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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게임을 잘함-266화 (266/361)

266. 설득 2

이전 세계.

최재훈의 부친인 최석훈에게 그 잔인한 운명은 갑작스럽게도 찾아왔다.

권고사직.

두 자식이 한창 클 나이.

가족이 부족함 없는 일상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 참으로 돈이 많이도 들어갈 시기인데 가장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 버렸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최석훈은 권고사직을 한 게 아니라 이직이라도 하듯, 곧장 프렌차이즈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에, 그가 모아둔 적금으로 그나마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처음엔 꽤 상황이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오픈반짝이 끝나고.

프렌차이즈 요식업의 진짜 적인, 다른 프렌차이즈들이 주변에 하나둘 들어서자.

가게의 상황은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인건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두 직원을 내보내야 했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최영은이 집에서 가게로 나와야 했고.

밤낮으로 바쁘게 일해야 했다.

그렇게, 어린 두 자식을 방치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을 때.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식들이 혹여 엇나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 어렸던 장남은 참으로도 당찼다.

당연한 듯, 어른이 없는 집을 책임지고 나선다.

아주 훌륭하게.

그러면서도 학업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학원을 보내주지 못했는데도, 아들은 전교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고.

어지간한 학원 선생 보다 뛰어났던 것인지, 아니면 동생이 원래 뛰어났던 것인지.

동생도 곧잘 가르쳤다.

고등학생이 되더니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하며, 살림에 보탠다.

그런데도, 고등학교에 가서도 전교 석권을 놓친 적이 없었고.

불평 한 마디 한 적이 없었다.

단언컨대, 최 부부에게 있어 그는 보물이었다.

더는 없을 정도로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믿음직스러웠다.

전교 석권인 그가 대뜸 수험시기에 공부를 그만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하고 싶다 했을 때, 일말의 의심 없이 전적인 지지를 보내줄 정도로.

이 세계의 '최 가족' 또한 다르지 않았다.

최영은이 권고사직을 당하고, 최석훈이 돕는다.

그렇게 방치된 집을 책임지면서.

동생을 가르치면서.

아르바이트로 살림에 도움을 주면서.

세연대 진학에 성공한다.

어느 아빠건 딸이 있다면 딸바보가 되기 마련이듯.

어느 '엄마'건 '아들'이 있다면 '아들 바보'가 되기 마련이었다.

남의 눈에 그렇지 않아도, 엄마의 눈에 아들이란 무조건 예뻐 보인다.

그런데 심지어, 남의 눈으로 봐도 예쁜 아들이다?

무뚝뚝한 '최영은'일 지라도 극성 아들 바보가 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최근 들어, 그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최재훈 일행은 뒤늦게, 가게 곳곳에 부적처럼 붙어 있는 어떤 전단지 같은 걸 발견했다.

최재훈의 인터뷰 기사를 인쇄한 거였다.

티비에서는 최재훈의, 숨컷의 미튜브 채널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이, 이게 뭐고…."

최재훈이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모친의 작품만 아니었다면 그만 소름이 끼치고 말았을 것이다.

"저, 저건 또 뭐고…?"

벽에 붙어 있는 건 인터뷰 기사뿐만이 아니었다.

[숨컷이란 누군가?]라는 문구가 크게 박혀져 있는, 숨컷을 소개하는 포스터였다.

숨컷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와, 업적이 빠짐없이 기재되어 있었다.

"세상에…."

최재훈은, 그래도 모친에게 일말의 자제심이 남아 있음에 감사해야했다.

이전에, 미튜브를 보던 모친이 [얘 딱 봐도 성형 아님?] 이라는 댓글에 분개하여, 해당 포스터에 옛날 사진을 붙여놓는 걸 참을 정도의 자제심이 말이다.

그때, 최재훈의 눈에 전단지가 들어왔다.

거기엔 이질적인 문구가 가장 크게 강조되어 있었다.

[미튜브 '숨컷'채널에서 추천, 즐겨찾기하고 숨컷 최신 동영상에 '선플(중요)'달아주시면 서비스로 닭껍질 튀김, 치즈볼, 감자튀김, 치즈스틱 중 1택 증정해 드립니다!]

"아, 진짜 엄니… 미치겠다…."

덕분에 그녀들은 아주 신기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 최재훈이 얼굴을 붉히며 쑥스러워 죽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와, 재훈 씨! 저희 선플 하나씩 달면 서비스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 귀엽네. 뭐라고 달아줄까?"

"최신 동영상이면 인터뷰인데, 선플 달 거리가 아주 많겠군요."

여자들은 거대한 철벽과도 같던 최재훈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세라.

이때다 싶어 그에게 공세를 가했다.

아주 짓궂고, 또 흐뭇한 얼굴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 그런 얼굴을 짓게 만드는 가족이었다.

이리도 화목한 가정이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재훈, 그가 있는 집은 응당 이런 게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말이다.

세 여자는 저도 모르게, 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렸다.

최재훈, 그가 자식이 아닌 부친으로 있는 가정을.

그리고 그 가정의 모친은-

여자들이 각기 다른 얼굴로 보이며 망상에 잠겼다.

"아빠~ 아니, 사장님~ 저 추천 즐찾 할 테니까 서비스도 주세요!"

"아, 하지 마!"

"아 훼줴 뭬~ 눼눈 미튜브 100만 구독좌 숨퀫이야~ 내 미튜브 채널에 선플, 괄호 열고 중요, 괄호 닫고를 달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워~"

"아, 진짜!"

"아 즙짜!"

머지않아, 주방에서 부친이 치킨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온다.

"앗-"

그걸 확인한 권지현이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려고 하자.

그리고, 그걸 본 이린과 제나도 따라서 일어나려고 하자-

"아, 괜찮아요~ 편히들 계세요."

그걸 최재훈이 만류하고 대신 나갔다.

"앗, 아… 넹…."

"어, 응…."

"감사합니다…."

그렇게-

"언니들, 끝말잇기라도 고?"

"니도 도와 이 지지배야."

"으에엑-"

볼을 낚아채여 간 최재은도 일어나서.

세 아싸만이-

"어… 저부터 할까요? 컴퓨터."

"크흠, 터미-"

"니가 이겼어."

"…."

"…."

"…."

어색하게 남아 최씨 일가를 기다렸다.

최재훈, 최재은, 최석훈이 바쁘게 움직이며 탁자 위를 수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리를 끝낸 최영은이 도착하자-

"아,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권지현과 둘이 재빨리 일어나 인사했다.

"아, 괜찮습니다. 재훈이가 모시고 온 '손님' 분들이신데. 여러분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있다들 가세요. 어여, 시장하실 텐데 앉아서 자십시다."

최영은의 손짓에, 모두가 자리에 착석한다.

자리는 최씨 일가와, 세 여자가 마주보고 앉는 형태가 되었다.

"손님들부터."

최영은의 권유.

그녀는 시종일관 몹시 정중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경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정중한 경계, 라고 해야 할까.

그 경계를 받으며 가장 먼저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권지현이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여러가지 치킨 중, 양념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다리를 집어서 갖고 가려던 찰나-

"다리라…."

멈칫.

최영은의 중얼거림에 정지한다.

"저희 재훈이랑 통하시는군요. 저희 재훈이도 다리를 참 좋아합니다."

권지현은 도무지 그 말을 '우리 아들이랑 통하시네요!'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네년이랑 합치면 우리 아들은 더 이상 치킨을 먹을 때 좋아하는 부위를 두 개 먹을 수 없게 되겠군.' 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상상은, 정답에 근접했다.

"아, 앗… 어, 그, 그게 아니라 저는… 어… 사실 다리보다는 가슴살을… 다리는… 재훈 씨 드시라고 이렇게…."

권지현의 젓가락이 부자연스럽게 궤도를 꺾어, 최재훈의 접시 위로 다리를 내려놨다.

"오,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재훈이는 양념보단 후라이드나 파닭 같이 담백한 걸 좋아합니다."

"앗… 그렇군요…. 파닭… 넹… 맛있죠…."

그 말을 끝으로 권지현이 꾸깃, 하고 구겨졌다.

"…."

"…."

그 광경을 지켜본 제나와 이린은 감히 치킨에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제나가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후라이드 치킨의 다리를 최재훈에게 배달하려고 하자-

그러자-

"오, 배려 깊으시군요. '평소에도'그렇게 곧잘 재훈이에게 음식을 덜어주시나요?"

제나 역시, 최영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너 이 자식, 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재훈이한테 음식 덜어주냐? 니 재훈이의 뭔데?'

"…."

제나의 젓가락이 부자연스럽게 꺾여 자신의 접시로 돌아가려는데-

"후라이드 다리를 좋아하시는군요? '재훈이처럼'"

제나의 후라이드 다리가 갈 곳을 잃은 채 공중에서 정지됐다.

그렇게 두 여자를 격파시킨 최영은의 시선이 이린에게 향했다.

흠칫.

떠는 이린에게 최영은의 입이 벌어진다.

"선생님께선, 제가 아시는 바로 우리 재훈이 크루 소속이 아니신 것 같은데. 재훈이와는 어떤 관계신지요?"

"아, 저는. 현재 숨컷- 님의 편집을 겸한 매니지를 담당하고 있는 이린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최영은의 눈이 반짝인다.

"아, 그 갓집자 님!"

"갓집…."

이린이 저, 고지식해 보이는 모친의 나올 거라 상상도 하지 못한 말에 당황했다.

여가 시간마다 최재훈의 미튜브 채널을 열심히 탐방하는 최영은이었다.

그녀는 영상마다 적혀 있던-

[와 이 영상이 벌써 올라오네 ㅋㅋ]

[갓집자 진짜 미쳤다 ㄷㄷ]

[사실 편집자가 CG로 영상 만들면 숨컷이 거기에 맞춰서 생방 진행한다던데?]

[사실 편집자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시차 이용해서 더 빨리 올리는 거라 함]

[오 어쩐지]

[뭔 오 어쩐지야 ㅄ아]

따위의.

편집자의 업무 능력을 찬양하는 댓글들을 기억한다.

얼마나 찬사가 자자하던지.

아들의 일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능력가!

그녀의 안에서 편집자에 대한 인상은 '극호'였다.

하지만.

역시 껄끄럽다.

아들 바보인 엄마는 아들에게 접근하는 모든 여자들이 탐탁찮은 법이었다.

"그나저나, 편집자 님께선-"

그렇게, 그녀가 또 다시 가시를 숨겨 놓은 편지를 보내려던 찰나였다.

"아, 아지매요! 좀. 그만 좀 해요."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진 최재훈이 쓰게 웃으며 모친을 만류했다.

"왜 손님 분들한테 압박 면접을 하고 있어."

"아니, 재훈아. 엄마는 그게 아니라-"

"저 진짜 쪽팔려서 머리 터지는 거 보고 싶으시면 계속 하시고요."

"아이고, 이 여편네야. 좀 적당히 해야지. 동료 분들 앞에서 아들한테 망신을 주고 그래!"

"아니…."

"숨빠 개악질이넹. 리얼쿠쿠루삥뽕삥."

"재은아 너까지…."

결국, 극성 아들 바보는 가족들에 의해 제압당한다.

고개 숙인 가장의 모습에, 여자들은 한마디씩 건넨다.

"아, 저는 괜찮아요! 어르신께서 상당히 유쾌하시네요!"

"조금도 안 불편했으니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에, 가족들에게서 배척받은 가장이 눈을 반짝인다.

"선생님들…."

"선생님이라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 까요?"

"네! 딸이라 생각 하시고!"

"뭐라는 거야, 얜 또."

"…헿."

저도 모르게 '며느리 감이라 생각 하시고'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한 이린을 비롯해서, 셋과 최영은 사이에 거리가 가까워진 게 느껴졌다.

"이게 뭐라냐 도대체."

최재훈이 헛 웃었다.

어쨌거나, 좋은 게 좋은 거다.

결과적으로 모친이 동료들에게 갖는 인상은 아주 긍정적이게 되었으니.

아들이 추측하길, 애초부터 동료들을 좋게 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 같았다.

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부지, 엄니. 다시 한번 정식으로 소개시켜드릴게요. 여기는, 권 지현 씨예요. 저 인터넷 방송 시작하는데 엄청 크게 도움 주셨었어요. 시작하고 난 뒤에도, 큰 도움 주셨고요."

"아니, 그래!?"

숨컷의 미튜브엔 있지 않은 정보였다.

최영은이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아이고, 제가 은사님을 몰라 뵙고."

"아이, 은사님이라뇨. 재훈 씨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지, 사실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다, 재훈 씨 능력인걸요. 오히려, 제가 재훈 씨한테 큰 도움을 받았어요. 재훈 씨가 제 은사세요."

그렇게 말하는 권지현에게선 계산적인 타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저 말을 진심으로 했다는 게 된다.

최영은이 눈을 더욱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악수를 건넸다.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난 권지현이 내민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격렬하게 흔들었다.

"우리 재훈이,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제나 씨. 제나 웨스트. 제 방송이랑, 크루 성장하는데 엄청 크게 도움 주신 분이에요. 마찬가지로, 제 은인."

"아이고~ 반갑습니다."

최영은이 이번엔 제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나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손을 마주잡았다.

"…."

최영은 제나를 바라봤다.

사실, 최영은은 제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의 이미지가 이미지인지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모친을 향해, 제나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나 웨스틉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 같은 순간을 위해서 피나는 노력하여 익혔던 그 기술을 사용한다.

바로-

씨익.

'미소 같은 무언가'였다.

"와…."

"워…."

그 미소-

라 부르기엔 상당히 상당히한 표정을 지켜본 구경꾼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똑같은 결론을 내렸다.

안 짓느니 못한 표정.

최영은은 그런 표정을 한 제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더니-

씨익.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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