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 '서포터'
"헤헤, 삼피 씨. 저랑 같이 구경하죠."
"꺼져, 그마딱 냄새 나니까."
"헝…."
"자, 그러면 여러분. 본격적으로 라인전이 시작될 예정인데요. 여러분들은, 바텀 라인전이 어떻게 될 거라 보시나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퍼플 팀의 경우엔 원딜이 천 점 대고, 서포터가 300점 대. 반면에, 블루 팀의 경우엔 원딜이 300점 대고, 서포터가 천 점 대입니다. 서포터와 원딜의 싸움이 되는 거죠!"
최재훈이 묻자.
[아니 이건 누가 봐도 ㅋㅋ 원딜쪽이 이기지]
[그마딱 원딜러가 천점대 원딜을 어케 상대함 ㅋ]
인식을 따라가는 답이 나왔다.
그에 최재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초장부터 꽤 극적인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 듯했다.
역대 최고 원딜, 역체원이라 평가 받는 TC1의 레전드 OOPS는 말한다.
-바텀 라인전은 솔직히 서포터가 다 하는 거야.
첫 번째 미니언이 도착하여 본격적으로 라인전이 시작된 지금.
웁스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여실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라인전은 기본적으로 '미니언을 처치하여 CS를 올리고 경험치와 골드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딜교환을 비롯한 모든 교전 행위는, 미니언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서포터는 CS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그들은 오롯이 딜교환에.
견제에 집중할 수 있다.
1000점 원딜러가 300점 원딜러를 한 번 견제할 때.
1000점 서포터는 1000점 원딜러를 두 번 견제했다.
반면에 300점 서포터는, 그런 1000점 서포터를 상대로 맥을 못 춘다.
스킬샷의 차이로 1000점 서포터와의 딜교환에서 밀려, 결국 원딜을 견제하는데도 실패하고 딜교환에서까지도 밀린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거듭 쌓여나간다.
피해가, 쌓여 나간다.
1000점 원딜러는 점점 300점 원딜러에게.
퍼플팀의 바텀이, 블루팀의 바텀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블루팀에게 바텀의 주도권이.
아래 지역의 주도권이 넘어온다.
블루팀의 정글은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블루 팀이 불의 용을 처치했습니다!>
아래 지역의 오브젝트인 용을 취한다.
물론, 상대 정글도 가만히 있진 않는다.
<퍼플 팀이 공허의 사신을 처치했습니다!>
한번 시작된 공방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이젠 블루 팀의 차례.
퍼플 팀의 바텀은 라인전에서 밀려, 타워를 에워싼 채 간신히 CS만을 챙기고 있었다.
타워를 에워싼 챔피언은 가장 안전한 동시에, 무방비해진다.
움직임이 타워 주변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적팀 입장에서 '협공'의 기회를 잡기가 용이해진다.
퍼플 팀의 정글이 위쪽 오브젝트인 '공허의 사신'을 처치했다는 알림으로 그의 위치를 파악한 블루팀의 미드와 정글.
합세하여 협공의 기회를 잡는다.
'타워 다이브'를 시도한다.
그 결과-
<더블 킬!>
블루팀의 다이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망자 없이 깔끔하게 더블킬을 취해 냈다.
"아, 바텀 CS 차이에, 골드 차이에, 레벨 차이에! 사실상, 바텀 라인전 끝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시청자들의 안중에 서포터는, 도구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지금 상황은 1000점 원딜러가, 300점 원딜러에게 압도당한 상황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아니 게임 왜 이따구로 된 거임?]
[적 정글이 너무 탑 위주로만 봐준 거 아님?]
[ㄹㅇ 봇 라인 계속 밀려있었는데 갱 좀 오지]
숨컷이 이해를 돕고자 입을 열었다.
"자, 여러분. 제가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봇 라인 계속 밀려 있었는데 갱 좀 오지, 왜 안 왔느냐? 적 정글이 왜 너무 탑만 봐 줬느냐? 다 똑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바텀 주도권을 완전 뺏겨서 그래요. 이게 라인전을 적당히 밀리면 여러분들이 말한 게 가능한데. 이런 식으로, 완전히. 완전히 밀려 버리면 그게 안 돼요.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최재훈이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 보시면, 퍼플팀 바텀이 라인전에서 완전 밀려가지고. 아래쪽 시야 장악권을 완전 뺏긴 상태거든요? 이런 상태에서 정글이 봇 갱을 시도하면, 그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커져요."
"그리고 갱만 시도하기 힘든 게 아니예요. 여기서 만약 적팀 정글이 카운터 정글 들어온다? 여기, 퍼플팀 바텀 체력이랑 마나 보세요. 그리고, 미니언들도 항상 밀려 있어가지고. 합류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요. 결국, 블루팀 정글이 카운터 정글을 시도하면. 퍼플팀 정글을 '헝헝 바텀 십새기들아 뭐해'하면서 뺄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최재훈이 지도 위로 마우스로 선을 그렸다.
"퍼플팀 정글은 이렇게, 자기 진영 아래쪽 정글을 포기하고, 오히려 상대 진영 위쪽 정글을 카운터 정글 시도하는 거죠. 그냥 뺏기고 있을 수만은 없고, 똑같이 위험부담은 있지만 여기는 반반이거든요."
"그리고, 블루팀 정글도 그걸 압니다. 퍼플팀 정글이 우리 진영 위쪽 정글에 들어올 거라는 걸. 그리고, 그게 위험 부담이 반반이라는 걸. 블루팀 정글도 상대 쪽처럼 굳이 위험 부담을 감수할 필요가 없으니, 상대 진영 아래쪽 정글 카운터 정글할 거고요."
"결국, 이런 그림이 나옵니다."
원래, 정글은 좌우로 분리하여 차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들은 정글을 상하로 분리하여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선 상 아예 바텀 쪽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나와 버리는 거죠. 왜 이런 상황이 나왔느냐?"
최재훈이 권지현에게 마이크를 돌리는 시늉을 했다.
"퍼플팀이 바텀 라인전에서 밀려서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퍼플팀이 왜 바텀 라인전에서 밀렷을까요?"
다음은 제나에게.
"별 거 있나."
그녀가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서폿 차이지."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초반 바텀 라인전은 사실, 서포터가 다 하는 겁니다."
그런 서포터의 역량이 압도적으로 차이나니, 압도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당황스럽네]
[그러면 원딜은 뭐가 되는 거임?]
"원딜은 뭐가 되느냐?"
분명, 라인전 단계에선 퍼플팀 바텀이 참패한 게 맞았다.
블루팀의 원딜이 성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렇게 게임이 끝났느냐?
아니.
퍼플 정글 역시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윗 정글은 차지한 그는, 자연스레 정글에게 소외받은 탑쪽을 노렸다.
그렇게, 블루팀은 탑 쪽이 참패하여 게임은 다시 균형을 이루고, 진행된다.
[어?]
[뭐지?]
그렇게 게임이 길어지자.
그러니까, 초중반을 넘어서 중후반을 가게 되자.
비로소, 원딜은 뭐가 되는지 나타나게 된다.
라인전이 종료됐을 당시.
블루팀은, 퍼플팀 원딜에 비해 압도적인 성장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성장 우위는 점점 좁혀져간다.
[아니 쟤 CS를 도대체 어디서 구해오는 거야 ㅋㅋ]
원딜려의 실력 요소 중 하나, 바로 성장력이었다.
그리고, 교전 능력.
[와 ㅋㅋㅋㅋㅋㅋ 아니 저 템으로 저걸 해내네]
[역시 천점은 천점인가 ㄷㄷ]
그렇게 블루 팀 원딜은 월등한 성장 우위를 점했음에도, 퍼플팀 원딜에 비해 월등한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하지만 월등하지 못할 뿐이지, 분명한 우위를 보이긴 한다.
그렇게 '바텀'에서 서포터와 원딜러의 역할이 명확해진다.
서포터는 '바텀'에서 초반을 책임지고, 원딜은 '바텀'에서 후반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둘 중 누가 더 중요하느냐?
[원딜이지 ㅋㅋ]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서포터지 ㅄ아]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레오레 유저들이 보기에, 자신의 포지션은 무조건적으로 영향력이 낮고.
남의 포지션은 무조건적으로 영향력이 높다.
물론, 미세한 차이가 분명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우열을 정할 정도로 극명한 차이는 아니다.
첫 번째 게임.
더 좋은 서포터를 보유한 블루팀의 승리였다.
그리고 두 번째 게임.
더 좋은 원딜러를 보유한 퍼플팀의 승리였다.
그렇게 세 번째 게임이 끝나고.
네 번째 게임이 끝났을 때.
전적은 2:2로, 무승부였다.
결착을 보길 원한다면 한 게임을 더 진행해야 하는 상황.
허나, 그 누구도 딱히 그걸 원하지 않았다.
네 게임으로 충분했다.
그 네 게임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해소되었다.
서포터의 영향력과 중요도가 낮다는 편견이.
그렇게, 이제 한 가지만 남았다.
서포터의 실력이 다른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편견.
"자, 여러분. 2부 컨텐츠 시작하겠습니다. 시청자 참가 컨텐츠인데요. 무슨 컨텐츠냐면-"
서포터를 이겨라.
"지금부터, '다른 포지션에 비해 형편없는 실력을 가진'이라는 오명을 쓰고 계신 서포터 분들을 초청해서, 동일 점수대 다른 포지션 분들에게 미드빵 도전을 받을 예정입니다."
레오레에서 실력에는 다양한 요소가 있어, 미드빵으로만 실력을 검증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허나, 서포터가 갖고 있는 그 특유의 이미지.
'재훈'이라던가 '도구'라던가.
그런 수동적이고, 차별적인 이미지를 해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서포터가 상대적으로 실력이 낮다는-
마지막 편견 말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컨텐츠 시작하기에 앞서, 이벤트를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이 서포터 분'이랑 미드빵 해서 이기시는 분, 제가 소원 하나 들어드리겠습니다. 진짜, 농담 아니고. 가능한 선에서 뭐든 들어줄게."
[결혼해 달라면 결혼해 주시나요?]
"결혼? 까이꺼, 하지 뭐! 이 사람 이길 정도면, 난 진짜 결혼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두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나도?'
그 말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ㅁㅊ ㅋㅋ]
[아 ㅋㅋ 녹음했다 딱 대]
[어떤 재훈이야 ㅋㅋ 디졌다 ㅋㅋ]
그런 그들을, 최재훈은 실로 가소롭다는 얼굴로 바라보며-
여러분들.
그렇게 운을 뗐다.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됩니다. 서포터 이미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왜냐! 그 시작이 창대하기 그지없었거든! 어디 한 번 봅시다. 이 분 앞에서도, 서포터가 실력 없는 놈들이나 갈 수 있는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잠시만요~"
최재훈이 핸드폰을 들더니,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와 같이 들어왔다.
그러자 권지현이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기상했다.
그렇게, 극진한 예를 표했다.
놀랍게도, 제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머지 않아.
'이벤트 상대'로 준비된 플레이어가 카메라 앵글에 들어왔다.
그러자, 채팅창에서 항의가 빗발치는 동시에.
'어떤 단어'가 연호됐다.
"안녕하세요."
아주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인사한 그 플레이어는-
서포터의 '어머니'.
서포터의 기원.
서포터의 시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데드라이트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