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 하늘전 1
하늘전의 다른 대학 축제들과 차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그 진행 기간에 있었다.
보통 개강 시즌에 진행되는 대학 축제들과 달리.
하늘전은 연말 시즌, 그러니까 기간 상 방학이라 할 수 있는 종강 시즌에 진행됐다.
그만큼,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축제에 몰두할 수 있었기에.
하늘전의 열기는 단연코, 이렇다 할 전통 축제가 존재하지 않는 국내에서 최대 규모 급 축제라 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
[근데 걔네 종강 시즌에 불려나가는 거 개극혐이겠네 ㅋㅋ]
[ㄹㅇ ㅋㅋ]
[군 입대하기 전에 K-징용 사전체험 ㄷㄷ]
하지만 일견에서는 그런 이야기도 나온다.
자고로 대학 축제가 즐거운 것은, 학교에 갇혀 지내다시피하는 학기 중에 진행해서 기분 전환이 되기에 그렇게 즐거운 거라고.
갈 곳, 즐길 것 널리고 널린 종강 시즌에 저렇게 학교로 소환해서 일을 시키면.
있던 의욕도 사라질 거라고.
[기껏 해 봐야 대학 축제잖아 ㅋㅋ]
기껏 해 봐야 대학 축제가 아닌가.
[아닌데 ㅋㅋ]
아니었다.
하늘전은 기껏 해 봐야 대학 축제인 수준이 아니었다.
기껏 해 봐야 그 지역 안에서 이름을 날릴 뿐인 여타 대학교들의 축제들과 달리.
하늘전의 인기는 말 그대로 전국구 적이었다.
축제 구성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여타 대학교들의 그저 형식적으로 진행될 뿐인 어디서 보고 또 본 밋밋한 구성의 축제와 달리.
국내 최고의 명문대를, 공부가 아닌 국내 인기 스포츠 종목들로 가려낸다는 그 듣기만 해도 불타오르게 하는 발상!
구성!
투쟁심.
경쟁심.
승부심 등.
젊은 혈기와 열정으로 가득 찬 그 대회는, 분위기부터가.
열기부터가 다른 축제들과는 궤를 달리했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축제 중 하나가 되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그 선호도가 SGF, 부산 음악 축제와 비견될 정도니 말 다했다.
그렇게 전국에서부터 젊은 관람객들이.
젊은 관심들이 집중되는.
바야흐로, 대한민국 청년들의 대축제였다.
[전혀 개극혐 아님 ㅋㅋ]
[화장실에서 점심 먹는 아싸찐따도 하늘전은 참가한다더라 ㅋ]
[뭐냐? SKY에서는 화장실에도 식당이 있냐?]
[나 세연대생인데 화장실에 카레, 하이라이스, 짜장밥 전문점 비치돼 있다]
[앗 셰프 요리하신다면서 왜 거기로 들어가시는...!]
[우욱]
[아 ^^ㅣ발련들아 점심먹는데]
[(너구리가 아련하게 창 밖을 내다보는 사진) SKY는 어떤 곳일까]
그런 대축제의 주역이 되어, 누구보다도 심취하여 즐길 수 있는 기회.
대한민국 대표 명문대생이라는 자부심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
혹자가 말하는 것처럼, 흔히 아싸라 불리는 내성적 성격의 보유자들조차도 기꺼이 참가한다.
그리하여.
하늘전 준비 기간이 되면, 종강 기간이라 쓸쓸하게 비어 있던 캠퍼스는.
흡사 여름을 연상시킬 정도의 후끈한 열정으로 가득 찬다.
올해 하늘전이 진행되는 세연대 캠퍼스가 그러했다.
하늘전은 기본적으로 캠퍼스의 정문과 가까운 지역에서, 각 학교 별로 구역을 나눠서 진행하곤 했다.
세연대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대운동장.
조금만 더 들어가면 야구장이, 거기서 더 들어가면 체육관이 보인다.
이번 하늘전은 이 세 곳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번 위치 선정 경쟁에서 승리한 세연대는 체육관을 차지했다.
하늘전의 경쟁 종목은 총 다섯 가지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그리고, 레오레.
이 중 배구, 농구, 레오레가 체육관에서 진행된다.
단연코 노른자 지역인 것이다.
"오… 벌써부터 분위기가."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축제의 향취가 물씬 풍겨온다.
아직 축제 당일까진 기간이 좀 남아, 노점이나 입간판 따위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축제 준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로부터 말이다.
"거기!!!"
"좀 더 들어가!!!"
"7번은 냅두라고!!!!! 신명지는 좀 냅두라고!!! 내가 전반전 내내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대운동장은 한창 활발하게 연습 경기를 진행하는 인세대와 세연대 대표팀의 열띤 숨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인맥도 능력이다.
그런 방침에 따라 레오레에서 외부의 인재들을 적극 섭외하여 그 수준과 화제성을 끌어올렸듯.
축구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 저 선수… 이린 씨. 저 선수 이름이 뭐였었죠?"
최재훈은 언젠가 '국가대표'를 키워드로 기사에서 스쳐가듯 본 선수를 경기장 안에서 발견하곤, 새삼 하늘전의 위상을 재 실감했다.
"저는 스포츠 쪽에는 관심이 없어서."
"아~ 하긴."
"하긴…?"
이린이 굳은 얼굴로 그 의미심장한 말을 되뇌었다.
"숨컷… 님?"
"넹?"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말씀 드리지만, 저는… 숨컷 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린은 언젠가부터, 숨컷이 자신을 소위 '아싸'라 불리는 부류로 분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이린에게 있어 아주 모욕적인 일이었다.
여자인데도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불금이든 주말이든 뭐든 항상 집에서 두문불출하다시피하고.
유행이나 대세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연락처 중, 평소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0명에 수렴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말이다.
사실, 남들이 자신을 뭐라 여기던 전혀 관심이 없다시피 한 이린이다.
하지만, 적어도 숨컷에게 만큼은.
최재훈에게 만큼은.
'아싸' 취급을 받는 건 사양이었다.
그녀가 정중하게 정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린과 나란히 서서 걸어가던 최재훈이 고개를 이린 쪽으로 향하더니-"으음~?"
의미심장한 소리와 시선을 그녀에게 향한다.
"…뭔가요."
"아닌데~?"
"예?
"제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최재훈의 짓궂게 음흉한 태도에, 이린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자, 그는 이린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역시 아닌데~? 우리 편집자 님, 아무리 봐도 멋지고, 쿨한, 능력자신데. 아니라고? 그럼 어디 반박해 보세요."
그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능글거리자-
"…아무튼 아닙니다."
이린이 매몰차게 그를 앞질러 나갔다.
표정 관리가 한계에 와버렸기에.
그 훈훈한 광경을 심히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서수나가, 짐짓 친근하게.
그러나 가시 돋친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희은 씨."
그가 조금 뒤떨어져서 걸어오던 김희은을 불렀다.
"…."
그녀는 아까부터 무슨 생각에 잠긴 건지.
평소의 근심 걱정 없이 맑은 얼굴은, 먹구름이 낀 듯 복잡해 보였다.
그런 얼굴로 대답 대신 최재훈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 표정은 어찌 보면 일견 불만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분위기가 삐그덕 거릴 법도 한데.
"저기, 저 선수. 누군지 아세요?"
최재훈은 전혀 아랑곳 않고 편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그러자 김희은이 그 표정 그대로, 운동장 쪽을 응시했다.
그러자-
"어!"
평소의 맑은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당연히 압니다! 저 선수!"
그리곤, 신나서 해당 선수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래서 저 선수가- 아."
말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경청하고 있는 최재훈과 눈이 마주치더니, 그 말이 멈춘다.
"응? 그래서 저 선수가 뭐요?"
최재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 말을 유도하자-
"아, 그, 아… 아! 무튼! 그런 줄 아시면 됩니다."
우물쭈물 말을 절더니, 홱! 하고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들었죠? 그런 줄 알면 된다네요."
그러자, 최재훈이 마지막으로 남은 서수나에게 그제서야 말을 붙여줬다.
원래 그녀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이치에 따라, 방송에서는 밝은 '척'하지만.
현실에서 사람을 대할 때, 특히 이성을 대할 때 극도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최재훈을.
이번, 대부분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미팅 자리에서 잘 이끌어 줘서.
이번, 하늘전에서 자신을 의지하도록 만드는 거였다.
그렇게,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 어, 응…."
서수나가 최재훈에게 주눅 들어 답했다.
원래 그녀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와는 정반대되는 그림이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정말인 걸까?
오랜만에 본 최재훈은-
'혹시 다른 사람인가?'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가 기억하던 유령과는 정반대되는 성격과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여성을 대하는 게 전혀 서툴러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명문대생이자, '금수저'로 분류될 가정의 자식으로.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자신이 꿀릴 일은 절대로 없다 생각하는 서수나였으나.
최재훈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던 그 편집자라는 여자에게, 저도 모르게 꿀린다고 느껴 버렸다.
압도당해 버렸다.
풍기는 분위기 면에서나, 외모 면에서나.
서수나는 평소 아닌 척, 은근히 대놓고 뽐내고 다니는 명품 시계를.
어느새 옷 밑으로 숨기고 있었다.
그 여자가 차고 있던 시계를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이다.
'뭔, 편집자라는 게 골텍 필립스를….'
그녀가 차고 있는 시계 역시 최고급 시계의 대명사와도 같은 시계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에서다.
명품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그녀의 시계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수준에 속한다.
반면에, 편집자가 차고 있던 그 시계는 명품을 기준으로 해도 최상급 명품에 위치하는.
명품 중 명품이었다.
손목에 자동차를 차고 다니는 수준이 아닌.
건물을 차고 다니는 수준.
누군가 말한다.
시계는 여자들의 유일한 액세서리인 동시에, 신분을 나타내는 증표라고.
지금까지 그녀에게 우월감과 승리감을 느끼게 해 주었던 시계는.
지금 그녀에게 패배감과 초라함을 안겨주었다.
평소 선망을 한 몸에 받아오던 그녀에겐 낯선, 그렇기에 더욱 불쾌한 경험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부정한다.
'딱 봐도 짝퉁이겠지, 편집자 주제 무슨….'
'그리고, 나도 대학교만 졸업하면 엄마가….'
최재훈 또한 같이.
'당연히, 무리해서 연기하고 있는 거지. 그 짧은 시간에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확 변할 수 있겠어. 갑자기 영혼이 바뀌는 게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남들을 끌어내림으로써 자존감을 되찾은 그녀가.
평소 후배들을 대할 때의 친근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재훈아."
"응?"
그런데, 최재훈이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네'대신 '응'이라고 답하자, 금방 또 당황한다.
"응, 이라니. 재훈아…. 그래도 선밴데…."
그녀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그, 인위적인 친근한 미소에 쩌적하고 금이 가는 듯했다.
"아, 아! 아, 이거 죄송합니다. 너무 친근하게 대해 주셔서 저도 모르게."
"응, 아니 괜찮아."
최재훈이 순수하게 사과하자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한 그녀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려다-
"응?"
뒤늦게 대화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그, 재훈아?"
"네?"
"혹시 그, 나… 기억 안 나?"
최재훈이 마치, 자신을 처음 보는 듯 대하는 게 아닌가.
"예? 기억이 그 난다고 해야 하나… 일단, 그 성함이 순서아 이신 건 아는데."
"순서아가 아니라 서수나…."
"예? 아, 아! 순서아가 아니라 서순아! 아이고, 제가 서순아씨 이름을 서순해 버렸네요. 아이고, 어쩐지 성이 신기하더라. 죄송해요,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어쨌거나, 그 메일로 말씀 나눴던 분 맞으시죠? 선배님이셨구나. 이거, 몰라 뵀네요."
어딘가 어긋나서 맞물리지 않는 대화.
이번 대화로 서수나는 확신했다.
'아니.'
최재훈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
'뭐 이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