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79화 (279/361)

279. 미드빵 남왕 1

페이스가 기억하는 숨컷은 '텔론'이었다.

텔론 VS 진드라 전.

페이스가 프로에 데뷔한 이후, 솔랭에서 최초로 '패배'를 경험한 게임.

그러니까.

단순히 게임의 승패 여부를 떠나서.

스스로가 상대방 미드에 비해 부족하여 게임에서 패배했다고 여긴 게임.

그만큼 강렬했기에, 그 게임에서의 '텔론'이 곧 페이스 안에서의 숨컷이 되었다.

그 '텔론'은, 라인전만 놓고 보자면 아쉬움이 많았다.

아무리 텔론이 초반 라인전에 진드라에게 불리하기로서니.

과도하게 수비적이었다.

그렇다고 수비적인 플레이의 이점을 취했는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결국 솔로 킬을 따여 버렸지 않은가.

기왕 솔킬을 따일 거였다면,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 진드라에게 위협을 줬어야 했다.

그리 하여, 진드라의 영향력을 다소 감소시켰어야 했다.

아군 정글이 진드라의 영향력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도록.

아니면, 아예 수비적으로 나가서 솔로킬을 당하지 않던가.

결국, 그의 라인전은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다.

그게 숨컷의 라인전에 대한 페이스의 평가였다.

물론.

그 이후, 무모한 정도로 파격적이나 성공함으로써 파격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게 된 로밍으로 라인전에서의 부진함을 만회하고.

또 게임을 승리로 이끌었으니.

라인전에서의 부진함은 눈 감아 줄 만하다.

결국 이기면 장땡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그게 숨컷에 대한 페이스의 평가였다.

라인전은 이도 저도 아니다.

허나, 그 외의 스텟은 아주 뛰어나다.

그런데.

지금 숨컷과 사이트의 라인전을 보고 있노라니, 그 평가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이트는 TC1 안에서도 손꼽히는 피지컬의 보유자였다.

가끔 팀 안에서 설거지 담당, 음식 배달 담당 따위 등의 벌칙을 정할 때 가볍게 진행하는 미드빵 대회에서.

꼴찌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니까.

그녀의 피지컬은 '세계'라는 잣대로 평가해도 될 수준이었고.

그 잣대 안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드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사이트를 상대로, 숨컷은 지금 선방하고 있었다.

아니지.

이건 선방이 아니라-

"…."

그에, 페이스는 '텔론'의 라인전을 되새김질 해 본다.

저 정도 라인전 실력을 갖고 있었으면서, 왜 '텔론'은 그렇게 했었는가.

왜 이도저도 아닌 방식을 택하였는가.

'페드라'에게 위압당해서?

아니, 그건 아니다.

저 정도 실력이면-

적어도 공격이나 방어.

둘 중 하나는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텔론 VS 진드라라는 주어진 구도 안에서 말이다.

진드라를 압도하진 못해도, 적어도 영향력에 흠집을 내어 정글의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혹은, 적어도 솔킬을 내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아."

그때, 문득 페이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가능성.

라인전 당시 '텔론'의 호흡이다.

그는 어쩔 때는 비합리적이었다.

과도하게 큰 피해를 감수해가며 CS를 취했다.

어쩔 때는 합리적이었다.

'이걸 포기한다고?'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주 수준 높은 절제를 보여줬다.

페이스는 그 두 가지에 아무런 기준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도저도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이켜 보니.

그의 그러한 호흡은 결국, 첫 귀환에 '기동력 신발'를 뽑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의 로밍 플레이에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그 아이템을 말이다.

페이스는 생각해 보았다.

완벽하게 공격적으로 했을 경우.

혹은 완벽하게 수비적으로 했을 경우.

그 기동력의 장화를 뽑을 수 있었을까?

답은-

"아니."

"야, 이리쉑 또 혼잣말 한다."

"또 뭔가에 집중하셨나보네."

"쟤 저럴 땐 바지랑 빤스 벗겨 놔도 모른다."

"큭큭큭."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해 봤음."

"리얼? 와 미친, 리얼이네!"

"아니 미친년들아, 뭐 하는 짓이야. 빨리 다시 올려 놔."

"기둘, 사진만 찍고."

"아니, 그걸 왜 찍어. 이거 완전 또라이련 아니야."

"나 방출시킨다 하면 이걸로 협박하게."

"아니 이 새끼 하토미 작작 좀 쳐 보라니까."

"사실, 나도 그때 이미 찍어 뒀긴 해."

"TC1… 영원히 함께야…."

"미친년들…."

레오레에선 CS가 갖는 가치는 경험치와 골드 두 가지이며.

경험치는 골드 못지 않게 중요한 자원이다.

때문에.

CS를, 골드를 취하기 위해선 체력과 마나를 과도하게 소비해야 하는 경우.

골드를 포기하고 경험치만 확보하는 게 맞다.

그로 인해 귀환 타이밍을 늦출 수 있을 것이고.

그를 통해, 더욱 많은 경험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니.

고로, 숨컷이 공격적으로든 수비적으로든 '옳은 플레이'를 했을 경우.

반드시 골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나왔을 터다.

하지만 그 경우, 숨컷은 기동력 신발을 구매하지 못했겠지.

만약 그가 첫 귀환에 기동력 신발을 구매하지 못했다면?

흩어져 있던 퍼즐이-

아니지.

잘못 끼웠던 퍼즐을 빼내어 다시 맞춰 본다.

그러자, 답이 나왔다.

숨컷.

그의 라인전은 분명 '패배'였다.

동시에 '성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걸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불안정한 플레이 스타일.

그러나, 솔랭의 불안정한 환경과 맞물려.

특화되어.

더는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며 과격해지는 플레이 스타일.

페이스조차 여지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그 말은 즉슨.

그녀가 '배우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혹은, '도전하는 입장'.

어지간해선 미동하지 않는 페이스의 양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희미한 움직임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

흥미와 호승심은 절대로 희미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숨컷과 텔론VS진드라 구도로 붙기 이전에.

쟈드 VS 주이 구도로도 붙어 봤던 게 기억난다.

텔론에 비해 그렇게 인상적이진 않은 게임이라 잊고 있었으나.

그 게임의 라인전만 놓고 보자면-

"이거, 현하가 힘들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김이리는, 상념에 빠진 그대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레오레를 켰다.

불이 붙은 것이다.

"아니, 쟤 저 상태로 어디 가!?"

"미친, 클났다."

"저, 저거 어떡해?"

"어, 어쩌지?"

"몰라몰라 미친년들아. 난 분명 하지 말라 했어."

다른 곳에도 불이 붙었다.

"에휴, 븅신들."

전전긍긍하는 탑과 정글을 뒤로하고.

모와이는 다시 관전태세로 돌아왔다.

"하, 이게…."

모와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되네…."

방금, 김이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 아닌가?'

'이거, 현하가 힘들겠는데.'

그 말대로였다.

그들이 눈을 뗀 사이.

팽팽하게 진행되던 게임의 양상은, 서서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미드빵은 기본적으로 피지컬을 겨루는 대결이다.

하지만, 피지컬이라고 다 똑같은 피지컬인 건 아니다.

레오레에는 서포터, 원딜러, 탑, 미드, 정글러 등으로 분류되는 역할군 포지션 외에도.

챔피언이 갖는 고유의 역할군이 있다.

앞에서 데미지 혹은 어그로를 받아내는 '전열'.

단기적이면서 폭발적인 딜링 능력으로 적 진영에 큰 피해를 입히는 '누커'.

단기적이면서 폭발적인 딜링 능력을 단일 개체에 집중시켜서 사살하는 '암살자'.

균등하며 지속적인 딜링 능력의 '지딜'.

방어막, 버프, 군중제어기 등으로 팀원을 보조하는 '지원가'.

그 고유의 역할군에 따라, 요구되는 피지컬의 종류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사이트가 다루는 원딜러 챔피언 대부분은 '지딜'에 속했고.

최재훈이 다루는 챔피언은 대부분 '암살자'였다.

그리고, 미드빵에서 사용되는 '이신'은.

'암살자'와 '전열'그 사이에 걸쳐져 있는 챔피언이었다.

더군다나.

미드빵은 말 그대로 '미드'라인에서 진행된다.

미드 라인은 탑 바텀과 달리, 독자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길이가 바텀 탑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짧다.

그 만큼, 미니언이 도착하는 시간 또한 상대적으로 빠르다.

미드의 흐름은, 모든 라인을 통틀어 가장 빨랐다.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세세하게나마 분명히 존재하는 차이.

미드 라이너인 숨컷은, 바텀 라이너인 사이트를 상대하며 그 수혜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요소.

피지컬 능력에서 부족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요소.

하지만.

피지컬 능력이 최소 동등한 상황에서는?

그 차이가 크게 다가온다.

지금, 그 차이가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 뭐야 이거]

[숨컷이 이기고 있는 거 맞지?]

[맞는 것 같은데?]

[숨컷 피지컬 사이트한테 안 꿀리네?]

[아니 안 꿀리는 정도가 아닌데?]

합당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미드빵 이거 당연히 미드하는 애들한테 더 유리한 거 아님?]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의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만약 축구선수들끼리 족구를 한다면, 당연히 스트라이커가 더욱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

다른 포지션들은 억울하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종목인 것을.

미드빵 또한 그랬다.

미드는 레오레의 '중심'이었다.

'피지컬'과 '라인전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미드 라이너들에게 가산점이 들어가는 것은, 레오레에선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근데 숨컷 잘할 줄은 알았는데;]

숨컷과 사이트.

그 둘의 미드빵을 바란 모두가 숨컷의 선전을, 활약을 예상했다.

그라면, TC1의 주전으로서 국내 3대 원딜러 중 한 명인 사이트를 상대로 무언가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진짜 이겨버릴 줄은 몰랐네 ;;]

[ㄹㅇ;;]

[말 안 되네]

그 기대한 선전의 정도.

활약의 정도는.

사이트를 상대로 '명경기'를 보여주는 정도였다.

지난 며칠간, 숨컷의 플레이 스타일은 꽤 널리 알려졌다.

라인전이 아닌 '로밍'에 힘을 주는 스타일.

반면에 사이트.

경기에서 세계급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공격성을 가감 없이 발휘하는 그녀의 압도적인 라인전 능력은 이미 유명하다.

'라인전'.

그리고 '피지컬'을 떠올렸을 때.

사이트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숨컷은 아마추어인 반면에, 사이트는 프로.

그것도, 프로 중의 프로인 TC1이지 않은가?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의 경기 양상은, 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더는 없을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니언의 전선이 숨컷의 타워 앞에 고정되어 있으며.

숨컷의 CS와 체력이 더욱 높으며, 스펠 쿨타임도 더욱 빨리 돌아오는.

숨컷이 사이트를 압도하고 있는 양상은 말이다.

시간은 숨컷의 편이다.

이대로라면, 숨컷이 무난하게 먼저 CS100을 달성하여 승리를 따낼 예정이었다.

결국-

"쓰, 하~ 이게… 에라 모르겠다."

사이트 쪽에서 먼저 무리해가며 행동에 나섰다.

숨컷의 입장에선 그에 응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간은 그의 편이었으니.

그럼에도-

"오호~ 그래. 빵댕이 함 흔들어 보자고."

숨컷은 굳이 응해 줬다.

이 '게임'은.

'자신의 것'이 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피날레는 화려할수록, 그리하여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될수록 좋았다.

순식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간다.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머지않아-

<선취점!>

승자가 정해졌다.

계속해서 끓어오르던 방송이-

[와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옐로TV의 자랑 조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솔랭의 자랑 숨컷!]

[숨컷 내 남편이 될 것을 허락한다숨컷 내 남편이 될 것을 허락한다숨컷 내 남편이 될 것을 허락한다숨컷 내 남편이 될 것을 허락한다숨컷 내 남편이 될 것을 허락한다]

[잘했는데 왜 벌칙을 줘 ㅅㅂ아]

마침내 폭발했다.

단언컨대.

걷잡을 수 없이 계속해서 커지던 이번 방송의 '절정'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숨컷이 승리했다.

그.

SIGHT를 상대로.

TC1을 상대로.

육안으론 도저히 확인 못할 속도로 폭우처럼 쏟아지는 채팅이 숨컷의 이름을 한 층 더 드높였다.

그 위에서, 숨컷은 기세를 타고 당당히 외쳤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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