우위에 서기 위한 정치질'.
그게, 숨컷이 생산적인 대화를 요구하자 서수나가 보인 반응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갑자기 오빠랑 친한 척 하면서, 나 오빠 여친이냐고 묻더니. 그러면 어쩔 거냐니까, 완전 개 꼬장을 부리던데?'
서수나라는 이름을 들은 최재은에게서 그녀와 예전에 있었던 통화에 대해 전해 듣고.
그녀에 대한 '최재훈'의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서 되살린 그였다.
그렇게, 그의 안에서 그려지고 있던 서수나의 이미지가 지금 완성됐다.
그 이미지에 따르면 서수나는-
'쌉새낄세.'
절대로 같이 행동하기 싫은 부류였다.
'성격이 좋아도 모자를 판에….'
안 그래도 실력에 있어서 애로사항이 꽃피는 상황인데.
성격까지 저래서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이거 힘들겠구만.'
저 인간을 데리고 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수 교체.'
그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다.
하지만-
"…."
"…."
강수화는 눈치를 보고, 김수환은 노려본다.
자신의 말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김희은은 스케쥴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서수나 교체를 제안해 봤자.
받아들여지지 않을 공산이 높았다.
지금 이 자리에선 무슨 애기를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사실, 김희은이 있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확, 세 번째 스크림 때 학생들 앞에서 헬프콜 쳐 버려? 이 새끼 좀 어떻게 해 달라고?'
…
'아니, 지금 상태에서 그건 너무 위험해.'
그 많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과, 선수 대표 세 명의 대립하는 구도가 나온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알았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죠."
최재훈은 그 답을 알았다.
* * *
두 번째 스크림이 끝난 다음날.
"무슨 일이에요?"
김수환이 핸드폰 너머 대상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숨컷이었다.
-만나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괜찮으시면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전 그쪽이랑 할 얘기 없는데요?"
-그러면 제가 두 배로 부탁드리죠.
그 능청스러우면서도 정중한 태도에.
서수나가 그의 안에 만들어 놓은 부정적인 숨컷의 이미지가 희미해졌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해 봐요."
-둘이서만, 직접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은데요.
"저 바빠요."
-카페 가서 커피 사는 시간 정도만 내 주시면 됩니다.
"…."
서수나의 얘기에 따르면, 숨컷은 그야말로 상종 못할 인간 말종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에게선 서수나가 말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좋아요."
결국, 김수환은 그와 직접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김수환의 적대적인 태도.
'하, 그래 시발. 잘난 게 죄지.'
최재훈은 평소처럼 그걸 열등감의 부산물이라 생각했다.
허나.
갈수록 무언가 다름을 느꼈다.
여태껏 열등감을 향해왔던 부류들과는 다른 느낌.
최재훈은 왜인지 거기에, 서수나.
그 정치꾼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 예감했다.
"아, 안녕하세요."
약속 장소인 카페.
그 앞에서 대기하던 최재훈이, 김수환을 맞이했다.
"그래서, 그 직접 봐야 할 수 있는 중요한 얘기란 게 뭐예요?"
카페에 자리를 잡은 둘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저희가 이번에. 팀이 됐잖아요?"
"바로 본론만 얘기해 주세요."
그 똑 부러지게 단호한 태도에 최재훈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수환 씨."
"예."
"절 왜 그렇게 싫어하세요?"
"…."
예상치 못한,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인 말에 김수환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엄청 당당하시네요?"
"적어도, 남한테 부끄러울 인생을 살아오진 않아서."
"하, 웃겨."
김수환이 가당찮다며 비소를 흘린 뒤. 말했다.
"왜 그랬어요?"
"네?"
"수나 누나한테 왜 그랬냐고요. 이야기 다 들었어요."
"…?"
"하,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억울한 척이나 하려고, 바쁜 사람 부른 거예요?"
"아니, 잠깐만요."
"뭐요."
최재훈이 무언가 골똘히 고민한 뒤 말했다.
"혹시, 제가 그 수나 씨 기억 못한 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겨우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아니, 그럼 도대체 뭔데요?"
"…?"
그쯤 되자, 김수환도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숨컷.
지금 그가 표현하고 있는 억울함의 농도는.
말론 브란도가 빙의하는 게 아닌 이상, 연기로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김수환은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
서수나.
그녀가 자신에게 말해준 최재훈의 이야기를.
최재훈에게 전해주기 시작했다.
가관이었다.
이야기를 진행해 나감에 따라 역변하는 최재훈의 표정.
저게 만약에 연기라면, 그를 놓치는 있는 헐리우드는 인생 절반을 손해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최재훈은 억울해서 참으로 할 말 많은 얼굴을 했지만, 그럼에도 김수환의 이야기를 끊는 일 한 번 없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서수나가 김수환 안에 만들어 놓은 숨컷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희미해지고.
그만큼, 김수환이 원래 숨컷에게 갖고 있었던 이미지가 선명해진다.
그 긍정적인, 김수환이 존경하는 이미지가.
이야기가 끝났을 때.
김수환이 최재훈에게 드러내는 적의는,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최재훈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김수환 쪽에서 먼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에요…?"
최재훈이 피곤함이 물씬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제가, 별거 아닐 땐 서수나 그 인간 좋아라 하면서 대하다가.
성공하자마자 냉정하게 손절한 쓰레기 새끼라는 거죠?"
"아닌…가요?"
"일단, 정정할게요."
최재훈이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인간이랑, 저랑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수나 누나- 아니, 그 사람은. 그쪽- 아니지, 재훈 씨가 먼저… 호감 표했다고…."
"혼자서 학교 조용히 다니고 싶다는 사람, 지 착한 거 자랑하겠답시고 계속 귀찮게 한 거 상대해준 것뿐이에요."
"뜨니까 냉정하게 손절한 건…."
"그건- 아니, 오히려 반댄데? 지금까지 연락 없다가, 나 뜨니까 그제서야 연락한 새끼가 도대체 뭐라는 거지?"
"그전까지 연락을 한 번도 안 했다고요?"
"예. 뭐, 통화 내역이라도 보여드릴까요?"
"아니, 거의 몇 달인데 그걸 어떻게 다…."
"저 몇 달 동안 통화한 거라곤 가족이랑 치킨집이 다라서. 금방 확인함."
"…예?"
숨컷이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내뱉자-
"큭…."
김수환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중얼거렸다.
"쓰레기 새끼."
"아, 왜요 또."
"아, 아! 재훈 씨 말고요! 서수나, 그 새끼요!"
"아, 그러면 인정이지."
그러던 때, 문득 주저가 된다.
이렇게, 숨컷의 얘기만 듣고 단정 지어도 되는 걸까?
'….'
그런데, 그렇게 따지면 먼저.
서수나의 이야기만 듣고, 숨컷을 쓰레기라 단정 짓지 않았던가.
"재훈 씨."
"네?"
"…미안해요, 정말로."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면 됐어요."
그러자, 김수환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쉽게 용서해 주셔도 돼요?"
"그렇게 쉽게 제 얘기 믿어 주시면, 고려해 보죠."
"…사실, 저 그 사람이랑 썸 타기 시작할 때. 주변에서 안 좋은 얘기 들려오긴 했었어요. 그때는, 아 얘네들이 열폭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알죠? 그 사람, 겉으로 보기엔 어떤 사람인지."
"아, 예, 뭐."
"그런데… 아~"
그가 푹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쌌다.
"반성하게 되네요. 진짜. 김수환, 이런 멍청한 새끼. 이게 진짜 뭐하는 건지."
…
"미안해요, 정말로."
"그렇게 미안하면-"
"예?"
"저 좀 도와주실래요?"
"아. 아! 예! 물론이죠.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선 뭐든지-"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봤거든요."
"네?"
"그, 휴학생이나 방송인은 학교 대표 선수로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지요."
"…예?"
"없더라고요. 그, 제가 참여했었던 경매 성금도 아직 기부 안 했고. 다른 규정들도 그렇고. 그러니까, 용병인 제가 지금 선수로 교체 참가해도 딱히 문제가 없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자리. 지금 수화 씨, 수환 씨, 그리고 그 새끼. 이렇게 세 명으로, 자리가 꽉 차 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같이 자리 좀 청소하죠. 서수나, 그 새끼 자리로다가."
"아니, 잠깐. 잠깐만요."
"아니, 알았. 알았어요. 왜용?"
"아니-"
그가 미간 사이를 주물렀다.
머리가 복잡하다.
아까부터 느끼던 위화감.
그게 착각이 아니었다고?
"재훈 씨."
"네?"
"설마-"
그가 신기루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학교 학생이에요?"
그에, 최재훈 또한 신기루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 아니, 몰랐어요?"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이걸 왜 몰라요? 알고 섭외한 거 아니었어요?"
"아니, 섭외는 그 인간이 담당한 거라…."
"아니, 그러면 그 인간이 안 말해 줬어요?"
"…안 말해 주던데요?"
"아니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새낀 왜 내가 이 학교 학생이란 걸 알면서도. 굳이 용병으로 섭외한 거지?"
"…그 새끼 생각을 누가 알겠어요."
"하긴, 알아봐야 기분만 나빠지겠네요. 그 또라이 새끼. 어쨌거나, 어떻게. 도와주실래요?"
최재훈이 피식 웃으며 묻자, 김수환 또한 똑같은 표정을 되돌려주었다.
* * *
이차 연습이 끝난 뒤.
서수나는 김희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했다.
문자가 아니라 통화로.
문자는 흔적이 남기에.
-아, 수나 씨.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심까?
"아 희은 씨,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 이번에. 두 번째 스크림 끝나고, 재훈이가 피드백 한다고 소집했었거든요?"
-아, 넵! 그거, 죄송함다! 참가하지 못해서.
"아, 예. 괜찮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넵? 그럼 뭐가 문젬까?
“그 사실… 재훈이가 말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그녀가 잠깐의 주저 뒤 말했다.
"그, 피드백 과정에서. 재훈이가, 김희은 선수에 대해 조금 안 좋게 얘기를 하셔 가지고요… 재훈이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아셔야 할 것 같아 가지고…."
서수나가 김희은에게 전화한 용건은 간단했다.
이간질하기 위해서다.
김희은과 최재훈의 사이를 말이다.
이번, 팀 내에서 최재훈의 입지를 조금 더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그럼으로써, 그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그가 더 이상 지금의 '연기'를 이어가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그럼으로써, 본래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돌아온 그를 뜻대로 휘어잡기 위해.
서수나가 지난 며칠간, 팀 활동을 하며 알게 된 바.
김희은은, 최재훈을- 아주 석연찮아 한다.
그 싹싹하기 그지없는 김희은이, 유일하게 매몰차게 구는 수준이다.
혐오한다 해도 될 정도겠지.
그러니만큼, 이간질이 잘 먹혀들 것이다.
'니까짓 게 감히.'
입고 다니는 꼬라지 보면 가정 수준도 별 볼일 없는 찐따, 아싸 새끼.
그렇게 여기는 숨컷에게 배신 당했다고.
굴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서수나였다.
그녀는 지금 감정에 눈이 먼 상태였다.
최재훈에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게 위해, 뭐든 서슴지 않을 정도로.
"하, 재훈이 걔는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옛날부터 제가 조심하라고 해도-"
그녀가 혼을 실어서 이간질을, 연기를 이어나가던 그때-
-알겠습니다.
"…예?"
평소 김희은의 이미지로는 떠올릴 수 없는,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감정으로써, 언짢음이 표현된 목소리가.
-용건은 그것뿐이신가요?
"어, 어? 어, 예…."
-알겠습니다.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뚝.
"…뭐야?"
김희은의 애매한 반응에, 서수나는 불길함을 느꼈다.
그녀는 그 불길함이라는 불씨를 짓밟아 꺼트렸지만-
며칠 뒤.
세 번째 스크림 당일 날.
그 불씨가 되살아났다.
커다란 업화로.
* * *
세 번째 스크림이 끝나고 난 뒤.
넥슬의 콧대는 더욱 높아져 있었다.
오늘, 고구려대는 세연대에게.
그러니까, 그녀는 숨컷에게.
두 번째 스크림보다 더욱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 경기로 그녀는 확신했다.
세연대는.
숨컷은.
절대로 자신에게 승리하지 못한다.
'세연대 학생들의 수준'이 저래서야 말이다.
그녀가 아주 여유로운 기분으로, 숨컷에게 '인사'를 하러 가려던 찰나였다.
그가 진행자에게 다가가더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길래 그러는 걸까.
대화하는 진행자의 표정은 아주 역동적이었다.
이내.
진행자가 말했다.
"여러분, 알립니다. 세연대의 학생 대표 선수인 서수나 선수가, 숨컷 선수로 교체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세연대의 '용병' 자리 중 하나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그에.
"?"
"?"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 위에 '?'를 띄웠다.
[?]
[??]
[?]
채팅창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그 중에서.
유독 많은 갈고리를 띄운 이들이 있었다.
"?????????????????????????"
일단은 넥슬.
그녀가 당황해서, 흥분해서 외쳤다.
"아니, 뭔. 뭔 개솔- 아니. 그딴 게 가능해!?"
그에 최재훈이-
"안 될 거 있어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쵸?"
"?????????????????? 뭔, 개-"
넥슬보다 더욱 많은 갈고리를 띄운 서수나를 보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