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자가 게임을 잘함-262화 (262/361)

262. 월클컷 2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

보기에 마냥 친근해서 가깝게, 혹은 만만하게 느껴지는 사람.

최재훈은 몰라도, 숨컷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외견만 보면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입을 여는 순간,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렇다.

숨컷의 시청자들, 팬들에게 있어 숨컷의 무게감은 어디까지나 가벼웠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 새기가 100만이라고?]

[ㅁㅊ ㄹㅇ이네]

[아니 언제 이렇게 올랐대]

[정신 차려 보니 하늘 돌파해 있네 ㄷㄷ]

[마치 절 보는 것 같네요]

[몸무게가 100만키로신가요?]

[지구야?]

[정신 차려 보니 고혈압이랑 당뇨랑 지방간 와 있더라고요]

[오 삼위일체]

[트리플 크라운 달성 축하합니다 상으로 엄상희를 드리겠습니다]

[아니 근데 조컷쉑 갑자기 낯서네;]

[ㄹㅇ;;]

갑부들을 칭할 때 백만장자라 부르듯.

미튜브에서도 백만은 아주 상징적인 수치였다.

국내에 골드 버튼을 갖고 있는 이는, 그러니까 구독자 50만 명을 달성한 개인 미튜버는 의외로 많다.

통계를 확인하면 '이렇게 많아?'라고 느낄 수준.

반면에, 그 보다 한 단계 위인 플래티넘 버튼 보유자.

그러니까, 구독자 100만 이상인 개인 미튜버.

겨우 500명가량이다.

마치 레오레에서 어떤 티어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다.

바로 챌린저.

일반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오를 수 없는 절대적인 재능의 구간.

그렇게 사람들은 100만 이상 미튜버를 경외심을 담아 그렇게 부른다.

[이 새기는 여기서도 천상계네 ㄷㄷ]

게다가.

그 100만 미튜버를, 게임 카테고리로 한정하면.

그 수는 더욱 적어진다.

그 수는 약 100명.

한 마디로 지금.

최재훈은 국내를 대표하는 게이머 TOP100안에 소속된 거라 봐도 무방했다.

[아니 근데 이 새기 미튜브 시작한지 얼마 안 되지 않음?]

[1달 안팎일걸?]

[말이 되는 소릴 하십쇼 선생님 뚝배기를 깨 버리기 전에]

[ㄹㅇ ㅋㅋ 숨컷이 1달 만에 구독자 100만이면 하루에 구독자 3만3333.3333333333333333.... 명씩 올랐다는 건데 ㅋ 말이 대나]

[그러면 99만9999.99999999999999... 명 아님?]

[그게 100만이지 ㅋ]

[그게 왜 100만이야 ㅄ아]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문과새끼야]

[^^ㅣ발 문과는 니가 문과지 끝에 있을 1를 감성으로 채운 거 아냐]

[이과 새끼들 ㅋ 이성적인 척 다하더니 수학을 시장바닥 아재들처럼 하누]

[아이구 아저씨! 인상 좋네! 마지막 1은 내가 인심 써서 100만으로 쳐 줄게!]

[그럼 이과들한테 빼빼로데이는 0.9999999999999.... 0.9999999999... 월 0.9999999999999.... 0.9999999999... 일인가요]

[숫자 1부터 세면 9 세다가 늙어 죽겠누 ㅋ]

[아니 근데 이거 확인해 보니 ㄹㅇ 숨컷 미튜브 시작한지 0.999... 달 안 됐는데?]

[그러게 최초 영상 올라온지 1달 안 됐음]

활동을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말이다.

[아니 ㅁㅊ 그게 말이 댐?]

[그러고 보니 얘 채널에 진짜 플래티넘 뱃지 달려 있네]

[ㅁㅊ]

[나 국내 미튜버중에 이거 달고 있는 애 열 명도 못 본 것 같은데]

[그건 오바고 모든 카테고리 통틀어서 50명 안 될걸?]

[와 ㅅㅂ 진짜 정신나갔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문득 궁금해진다.

현재 TOP100 게임 미튜버들, 그러니까 게이머들 중에서.

숨컷과 같은 기록을 이뤄낸 전례가 있는가.

플래티넘 배지, 그 이상의.

1달 만에 구독자 100만 달성 말이다.

"안 그래도, 제가 숨컷 님의 구독자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해당 기록과 관련된 자료를 준비해 왔는데요."

영상 속에서 최서윤이 말한다.

"자료에 따르면, 숨컷 님과 같이 1달 안에 구독자 100만에 달성하는데 성공한 게임 미튜버는. 국내 역사상, 단 일곱 명뿐이었습니다."

[7명이나 됨? 아니 겨우 7명인가?]

[많은 건지 적은 건지 모르겠네]

[그럴 땐 긍정적으로 사고하라고 배웠었어요]

[와 겨우 7 명 밖에 안 되네! 랑, 무려 7명이나 되네! 중에 뭐가 긍정적인 사곤데]

[그럼 걍 6.99999........ 명 밖에 안 되네라고 하죠 그러면 많으면서도 적어보임]

[천재냐?]

[문과 사이에선 그게 천재 수준인가요? 흥미롭네요]

[네 다음1.999... 과]

예상 외로 애매한 숫자에 시청자들이 긴가민가해 한다.

대단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건지.

평범하게 대단한 건지, 이례적으로 대단한 건지.

[그래서 그 7명이 누군데?]

최서윤은 시청자들의 그런 의문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이 일곱 분에 대해서 설명 드리자면, 일단 첫 번째. 그러니까 1위. 바로, 페이스 선수로, 미튜브 채널 개설부터 구독자 100만 달성까지 4일이 걸렸습니다."

[김1, 999... 리 또 너야!?]

[ㅁㅊ ㅋㅋ 3.999... 일? 정신나갔네]

[센빠이는 ㄹㅇ 월클이긴 하네]

"그리고 2위가 바로, 하이로드 님으로. 100만까지 약 9일이 소요됐습니다."

[ㄷㄷ 역시 짱깨쉑도 장난 아니네]

[중국인들 미튜브 할 수 있었으면 더 빨랐을 듯]

[그건 페이스도 마찬가지ㅇㅇ]

[와 근데 ㄹㅇ 쟤네 둘은 어나더레벨이네]

워낙 차원이 다른 기록이 언급된다.

"그리고 다음 3위는 머그컵 선수로-"

"6위는 사이트-"

그리고 또, 페이스와 하이로드만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숨컷 보다는 빠른 기록들이 다수 언급된다.

결국 숨컷은 그 마지막인 8위였다.

그렇게 사람들 안에서 결론이 나온다.

[보니까 숨컷이 막 그렇게 역대급은 아닌가보네]

[그러게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왠지 김 빠지누]

숨컷의 기록은.

숨컷은.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또 역대급으로 대단하냐 하면 아닌 것 같다고.

그때.

"그런데-"

최서윤이 반박이라도 하듯 말을 잇는다.

"숨컷 님, 이 분들의 공통점을 발견하셨나요?"

"공통점이요? 글쎄요."

"바로-"

하이로드와 여섯 명의 프로.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이 미튜브를 개설했을 때는 이미, 장기간 동안 활동하며 이름이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반면에-

"숨컷 님은-"

방송을 시작함과 동시에 미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숨컷이 서로 공통되는 일곱 명과 차별되는 점은 바로, 처음부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1달 만에 여기까지 왔다.

사람들은 생각해 보았다.

저 일곱 명 중,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여기까지 왔던 이가 있었는가.

차현하?

머그컵?

아니.

그녀들이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건, 최소 두 시즌 이상 인상적인 기량을 유지한 이후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게이머인 저들도, 숨컷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다면.

숨컷에게 뒤쳐졌을 거란 이야기다.

다른 프로들 또한 마찬가지.

전설의 '1위 대리'사건을 계기로 중국에 진출하여, 곧장 1위를 달성해 시작부터 엄청난 유명세를 떨친 하이로드.

데뷔 첫 경기에서 이전까지 최고의 미드로 군림하고 있었던 선수를 완벽하게 압도하여, 시작부터 최고였던 페이스.

그 둘 정도는 돼야, 숨컷처럼 한 달 만에 밑바닥에서부터 구독자 100만까지 달성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여지' 말이다.

그 둘 조차도, 숨컷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한 달 만에 지금 그와 같은 성과를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게 현재 숨컷이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가능성이었다.

세계 최고의 게이머인 둘과 나란히 서거나,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

지금까지 사람들이 숨컷에게 갖고 있었던 이미지는 가볍고 흐릿했다.

마치 깃털처럼.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숨컷은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람들이 그에게 가진 이미지는 독수리처럼 묵직하고, 자유롭게 되었다.

그가 친근하고 웃길지언정.

더 이상 만만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분명 존중받고, 존경받고 있었다.

최재훈은 자신의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최서윤의 추켜 세워주는 찬사에, 최재훈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러게요. 제가 생각보다 난 놈이긴 한가 봅니다."

"자, 그러면 숨컷 님.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고, 플래티넘 배지를 얻으셨습니다. 보통 방송인 같았으면 평생의 목표로 삼았을 업적을 '한 달 만에', '벌써'! 이루신 건데요. 다음 목표로 생각해 둔 게 있으신가요?"

그 질문에 최재훈이 피식 웃었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자신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것.

그리고, 그곳이 최고이길 바라는 것.

그를 위한 다음 단계라고 한다면-

"다이아 버튼이랑, 이번 미튜브 시상식 게임 부문 수상 정도가 있겠네요."

"아, 구독자 300만에 미튜브 시상식 게임 부문 수상! 자신감이 느껴지는 아주 원대한 목표인데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다음에 할 일을 몇 가지 정해 두긴 했습니다."

"몇 가지라니! 시청자 분들께 선물이 될 컨텐츠가 하나도 아니라 여러 가지라는 소리네요! 그러면, 그 첫 번째 선물이 뭔지. 포장지를 뜯어볼까요?"

"이야, 표현 보게. 우리 기자님, 괜히 기자가 되신 게 아니네. 아주 그냥 문풍당당이야."

[속보) 숨피셜 문과 0.999... 승]

[속보)1.999... 과 새끼들 오와 열 ㅋㅋ]

[어이가 없누 ㅋㅋ]

[아니 근데 저 기자 쉑 아까부터 사심 인터뷰 하는 것 같네 ㅋㅋ 왤케 신났누]

[ㄹㅇ 질문도 그렇고 얜 100% 숨컷 팬이네]

[성덕 ㄷㄷ]

"어쨌거나, 첫 번째는. 여러분도 다들 알다시피, 멸망전 참가인데요. 거기에서 우승할 생각입니다."

그가 아주 당연한 듯, 덤덤하게 말했다.

[캬 ㅋㅋ]

[이 새기 일케 멋졌나 ㄷㄷ]

[그 찐따 같던 숨컷이 맞냐? 보고 있노라니 축축해지네 (눈가가 ㅎ)]

"이미 아시겠지만, 멸망전엔 대한민국 대표 게임 방송인들뿐만이 아니라, 최고의 프로 선수들도 참가할 예정입니다. 무려, 페이스 선수도요! 숨컷 님께선, 페이스 선수를 이길 자신이 있으신가요?"

최재훈이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겨야죠."

크~

채팅창과, 최서윤의 입에서 동시에 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죠! 이겨야죠! 제가 당연한 질문을 했군요. 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서, 두 번째 계획은 뭔가요?"

"최 기자님."

"넵?"

"최 기자님은, 조만간 있을 게임계 빅 이벤트로 뭐를 꼽으시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일단 방금 이야기 나눴던 멸망전이 대표적일 테고. 다음은, 어…."

[뭐 있냐?]

[레아블로4 발매?]

[아직도 대가리가 안 깨졌누?]

[멸망전 말고 큼직한 건 딱히 없지 않나?]

[아 야 그거 있잖아]

[아 맞다 그걸 왜 깜빡했지]

최기자가 "아!"소리로 고민이 끝났음을 알리며 말했다.

"설마!?"

"맞습니다, 그 설마입니다."

"숨컷 님, 하늘전에 참가하시는군요!"

그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채팅창이 후끈 달아올랐다.

역대급으로 화끈했던 전야제의, 숨컷의 열기에.

그리고, 멸망전의 열기에 묻혀 그 임팩트가 덜하긴 하나.

원래 같았으면 이맘때 즘의 가장 큰 게임계 이벤트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인 하늘전의 꽃, 레오레 종목이었다.

거기에 숨컷이 참가한다니!

[숨컷 정도면 당연히 참가할 만한데 진짜 참가하니 ㄹㅇ 반갑네]

[ㄹㅇ ㅋㅋ 계란 깠더니 노른자 두 개 들어있는 것 같네]

[그게 뭔 쌍알 같은 비유인가요]

[근데 숨컷 이미 영입 제안 받은 건가?]

[말하는 거 보니 그런 듯]

[어디로 들어갔지?]

"이미 러브콜을 받으신 상황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숨컷은 곧바로 세연대의 영입 제안에 응할까 하다가도.

이린과 상의한 끝에, 하늘전 영입 제안 수락을 보류하기로 했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그들을 안달 나게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며칠간 숨컷의 행보를 지켜본 그들은 제대로 안달이 났다.

페이스에게 인정받고.

하이로드에게 인정받고.

MK를 상대로 승리함으로써, 무수한 신기록을 달성하며 최초 전 1위를 달성한 '남성' 플레이어라니?

'남성' 선수의 참가가 유리하게 작용하는 하늘전의 승리의 열쇠라 봐도 무방했다.

때문에, SKY는 정말로 열성적이게도 숨컷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명예 학위에, 졸업장이라도 줄 기세로.

그렇게 숨컷은 가장 높은 몸값을 얻어내어-

"그렇다면, 숨컷 님께선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참가하실 예정인가요?"

당초 목적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세연대로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세연대는 SKY에서 레오레 종목 최약체인데요.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군요. 그런데도 세연대로 참가하기로 결정하신 이유가 뭔가요?"

최재훈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한 팀 우승시키는 게 가장 그림이 좋잖아요?"

* * *

-약한 팀 우승시키는 게 가장 그림이 좋잖아요?

"크~"

세연대학교 부지 내 건물의 일실.

이번 하늘전의 꽃인 레오레 종목를 책임지게 되어, 가장 쾌적한 동아리실을 배정 받은 그들은.

프로젝트로 숨컷의 최초 공개 인터뷰 영상을 지켜보다가 감탄을 터뜨렸다.

"약한 팀 우승시키는 게 가장 그림이 좋잖아요? 진짜 미쳤다 미쳤어. 뭐 저런 애가 다 있냐."

그 말에 누군가가 피식 하고 웃는다.

"좋냐?"

이번 레오레 팀의 주장인 서수나였다.

그녀를 후배가 동경의 시선으로 쳐다봤다.

"아니, 선배님. 그거 진짜였어요? 숨컷이랑 개인적으로 친분 있다는 거?"

자신을 제외한 이들은 '숨컷'이 '세연대생 최재훈'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는 지금의 숨컷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재학시절 그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결국, '숨컷'을 알아보는 사람은 자신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재학시절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이켜 보면.

숨컷.

아니, 최재훈.

그는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

그가 세연대를 선택한 건, 자신과 연관이 있다.

서수나는 그에 진한 우월감을 느꼈다.

하지만, 최재훈은-

아니.

'최재훈'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걸 알지 못하는 서수나는 겉으론 후배들을 잘 챙겨 주는 친절한 선배 특유의 상쾌한 미소를, 속으론 뱀 같은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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