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인터뷰 1
"허, 참나."
최재훈이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이린이 보내준 메일들을 훑어본 바.
그것들은 기자들이 단독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낸 메일이었고.
그 기자들이 본인의 소속을 밝힌 바.
그들은 국내의 내로라하는 언론사 소속이었다.
메일함이 마치, '국내 언론사 TOP20' 검색 순위 결과가 된 듯했다.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는 아주 극진했다.
분위기적인 면으로나.
조건적인 면으로나 말이다.
그들은 정중한 어조로-
포털사이트 메인 노출, 헤드라인 보장, 공영 방송사인 본인들 언론 미튜브 공식 채널에 영상 업로드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정성이 철철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이런 조건에 단독 인터뷰라니. 제가 알기로는 국내외 대회 우승팀의 MVP에게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이린은 제가 다 자랑스럽다는 듯 답지 않게 감정이, 흥분이라는 감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 참나…."
아까완 다른 의미로 중얼거린 최재훈은, 휴대폰 너머의 이린과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떨떨하면서도 기뻐서 흥분되는 얼굴을.
이린의 말에 따르면.
지금 자신은 국내 언론에게 있어서 그토록 동경해 마지않던, 최고의 선수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으니.
최재훈의 기억 속에 동경이라는 선명한 형태로 존재하는 광경이었다.
인터뷰 기사로써 포털 사이트 메인을 위풍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선수들의 모습.
그를 향한 전 국민적인 관심.
그리고 인정.
자신도 볼 때면 '하, 진짜. 대단하다.' 동경과 존경을 보내곤 했던 그 광경.
최재훈은 그 광경의 주인공을, 자신으로 바꾸어 보았다.
그게 머지않아 자신에게 있을 미래였다.
"이건 뭔…."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나올 만큼 좋다는 건 이런 일을 두고 하는 이야기리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고 싶다.
최재훈은 일찍이 꿈꾸고 모든 걸 걸고 도전했으나 이루지 못한 그 꿈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괜스레 숨이 가빠진다.
얼굴에선 미소가 가지 않는다.
근처에서 제 할 일을 하다가 그 모습을 지켜본 최재은.
그리고, 핸드폰 너머에 있는 이린.
그들의 입꼬리가 최재훈에게 감염된 듯 부드럽게 올라갔다.
"그래서, 어떻게."
이린이 선물을 주곤 반응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덩달아 들떠서 물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예, 당연하죠."
"그렇겠죠. 그렇다면, 선택하실 때 참고하십사.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재훈이 이린의 말을 들으며 메일들을 재검토했다.
"응?"
재검토하는데, 붕 떠 있던 표정의 그가 눈썹을 튕겼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 이게 좀 뭔가… 걸려서요."
"뭐가 말씀이신지요?"
최재훈의 시선이 메일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자가 밝히는 본인의 소속이 기재된 부분이었다.
소속 언론사가 대형 언론이라는 건 둘째 치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게임과 관련된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대체로 보수적인 대형 언론사에서도 게임 그 자체와, E스포츠와 게임 방송 등의 파생 문화 전반을 다루는 '게임부'를 따로 둘 정도로.
다른 건 몰라도, 게임과 관련된 뉴스와 기사는 꾸준히 챙겨보는 최재훈이었다.
그런 그가 기억하기에, 대형 언론사에서 E스포츠와 관련된 기사를 쓰는 기자는 대부분.
게임부에 소속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기자의 경우에는-
"사회부 소속이네요?"
최재훈은 떠올려 보았다.
자신이 봤던 선수 인터뷰 중, 담당 기자가 사회부 소속이었던 적이 있던가?
없었다.
최재훈은 불현듯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말했다.
"혹시 이거, 인터뷰 질문지 미리 확인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아, 예. 아마 가능할 겁니다. 잠시-"
최재훈은 머지않아 이린이 보낸, 대형 언론사 사회부 소속 기자의 질문지를 확인했다.
"…."
최재훈의 표정이, 그의 시선이 질문지를 따라 내려감에 따라 복잡해져갔다.
질문지에 완곡하게, 혹은 은근하게, 어쩌면 교묘하게 작성되어 있는 질문들을 최재훈이 머릿속에서 해석하자-
여성들이 절대 주류인 게임계, 게임 방송계 투신을 결정한 이유 남성 게이머로서 활동하며 느꼈던 불편함남성 게이머로서 직접 활동하며 느낀, 게임계의 남성 게이머를 향한 인식 여성들이 절대 주류인 게임계에서 여성 게이머들을 넘어서 최고에 도달한 소감남성 게이머에 대한 소견.
게임계 최초 실력파 남성 게임 스타로서 앞으로의 포부.
그에게 그런 질문들이 주어졌다.
너무 예민한 걸까?
그럴 리가.
질문에는 명백한 의도가 담겨-
숨겨져 있었고.
최재훈은 그걸 발견했을 뿐이다.
그들이 인터뷰하는 최재훈은.
숨컷은.
혜성 같이 등장하며 역대급 기록을 달성한 유망주 플레이어이기 이전에.
남성이었다.
최재훈은 어제부터 언론이 자신에게 향해온 폭발적인 관심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하."
그러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번에 숨컷이 이룬 업적은 분명 존경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게임계를 넘어서 언론들에게 이리도 지대한 관심 받을 일이냐 하면?
애매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확고한 관심을 받게 된 이유.
숨컷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팬들 또한 마찬가지 아니던가?
마찬가지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시청자들에게 숨컷이 남자였기에 관심을 가졌을지언정.
어쨌거나 '숨컷'을 존중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저들 언론은 숨컷이라는 캐릭터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롯이 숨컷이 '남성 게이머' 라는 부분에 집중할 따름이다.
그들에게 숨컷은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제가 확인을 해 보고 전해 드렸어야 했는데."
마찬가지로 똑같은 의도를 읽어낸 이린이 이를 악물었다.
최재훈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줄 생각에 마냥 들떠서, 평소와 같이 철저하지 못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전에 재검토하여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최재훈에게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린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에이, 죄송할 게 어딨어요."
메일을 다시 확인해 보니, 대형 언론사의 기자들은 전부 사회부 소속이었다.
이들의 인터뷰에 임할 경우, 분명 많은 것을 얻게 되겠지만.
숨컷이라는 캐릭터는 '남성 게이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게이머 숨컷을 인터뷰하고 싶었다면, 언론사에서 게임부 소속을 보냈을 터다.
하다못해 연예나 문화부.
사회부 기자들은 게이머 숨컷이 아닌.
여성 주류 업게인 게임계에서, 여성들을 제치고 최고에 오른 '남성의 이야기'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이었다.
최재훈은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다른 기자들의 질문지를 받아 확인해 봤으나.
세세한 부분만 다를 뿐이지 전체적으론 같았다.
"아무래도, 인터뷰는-"
메일들을 거의 다 확인한 최재훈이 말을 이으려던 찰나였다.
"응?"
마지막 메일이 눈에 박혔다.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메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게, 국내를 대표하는 언론사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무나도 초라한 곳이었으니.
어바웃 인벤토리.
일명 인벤토리라 불리는, 게임 웹진.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웹진이었다.
"…."
최재훈은 홀린 듯 그곳에서 온 메일을 확인했다.
본인이 어바웃 인벤토리 소속이라 밝힌 최나윤 기자는, 자신이 어느 부인지 구태여 얘기하지 않았다.
어바웃 인벤토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웹진이었다.
* * *
숨컷이 게임 방송 모금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던 순간.
그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보고 곧바로 옮겼던 기자들 사이에, 그녀는 끼어 있었다.
어바웃 인벤토리 E스포츠 부서의 최서윤.
그녀는 퇴근하여 여가 시간을 즐기고 있던 와중이었으나, 그 추가 근무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업무상 이유가 아니라, 원래부터 E스포츠 쪽에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 직업을 따라간 케이스가 아닌, 직업이 관심을 따라간 케이스.
그런 그녀가 최근 들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 다름 아닌 숨컷이었다.
처음엔 '텔론남'이라는 키워드로 외모만 보고 숨컷에게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그가 게임을 대하는 순수한 태도를 보고 열성팬으로 들어섰다.
-♪
기사 작성을 마치고 머지않아, 그녀의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하…."
최서윤은 문자를 확인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먼저 불길함을 감지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자를 확인한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문자의 출처는 '개년'으로 저장되어 있는, 그녀의 직속 선배인 홍수아였다.
-야 최서윤 니 그때 숨컷 팬이라고 했지?
두서없는 질문에 최서윤은 불안감을 느끼면서 답했다.
-네
-잘 됐네
-인터뷰좀 따와라
최서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친, 미친, 미친."
-인터뷰를 따오라니 설마 숨컷이요?
-그럼 누구겠냐
-와 세상에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오
-의욕 뭐냐
-보기 좋네
-최서윤 드디어 사람 됐구나
"사람은 니가 됐지 이년아~"
평소 같았으면 불쾌함을 느낄 말에도 최서윤은 마냥 행복했다.
지금 그녀에게 홍수아는 개년이 아닌, 존경스러운 선배님이었다.
그 숨컷을 인터뷰 할 기회라니!
그간 그녀가 해온 만행은 깨끗이 잊혀질 정도였다.
-와 진짜
-제 친구한테 들어 보니
-숨컷 그 사람 지금 대형 언론 쪽 사회부에서인터뷰 따려고 난리가 났다던데 -도대체 어떻게 인터뷰를 따내셨대요?
-뭐?
-네?
-뭘 따?
-숨컷 인터뷰요
-내가? 숨컷 인터뷰를 따냈다고?
-뭐라는 거야?
"…."
최서윤의 표정이 다시금 구겨졌다.
그녀가 홍수아를 보고 난생 처음으로 느낀 '홍수아를 향한 존경심'과 같이.
-그러면 설마
-저 보고 처음부터 그 사람 인터뷰 따 내고 진행하고 다 하라고요?
-ㅇㅇ
-방금 팀장님한테서 연락 왔다
홍수아가 팀장에게서 하달 받은 지시는.
지금 하는 일이랑 같이, 숨컷 인터뷰도 병행해 보라는 것이었다.
홍수아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아니
-도대체 제가 지금 어떻게 숨컷의 인터뷰를...
-니 걔 팬이라며
"아 또 개소리 시작하네."
최서윤이 그녀로 하여금 홍수아를 개년이라 부르게 만드는 그녀의 논리에 진절머리를 쳤다.
-니 그 개 같은 논리면 삼국지 좋아하는 니는 관우 인터뷰 안 따오고 뭐 하냐? 퓰리처상이 뭐야, 시발 노벨상도 타겠구만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작성한 그 문자를 전송하는 것을 참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했다.
-그래도 뭐
-너무 걱정하진 마라
-팀장님 말씀 들어보니 어차피 기대도 안 하시던 눈치더라 -우리가 명색이 게임 웹진이니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시도하는 시늉이라도 내 보라는 거지 -ㅇㅋ?
듣던 중 그나마 다행인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최서윤은 그나마 어깨가 가벼워 지는 걸 느꼈다.
-알겠습니다
-어 그런데 선배님
-저 지금 하고 있는 건 어쩌고요?
최선윤은 지금 홍수아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일이 있었다.
그 일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대부분이 최선아의 몫이었다.
-그건 나한테 맡기고
-니는 이 일에 집중해
-인터뷰 못 따면 못 따는 대로 기사라도 내랜다
-아무튼 그런 줄 알고
일방적인 통보를 마지막으로, 대화가 끝났다.
그렇게 최서윤은 숨컷의 인터뷰를 맡게 되었고.
자신이 도맡아 진행한 일의 공을 홍수아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죽 쒀서 '개' 준 것이다.
"으아악!!! 진짜 이 개 같은 새끼야!!!!!!!"
최서윤은 입사 당시, 상당히 큰 실수를 저질러 팀장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 탓에 회사 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나빴다.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혼자서 화풀이를 하며 분이나 삭히다가, 결국 홍수아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
그녀는 방금과 같이 숨컷과 관련된 추가 근무를, 방금과 달리 죽을상으로 진행했다.
"…."
그래도, 숨컷에게 합법적으로 개인 메일을 보낼 수 있다 생각하니 어느 정도 기분이 나아지긴 한다.
그녀는 마치 팬레터 보내듯.
그를 향한 존중과 존경을 한가득 담아 정성스럽게 메일을 작성했다.
그리고, 인터뷰 질문지를 작성한다.
숨컷과의 인터뷰를 상상하며.
덕분에 그 과정 자체는 꽤 즐거웠으나.
작업이 끝나고, 답장이 오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마주하자 금세 또 기분은 울적해진다.
이번에 빼앗긴 성과를 생각하자니 더더욱.
그녀는 말 그대로 더러운 기분으로 잠에 들었다.
양 대신, 홍수아의 시체를 세며.
* * *
다음날, 어바웃 인벤토리 본사.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하던 최서윤은 메일함을 확인하곤-
"어?"
멍청한 얼굴로 눈을 꿈뻑였다.
메일함에 있을 리가 없는 게 존재했다.
발신자 : 숨컷
"…홀리."
어제 일로 하루 종일 칙칙했던 그녀의 기분과 눈이-
단번에 총기를 되찾았다.