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권지현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 1
"내일,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권지현은 용기를 냈다.
"네? 내일이요?"
"어얼~"
그러나.
"아주 그냥, 응? 좋을 때구만~?"
집 안에서 들려오는 여동생의 아줌마 마냥 음흉한 태도에, 자신의 한 행동이 데이트 신청으로 비춰졌을 수도 있단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이 낸 용기가 부족했단 사실 또한 깨닫는다.
"아, 앗! 제, 제, 제, 제, 제 말은 그 말이 아, 아니라!"
당황한 그녀는 터질 듯한 얼굴이 되어 황급히 변명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 그, 그, 그, 그럼 무, 무, 무, 무, 무, 무, 무, 무슨 말인데요?"
"아, 그, 그, 그, 그…."
"그, 그, 그, 그-에엑!"
그런 권지현을 짓궂게 놀리던 여동생이, 오빠에게 납치당한다.
최재훈이 여동생을 뒤에서 들어올려, 좌우로 흔들었다.
"지현 씨 놀리지 마~~~"
여동생의 머리와 다리가 대롱대롱 흔들렸다.
"아, 뭐~우~어~ 하는 거~우~엉야!"
다른 '여자' 앞에서, '오빠'에게 이런 식으로 들려서 농락당한다.
최재은처럼 한참 때인 '여자'에겐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그녀 또한, 권지현처럼 곧장 귀가 시뻘게졌다.
"이~이거 놔~아~아!"
몸이 흔들림에 따라, 그녀의 말이 우스꽝스럽게 늘어졌다.
"시~이~이~이~루~우~우~운~뒈~에~"
"아~하~아지 마~아~아~알라고오~오~"
"훼~줴~뭬~웨~웨~ㄹ뤠~궤~~~"
"아, 지~이~인짜!"
"지현 씨한테 사과하면 그만해 주지~"
자.
최재훈이 좌우 바운스를 멈추고 그녀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매달린 그녀가 손발을 축 늘어트려 더욱 시큰둥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큭, 죽여라."
"지현 씨 지금이에요! 재은몬의 약점은 겨드랑이에요! 겨드랑이를 찌르세요!"
"아, 네!"
푹!
"아힝헹."
간지러움을 잘 타는 최재은이 몸을 비비꼬았다.
"아, 언니!"
"앗,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지현 씨가 왜 사과를 해요!"
"앗,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언니가 왜 사과를 해요!"
"앗- 미-"
"됐고 한 번 더 찔러요!"
"아힝헹, 아! 내려놓으라고!!"
그렇게 죗값을 치룬 최재은을 내려놓고.
"그래서, 지현 씨. 내일 시간 좀 내주실 수 있겠냐니. 무슨 일이세요?"
"아~ 그걸 물어보네."
"뭐, 임마."
최재은이 눈치가 전멸한 오빠와, 숫기가 전멸한 언니를 차례대로 쳐다보더니-
"에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쨌든, 이 몸은 이만 자리 비워 줄 테니까. 두 젊은이들끼리 잘 해 보쇼. 나부터 목욕한다~"
"뭐래는 거야, 얜. 어쨌거나, 그래."
"앗, 재은 학생. 나중에 봐요~"
그렇게 최재은이 문 너머로 사라지고 둘만이 남자-
"…."
권지현은 방금 전, 최재은이 놀렸던 게 다시금 떠오른다.
만약, 정말로 자신이 여기서 데이트를 신청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 데이트? 조치! 함 흔드러 볼까!?
아마도, 그의 성격상 신나서 그렇게 대답해 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아니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상상하기조차 무서워, 권지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어 사심을 털어내고.
다시 당당하게 본론을 꺼낸다.
"그래서, 내일 말인데, 무슨 일이냐면요!"
* * *
최재훈이 1위를 달성한 순간.
그의 모금과 함께, 그와 함께하던 이들의 모금 또한 마무리 됐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권지현.
그녀의 모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 또한 최재훈의 뜻에 동참하는 의미로 모금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째서, 최재훈의 뜻이 마무리 되었는데도 그녀의 뜻은 계속되는가?
입이 문제였다.
그녀는 최재훈의 도전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줄 알았더랬다.
그래서,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같이 챌린저 미션을 진행하며 발생한 후원 수익을 전부 기부한다'고, 말하려고 했었더랬다.
그런데, 말이 꼬여 버린 나머지 그만 '챌린저를 달성할 때까지 발생한 후원 수익은 전부 기부한다' 해 버렸다.
최재훈이 1위에 달성했을 당시.
권지현의 점수는 320점, 그랜드 마스터에 도달한 상태였다.
그녀의 최고 기록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챌린저.
최고 기록보다도 훨씬 더 멀리 있었다.
300점만큼이나.
일전에, LKL의 전설적인 코치의 입에서 말해져 아직까지도 정설로 화자 되고 있는 어록이 있다.
-요령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그랜드 마스터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챌린저부터는 재능의 영역이다.
누군가에겐 희망적이고, 누군가에겐 회의적일 어록이었다.
[아니 지현이 어카냐 ㅋㅋㅋㅋㅋㅋ]
[얘 아무리 봐도 챌린저 찍을 각이 안 보이는데?]
[320점이 니 머리같다 지현아...]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누]
[다들 꽉잡아!!!]
[꽉잡긴 ㅄ아 ㅋㅋ 내려야지 ㅋㅋ 이 롤러코스터는 끝이 없는데]
[아 ㅋㅋ]
[??? : 챌린저 찍을 때까지 기부하겠습니다]
[기부에 단단히 미쳐버린 사람...]
[기부 천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권지현에겐 회의적인 쪽이었다.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에서 한계를 느꼈다.
갖은 노력 끝에, 자력으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야 이건 안 되겠다 ㅇㅇ]
[지현아 ㄹㅇ 기부 천사 되고 싶은 거 아니면 듀오라도 하자]
[ㄹㅇ ㅋㅋ 울오빠 데려와서 두오 부탁하면 챌까지 ㅈ밥일 듯]
"듀오?"
그렇게,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듀오? 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오ㅗㅗㅗㅗㅗㅗㅗㅗ?]
[지현아 니 지금 듀오라 했니?]
[설마 ㅋㅋ 지현이가 설마 '솔로 랭크'하면서 듀오를 하겠어? ㅋㅋ]
[ㄹㅇ ㅋㅋ 어지간히 시청자들을 ㅈ으로 보고 기부를 하기 싫은 게 아닌 이상~ ㅋㅋ]
[아 ㅋㅋ '듀얼'이라고 말하려던 거 잘못 들은 거였네]
[듀얼 좋지 ㅋㅋ]
[안 그래도 지현이 지금 이미 어둠의 듀얼 하고 있잖아 ㅋ]
[기부 단체랑 어둠의 듀얼 중 ㅋㅋ]
[근데 왜 지현이 LIFE만 빠져나가? ㅠㅠ]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니까...]
[그럼 기부하는 지현이가 악임?]
[지현이는 악이야... 지켜줘야 돼...]
[응애 나 아기지현 그래도 두오는 어림도 없지]
그를 용납해 줄 시청자들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게.
'솔로 랭크'에서, 본캐의 점수를 따라가기 위해서 듀오를 하는 거면 몰라도.
자신의 한계를 갱신하려고, 자신보다 잘하는 이와 듀오를 하는 건 사도로 취급 받았기에.
"헝…."
자력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듀오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면 듀오 말고 거 강의라고 해 달라고 부탁해 보던가 ㅇㅇ]
"강의?"
[오 ㅋㅋ 그럼 조컷 볼 수 있는 건가?]
[조컷 보고 싶으면 옆 방 가 지금 방송하고 있잖아 ㅄ아 ㅋ]
[오!!!!!! 와!!!!!!!!!!! 존!!! 나개꿀팁!!!!!!!!!!!!!!! 세상에 감사합니다!!!!!!!!!!!!!!!]
[숨컷은 숨컷의 방송에 가면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군. 이게 정말로 우리들과 똑같은 인간의 발상이란 말인가?]
[어이, 어이. 진짜냐고 (꿀꺽)]
[아인슈타인, 긴장하는 게 좋을지도?]
[저 녀석이 머지않아 뺐으러 갈 테니까 '세계 최고 천재'의 타이틀을]
[ㅄ같은 소리에 걸맞은 ㅄ같은 리액션이네요]
[옆방 가면 볼 수 있는 걸 누가몰라 ㅄ아 권지현이랑 또 합방하는 거 기대하는 거지]
[너도 좀 옆 방에 가서 너희 부모님 울고 계시는 것좀 봐!!]
[어허]
[스플뎀 ^^ㅣ발아]
[어쨌든 강의 ㄱ?]
"강의라…."
자신보다 뛰어난 이에게 편승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이에게 지도를 부탁하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거 좋은데요?"
[오 그럼 숨컷이랑 합방 ㄱ?]
[야 근데 합방이란 단어 너무 야한 거 아니냐 ㄷㄷ]
[ㅗㅜㅑ]
[합방 한 번도 못 해 보신 분들이 야한 걸 어케 아나요?]
[요즘 인터넷이 참 잘 돼 있어 ^^ㅣ발아]
[합방은 너무 야하니까 방방이라고 하죠 (방송+방송ㅎ)]
[왜 귀엽누 ㄷㄷ]
[그럼 아홉명이서 합방하면 방구인가요]
[아가리싸물어시발디지기싫으면]
[넘하네]
[바로 숨컷한테 연락 ㄱㄱ]
권지현은 최재훈이 옆에서 친절하게 지도해 주는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헤헤…."
말이 필요하랴, 당연히 좋았다.
하지만-
"…."
최재훈을 도와주기 위해 시작한 일을 수습하기 위해, 최재훈의 도움을 받는다니.
그건 아무리 우리의 권지현 씨라고 해도 꺼려졌다.
"그, 여러분. 숨컷 씨는 한동안 이래 저래 바쁘실 것 같으니까 일단은-"
그렇게.
"피해."
일단은 제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피해. 피해. 피해. 피하라고 빡통아!"
"저, 저걸 어떻게 피해요…."
"아니, 염병할 눈은 장식이야? 거리 재면서, 거리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모션 주시하다가. 스킬 모션 나오는 순간 피한다. 이게 힘들어!?"
"넹…."
[아니 ㅋㅋ ㅈ피련아 저거 거의 모션 잆는 스킬인데 뭘 보고 피하라는 거야]
[저은하ㅏㅏㅏㅏ 미천한 소인들에겐 그 모션을 보고 피할 피지컬이 업사옵니다!!!]
[ㅈ피쉑 개 못 가르치네 ㅋㅋ]
[원래 천재는 남을 잘 못 가르친다자너 ㅇㅇ 감각이 어긋나 있어서]
[얘가 천재라고?]
[천하의 재수없는 놈]
[으으으 -틀-!]
[저거 한 20년 만에 들어보는 것 같네 ㅋㅋ틀딱쉑]
[그러는 니도 -틀-이잖아 틀딱아]
[아니 근데 ㄹㅇ 삼피한테 배웠다간 버릇만 잘못 들 것 같은데?]
제나의 플레이 스타일의 테마는 '감각'이었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냉정하게 말하면 '무작정', '무대책', '정면 돌파' 정도가 있겠다.
이리 저리 복잡할 게 재볼 것 없이, 자신의 피지컬 하나 만으로 정면 돌파 한다.
그게, 제나의 플레이 스타일이었다.
뇌지컬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레오레에서 절대로 현명하다곤 할 순 없는 플레이 스타일.
그런 플레이 스타일로 제나가 레오레 최상위권 수준을 유지하는 건, 전적으로 그녀가 아주 논외적인 수준의 플레이 스타일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즉.
제나 수준의 야수적인 피지컬 능력이 없다면, 제나의 플레이 스타일은 득이 되긴 커녕 독이 될 뿐이었다.
"아니, 거기서 라인을 왜 벗어나!"
"우리 정글 위험하잖아…."
"버려! 니가 캐리하면 되잖아!"
"아니, 그래도 팀인데…."
"아, 이 찐따 색- 하. 됐다. 기브업. 지지. 니가 챌린저 가려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한강 가서 캐릭터 재생성을 하던가 해. 아니면 교회 가서 기도로 기적을 노려보던가. 니 돈 잘 벌잖아. 헌금 넉넉하게 꽂아 주면 예수님도 귀를 기울여주시지 않겠냐?"
"헝…."
그리고 애당초, 제나는 탑 라이너고 권지현은 미드 라이너였다.
포지션이 다르기에, 가르치는데 애로사항이 꽃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권지현이 두 번째로 찾은 스승은 다양한 의미로 제나보다 적합했다.
"찐따야, 거기서 왜 그랬던 거야?"
방민아였다.
그녀는 미드 라이너이자, 정통 메이지 유저였고.
균형 잡힌 피지컬과 뇌지컬을 두루 활용했다.
권지현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어… 우리 정글 도와주려고…."
"응~ 그렇지. 정글 도와주는 거, 미드한테 중요하지. 그런데 지현아. 정도라는 게 있잖아. 정글 도와주려고 라인 다 때려쳐 버리면, 우리 지현이는 뭐 먹고 살게? 이슬? 우리 지현이가 엘프구나?"
"어, 엉?"
"그럼 우리 지현이는 이슬 먹고, 나는 옆에서 샘이슬이나 먹으면 되겠다. 지현이 하는 거 보니까, 갑자기 술이 너무 땡겨. 응? 안주가 필요 없겠어. 지현아, 우리 같이 사업이나 할까? 안주 대신 지현에 가게 중앙에 세워 놓으면 돈을 아주 그냥 떼로-"
그런데도, 방민아도 마찬가지로 교사로 부적합했다.
"후… 지현아?"
"네…."
"내가 무슨 말 할지, 알 것 같아?"
"죄송해요… 모르겠어요…."
"응~ 그렇구나. 우리 지현이는 남한테 지도해 달라 해 놓고, 정작 그 사람한텐 조금도 관심이 없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아까부터 누~누히. 정글보다 너부터 신경 쓰라고 했어~ 안 했어?"
"해, 했어요."
"오. 정말? 응? 그런데 이상하네? 왜 지현이는 그런데도 정글을 더 신경 쓸까? 사실은, 내가 말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지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게 되잖아. 아, 혹시 후잔가? 응? 지현아? 둘 중 뭘까?
뭐, 둘 중 뭘 골라도 내가 병신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우리 지현이 잘 알려주지도 못하는 병신. 지현아 이렇게 하자. 이제부터 지현이 플레이에 개선이 안 되면, 그건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한심하게도 제 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니까. 제 구실 못하는 병신 같은 교사 뺨을 한 대씩 때리는 거야. 어때?"
"헝헝… 내가 미아냉…."
그녀의 지도에는, 학창시절 때부터 꾸준하게 무리의 우두머리로 군림해 오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갈굼이 녹아 있었는데.
그게 너무 존나 무서웠던 탓이다.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
[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그만]
[민아야미안해지갑여깄어이제용서해줘민아야미안해지갑여깄어이제용서해줘]
[아메리카TV가 옐로TV에 일찐을 풀었다]
방민아는 시종일관 나긋나긋 웃으며, 조곤조곤 말했을 뿐인데도.
권지현과 그녀의 시청자들이 PTSD를 유발하며 공포를 호소했다.
결국, 권지현은 두 번째 교사와도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는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일명 '권지현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
-그,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인데….
[ㄷㅊ]
-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