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연습
"어이, 김희은이~"
TEAM BAY의 숙소.
팀원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김희은의 주위를 둘러쌌다.
"어이 김희은이~ 어제 보니까~ 숨컷이랑 재미 많이 봤더만~"
"큭큭, 어떻디?"
"기분 좋았나?"
최근 며칠 동안 숨컷과의 멸망전 좌절로 뚱해 있었던 김희은이, 어제 숨컷과의 일로 기분이 좀 풀렸나 확인하기 위해서다.
"응?"
그렇게 당황한다.
필시 활기를 되찾았을 줄 알았던 그녀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한 표정으로 칠해져 있었다.
"임마 이거, 왜 이래."
"서, 설마!?"
"마사카!"
아직도 무언가에 생각에 잠겨있던 김희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해…."
"오해?"
"오해였슴다…."
"뭐가 오해야?"
"SGF에서 숨컷 님이 제 열혈 팬이라 했던 거. 가면 쓰고 있던 저를…."
"서, 설마!?"
"마, 마사카!"
"페이스인 줄 알고 착각해서 그렇게 좋아했던 거라고…."
사방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워~"
"옴마야…."
"오마이깟…."
그녀들이 김희은의 상황에 단번에 이입했다.
자신의 열혈팬이라 생각하게 만들었던 '숨컷'의 호의가.
단순히, 다른 프로와 착각해서 그럤을 뿐이라니.
"나, 심장… 코장이 아파…."
"쿳쏘…! 이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고!"
"아…. 젠장. 겨울이라 눈이… 건조한걸."
"이게, NTR인가 뭔가냐?"
그것도, 그 프로가 페이스라니.
여자로서.
그리고 프로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 희은아… 힘내라…."
"그래 임마. 세상에 어? 니 남자팬만 몇 명인데. 아니, 갑자기 빡치네."
"아니, 그러게. 이거 어이없는 새끼네? 남자팬이 그렇게 많은데 숨컷까지 가지려 한 거야!?"
"매달아!!!- 는, 농담이고. 아니, 희은아. 진짜 괜찮냐?"
그녀들이 호들갑을 떨어도 여전히 복잡한 김희은 때문에 다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에, 김희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응?"
김희은이 회상하는 듯 먼 곳을 쳐다보는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그 뒤에, 저 같은 사람을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냐면서 웃으며 말하시는데… 그 웃는 모습이 너무…."
그녀의 표정이 무의식적으로 변했다.
그 표정은, 어딘가 달뜬 듯.
심취한 듯.
황홀한 듯 보였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팀원들은 어딘가 얼탱이가 터진 듯.
빡친 듯 보였다.
"…아니."
"이 새끼 이 염장 지르려고 빌드업 한 거야?"
"아니 진짜 어이가 없는 새끼네."
"뭐야, 그럼 결과적으로 좋은 거 아니야? 근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머리가 복잡해서 그렇슴다…."
"뭐가 왜 어떻게 복잡한데."
"진짜 희은아, 이번엔 단어 선택 잘해라. 제 팬들과 숨컷 중에 누굴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딴 대답 나오면 진짜."
"우릴 살인자로 만들지 말아다오."
김희은이 다시 복잡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숨컷 님을 대할 때마다, 계속 저도 모르게 까칠하게 굴어 버리는데. 제가 왜 이러는데 모르겠어요. 숨컷 님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 모습을 바라본 팀원들이, 눈을-
꿈뻑.
꿈뻑.
꿈뻑.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니 이 새끼 무슨, 순정만화 남자 주인공이야?"
"너무 풋풋해서 오히려 좀 역겨울 정도네."
"우린 여기서 뭐, '젊구만~ '이렇게 대사 쳐 주면 되는 건가?"
"넌 진짜, 애니 좀 적당히 봐야겠다."
흥미가 사라진 팀원들이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미드 라이너인 라이온하트, 김사임을 제외하고.
"야, 그래서."
"네?"
"어떻게, 이번 하늘전. 잘 될 것 같냐? 말 많던데, 이번에 너랑 숨컷 둘이서. 세연대 처음으로 우승 시켜주는 건 아닌가 하고."
"아."
게임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시 평소의 근심걱정 없는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와서 생각에 잠긴다.
"솔직히-"
"솔직히."
"…."
그녀가 잠깐 동안 더 고민한 뒤 말했다.
"힘들 것 같슴다."
"오~ 왜?"
"전체적인 전력의 밸런스가 너무 안 좋아요."
"그거, 탑이랑 봇 수준이 너무 낮다 이거지?"
김희은은 침묵으로써 긍정했다.
"하긴. 탑이랑 봇 둘 다, 너무 무난하더라. 그냥 딱, 그 점수 실력이야. 팀 게임 쪽에 특별한 재능 없이. 그마까지 있는데, 그런 애들이랑 붙는 건 힘들어 보이더라. 이번에 너희가 이겼던 건, 아직 팀 끼리 단합이 안 돼서. 숨컷이랑 둘이서 캐리할 수 있어서 그랬던 거고. 팀으로서 좀 연습이 되다보면, 숨컷이랑 너희 둘끼리 끌고 나가는덴 한계가 있을 거다. 이거고."
"맞슴다."
"흠, 그래서. 어떻게. 해결책은 있고?"
"뾰족한 수는 없고. 탑이랑 봇 훈련시키는 게 최선일 것 같슴다. 최선일 것 같은데…."
"같은데?"
"잘 안 될 것 같슴다."
"왜?"
김희은이 다섯이서 서로 자기소개를 나눴던 그때를 다시 떠올렸다.
그때.
바텀인 서수나와 김수환, 그리고 숨컷 사이에 미흐르던 미묘한 기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팀이 될 것 같지가 않슴다."
"음, 그래서 어떻게. GG?"
그러자 김희은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래도, 해낼 검다!"
활기차게 파이팅을 했다.
"반드시 해내서 숨컷 님께!…"
말을 잇다가도, 숨컷을 떠올리는 순간 복잡해지는 얼굴.
그녀가 다급히 원래대로 되돌아와 말했다.
"아무튼, 그런 검다!"
"그래, 그런 거네."
김사임이 피식 웃으며 젊은 청춘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 * *
"자, 오늘은 여기까지. 고생하셨어요, 지현 씨."
"앗, 감사합니다! 재훈 씨야 말로, 오늘도 부족한 절 가르쳐 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당!"
권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최재훈도 흐뭇하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고~ 별말씀을요."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그 모습에 권지현은 또 다시-
"앗! 아니예요~"
고개를 꾸벅.
"아이고 아니긴요~"
최재훈이 꾸벅.
"정말 아니예요~"
권지현이 꾸벅.
그렇게 서로 허리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고 있자니-
"…머하세여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최재은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 헤헤…."
그에 권지현이 고개를 꾸벅 숙인 상태로 헤실헤실 웃곤, 멋쩍어서 다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려고 하자-
"어, 어?"
권지현의 절망적인 운동신경으론 90도 인사마저도 벅찼던 걸까.
그녀의 달팽이관이 어지러움 신호를 보내 그녀가 비틀거렸다.
그 상태로, 잘못 뒷걸음질을 쳐.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지려던 찰나-
"어구-"
최재훈이 깜짝 놀라서, 그녀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만큼 힘이 들어간 걸까.
권지현의 몸이 거세게 당겨져-
최재훈보다 키가 작은 그녀가 그의 가슴팍에 안면을 박고- 뒤로 튕겨났다.
"익!"
그렇게 또 다시 중심을 잃고 넘어가려는 권지현을, 최재훈은 이번엔 전보다 조심스럽게 잡아 당겨.
반대쪽 팔로 그녀의 등어깨를 감쌌다.
그렇게-
"…."
무사히 최재훈의 품에 안착한 권지현.
그녀의 눈 바로 앞에, 최재훈의 몸이 펼쳐졌다.
이내, 섬유 유연제, 샴푸가 섞여 자아내는 향기가 그녀의 코를 간지럽힌다.
그걸 신호로-
"아, 앗! 죄, 죄, 죄송해요!"
최재훈에게서 급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또 그렇게 해서 넘어질 줄 알고.
미리 그녀의 등어깨를 받치고 있었던 최재훈의 팔에 막혀, 얼마 떨어지지 못하고.
그의 코앞에서, 그를 올려다 보는 형태가 되었고.
최재훈이, 그녀를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었다.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 우리 지현 씨. 진짜 가지가지 하시네."
"아, 앗… 죄, 죄, 죄송…."
권지현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어졌다.
"팔, 괜찮아요? 너무 세게 잡아당겼죠?"
"아, 아녜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최재훈에게서 벗어났는데도, 그녀의 얼굴에 붙은 불을 다스려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거세져서 그녀가 횡설수설 랩퍼가 됐다.
그런 그녀를, 최재훈은 인자한 미소로 바라봐 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 둘을.
최재은은 기가 차서 바라볼 뿐이었다.
도저히 이 달다구리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여동생은 친히 나서기로 했다.
"그래서 님들, 밥 언제 먹음?"
"아, 지금 먹어야지. 지현 씨, 재은이랑 같이 앉아 계세요."
"앗! 아… 넹…."
최재은이 자신의 옆에 앉은 권지현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혀를 찼다.
"헝…."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고.
가까스로 얼굴의 불을 다스린 권지현이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재훈 씨! 대단하세요!"
"제가 좀."
"두서 없는 거 봐."
"앗! 그게 아니라, 어제 그! 하늘전이요!"
"아~"
"세연대의 자랑 숨컷! 세연대의 자랑 숨컷!"
최재은이 두 팔을 들썩이며 그러자, 권지현이 그걸 따라하다 말한다.
"그런데, 진짜 세연대의 자랑이시네요! 어? 엉? 아?"
"잉?"
"아?"
"아, 그게 아니라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재훈 씨!"
"넹?"
"재훈 씨는 세연대 학생이시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왜, 용병으로 참가하신 거예요?"
"…."
"정말로, 알고 싶나?"
짤그랑.
최재은이 진지한 얼굴로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헉… 넵!"
"…그렇군."
그리곤 고갤 끄덕이더니, 다시 젓가락을 집곤 말없이 식사를 이어갔다.
"…?"
"뭐하냐."
"사실, 나도 궁금했는데. 오빠 왜 용병으로 참가한 거임?"
"사실, 오빠도 잘 몰라."
"잉?"
"오빠도 이상한 거, 팀원 경매 끝나고 알았어."
"뭐, 따로 규칙이라도 있는 건가? 방송인이나 휴학생은 선수로 참가 못하는 그런."
"글쎄다."
"그, 일단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재훈 씨가 선수로 들어가면, 용병 한 명 더 데려올 수 있어서. 전력 급상승이잖아요!"
그에, 최재은이 '오~' 음흉하게 소릴 내며 말한다.
"권씨~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자기를 용병으로 데려가서, 같이 팀으로서 짝짝꿍을 맞추고 싶다는 의미인가?"
"앗! 그러면 좋겠다!"
"노잼."
"사실, 저도 어제 생각해 봤거든요."
최재훈이 식기를 내려놓고 턱을 괬다.
"이걸 내 쪽에서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근데. 지금 이걸 이야길 꺼내서 그쪽에서 '아맞당.'하면서 저를 선수로 전환시켜주면. 그, 선수 중 한 명이 빠져야 하잖아요?"
"아!"
"그 선수들도, 하늘전 대비해서 연습 많이 했을 건데. 그러면 너무, 정이 없는 건가 싶어서. 일단, 보류 중이에요."
"역시 재훈 씨! 배려심 넘치세요!"
"역시 재훈 씨, 나약해 빠졌군."
"아~ 뭐. 어차피 우승만 하면 되는 거 아냐~?"
"맞아요! 맞아요!"
"일리 있어."
그렇게 오늘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일과가 진행되다 끝나고.
"그럼, 저는 이제 팀 연습을 하러-"
"앗, 넵! 수고하세요 재훈 씨! 저도 이만 방송하러 가 볼게요!"
최재훈이 하늘전 팀들과 만나서 연습하기로 한 시각 5분 전이 되자, 지정된 다중 음성 채팅방으로 접속했다.
-어, 안녕하세요! 숨컷 씨!
숨컷과 같이, 시간 전에 먼저 와서 대기하고 있던 탑이 그를 반겼다.
"아~ 안녕하세요. 수화 씨. 머그컵 선수도 안녕하세요~"
-아! 예! 예, 뭐, 그… 안녕하세요.
반갑게 반응했다가, 곧바로 시큰둥해져서 답하는 김희은 또한.
"음… 두 분은 아직 안 오셨네요?"
그렇게 세 명이 모였다.
바텀 듀오인 김수환과 서수나는 아직이었다.
-아, 뭐. 아직 약속시간까지 좀 남았으니까요.
"그렇죠?"
다행히.
-아, 여러분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미안해요~
둘은 정각에 딱 맞춰 도착했다.
최재훈은 '시계 보면서 딱 맞춰 들어오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 그러면. 가 볼까요?"
팀 연습은 레오레의 또 다른 랭크 게임 모드인 '5:5'모드로 진행되었다.
현재, 세연대에서 레오레 팀이 빛이요 소금이자 태양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일까.
"아, 수화 씨 방금 그런 상황이 나올 때는 조금 더 수비적으로. 저랑 머그컵 선수가 올 때까지 버틴다는 느낌으로-"
-아, 오케이. 무슨 말씀인지 감잡히네요.
"수나 씨. 바텀은 좀 더 수비적으로 무난한 챔피언을 기용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알겠어.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스크림 날이 다가왔다.
그리고 두 번째 스크림날.
세연대 팀은 첫 번째 스크림과 달리, 1승 1패로.
2위를 기록했고.
"이건, 어쩔 수 없겠구만."
최재훈은 주도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변화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