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 라멘 2
[아니 그래서 그러던 그때 뭐요]
"신생 서버인 한국! 신생 리그인 LKL에서! 이, 기라성 같은 플레이어가 등장해 버린 겁니다. 사장되어가는 EU 스타일을, 서포터를 붙잡고! 서포터는 소모품, 조연일 뿐이라는 인식을 깨고! 고도의 피지컬을 요구하는 플레이 메이킹 챔피언들로 직접 게임을 캐리하며! LKL에서 우승하고, 단 하나뿐인 한국의 시드를 쟁취한 뒤. 렐드컵에 나가서, 우승을-"
말하던 최재훈이 아쉽다는 듯 주먹을 내리쳤다.
"할 뻔했지만,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데라 선수가 저평가 받는 이유죠. 커리어."
하지만!
그렇게 말을 잇는다.
"데라 선수가 그 LKL에서, 렐드컵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들! 단언컨대, 당시 레오레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고, 화려했던 경기! 그게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가장 먼저, 솔랭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5픽이 아닌데도! 서포터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오ㅋㅋ]
[그렇게 서폿이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 건가?]
"맞습니다! 그렇게 서포터의 인기는 상승해서 하나의 포지션으로 인정받게 됐고. 그만큼, EU스타일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최재훈이 지워졌던 'EU 스타일'을 다시 복구했다.
"아이엇에서도 EU스타일을 인정하고, 지금의 포지션 선택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겁니다. 즉, 이 서포터라는 포지션은!"
최재훈이 데라를 가리켰다.
"레오레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인 이, 데라 선수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던 거죠. 마파두부 선수? 세체폿? 맞습니다. 그런데! 데라 선수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서포터뿐만이 아니죠! 이 EU스타일 자체가, 지금의 레오레 자체가! 데라갓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서포터의 어머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보세요."
그가 준비해 두었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사람들에게 있어 꽤 생소한 자료인 그것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평가 받는 전세계 프로 서포터 선수들의 데뷔전 인터뷰 기사였다.
왜 하필 데뷔전 인터뷰 기사인가?
거기에서만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Q : 존경하는 선수나, 롤모델로 삼는 선수가 있다면?
그들은 그 질문에, 모두 똑같은 답을 한다.
A : 역시, 데드라이트 선수겠죠.
그 안에는, 데라의 세체폿 라이벌로 거론되는 MAFADUFU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정작 마파두부에게 있어 데라는 경쟁 상대가 아닌, 우상이었던 것이다.
최재훈이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외쳤다.
"라멘."
최재훈의 열성적이고도 흥미로운 그 강의.
그리고, 팩트.
더 이상 채팅창에서 그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채팅창이 [ㄻ]이라는 단어로 도배됐다.
옆에서 권지현도 힘차게 라멘을 외쳤다.
그에, 데라가 머리를 긁적 긁으며 말했다.
"이야~ 이거. 멋쩍네요. 그렇게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그것보다도 대단한 게 뭔지 압니까?"
[ㅁㅊ 뭐가 또 있음?]
[아니 뒷이야기가 또 있다고? ㄷㄷ]
[나도 모르는 건데]
[뭐임?]
최재훈이 근엄하게 엄지를 들어 올려 자신을 가리켰다.
"바로, 그런 데라 님을 섭외한 이츠 더 숨컷."
[뒤져]
[아니 근데 ㅋㅋ ㄹㅇ이긴해]
[ㄹㅇ;; 나 데라 첨 봄]
[요즘 데라 뭐 함?]
데라는 페이스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신비주의적 이미지가 강한 플레이어였다.
성격상 공적인 활동을 극도로 기피하는 데라는.
오래전 은퇴한 이후, 공적인 활동을 끊다시피 하여 '올스타전'에서만 간간히 볼 수 있었던 탓이다.
데라가 저평가 받는 이유였다.
그런 데라를 방송에 섭외한 이는, 숨컷이 최초였다.
"자, 데라 선수. 말 나온 김에. 혹시, 간단하게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올스타전에서도 성격 때문에, 인터뷰를 피하던 데라였다.
"예, 뭐 간단하게라면."
[와 ㅋㅋ]
[진짜 조컷 월클이네 ㄹㅇ;;]
[데라 섭외하고 인터뷰까지 ㅋㅋ]
그런 데라의 등장.
뿐만이 아니라, 인터뷰와 컨텐츠 참여 소식까지.
이는 단번에 커뮤니티 전체로 퍼져, 남아 있던 관심까지 모조리 긁어모은다.
그렇게 지금.
레오레 모든 유저들이 숨컷의 방송에, 그가 진행 중인 '서포터 인식 개선 프로젝트'에 관심을 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전 솔랭 올스타전 경기와 데라의 등장으로.
서포터의 인식은 실시간으로 개선되어가고, 갱신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 숨컷의 방송은 레오레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레오레 유저의 1/5이라 할 만한 이들을 억압해 왔던 폐단을 비로소 없앤 역사적 순간이 말이다.
"아,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은퇴 이후, 어떻게 지내셨는지 간단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프로팀들에서 감독직을 제안 받았는데, 공적인 활동이 부담스러워 은퇴한 거라서 거절하고. 코치로 활동해 왔었습니다."
[ㅁㅊ?]
[아니 ㄹㅇ?]
[어느팀?]
"이런 저런 팀을 전전하다. 몇 년 전 부터는, TC1의 코치와 아카데미에서 활동하며 선수들을 코칭해왔습니다."
[와 ㅁㅊ TC1이 여기서 나오네 ㄷㄷ]
[설마 지금 TC1 선수들도 데라가 키운 거임?]
"제가 키웠다는 표현은 뭐하고. 그 선수들이 재능을 개화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주긴 했습니다."
현존 최고의 팀의 선수들 육성에 크게 일조한 게, 그 데라다.
숨컷의 방송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엄청난 정보.
오늘도 뭐 콩고물 안 떨어지나 숨컷의 방송을 시청 중이던, 게임부 기자들의 눈이 빛난다.
게임 기사 란은 이미 숨컷과 데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동안, 숱한 섭외 요청이 있었던 걸로 알지만 올스타전을 제외하곤 한 번도 응해주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제 방송 출연 섭외에는 응해주셨는지. 숨컷의 매력과 연관 지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
[아니 ㅋㅋ]
[선생님 제발 짜져 계세요 ㅋㅋ]
[아 ㅋㅋ 낄 때 끼라고]
데라가 멋쩍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서포터 인식 개선을 위한, 서포터들을 위한 일이잖아요? 힘을 실어줘야겠다고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예. 숨컷 님께서 제안해 주셔서 그런 마음이 들은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오… 숨컷의 어떤 부분에서 위대함을 느끼셨나요?"
"이번에 하셨던 모금에서, 아주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 식의 방송이면, 저도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요."
예상 외로.
페이스 이전의 슈퍼스타로서, 최재훈이 존경해 마지않는 플레이어.
원래 같았다면, 접점조차도 갖지 못했을 리빙 레전드의 입에서 입 발린 말이 아니라, 진중한 인정 어린 칭찬이 나왔다.
쿵.
쿵.
가슴이 고양감으로 뛰기 시작했다.
데라의 인정은 최재훈에게 있어 그만큼 의미 깊은 일이었다.
자신이 한층 더 높은 곳에 올랐음을 실감한 최재훈의 얼굴에 아주 기뻐 보이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자!"
그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뒤 말을 이었다.
"그러면 데라 님?"
"네."
"지금, 레오레에 만연해 있는 서포터에 대한 인식. '서포터는 포지션 중에서 실력 절댓값이 가장 낮다'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단, 실력이라는 말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네요. 각 포지션마다 실력을 책정하는 요소가 다르기에. 서포터는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복잡한 포지션입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하다? 왠지 알 것 같네요. 서포터는 진입장벽이 가장 낮지만, 잘하기엔 또 다른 포지션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어려운 포지션이다. 이 말씀이시죠?"
"맞습니다. 단순하게 책정할 수 있는 뇌지컬과 피지컬 같은 경우엔. 일단, 뇌지컬에 한해선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상위권에 속합니다.
초반 바텀 라인전, 아래지역 시야 장악, 용 싸움, 중후반 시야 확보. 서포터에게 요구되는 뇌지컬적 능력은 상당히 높습니다.
반면에, 피지컬적 능력은 상대적으로 낮긴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께서 생각하시는 정도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지. 서포터가 만약 챌린저에 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오늘, 그게 증명되었으면 좋겠네요."
데라가 인터뷰를 맺고.
시청자 참여 컨텐츠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명, '데라를 이겨라'.
숨컷을 말했었다.
농담이 아니라, 미드빵에서 데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이와 결혼을 해 주겠다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당연히 없었다.
단지, 그 정도로 파격적인 상품을 줄 거라는 기대와.
그 '데라'의 실력에 대한 호기심으로.
많은 이들이 도전에 임했다.
일단은, '솔랭 올스타전'에 참가했었던 10명의 네임드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첫 번째 타자는, 탑 라이너인 제로미터였다.
탑은 원딜과 함께 피지컬 포지션으로 대표되는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제로미터는, 페카와 삼피.
솔랭 정상급 실력을 가진 이들의 다음으로 평가 받는 플레이어였다.
"선생님, 한 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솔직히,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관객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아무리 데라라곤 하지만, 결국 서포터 아니던가.
정상급 탑 라이너인 그녀를 상대로 이기는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
미러전으로 진행된 미드빵.
그 결과는, 제로미터의 너무나도 무난한 패배였다.
'격'이 달랐다.
제로미터는 현역 프로 탑 라이너들을 상대할 때 느꼈던 벽을, 데라에게서도 느꼈다.
"라인전 능력은 서포터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입니다."
데라가 승리 뒤, 수업하듯 기계적 어조로 말했다.
"제가 저희 학생들… 아니, 선수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죠. 참고로, 여러분들이 흔히 '3대 서포터'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의 라인전 능력은. 팀 안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마파두부 님의 경우에도, 팀 안에서 가장 라인전 능력이 뛰어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데라는 당연한 듯, 아주 간단히도 도전자들을 제압해 나갔다.
[아니 뭔 현역도 아닌데 ㄷㄷㄷ]
[와 ㅅㅂ 살아 있네]
[역시 클라스 어디 안 가네 ㄷㄷ]
[이게 서폿인가...?]
데라가, 프로가 모든 서포터들의 수준을 대변해주진 않는다.
허나.
데라가.
서포터가.
챌린저를 대표하는 타 포지션 유저들을 애 다루듯 제압하는 모습은, 분명 강렬하고 또 선명한 자극을 주었다.
현재, 레오레 업계의 모든 관심은 데라의 미드빵에 향해져 있었다.
그렇게, 데라의 미드빵은 서포터의 인식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야."
"네?"
"…아냐."
"재훈 씨, 혹시 저도 해 봐도 돼요?"
"야이 씨!"
"앗… 뭔지 몰라도 죄송합니당…."
[ㄹㅇ ㅋㅋ 그마딱 쉑이 어디]
[주제를 알라고 ㅋㅋ]
'나도 한 번 해 봐도 돼?'
사심을 담아 도전해 보려던 제나가 결국 쑥스러움에 실패하고.
그 울분을 담아 권지현을 붙잡고 넘어졌다.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던 '데라를 이겨라'가 성황리에 종료되려던 찰나였다.
찰랑!
-TC1 SIGHT 님이 100, 000원을 후원했습니다.
=빼꼼
소문난 잔치에, 프로들이 빠지면 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